<위험한 만남 (5)>
서진이 마른침을 삼키는 장석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왜? 깡패 새끼한테 깡패 새끼라고 하니까, 기분 나빠?”
“그, 그…….”
“연예인 시켜 준다고 꼬드겨 매춘을 시킨 깡패 새끼. 너 맞잖아? 그런데 형이라고 불러 달라고? 형.님. 됐나? 좋아?”
서진의 목소리에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달라진 분위기에 여자들은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여. 옆방에 있을게요.”
장석민은 여자들을 잡지 못했다.
지금 서진의 눈빛은 살벌하다.
순했던 모습이 사라지고 악마 같은 표정으로 장석민을 노려보고 있다.
장석민의 직업은 깡패, 세상 무서운 것 없이 살아온 자.
길을 걸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피했고 그 어떤 사람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 앞에서 순한 양이 되었다.
검사 앞에서 까불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장석민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입을 열었다.
“매, 매춘이라뇨…….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오해? 미치겠네. 계속 말해 봐.”
“그러니까 쟤들은 정말 중국에서 활동하는 걸 그룹이고요. 정말 평범히 활동하는 애들인데…….”
장석민이 그나마 믿는 것은 김윤환이다.
어쨌거나 서진은 김윤환의 친척 동생.
김윤환을 봐서라도 자신에게 해코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틀렸다.
계속해서 변명을 이어 가도 서진의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입가에는 가소롭다는 미소마저 지어지고 있다.
장석민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된 숨을 들이켰다.
이제야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거다.
서진은 장석민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지켜보며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봤던 것을 떠올렸다.
놈이 김윤환에게 했던 말.
“하고는 있는데, 진짜 할 거야?”
“하…… 씨발,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그런데 얼굴이 꽤 알려졌잖아? 애기들 부르면 싫어할 것 같은데…… 오늘은 그냥 우리끼리 놀자.”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보면 놈은 서진을 두려워하고 있다.
김윤환이 하려는 계획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들였지만 그 계획이 어긋났을 경우 벌어질 참혹함을 걱정하는 중이다.
놈은 검사의 무서움을 잘 아는 깡패.
게다가 서진은 놈에게 매춘이라는 혐의까지 씌울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이용하면 놈은 김윤환과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서진에게 고개 숙일 거다.
그 순간이었다.
장석민의 눈동자가 테이블을 향해 기울어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진은 놈의 눈동자가 이동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테이블?’
놈의 눈빛이 가진 뜻은 분명하다.
이곳에 뭔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 그걸 통해 서진을 협박할 준비를 했다는 것.
김윤환이 서진을 옭아매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지만, 지금은 놈이 사용하려 한다.
서진이 거침없이 테이블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놈이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테이블 밑에서 만져지는 것은 소형 녹음기, 테이프에 붙어 조잡하게 설치된 것.
서진이 녹음기를 꺼내 테이블에 ‘꽝!’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올렸다.
놈의 얼굴이 창백해질 때, 서진의 음성이 얼음장처럼 흘렀다.
“이건 뭐지?”
“그, 그게…….”
“이것 외에도 설치한 게 있나? 대답해.”
“어, 없어요.”
“속일 생각 하지 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정말 없어요! 우리 얼굴까지 나올 수 있으니까 설치하지 않았어요!”
김윤환은 동영상에 자신의 얼굴이 담기길 원치 않았다. 혹시라도 역으로 이용될 것을 걱정한 거다.
그래서 이곳엔 녹음기만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서진도 놈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서진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녹음기를 설치한 이유, 들어 줄게. 또 변명해 봐.”
서진은 놈에게 멍석을 깔아 줬다.
하지만 놈은 몸을 바들바들 떨 뿐, 입을 열지 않는다.
완벽하게 꼬리를 만 거다.
그럼 지금부터 협박의 시간이다.
서진이 다리를 외로 꼬며 말을 이었다.
“녹음은 왜 하고 있었어? 검사가 성매매를 한다고 소문내려 했나? 아니면…… 윤환이 형을 협박해서 검찰총장을 등에 업으려고 했나?”
“……!”
“무식한 줄은 알았지만 검찰총장을 협박하려 해?”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끌끌끌 웃자 놈의 얼굴이 당혹으로 채워졌다.
뜬금없이 검찰총장이라니.
“아, 아니에요.”
놈이 고개를 흔들 때였다.
서진은 손에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귀에 댔다.
“이쪽으로 사람 좀 보내 주세요. 미친 새끼 하나를 잡았는데…….”
놈의 창백했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깡패 세계에서 김서진이라는 이름은 유명하다.
종로의 룸살롱을 털었고 사채 시장을 박살 냈다.
빠꾸 없다는 말은 들었는데, 다이렉트로 수사관을 부르려 한다.
장석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진의 앞으로 다가와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이어서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오해예요!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장석민은 필사적이었다.
검찰에 끌려가고 불법 녹취가 혐의로 인정된다면, 그래서 김윤환의 성매매 현장까지 드러난다면, 장석민의 인생은 끝장이다.
김윤환의 아버지는 검찰총장, 그는 아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 움직일 거다.
그리고 총장을 협박하려 했다는 이유를 들어 장석민을 지옥으로 보낼 게 분명하다.
아들의 미래를 위해 깡패 하나를 지워 버리는 것, 총장에게는 일도 아니다.
그 상황에서 김윤환이 발 벗고 도와줄 리도 없다. 김윤환은 이기적이니까.
“제가 어떻게 검찰총장을! 정말이에요! 믿어 주세요!”
장석민은 최선을 다해 빌었다.
지금 그가 보이는 모습에 거들먹거리던 깡패는 없다. 그저 살고 싶어 애쓸 뿐이다.
하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깡패를 믿으라고?”
“그, 그거 윤환이가 설치한 거예요.”
“깡패 새끼가, 이제 이간질까지 하려고 해?”
“정말이에요! 사실이에요! 믿어 주세요!”
“……사실?”
서진의 목소리가 누그러지자 장석민은 살 수 있는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다급히 입을 연다.
“윤환이가 검사님께 당한 게 있다고 했어요. 검사님의 약점을 하나씩 모으겠다고 하면서…….”
순간, 서진이 테이블에 놓아 둔 소형 녹음기를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녹음되고 있는 거 알지?”
“……네?”
놈의 시선이 녹음기로 향했다.
그저 꺼내서 테이블에 올렸을 뿐, 녹음 기능을 멈추지 않았다.
즉, 지금까지 장석민이 내뱉은 모든 말이 녹음되었다는 거다.
이제 놈이 기댈 곳은 단 하나도 없다.
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 때, 서진이 녹음 기능을 끄며 말을 이었다.
“이걸 김윤환에게 들려주면 어떻게 될까? 인생 꼬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
“……!”
서진이 놈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꼬인 실타래, 풀어 줄까?”
“네?”
이제 이놈은 서진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이 될 거다.
김윤환이 뭘 계획하는지 세세한 것까지 모두 떠벌릴 게 분명하다.
서진은 김윤환을 감시할 눈을 얻었다.
***
다음 날.
김윤환이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지 않고 VIP실로 들어왔다.
소파에는 장석민이 앉아 있었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장석민의 얼굴은 하룻밤 사이에 폭삭 늙어 보인다. 심지어 눈동자는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멍하다.
김윤환이 장석민의 얼굴을 보며 낄낄 웃었다.
“얼굴이 왜 그래? 잠도 안 잔 거야?”
김윤환은 장석민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푸석한 얼굴을 보며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놀릴 뿐이다.
장석민은 김윤환이 얄미웠지만 진실을 토해 낼 수는 없었다.
“하…… 아니야. 재밌었어?”
장석민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고 김윤환이 맞은편에 앉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재미? 땡큐였지. 그런데 서진이는?”
“아, 그냥 갔어. 일 있다고.”
“그냥? 그 예쁜 애를 놔두고?”
“어.”
“미친 새끼.”
김윤환이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서진이 들어갈 객실에는 성매매 하는 순간을 찍기 위한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찍히기만 했다면 서진을 구석으로 몰아넣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유치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이곳엔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고 여자들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서진의 음성이 담겨 있을 테니까.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줘 봐.”
“뭘?”
장석민은 김윤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일단 발뺌했다.
그러자 김윤환이 손을 내밀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겠어? 녹음기.”
“아, 잠깐만.”
장석민이 테이블 아래서 녹음기를 꺼내 올렸다. 그런데 전원이 꺼져 있다.
“어?”
충전을 해서 켜 봤지만 어떤 것도 녹음되어 있지 않다.
녹음기를 이리저리 만져 보던 김윤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씨발……. 이 간단한 것도 못해!”
장석민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야, 미안해서 어쩌냐? 이거 설치했던 새끼가 전원을 안 눌렀나 봐. 내가 그 새끼 오늘 반 죽여 놓을 테니까, 화 풀어라.”
물론 원본은 서진이 가져갔다.
이 녹음기는 김윤환의 눈을 가릴 용도일 뿐이다.
***
“우리 아들 잘생겼네.”
며칠 후, 주말.
오늘은 김윤환이 이소희를 만나는 날이다.
정략결혼이지만 어른들이 마주 앉기 전에 당사자들끼리 만나 인사라도 나누라는 것.
김윤환은 거울을 보며 외모와 옷매무새를 살피고 있었다.
그 옆에 서서 아들 칭찬을 이어 가던 작은어머니가 물었다.
“저녁 먹고 올 거지?”
“봐서요.”
김윤환은 관심 없는 척 무심하게 말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평소와 달리 들떠 있었고 조금은 흥분된 상태였다.
사진을 통해 이소희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여배우는 비교하기 어려운 얼굴, 게다가 검사라는 직업. 집안까지 좋다고 한다.
흔치 않은 스펙.
그런 여자가 배우자가 된다면, 꽤나 으스댈 수 있다.
“그럼 다녀올게요.”
김윤환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던 김영준 총장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정한 말을 듣고 싶었는데, 김영준 총장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사무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실수하지 마.”
김윤환은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조심할게요.”
집을 나선 김윤환은 차에 올랐다. 그리고 기분 좋게 시동을 걸었다.
***
그 시각, 강남의 한 커피숍.
김윤환과 이소희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
서진은 이소희와 마주 앉아 있었다.
김윤환은 때 빼고 광을 낸 채 이곳으로 오고 있었지만 이소희의 모습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깔끔한 정장, 하나로 묶어 신경 쓰지 않은 머리, 김윤환과의 만남에 신경을 쓰지 않은 거다.
“아, 정말 싫어.”
이소희는 김윤환을 생각하며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이소희는 김윤환이 범인을 만들어 내던 때, 서진을 도왔던 사람.
자신의 실적을 위해 멀쩡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었던 김윤환이 정상적으로 보일 리 없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싫으면 싫은 만큼 막 대해도 돼. 네가 싫어한다 해서 멈출 사람들이 아니란 것 알잖아?”
“그래? 그럼 침이라도 뱉을까? 막 욕하면서?”
“그것도 좋고.”
이소희는 자신이 김윤환에게 욕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커피를 입에 댔다.
“생각만 해도 재밌네.”
하지만 그런 되바라진 행동은 못 할 거다. 이소희는 예의 바르게 자라 왔으니까.
커피를 내려 둔 이소희가 다시 서진을 향했다.
“그런데 정말 막아 줄 수 있어?”
오늘만 세 번째 하는 질문이었지만 서진은 그때마다 지겨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고 시원하게 대답해 줬다.
“어. 막아 줄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이소희가 싱긋 웃었다.
“고마워. 조금은 안심이 되네.”
“그런데 나도 부탁 하나만 하고 싶어.”
“어떤?”
“김윤환에 대한 것인데, 지난번에 내가 하려다가 실패했거든.”
“뭔데? 말해. 할 수 있는 거라면 도울게.”
서진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커피를 입에 댔다.
조금은 난처한 부탁이라 어떤 식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한 거다.
하지만 뭐라 말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게 분명하다.
서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전했다.
“김윤환의 머리카락 하나만 얻을 수 없을까? 모근이 남아 있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