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62화 (162/250)

<다를 게 없다 (1)>

***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방에서 나왔다.

‘연쇄 독살 사건...’

한숨이 새어 나올 정도로 쉽지 않은 사건.

사망자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는 살인이라 범인을 특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기한까지 정해져 있어.’

한 달 후 있을 회담 전에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것도 은밀하게, 언론이 냄새를 맡지 못하게 조용히.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다.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형사 3부의 부장검사 정준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서진이 고개를 숙였다.

정준우 부장검사, 차장검사로의 진급은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자.

동기는 물론 후배들에게도 진급이 뒤처지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준우 부장검사가 조만간 옷을 벗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정준우 부장검사는 서진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

언제나 고까운 눈으로 서진을 바라본다.

지금도 마찬가지.

“사건 맡았다며?”

정준우 부장검사의 목소리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냉랭했다.

하지만 서진은 친절하게 답했다.

상대는 부장검사, 평검사와는 하늘과 땅이다.

“네, 지금 전달 받았습니다.”

“잘해봐. 그놈의 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가 꼭 ‘네가 망했으면 좋겠다.’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서진은 이번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해야 했다.

그게 끝이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입술을 뒤틀며 서진의 옆을 스쳐갔다.

그리고 서진은 천천히 시선을 틀어 정준우 부장검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다음 날, 야외 휴게실.

착잡한 표정으로 서진을 보던 장지혁 검사가 입을 열었다.

“독살 사건 맡았다며?”

서진이 사건을 맡았다는 소식이 지검 전체에 퍼졌다.

서진을 재수 없게 생각하던 사람들은 폭죽을 쏘아 올릴 기세로 즐거워하는 중이다.

물론 장지혁 검사처럼 걱정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 장지혁 검사의 표정이 좋지 않다.

물끄러미 바라보자 장지혁 검사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너한테 떠넘긴 거, 우리 정준우 부장검사야.”

“네?”

“정.준.우 부장검사라고.”

장지혁 검사가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고 서진의 입가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싫어하는 것은 알았지만 부장검사라는 사람이 평검사를 상대로 이런 뒷공작을 펼칠 줄은 몰랐다.

“황당하네요.”

정말 황당했다.

부장검사 급이 마음먹으면 일개 평검사를 괴롭힐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이런 짓까지 하는지.

물론 사건을 맡은 게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 상황에는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어려운 사건이지만 작은어머니와 엄선주에게 집중하려면 업무를 축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씨발, 그 이야기 듣고 내가 다 창피하더라. 형사에서 할 일을 왜 너한테 던져?”

장지혁 검사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한참동안 분을 삭였다.

입에서는 씨발, 저발, 쌍욕이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장지혁 검사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서진을 바라봤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연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내가 귓등으로 들은 이야기가 있거든? 네가 맡은 사건, 공개되면 안 되잖아? 그런데, 어려울지도 몰라.”

“...어렵다뇨?”

서진이 눈을 찌푸리며 장지혁 검사에게 시선을 틀었다.

비공개 수사는 김영준 총장의 지시.

각국의 거물 정치인이 내한하는 만큼 지저분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의지.

그런데, 장지혁 검사는 은밀한 수사가 힘들다 말하고 있다.

장지혁 검사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야당 쪽에 붙은 것 같아.”

“.....!”

정준우 부장검사는 옷 벗을 준비하는 사람.

그런데, 서초구에서 여의도로 이사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배지를 달고 싶은 거다.

“여당의 거물이 준비한 국가적인 행사. 그런데, 연쇄독살이 일어난다고 언론에 알려져 봐. 야당이 어떻게 움직일 것 같아?”

언론이 시끄러워지는 순간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과격 시위단체를 움직일 거다.

각국의 정치인이 이동하는 곳에 현수막을 걸어 놓고 ‘독살 시켜 버리겠다!’라는 의미를 전달할 게 분명하다.

“언론에서는 음료마시면 죽는다고 난리치고 시위대는 죽이겠다고 난리치는데 마음 편히 물이라도 마실 수 있겠어?”

야당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다.

회담은 실패하고 실패의 책임을 여당에게 묻고.

“이대로는 안 된다면서, 망가진 외교를 자신들이 되돌려 놓겠다고 국민에게 호소하겠지. 정작 외교를 망친 것은 자기들이면서. 뭐, 어쨌든, 이건 정치권의 상황이고. 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물감과 도화지를 준비하는 게 정준우 부장검사야.”

서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네.’

장지혁 검사의 말대로 된다면 나라 망신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물 하나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거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국격은 상관없다.

오직 여당을 흠집 내고 다가올 대선에 승리하는 게 그들의 목표다.

정준우 부장검사, 그 역시 마찬가지다.

검사라는 직업으로 십 수 년을 살아온 사람인데,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야당의 공신이 되서 여의도로 이동할 생각만 가득하다.

서진의 시선이 천천히 검찰의 건물로 틀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정준우 부장검사의 방을 또렷한 시선으로 노려봤다.

‘안 되겠네.’

서진의 머릿속에서는 정준우 부장검사의 일을 해결할 방법, 그 상황을 이용할 방법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

“연락하겠습니다.”

정준우 부장검사는 심복으로 여기는 검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심복이 휴대폰을 들어 주소록을 검색한다.

찾은 연락처는 야당의 국회의원.

심복이 통화 버튼을 누르려 할 때, 정준우 부장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잠깐.”

그 말에 심복의 엄지손가락이 멈칫거렸다.

천천히 정준우 부장검사를 바라본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하고 싶어.”

정준우 부장검사가 다리를 외로 꼬며 생각에 빠졌다.

독살 연쇄 살인 사건, 2년 동안 열한 명이 사망했고 최근 두 달간 연이어 네 명이 사망했다.

김영준 총장은 불특정 다수를 노린 연쇄 살인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지시했지만.

‘정말 연쇄 살인일까?’

그런 의문이 정준우 부장검사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우연적으로 겹쳐진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야당에서는 쓸데없는 것으로 힘 빼게 했다며 정준우 부장검사를 외면할 수도 있다.

게다가 폭로 자가 정준우 부장검사 본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검찰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때, 정준우 부장검사를 향해 심복이 입을 열었다.

“부장검사님, 연쇄 살인이 아니면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될 겁니다.”

“이유는?”

“범인이 여러 명이라면...”

사람들은 서로 신뢰할 수 없게 될 테고 혼란이 일어날 거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일어날 혼란은 야당이 원하는 것.

심복의 말은 구구절절 옳다.

하지만 정준우 부장검사는 심복이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도 그렇겠지, 그런데...”

정준우 부장검사가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창가로 걸어간 정준우 부장검사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야외 휴게실에 앉은 서진이 보였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서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김서진이 회담 전에 사건을 종결 지어 버리면?”

그럼, 모든 고생이 헛수고가 되어 버린다.

눈엣가시 같은 김서진이 또 한 번 영웅이 되는 것을 자신이 돕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심복은 정준우 부장검사와 생각이 달랐다.

그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부장검사님, 경찰이 2년 동안 해결 못한 일입니다. 그런데, 한 달 안에 해결한다고요?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 있나요? 훼방을 놓으면 되죠.”

정준우는 중앙지검 부장검사, 그것도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형사 3부의 부장검사다.

경찰을 휘둘러 서진이 어떤 것도 못하게 막는 것은 일도 아니다.

심복이 시리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경찰도 우리를 따를 겁니다. 걔들도 김서진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서진은 종로 경찰서 서장을 잡았던 사람.

그리고 저후안 사건 때 그 뒤를 봐줬던 강남 경찰서의 간부를 잡았던 사람.

경찰의 시선에서 서진은 악의 축이다.

서진의 말에 순순히 협조하지 않을 거다.

“경찰이 도와주지 않는데, 한 달 안에 사건을 끝낸다고요? 미제 전문이니 뭐니, 까부는 것도 이제 끝. 그 운도 여기까지죠.”

미제도 증거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것.

지금처럼 무차별적인 살인 사건, 그것도 제한 시간을 두고 움직이는 일은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장검사님, 검사장님께 김서진을 추천한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이번 일은 꿩 먹고 알 먹기입니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꿈도 이루고 김서진을 병신만들 수도 있다.

“망설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심복이 휴대폰을 손에 쥐고 거침없이 국회의원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강남 경찰서.

서진은 진유경 형사를 만나고 있었다.

진유경 형사는 지난 번 강남의 주택가 화재 사건, 프로파일러와 실랑이가 있었을 때 만났던 형사.

지금은 이두진 변호사와 신마 그룹을 몰래 조사하고 있다.

그 진유경 형사가 정말 미안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서진에게 입을 열었다.

“...죄송해서 어쩌죠?”

서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형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2년 동안 독살 사건을 만지고 있던 형사도 없다.

“...갑자기 제가 맡게 됐어요. 원래 담당하던 형사가 끝까지 하겠다고 했는데,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거든요. 빠지라고.”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준우 부장검사가 훼방을 놓은 거다.

어차피 예상하던 일.

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인계는 받으셨죠?”

“확실히 받아 놨어요. 그런데...”

진유경 형사가 자신의 책상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산더미 같은 자료는 없다.

검찰에서 봤던 것처럼 피해자의 인적 사항과 사인이 전부다.

“저게 끝이에요.”

시작부터 골치 아파지고 있지만 서진의 표정은 담담했다.

쉽지 않을 것은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어서다.

“최근 터진 사건이 2주일 전이었죠?”

“네.”

“일단 발품부터 팔아야겠네요.”

서진이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증거가 없는 현장은 없다.

그 증거를 찾지 못할 뿐이다.

게다가 2주 밖에 안 된 사건, 분명 뭔가 있을 거다.

서진은 직접 현장에 가보기로 했다.

서진이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몸을 틀었고 진유경 형사가 옆에 붙어 섰다.

“주변 CCTV에서 특이사항은 없었고요. 피해자는 계속해서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있었어요.”

“거기에 청산가리가 있었다는 건가요?”

“아마요.”

“구매 내역은?”

“피해자는 구매하지 않았고요. 누구에게 전달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해당 커피숍을 갔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같은 커피를 주문하고 있어서...”

그때였다.

서진의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잠깐만요.”

서진이 진유경 형사에게 양해를 구한 후 휴대폰을 귀에 댔다.

도광현이다.

-지금 연락 왔거든요? 감시하라고 지시하신 그 사람 있잖아요?

서진이 도광현을 통해 부탁한 일이 있다.

정준우 부장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확인해 달라고.

그리고 지금 정준우 부장검사가 움직였다.

-강남의 한정식 집으로 들어갔다고 해요.

“누구를 만나는지 확인해 달라고 해. 가게 CCTV 확보할 수 있으면 하고.”

정준우 부장검사, 명예를 저버리고 탐욕을 향한 검사의 끝은 참혹할 거다.

서진이 그렇게 만들어 줄 생각이다.

일단 이용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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