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68화 (168/250)

<늪에 빠지면 (1)>

서진은 계속해서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시간 될 때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원님께서 한번 뵙고 싶어 합니다.

지금의 상황만 보면 검찰의 칼이 야당을 겨눈 상태.

야당의 실세 중 하나인 백기호 의원이 검찰에 손을 뻗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야당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금은 어떻게든 수습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나한테 연락했지?’

서진은 일개 평검사다.

이 사건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것은 지시에 의한 것이며 김영준 총장의 조카라는 프리미엄이 있지만 그게 전부다.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능력은 없다.

즉, 서진은 백기호 의원 정도의 인물이 연락할 급이 아니다.

‘게다가.’

백기호 의원은 판사 출신이며 야당의 거물 중 하나.

마음만 먹는다면 검찰의 기라성 같은 인물을 호출할 수 있고 그들은 백기호 의원 앞에서 굽실댈 게 분명하다.

그런데 백기호 의원은 그들을 뒤로하고 서진에게 연락했다.

서진이 자신과 반대편에 서 있는 김영준 총장의 조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서진의 머릿속에서 여러 상황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백기호 의원이 연락한 이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득과 실.

그 모든 것을 예측하고 판단하며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정리하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검사님, 출발합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탄 검찰의 승합차, 그것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떠나는 승합차를 보며 서진도 자신의 차로 걸음을 옮겼다.

‘생각은 천천히.’

어차피 백기호 의원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듯 기다리고 있으면 연락은 다시 올 거다.

취할 행동은 연락을 기다리며 계획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백기호 의원과 야당은 정준우 부장검사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내뱉어질지 전전긍긍일 거다.

정준우 부장검사라는 괜찮은 인질을 손에 쥐고 있는 한 느긋하게 행동해도 괜찮다.

모든 상황은 서진에게 유리하다.

서진이 지검으로 가기 위해 차량의 문고리를 잡았다.

그러자 지금껏 서진의 뒤를 쫓았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더 거칠게 질문을 내던졌다.

“검사님!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정준우 부장검사가 왜 잡혀가는 거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검사님!”

문을 열고 차에 오르던 서진이 기자들을 향해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죄송합니다. 나머지는 다음 브리핑에서 말씀드릴게요.”

***

중앙지검 취조실.

정준우 부장검사는 지금껏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지 2시간이 지났지만 취조실은 적막하다.

정준우 부장검사는 주먹을 꽉 쥔 채 서진을 노려볼 뿐이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정준우 부장검사의 입술이 움직였다.

“김서진, 너하고는 할 말 없어.”

정준우 부장검사는 자신이 왜 잡혀 온 건지 알고 있었다.

뒷돈을 받아서가 아니다.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도 아니다.

이유는 하나.

김영준 총장의 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총장님께 말씀드릴 테니까 연락 넣어.”

서진이 무심한 눈으로 테이블에 휴대폰을 올렸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휴대폰이다.

“부장검사님은 휴대폰은 확인했습니다. 야당의 여동수 의원과 긴밀히 연락하셨던데요.”

“네가 아니라 총장님께 말씀드린다고!”

정준우 부장검사가 꽉 쥔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 쾅 내리찍었다.

하지만 서진은 정준우 부장검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부장검사님의 힘으로 그 많은 기자를 동원하기는 어렵죠. 여동수 의원의 지시였습니까?”

“야! 너한테 할 말 없다고 했지!”

“발표문도 여동수 의원에서 작성했나요?”

“이 새끼야!”

정준우 부장검사가 벌건 눈으로 서진을 노려봤다.

이 사람, 아직 자신의 처지를 이해 못 한 것 같다.

자신이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장검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서진은 정준우 부장검사에게 이 상황의 갑이 누구인지, 현실이 무엇인지 알려 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정준우 부장검사는 이용 가치가 높은 사람.

어르고 달래서 서진에게 협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서진이 정준우 부장검사를 향해 상체를 굽혔다. 그리고 악마 같은 목소리로 달콤하게 속삭였다.

“총장님께 말씀드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뭐?”

“부장검사님의 휴대폰은 이미 털렸고 총장님은 여동수 의원과 연결된 라인도 찾아냈어요.”

“그, 그게 왜?”

“바뀔 게 없어요.”

“무, 무슨 소리야!”

정준우 부장검사는 눈동자를 굴렸다.

평소라면 서진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극단적인 상황이다.

후배, 그것도 눈엣가시 같은 서진에게 멱살을 잡혀 취조실로 끌려왔고 그 장면이 전국에 방송됐다.

인생은 파멸.

미래 역시 좋지 않을 거다.

이런 상황은 정준우 부장검사의 머리를 굳게 했고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

정준우 부장검사는 자신을 구해 줄 유일한 동아줄로 김영준 총장만 생각하고 있다.

이럴 땐, 현실을 알려 줘야 한다.

“총장님께 정준우 부장검사님은, 이용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서진의 또박또박한 목소리에 정준우 부장검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서진이 멈추지 않고 목소리를 이었다.

“총장님은 두 가지를 생각할 겁니다. 이곳에 가둬 두고 야당의 무리수 또는 협상 조건을 기대하든가, 풀어놓고…….”

“푸, 풀어놔?”

정준우 부장검사의 마른침을 삼켰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눈에 이제야 현실이 보였다.

여기서 풀려나면 정말 위기다.

야당은 정준우 부장검사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진리를 실행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진의 목소리가 그 생각에 확신을 갖게 했다.

“총장님은 부장검사님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살인죄를 적용한다면,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가 될 테니까요.”

“……!”

“여기 계세요.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때에 맞춰 여동수 의원에 대한 것을 알려 주시면, 총장님의 화도 점차 누그러지시겠죠.”

정준우 부장검사는 컵을 들어 벌컥벌컥 물을 마신 후 잠시 눈을 감았다.

생각을 정리하는 거다.

어떤 게 자신에게 유리할지.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정준우 부장검사의 눈빛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서진을 보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지.”

“간이침대 넣어 드릴게요. 필요한 것 있으면 더 말씀하시고요.”

“설렁탕이나 주문해.”

“네.”

그 말을 끝으로 서진은 취조실을 떠났다.

문이 탕,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이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새끼…… 내가 네 손바닥에서 노는 것 같지?’

정준우 부장검사가 히죽 웃었다.

정준우 부장검사는 서진을 믿을 수 없었다.

총장의 조카가 취조실에 찾아와 ‘총장님은…….’ 어쩌고 하는데, 믿는 게 이상한 일이다.

‘차라리 지나가는 똥개를 믿지.’

***

그리고 취조실의 밖으로 나온 서진도 슬쩍 웃었다.

‘움직여라.’

서진은 정준우 부장검사가 자신을 믿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갖가지 범죄자와 사기꾼을 마주한 정준우 부장검사가 서진을 믿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서진은 정준우 부장검사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정준우 부장검사의 행동은 얼마 뒤 만날 백기호 의원에게 전해 줄 좋은 선물이 될 게 분명하다.

‘백기호도 옭아맨다.’

서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

새벽 2시.

취조실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간이침대에 누워 있던 정준우 부장검사가 몸을 일으켰다.

“부장검사님…….”

정준우 부장검사의 심복이다.

이름은 이정철.

신마호텔의 기자 회견장에서도 함께 있던 자.

하지만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며 정준우 부장검사는 이정철 검사를 밖으로 빼돌렸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 줄 사람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껐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밖의 상황은 어때?”

“지금은 독극물 살인 사건하고 부장검사님 성함으로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내일 오후쯤 사라질 겁니다.”

“그래? 어떻게?”

“MC 정근이라고 약쟁이 가수 하나 있습니다. 그놈 한 번 더 집어넣고 바람 좀 불어 주면 부장검사님 성함은 잠잠해질 겁니다.”

“좋네.”

정치사회면이 시끄러워도 연예인 열애설 못 이긴다.

그런데 약쟁이 연예인이라면 확실하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거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침대에서 내려와 테이블로 향했다.

이정철 검사가 정준우 부장검사의 앞에 담배와 캔 맥주를 내려 뒀다.

담배를 손에 든 정준우 부장검사가 허탈하게 웃는다.

“씨발, 이사 한번 가는 게 왜 이리 힘드냐?”

정준우 부장검사는 아직 여의도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곳은 범죄자라 해도 배지를 달 수 있는 곳.

교도소를 다녀와도 쓰레기 같은 성격이어도 상관없다.

당에 충성만 하면 된다.

그럼, 좋은 비례 번호를 부여받아 고생했던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당에 가서 전해. 입 꾹 다문 채로 혼자 죽겠다고.”

“…….”

“대신 그 대가로 비례대표에 대한 약속을 받아. 입으로 지껄이는 것 말고 문서로.”

입으로 하는 약속은 믿을 수 없다.

한 입으로 백 마디, 천 마디를 바꾸는 게 정치인이다.

“그러지 않으면 싹 다 자백할 거라고 전해. 내가 입을 열면 진실만 내뱉지 않을 거야. MSG 적당히 섞어서 이번 대선을 날려 버릴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그건 잘 가지고 있지?”

야당의 여동수 의원과의 밀회.

정준우 부장검사는 맨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모든 대화를 녹음했고 언제든 무기로 쓸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정철 검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준우 부장검사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김서진 조질 방법 좀 찾아봐.”

“……네?”

“그놈, 아무리 생각해도 꺼림칙해.”

갑작스레 독극물 살인 사건의 진범이 잡힌 것은 물론 이 사건이 야당까지 타고 올랐다.

어긋난 퍼즐을 맞춰 보면 이 모든 게 서진의 손에서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생각.

서진을 계속 내버려 두면 자신의 인생이 파국으로 치달을 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철아, 난 이번 이사에 모든 것 다 걸었어. 그런데 생각해 봐. 김서진 그놈이 변수야. 모든 상황에 그놈이 끼어 있어. 찾아봐, 그놈 조질 방법.”

“……!”

이정철 검사의 얼굴이 경직됐다.

서진이 무서운 게 아니다.

그 뒤에 있는 김영준 총장이 두려운 거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그 마음을 읽었다.

이정철 검사의 어깨를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정철아, 내가 입 열면 너도 죽어. 이제 네가 갈 길은 나를 따르는 수밖에 없어.”

“부, 부장검사님…….”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갔지? 앞으로 학원비도 많이 들 텐데, 네가 없으면 어쩌려고?”

네 모든 비리를 알고 있다는 눈빛.

“부장검사님!”

“그러니까 같이 가자. 내가 끝까지 끌어 줄게. 네가 배신하지 않으면 난 너 절대 안 버려.”

정준우 부장검사가 친절한 미소를 그렸다.

***

취조실을 나선 이정철 검사가 비틀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내뱉어졌다.

“씨이발…….”

권력이 가져다줄 달콤함을 기대하며 달라붙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달콤함이 독이 되었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마리오네트처럼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이정철 검사가 입술을 씹으며 끄으으으,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나쁜 놈의 특징, 놈들에게 의리란 없으며 절대 혼자 죽지 않는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문제는 빠진 곳이 물이 아니라는 거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손은 늪과 같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 거다.

“젠장!”

그런데, 그때였다.

누군가 이정철 검사의 어깨를 턱 잡았다.

이정철 검사가 눈을 부릅떴다.

지금은 새벽 2시 40분.

이곳에 있을 사람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정준우 부장검사와 내통한 것을 들키게 되니까!

이정철 검사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

그곳에 서진이 서 있었다.

이정철 검사와 눈을 마주친 서진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세요, 귀신 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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