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65화 (165/250)

<다를 게 없다 (4)>

서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잠시 앞에 앉은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 멍하니.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서진의 시선이 민망했는지 그녀가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빤히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서진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었거든요.”

여성의 이름은 김서영.

나이는 33세.

여섯 번째 피해자와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고 마지막 피해자와는 대학 동창.

어머니는 어릴 적 사망했고 동생은 5년 전, 아버지는 3년 전 사망.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서진은 다시 한번 김서영의 얼굴을 살폈다.

‘……범인?’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사이코메트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이코메트리는 범행 현장 또는 그걸 특정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보여 줬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이코메트리에서 본 것은 김서영이 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휴대폰을 만지작대던 게 전부.

‘게다가…….’

이 커피숍의 커피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마지막에 들고 있던 것은 전혀 다른 브랜드의 것이었다.

‘그런데 사이코메트리가 왜 나타난/ 거지?’

머릿속을 헤집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김서영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럽게 보일 정도.

하지만 여기까지다.

서진은 일단 사이코메트리에서 본 영상을 뒤로하고 김서영의 알리바이를 묻기로 했다.

‘어차피.’

사이코메트리는 보조적인 능력으로 생각해야 한다.

언제 튀어나올지도 모를 능력이며 컨트롤하기도 어렵다.

즉,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 옭아매는 것은 서진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검사님께서 왜 저를……?”

김서영이 조심스레 묻자 서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중학교 동창 중에 신유아라고 있어요. 혹시 알고 계신가요?”

“……신유아?”

신유아는 여섯 번째 피해자.

김서영이 신유아의 이름을 떠올리는 듯 눈동자를 위로 올렸다.

그리고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중학교 친구의 이름은 기억에 없어서요. 그런데, 그 애가 왜요?”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반응.

서진이 찌르듯 말을 내던졌다.

“사망했거든요.”

“네?”

검사가 찾아왔고 사망한 사람을 묻는다.

범인이라면 반드시 어떤 행동을 하기 마련.

그리고 김서영은 테이블에 올려 뒀던 손을 무릎 위로 내렸다.

‘거리 두기.’

서진과 조금 떨어지고 싶다는 심리적 반응.

또는 무엇인가를 숨길 때 나타나는 행동.

그리고 김서영은 부인했다.

“……그걸 왜 제게 묻는 거죠?”

“기분이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하나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오예원이라고 혹시 알고 계신가요?”

“……오예원? 알아요. 혹시 예원이도?”

오예원은 마지막 피해자.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사망한 사람.

김서영과는 대학 동창.

김서영은 오예원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얼굴이 하얗게 굳어 갔다.

하지만 서진은 김서영의 반응을 상관 않고 말을 이었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사망 사건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하지만 사건 당일 서영 씨의 행방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일단, 가장 최근이죠. 오예원 씨가 사망한 당일,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오예원의 사망 소식을 듣고 지금껏 멎었던 김서영이 눈동자를 천천히 서진에게 향했다.

그리고 언짢은 감정을 담아 입을 열었다.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건가요?”

“아뇨. 전혀요. 의심을 했다면 영장을 들고 왔겠고 이곳이 아니라 지검으로 모셨겠죠. 지금은 그저 간단한 확인 절차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서진이 사건 당일의 날짜를 전달했다.

생각에 빠졌던 김서영이 고개를 저었다.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몇 주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해요?”

“카드 결제나 메시지가 있잖아요? 그걸 확인해 보시면 대략적으로 기억나지 않을까요?”

김서영이 한숨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보석으로 장식된 요란한 케이스가 보인다.

김서영은 힐끗 서진을 본 후 카드 앱에 접속하더니 서진의 앞에 내려뒀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집에 있었던 것 같아요. 오후 2시에 피자를 배달시켜 먹었네요.”

“봐도 될까요?”

“네.”

서진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만약 김서영이 범인이라면 검사를 만나러 오기 전에 모든 메시지를 지웠을 거다.

지금은 휴대폰을 만지며 김서영의 표정을 확인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서진의 시야가 또다시 흑백으로 물들었다.

***

장소는 휴대폰 매장.

김서영이 입고 있는 옷은 지금과 같다.

매장 벽에 달린 시계는 오후 6시.

서진을 만나기 직전의 시간이다.

“박스는 버려 주세요.”

휴대폰을 새로 산 김서영이 유심을 갈아 끼우며 매장을 벗어났다.

밖으로 나온 그녀가 구형 휴대폰을 들고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눈을 찌푸렸다.

“귀찮네.”

그녀가 몸을 틀더니 다시 집으로 향했다.

망치를 손에 들고 휴대폰을 꽝, 꽝 내려친다.

액정에 금이 가고 순식간에 망가졌지만 몇 번이나 더 망치를 휘둘렀다.

그녀가 망가진 휴대폰을 쓰레기봉투에 툭 던진다.

그리고 그 봉투를 질끈 묶은 후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

“솔직히,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아서 그러는데요. 확인할 거 다 하셨으면 일어나도 될까요?”

김서영의 목소리와 함께 서진의 시야에 다시 색이 채워졌다.

하지만 서진의 눈에 김서영은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휴대폰, 휴대폰…….’

김서영을 만나고 두 번의 사이코메트리가 나타났다.

처음도 그리고 그다음도 모두 휴대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곳에 뭔가 있다는 뜻.

서진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김서영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게 아니면 더 확인할 게 남았나요?”

“아뇨, 없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서영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김서영 역시 고개를 가볍게 숙인 후 몸을 틀어 커피숍을 나선다.

서진은 김서영이 나서는 것을 지켜봤다가 곧장 시선을 돌렸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사람.

진유경 형사와 황기승 형사.

그 두 사람을 부르려 하는데, 순간 등꼴이 오싹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서진이 그 시선을 찾아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김서영이 창가에 서서 서진을 보고 있다.

순간이었지만 정말 소름 끼치도록 냉랭한 눈빛.

그 눈빛이 서진에 이어 황기승 형사와 진유경 형사의 얼굴을 훑었다.

하지만 잠시다.

그 눈빛은 금세 친절하게 바뀌었고 김서영은 서진을 향해 다시 목례를 했다.

그리고 김서영은 그 자리를 떠났다.

서진이 입술을 씹었다.

‘보고 있었나?’

그럼 황기승 형사와 진유경 형사의 얼굴도 노출되었다는 뜻.

서진은 원래 황기승 형사를 통해 김서영의 뒤를 밟으려 했지만 그 계획은 틀어야 한다.

이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

서진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상대는 경호원.

“오랜만에 잠복근무…… 아니, 미행 한번 해 보시겠어요? 저와 함께 앉아 있던 여자입니다. 네, 꽃무늬 스커트를 입은 사람요.”

***

서진은 두 형사와 함께 김서영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김서영의 집은 주택가.

가로등의 불빛이 비추고 있지만 어두컴컴한 곳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문제는…….’

김서영의 집 근처에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세 곳.

쓰레기의 양은 엄청나게 많았고 악취가 진동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거하지 않았다는 것.

서진이 거침없이 쓰레기통을 뒤져 종량제 봉투를 꺼내자 황기승 형사가 다급히 물었다.

“뭐, 뭐 하시는 거예요?”

“휴대폰이 있을지도 몰라서요.”

서진의 말에 황기승 형사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쓰레기에서요? 뜬금없이?”

“네,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아는데…….”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고 서진은 최대한 말을 만들어 내야 했다.

“김서영은 새 휴대폰을 갖고 있었어요. 만약 범인이라면 원래 있던 휴대폰은 버렸을 가능성이 크죠. 김서영의 집과 휴대폰 매장 그리고 버스를 타러 가면서 쓰레기를 버리려면 그 경로는…….”

물론, 억지로 만들어 내는 말이 통할 리는 없다.

서진이 계속해서 설득하려 했지만 황기승 형사와 진유경 형사의 얼굴에서 황당함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고요. 감이라고 하면 믿어 주시겠어요?”

“감이요?”

“네, 밑도 끝도 없지만 감이요.”

황기승 형사가 팔을 걷으며 낄낄 웃었다.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검사님의 감은 믿어요. 미제 전문이잖아요. 이렇게 해서라도 범인 손에 수갑을 채울 수 있다면 똥물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동안 서진이 보여 왔던 커리어가 있으니 따를 수 있는 거다.

진유경 형사도 한숨을 내뱉으며 쓰레기봉투를 손에 들었다.

“해야죠. 그런데, 장갑이라도 사 올까요?”

그렇게 쓰레기장을 이동하며 한참 휴대폰을 찾고 있을 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김서영의 뒤를 밟고 있는 경호원이었다.

-검사님, 들킨 것 같은데요?

“네?”

-눈치가 상당히 빨라요. 힐끗힐끗 보는데…….

더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들킨 거다.

어떻게 보면 최악의 상황.

하지만 서진은 이번에도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잘됐네요.”

-네?

김서영이 범인이라면 그녀는 지금 예민한 상태다.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모든 것이 불안한 거다.

검사가 찾아왔고 그 뒤를 형사가 밟고 있다고 여긴다.

그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벼랑 끝으로 몰아세울 수 있다.

지금까지 김서영은 완벽한 계획하에 범죄를 일으켰지만 쫓기는 중이라면 반드시 무리한 행동을 할 게 분명하다.

“그 여자가 들을 수 있도록, 깜짝 놀란 것처럼 제 말을 따라 해 주세요.”

-어떤?

“다른 DNA가 발견됐다고.”

경호원은 서진의 말을 그대로 따라 내뱉었다.

“놀란 것처럼 입을 가려 주세요.”

-아, 저 여자 걸음이 빨라지고 있어요.

“계속 거리를 두고 쫓아 주세요.”

그렇게 통화가 종료되고 서진이 휴대폰을 품에 넣을 때였다.

“찾았어요! 진짜 있었어요!”

황기승 형사가 휴대폰을 들고 크게 웃고 있었다.

사이코메트리에서 봤던 김서영의 휴대폰이 맞았다.

망치에 맞아 박살 난 휴대폰.

***

김서영의 집 근처에 있는 도로.

비상등이 깜빡이는 차량이 서 있었다.

트렁크를 열고 쇼핑 백 세 개를 건네던 도광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밤에 뭘 하신 거예요? 와, 냄새…….”

“보물찾기 좀 했어.”

“쓰레기통에서요?”

“어.”

도광현이 이상한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며 다시 묻는다.

“마약…… 이런 거예요?”

“아니.”

자세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서진은 도광현의 의문으로 가득한 눈빛을 외면하며 쇼핑백의 안을 확인했다.

서진과 두 형사가 갈아입을 옷이 보인다.

“나머지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할게. 오늘은 많이 바빠서.”

“쉬엄쉬엄 하세요. 돈도 있고 외모도 되는 분이 왜 그렇게 아득바득…….”

“나중에 봐.”

서진은 도광현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손을 흔든 후 두 형사를 향해 걸어갔다.

쓰레기를 뒤지느라 두 사람의 옷은 정상이 아니었다.

온갖 잡다한 오물에 더럽혀져 있다.

저 상태로 밖을 돌아다니면 그것만으로 민폐다.

서진이 두 형사에게 쇼핑백을 건네며 말했다.

“오늘 밤도 철야 작업할 수 있어요. 옷은 제 차에서 갈아입으시면 될 것 같고요. 진유경 형사님은 이 휴대폰 복원 좀 부탁드려요.”

“네.”

“그리고 황기승 형사님은 저와 김서영을 감시하러 가시죠.”

황기승 형사가 쇼핑백을 건네받으며 지금껏 궁금했던 것을 어렵게 물었다.

“……김서영이 범인인가요?”

“아마요.”

황기승 형사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얼굴이 붉어졌고 거친 숨이 토해진다.

김서영이 앞에 있었다면 당장 목을 비틀었을 거다.

하지만 꾹 참는다.

진짜 비틀 수 있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잠시 후, 진유경 형사가 휴대폰을 복원하기 위해 떠났고 황기승 형사는 서진의 차에 옷을 입으러 들어갔다.

서진은 차량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상대는 조우재 부장검사다.

“김서진입니다. 영장 하나 부탁드릴게요.”

***

김서영의 집은 작은 투룸이었다.

그녀가 다급히 서랍을 열었다.

아이들용으로 나온 작은 약병이 보인다.

김서영은 약병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더니 변기를 열고 약병에 든 내용물을 뿌린다.

‘안 돼, 안 돼…….’

이어서 빈 약병을 손에 든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빈 약병을 처리하고 싶은데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놔뒀다가…….’

압수 수색이라도 들어오면 걸릴 것 같다.

그렇다고 밖에 버리기도 힘들다.

창문을 열어 밖을 살폈지만 오가는 모든 사람이 형사처럼 여겨졌다.

‘……어쩌지? 어떻게?’

그때였다.

똑똑똑.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김서영의 눈동자가 철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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