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61화 (161/250)

<은밀한 비밀 (6)>

뜬금없이 나타나 예상 밖의 말을 토해 내는 작은어머니를 보며 서진은 눈을 깜빡였다.

지금껏 수많은 양아치와 사기꾼을 만나 봤지만 작은어머니는 그들과 차원이 다르다.

작은어머니는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

김영준 총장의 옆에서 온갖 더러운 권력 싸움을 지켜본 인물.

적어도 서진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해야 한다.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 모른 채 그 말을 따르다 보면 도착할 곳은 시궁창일 거다.

서진을 찾아와 꿍꿍이를 내뱉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원인은 어젯밤 털린 창고가 분명한데…….’

그 일로 엄선주와 작은어머니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 사실이 아니다.

작은어머니 정도의 상대를 대할 때는 돌다리도 일일이 두들겨야 하는 법.

가능성만으로 행동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서진이 마른 입술을 핥으며 자신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는 작은어머니의 손을 바라봤다.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후 단 한 번도 살가웠던 적이 없는 작은어머니.

‘그런데…….’

지금 서진을 잡고 있는 그 손은 간절하게 보인다.

초조한 눈동자와 말라 버린 입술도 그렇다.

가식이라고 느낄 수 없다.

적어도 그렇게 연기하고 있다.

‘이유가 뭐야?’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시야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서진은 이만큼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이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

테이블이 세 개 있는 작은 커피숍이었다.

다른 손님은 없는 곳에서 서진의 작은어머니가 다른 누군가와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아가씨.”

아가씨라 부른 사내가 작은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러자 작은어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970억. 이번에 내가 잃은 돈이야. 그 돈, 윤환이를 위한 거였어. 그게 내 죄책감을 더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데 그걸 태워 버려? 그게 사실일 것 같아? 선주는 그런 실수를 할 애가 아니야.”

“…….”

“일부러 태웠겠지, 내 돈을 빼돌리려고. 예전부터 그랬어. 중학교 때였나? 내가 키우려고 데려왔던 고양이. 선주가 예뻐했는데, 난 건들지 말라고 했어. 내 고양이니까. 내가 주인이니까 나만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

“그런데 이틀쯤 지났을 거야. 학교에 갔다 왔더니 고양이가 없는 거야. 선주에게 물어보니까 내가 학교 간 사이에 도망갔다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제 방에서 몰래 키우고 있더라? 걔, 그런 애야.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 하는 애.”

사내가 복잡한 눈으로 작은어머니를 바라봤다.

하지만 작은어머니의 눈빛은 여전히 냉랭했다.

“방금, 선주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다 까발리겠다고 했어. 어떤 미친년이 사채에 투자했는데, 그게 검찰총장의 마누라였다. 그게 수백억이다! 그렇게 말하겠다고 했다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입꼬리를 뒤틀며 표독스럽게 말하던 엄선주의 목소리가 생생했다.

작은어머니가 계속 말을 이었다.

“누가 잡아먹든 상관없어. 둘 다 독한 애들이야. 어느 한쪽도 쉽게 밀리지 않겠지. 이겨도 상처를 입을 테고.”

“…….”

“상처뿐인 승리와 영광. 둘 다 죽으면 좋고 그게 아니어도 남은 한 놈의 팔다리만 끊어 버리면 될 것 같은데. 이게 어려운 일인가?”

“…….”

“아버지만 말려 줘. 자매 싸움이니까 끼지 말라고. 나머지는 내가 할게.”

사내는 목이 타는지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한 번에 마셨다.

그리고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회장님을 말려 달라고요?”

작은어머니가 스산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아가씨…….”

“난 기억하고 있어. 너도 내 인생을 망친 놈들 중 하나라는 것. 그런데, 직접 나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를 말려 달라는 것도 못해? 하라고! 네가 죽였잖아!”

작은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사내는 다급히 카운터를 바라봤다가 주인이 없는 것을 확인 후 다시 작은어머니를 향했다.

“그건 제가 한 게…….”

사내는 말을 하려다가 삼켰다.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거다.

사내가 착잡한 표정으로 남은 커피를 마신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작은어머니는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웃었다.

“서진이는 내가 알아서 할게.”

***

서진의 눈앞에 작은어머니가 보였다.

여전히 초조한 눈빛으로 서진을 살피는 눈동자.

하지만 이제 확실해졌다.

예상했던 것처럼 저 표정은 가식이다.

조카 사랑의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고 있지만 작은어머니의 뱃속에는 탐욕으로 배를 채우는 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상대의 의도를 알게 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다.

어떻게 보면, 서진을 우습게 보고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

서진은 작은어머니의 의도를 알지만 작은어머니는 서진의 뱃속을 모른다.

즉, 기다렸다가 씹어 먹어 주면 된다.

그리고 이번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면 서진에게도 작은어머니를 칠 명분이 생긴다.

작은어머니가 서진을 공격했고 서진은 그에 대한 대응을 했을 뿐이라는 것.

명분이 세워지면 김영준 총장이라 해도 나서기 힘들 거다.

생각을 정리한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어머니, 그동안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제가 조용히 해결해 볼게요. 언론에 나가지 않게, 다른 검사들이 모르게…….”

“그래, 집안일이잖아. 그리고 우리 친정이 큰손이었다는 것은 너한테도 좋을 일이 없을 거야. 이런 부담 줘서 미안해.”

“부담은요……. 괜찮아요.”

서진의 친절한 말투에 작은어머니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지금껏 잡고 있던 서진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하나 더 부탁이 있어.”

“말씀하세요.”

“이거, 우리 두 사람의 비밀로 할 수 있을까?”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서진과 작은어머니는 서로를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

잠시 후, 지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서진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작은어머니와 엄선주의 어긋남은 충분히 느꼈다.

그 창고에 작은어머니의 돈도 쌓여 있었던 것.

신뢰하지 않던 두 자매는 이득의 고리가 끊기자 차갑게 등을 돌렸다.

‘엄선주가 작은어머니의 생각대로 움직일까?’

엄선주는 작은어머니의 손바닥 위에서 얌전히 움직일 사람이 아니다.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위기를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을 거다.

‘이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엄선주는 벼랑 끝에 몰린 상태.

돈도 잃고 작은어머니와의 관계도 무너졌다.

게다가 수사기관이 저후안의 잔당을 처리한다며 사방팔방 쑤시는 중이다.

지푸라기를 내밀면 덥석 쥘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건 천천히 생각하고…….’

서진은 다시 사이코메트리를 떠올렸다.

작은어머니와 낯선 사내의 마지막 대화.

“하라고! 네가 죽였잖아!”

“그건 제가 한 게…….”

서진이 그 목소리를 기억하며 중얼거렸다.

‘인생을 망친 놈 중 하나? 네가 죽였잖아?’

서진이 걸음을 뚝 멈췄다.

‘죽여? 누구를?’

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작은어머니의 과거, 숨겨져 있던 조각 하나를 찾은 것 같다.

***

엄선주에 대한 정보는 작은어머니가 전달해 준다고 했다.

서진은 그 정보를 기다리며 밀린 업무에 파묻혔다.

하루하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기록물.

산더미처럼 쌓인 책상 위의 서류는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그리고 엄선주의 창고에서 털어 낸 돈은 약 2,300억.

신마 건설의 지분을 매수한 후 돈이 없다고 툴툴대던 도광현은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상가의 지하를 얻어 돈을 옮겨 놓고 세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하겠다고 한다.

“검사님?”

전화기를 손에 든 실무관이 서진을 향했다.

한창 일을 하던 서진이 고개를 들어 실무관을 바라보자 그녀가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입을 연다.

“부장검사님 호출이요.”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나서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 시간에?’

검사장이 바뀌며 조우재 부장검사와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난번, 검사장이 검사들을 강당에 모아 놓고 불호령을 린 이후 다들 몸을 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해진 회의 외에 얼굴 볼 일이 없었는데, 뜬금없는 호출.

“부르셨어요?”

서진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사무실 옆방을 가리켰다.

“들어와.”

서진이 방에 들어가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입에 문다.

그리고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독한 연기를 뱉어 냈다.

서진은 조용히 조우재 부장검사의 말을 기다렸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저런 표정은 오랜만이다.

답답하고 망설이는 얼굴.

서진의 얼굴 역시 덩달아 심각해졌다.

최근 서진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 워낙 황당해서다.

작은어머니 그리고 엄선주.

‘설마 작은어머니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도 손을 뻗쳤나? 나를 어떻게 해 달라고?’

그럴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조우재 부장검사는 김영준 총장의 강아지 중 하나.

서진에게 목줄이 잡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상대.

서진을 사방으로 압박하기에 조우재 부장검사만한 사람이 없다.

“말씀하세요.”

서진이 멍석을 깔았다.

어차피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진의 사람이다.

목에 걸린 수십억의 돈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

그런데 조우재 부장검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달랐다.

“읽어 봐.”

조우재 부장검사가 테이블에 서류를 툭툭 올렸다.

2년 전, 찜질방에서 쓰러진 여성.

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거품을 물고 사망.

다음 서류 역시 2년 전, 커피숍에서 사망한 여성.

사인은 똑같다.

그다음은 1년 전, 버스에서 숨진 남자.

이번에도 경련과 거품.

다음, 다음, 그다음도 마찬가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똑같은 증세로 사망했다.

“병원에서는 시안화칼륨에 의한 독극물 중독으로 판단했어.”

경찰은 당시 찜찔방에 있던 주인과 직원, 심지어 모든 손님을 수사했지만 혐의점이 없었다.

“그다음 커피숍, 찜질방에서도 연이어 같은 방법으로 사망했어. 지금껏 이렇게 사망한 사람은 열한 명, 어떤 관계도 이어지지 않아. 불특정 다수를 노린 연쇄살인.”

“…….”

“공개수사는 어려워.”

공개수사는 어렵다.

거물 의원으로 꼽히는 이성윤의 외교로 각국의 대표급 정치인과 기업인이 한국에 모인다.

그 회담이 고작 한 달여를 남겨 둔 상황.

“총장님은 연쇄 독살 사건으로 잔치에 찬물을 끼얹지 말라고 지시하셨어.”

조우재 부장검사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얼굴을 쓸어 만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건의 관할은 우리 지검, 강남경찰서와 협조해서 회담 전에 사건을 끝내야 해.”

언론의 하이에나가 냄새를 맡거나 야당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극단적인 상황처럼 몰고 갈 수 있다.

국민에게 음료 하나 마시지 말라고 선동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검사장님이 우리를 불렀지.”

차장검사와 부장검사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그 누구도 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 놈이 그러더라, 미제는 김서진 아니냐고…….”

인정을 받을수록 시기하는 시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법.

서진을 좋지 않게 보는 검사가 존재한다.

그들이 서진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단 한 번의 실패를 통해 갖은 비난을 퍼부을 생각이다.

“난 당연히 반대했지. 이런 것은 형사에서 하는 거니까. 그런데 검사장님도 네 이름을 듣더니 바로 수락하셨어. 기대하시는 거지. 이 사건을 잘 포장해서 총장님과 정치권의 눈에 들고 싶은 거야.”

조우재 부장검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서류를 바라봤다.

이건 미제 전문이라 해도 불가능하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범죄.

증거는 없다.

혐의도 없다.

2년 동안 경찰이 달려들었지만 범인은 숨어 있다.

드러난 것은 고작 시안화칼륨, 즉 청산가리라는 것, 그게 전부.

그것 하나만 갖고 사건을 시작해야 한다.

“못하겠으면 말해. 씨발, 형사에서 해야 할 일을 왜 우리가 해?”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이건 서진을 감싸고 말고가 아니다.

부서를 넘은 월권행위다.

그런데 서진이 서류를 손에 들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어?”

“해 볼게요. 대신…….”

“대신?”

“다른 사건을 좀 줄여 주시면 안 될까요?”

담당 사건이 줄어들면 엄선주와 작은어머니에게 집중할 수 있다.

게다가 검사장, 이해타산에 능한 자, 그 사람과도 친해질 시간이다.

서진이 슬쩍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악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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