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64화 (164/250)

<다를 게 없다 (3)>

“말씀하신 것처럼 배신을 꿈꾸는 것 같아요.”

김영준 총장의 표정이 싹 돌변했다.

지금껏 자상하게 바라보던 시선은 사라지고 오직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

그 입에서 느릿하지만 무거운 목소리가 흘렀다.

“누구지?”

“정준우 부장검사요. 며칠 전에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서진은 알고 있는 사실을 고스란히 전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다른 생각을 품은 것.

이번 사건을 들고 야당 의원과 접선한 것.

마지막으로 정치에 입문하려 하는 것까지.

이야기가 전해질수록 김영준 총장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김영준 총장이 창밖을 보며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야당 그리고 정준우…….”

서진은 이제 놈들을 향한 김영준 총장의 벼락같은 분노가 쏘아질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서진의 예상과 달랐다.

김영준 총장이 소매를 툭툭 말아 올리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뜻하지 않게 정치권까지 움직이게 됐어. 궁금하네, 가볍게 시작한 일이 어디까지 커질지.”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정말 재미있다는 듯.

놈들 모두가 하찮다는 듯.

그 미소를 보며 서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여당과 손잡은 총장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느긋하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기까지 한다.

김영준 총장에게 놈들의 분탕질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거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담뱃재를 털며 기분 좋게 말했다.

“서진아, 정준우 부장검사에 대한 일은 모른 척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묻자. 그 범인,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돌아온 다정한 목소리.

김영준 총장은 놈들을 짓밟을 여러 길을 생각해 뒀다.

그중에 최선의 길은 서진이 범인을 잡는 것.

“네가 범인을 잡으면 그놈들 모두를 구렁텅이에 집어 던질 수 있어.”

그 말을 남기며 김영준 총장이 섬뜩할 정도로 활짝 웃었다.

***

지검에 들어간 서진은 잠시 야외 휴게실에 나와 있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는 산책을 하거나 밖에 앉아 있는 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똑같아.’

이번 사건을 통해 정치에 입문하려는 정준우 부장검사.

그걸 이용해 여당을 이겨 먹으려는 야당.

그리고 그 모든 놈들을 죽이고 검찰을 장악하려는 김영준 총장.

다를 게 없다.

모두가 똑같다.

그들에게 피해자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앞길을 고민할 뿐이다.

‘이거…….’

서진이 입술을 씹었다.

지금껏 서진의 목표는 ‘모든 것을 갖겠다.’, ‘서준경처럼 살지 않겠다.’였다.

그저 두리뭉실한 생각.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며 권력이라는 흉측한 그림자와 점점 가까워졌고 생각이 구체화됐다.

권력을 손에 넣어야겠다.

피고름을 짜내는 마음으로 바꾸지 않으면 그곳은 계속 탐욕스러운 괴물들로 가득할 거다.

그리고 지금 서진의 생각은 어린애의 철없는 꿈이 아니다.

서진에게는 돈이 있고 신마 그룹의 장녀 신지연이라는 인맥도 존재한다.

게다가 권력을 얻는 방법도 김영준 총장을 통해 충분히 배우고 있다.

‘바꿀 수 있어.’

서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목표는 권력.

대한민국을 뒤바꿀 만큼의 힘.

서진 역시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먹기로 마음먹었다.

‘우선은 이 사건.’

서진이 손을 툭툭 털었다.

이번 사건은 기회다.

사채업자 또는 그동안의 미제 사건과 레벨이 다르다.

이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을 갖게 된다.

각국의 정치인과 기업인이 입국하는 현장.

그 앞에서 거칠게 시위할 시위대.

독극물.

김영준 총장은 서진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은 허언이 아니다.

***

“열한 명의 정보예요.”

며칠 후.

진유경 형사가 테이블에 서류를 턱 올려뒀다.

서류가 산처럼 쌓인 이곳은 강남경찰서의 한 회의실.

진유경 형사가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어 내며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것 전부 가져왔어요.”

진유경 형사는 이 많은 서류를 보고 서진이 놀라기를 바랐다.

하지만 상대는 서진이다.

“감사합니다.”

서진은 가볍게 감사를 전한 후 자리에 앉아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길 뿐이었다.

경찰은 불특정 다수가 살해된 목적 없는 살인이라고 지정했지만 서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범인은 자연스럽게 커피를 전달할 수 있고 5분 이상 대화할 수 있는 면식범.

대한민국의 사회는 좁다.

두 다리 건너면 서로가 모두 아는 사이.

열한 명의 공집합을 찾아내면 범인이 드러날 거다.

진유경 형사는 서류에 고개를 파묻고 집중한 서진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회의실을 떠났다.

커피라도 한잔 사 주기 위해서다.

‘고생하네.’

서진은 경찰을 체포한 검사.

경찰에서 서진을 좋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들 껄끄럽게 생각한다.

그게 옳은 일이라 해도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

누군가는 경찰의 원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진이 무던한 성격이라 해도 그 시선이 편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도 서진은 진유경 형사를 검찰로 부르지 않고 직접 이곳에 왔다.

진유경 형사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

잠시 후, 진유경 형사가 달달한 캐러멜마키아토 두 잔을 들고 계단을 오를 때다.

내려오던 후배 형사가 진유경 형사를 보며 물었다.

“걔 어때요?”

“누구?”

“김서진 검사요.”

“왜?”

후배 형사가 히죽 웃었다.

“왜긴요? 지금 위에서 걔가 말하는 것은 대충 흘려들으라고 할 정도잖아요. 싸가지 없는 새끼.”

진유경 형사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경찰서까지 찾아와서 수사하는 검사한테, 뭐?”

원래 독극물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다.

이름은 황기승, 그가 무서운 인상으로 후배 형사를 노려보며 계단을 올라왔다.

뚜벅뚜벅, 걸음 소리가 두렵게 울렸다.

후배 형사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움츠러들 때, 황기승 형사가 냉랭한 눈으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윗선 명령을 받으려고 월급 받아? 범인에게 수갑 채우라고 월급 받는 거잖아? 돕지는 못할망정…….”

“죄송합니다.”

“똑바로 해.”

황기승 형사가 꺼지라는 뜻으로 턱짓하자 후배 형사는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새끼가…….”

잠시 그 뒷모습을 쏘아보던 황기승 형사가 시선을 틀어 진유경 형사를 향했다.

그리고 후배를 노려볼 때와 다른 친절한 눈빛으로 입을 연다.

“그 검사, 회의실에 있나? 아이고, 쓸데없는 놈 쫓다가 이제야 그 검사 얼굴 한번 볼 수 있겠네.”

황기승 형사는 윗선의 지시로 이 사건에서 물러나야 했다.

서진에게 어떤 정보도 주지 말라는 유치한 생각.

하지만 황기승 형사는 달랐다.

윗선의 감정싸움은 관심 없고 범인을 잡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지난 2년 동안, 열한 건.

그동안 접한 유족들의 눈물.

마지막 피해자는 갓 백일이 지난 아기의 엄마.

남편은 서럽게 울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엄마를 찾으며 칭얼댔다.

그 꼴을 또 보고 싶지는 않다.

범인의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악마의 손이라도 덥석 잡을 생각이었다.

“이건 내 거지?”

“네?”

황기승 형사는 진유경 형사의 대답도 듣지 않고 그녀의 손에 들린 두 잔의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었다.

진유경 형사가 ‘하나는 내가 마시려 했던 것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황기승 형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회의실을 향해 걸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진유경 형사에게 방금 후배 형사가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을 물었다.

“어때, 김서진 검사?”

“네? 어떤 쪽으로요?”

“내가 김서진 검사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몰라? 동남군에서부터 미제 사건을 싹 해결하고 온 검사잖아? 종로경찰서 자살 경찰도 해결해 줬고. 정말 예리해? 다 알 것 같고? 현장 다녀왔다며? 뭐 발견된 것 있어? 현장은 어디부터 돌고 온 거야? 어?”

빠르게 이어지는 황기승 형사의 질문에 진유경 형사는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직접 물어보세요. 다 왔잖아요.”

어느새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황기승 형사가 거침없이 회의실의 문을 열며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원래 이 사건을 담당했던 강남경찰서 황기승입니다.”

“김서진입니다.”

황기승 형사가 넉살 좋게 진유경 형사의 손에서 빼앗은 커피를 건네며 인사말을 전했다.

그렇게 잠시의 인사가 끝나고 테이블에 펼쳐진 서류로 대화가 이어졌다.

황기승 형사가 서류를 손에 들며 말했다.

“피해자들 인적 사항부터 확인하시네요? 저도 커피를 건네받을 정도의 사이라면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공통된 연관성은 없었어요.”

“……다 확인해 보셨나요?”

“다?”

서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신용카드 결제 내역과 통화 내역, 심지어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의 졸업자 명단.

신용카드는 피해자의 이동 장소를 확인할 수 있고 통화 내역은 연결되는 지인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졸업자 명단은 과거의 인맥을 연결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

황기승 형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진유경 형사가 긴장했다.

황기승 형사는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하고 지난 2년간 이 사건을 맡아 왔다.

문제는 지금 서진의 행동이 황기승 형사의 그 2년이란 시간을 지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2년 동안 이런 기록 하나 보지 않고 뭐 했냐고.

진유경 형사가 마른침을 삼키며 황기승 형사의 표정을 살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황기승 형사의 더러운 성격이 폭발하면 어떻게든 말려야 한다.

만약 검사를 상대로 폭언을 내뱉기라도 하면…….

‘안 돼.’

그런데 진유경 형사의 예상과 달랐다.

황기승 형사는 멋쩍은 표정으로 의자를 꺼내 앉고 있다.

“이렇게까지 알아볼 생각은 안 했네요. 면식범이 살인을 저지를 정도라면 어떤 원한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해서요.”

“최근 살인을 보면 단순한 질투 때문에 벌어진 일도 많아요.”

심지어 서진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류를 정리하기까지 한다.

황기승 형사의 모습을 지켜보던 진유경 형사가 시렸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웃었다.

‘하긴…….’

황기승 형사는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미제 전문이라던 서진을 꼭 한 번 보고 싶어 했다.

생각해 보면, 성격은 불같지만 쓸데없는 일로 화를 내지 않는다.

새벽 2시가 넘어가는 시간, 사건의 진척은 없었다.

뒷목이 뻐근하고 눈이 뻑뻑해졌지만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서류를 넘기고 또 넘길 뿐이다.

잠시 고개를 들어 스트레칭을 하던 서진이 황기승, 진유경 형사를 바라봤다.

서진이 며칠간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권력을 잡기 위해 사건을 이용하던 자들.

하지만 앞에 보이는 두 사람은 다르다.

그런 생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범인의 얼굴을 궁금해한다.

그들을 보며 서진이 슬쩍 웃었다.

‘좋네.’

어느새 아침 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밤새 조사했을 때, 의심되는 사람은 일곱.

물론 서류상으로 봤을 때 피해자 전체와 연관된 사람은 없다.

두셋과 짝지어진 경우가 일곱이라는 거다.

하지만 조사해 볼 필요성은 존재한다.

서진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순댓국 드실 분?”

밤샘 작업 후 아침은 순댓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전 잘래요.”

“아이고, 나도 눈 좀 붙여야겠습니다.”

두 형사는 “역시 젊음이 좋아. 체력이 남아나네.”라고 말하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그날 오후.

서진은 첫 번째 용의자와 만났다.

피해자 세 명과 연관된 사람.

하지만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카드 기록을 보면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용의자도 마찬가지.

서진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밖으로 돌았고 그 시간 동안 어떤 결과도 내놓지 못하자 검찰에서는 수군대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안 될 것 같지?”

“내가 강남경찰서에 물어봤는데, 답이 없대.”

“씨발, 2년이나 묵은 사건을 갑자기 해결하면 그게 사람이냐?”

“운발이 끝난 거지.”

“언론에서 냄새 맡았다는 이야기 있던데, 들었어?”

“그래? 그럼 김서진 저 새끼가 총대 메고 책임지는 거야?”

“설마……. 그래도 작은아버지가 총장인데.”

“그래도 책임은 져야지. 책임자잖아?”

서진의 귀에서 별소리가 다 들려왔지만 묵묵히 사건에만 집중했다.

지금은 그런 말에 반응할 때가 아니다.

욕을 먹는 게 서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유경 형사와 황기승 형사도 서진을 돕는다는 이유로 경찰 내부에서 좋지 않은 눈빛을 받고 있다.

사건을 해결해서 모든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며칠 후.

해가 어둑해질 무렵 서진은 한 커피숍에 앉았다.

네 번째 용의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여기는…….’

마지막 피해자가 살해당한 장소, 그 버스 정류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

서진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뜬금없이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만약 흑백이 아니었다면, 사이코메트리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

똑같은 자리.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는 여성.

휴대폰을 만지작대던 그녀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

사이코메트리는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순간 서진의 앞에 방금 사이코메트리에서 봤던 그녀가 앉고 있었다.

“김서진 검사님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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