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재능 (3)>
이하람이 날카로운 눈으로 서진을 쏘아봤다.
“……뭐? 48시간 안에 구속?”
“기대해. 24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이하람이 붉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특별한 반항은 없었다.
이하람은 자신의 팔을 잡은 여성 수사관들의 손을 탁, 쳐 낼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시선으로 수사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놔. 알아서 갈 테니까. 쪽팔리게…….”
이하람은 그 말을 끝으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복도를 걸었다.
여기만 벗어나면 처장인 아버지가 빼내 줄 것이라 생각해서다.
검찰에 끌려간다 해도 몇 시간 후에 풀려날 게 분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사관들은 ‘뭐, 저런 게 다 있어?’라는 표정으로 이하람을 바라봤다.
어지간한 강심장도 검찰 앞에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벌벌 떨고 얌전히 행동한다.
그런데 이하람은 정치 밥을 수십 년 처먹은 권력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녀는 아직 이십 대 중반의 어린 여성, 영화를 많이 본 거다.
그리고 서진은 그녀가 계속해서 건방지게 행동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뭐 하세요? 버르장머리를 고쳐 줘야죠.”
수사관들도 바라는 바였다.
수사관들이 이하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양쪽에서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다시는 풀 수 없도록.
이하람이 홱, 서진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알아서 간다니까!”
시퍼런 눈동자가 서진을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끝까지 건방진 태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 꼴.
서진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만 까불어.”
“……!”
“난 지금 배려하는 중이야. 계속 반항하면 수갑을 채울 수밖에 없어. 알아들었으면 닥치고 얌전히 행동해.”
서진의 살벌한 눈동자에 이하람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금지옥엽 외동딸로 태어난 이하람은 저런 눈을 마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분노로 가득한 눈이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압수 수색? 채용 비리?”
SR제약 대표이사는 일그러진 눈빛으로 앞에 선 각 본부장과 부장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뜬금없이 검찰의 압수 수색.
그것도 채용 비리.
“어떤 새끼야!”
내부 고발이 아니고서는 걸릴 수 없는 문제.
SR제약은 수 천 명의 직원이 채용된 회사다.
단 한 명의 불법적인 취업을 검찰이 알아낼 수는 없다.
“어떤 새끼냐고!”
그 말과 동시에 대표이사는 인사부장의 뺨을 쩍,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다.
“너야? 너지? 맞지? 이 새끼야!”
인사부장이 붉어진 뺨을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억울한 눈빛으로 대표이사를 바라봤다.
“아뇨, 아닙니다! 아니에요!”
물론 온전히 침묵했던 것은 아니다.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몇 번 거론한 적은 있다.
“야, 경영지원 팀 이하람 있지? 정직원으로 올리라고 지시 내려왔어. 그래, 명품 두르고 다니는 애. 응? 계약직이 어떻게 정직원이 되냐고? 걔 아빠가 식약처 처장이잖아. VIP로 관리하라더라. 이 세상은 능력 있는 놈이 잘되는 게 아니라 부모 잘 만나야 성공하는 거야.”
그때 했던 말이 조금 찔리기는 하지만 그게 끝이다.
그 외에는 어디에도 발설한 적이 없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달렸고 상황은 이미 거침없이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전 아닙니다!”
인사부장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씨발.”
대표이사가 눈을 번뜩이며 다른 본부장과 부장을 노려봤다.
얼음장 같은 눈빛에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지금은 조용히 눈치만 봐야 한다.
그리고 서진에게 정보를 제공한 영업부장 임창범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인사부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순간만 넘기면 된다.
‘회사는 흔들리겠지.’
하지만 채용 비리 하나로 없어질 회사가 아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겠지만 자신에게 불똥만 튀지 않으면 된다.
임창범 부장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식약처, 이종석 처장은 SR제약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 눈빛이 일그러져 있다.
“증거는?”
-인사부장에게 듣기로 메일에 관련 자료가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
그때 휴대폰이 부르르르 떨렸다.
이종석 처장이 다급히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처, 처장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 법이다.
휴대폰 너머, 떨리는 상대의 목소리에 이종석 처장은 심장이 덜컥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들려온 말은 더 심각했다.
-따, 따님이 검찰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이종석 처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끔, 신음 소리가 흘렀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을 느낄 시간이 아니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 둔 후 다시 SR제약 대표이사와 통화하던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
“정 대표, 수습할 방법은?”
-이건 여론 싸움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자료를 만드는 동안 처장님께서는 정치적 음해라고 기자회견을 해 주시면…….
“그렇게 하지.”
이종석 처장은 모든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앞에 선 대변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
“기자회견 준비해.”
식약처 처장, 자신이 가진 권한을 권력으로 생각하고 남용했다.
SR제약에 특혜를 약속하며 딸을 정직원으로 만들었고 뒷돈을 받아 왔다.
하지만 반성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며 운이 없어 걸렸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리고 언론사에 전달해, 검찰의 정권 죽이기가 시작됐다고!”
*-SR제약의 채용 비리가 시끄럽습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종석 처장의 딸은 이력서조차 제출한 적이 없고…….
뉴스가 시끄럽다.
각 방송사는 뉴스의 시작으로 SR제약 채용 비리를 비중 있게 다뤘다.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
-검찰은 SR제약 채용 비리의 핵심 인물로 이종석 처장의 딸 이 양을 구속했고 이종석 처장과 SR제약 정인명 대표를 소환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종석 처장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결백을 당당히 알렸다.
-이종석 식약처 처장은 딸이 특혜를 받은 적이 없다며 이 모든 것은 검찰이 작성한 소설, 정치적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자의 모습이 사라지고 화면에 이종석 처장의 얼굴이 꽉 들어섰다.
이종석 처장이 마이크에 대고 입을 열었다.
-특혜는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특혜가 존재했다면 왜 계약직으로 입사했겠습니까? 검찰의 증거는 악마의 편집이나 다름없는 짜깁기이며 그런 식의 증거 제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검찰은 즉각 음해성 수사를 중단하길 바랍니다.
삑.
텔레비전이 종료됐다.
김영준 총장은 웃고 있었다.
세상이 시끄러워졌지만 그만큼 김영준 총장의 이름도 세상을 울리는 중이다.
-김영준이 직접 지시한 거래. 취준생에게 허탈한 마음이 없게 하라고. 공정해야 한다고!
└그냥 직진이네.
└사이다!
-한 큐에 끝내는 것 봤지?
-이건 총장 됐다고 보여 주기 쇼하는 게 아닌데?
└중앙지검장 할 때도 다 쓸어버린 게 김영준이야.
└서민을 위한 총장님.
└다 때려잡아 주세요!
SR제약은 거대 기업이고 식약처 처장은 권력자.
특권 계층을 부숴 버리고 서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
‘그리고 특권 계층은 고민하겠지.’
특권 계층은 지금의 사태를 지켜보며 고민하는 게 있다.
김영준 총장과 손잡아야 하나?
그러지 않으면 지금의 생활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손을 잡으면…….’
계속해서 이득을 공유하는 게 가능하다.
지금처럼 호사스럽게 살 수 있다.
‘놈들은 깊게 고민하지 않을 거야. 내 손을 잡겠지.’
김영준 총장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 손에 서민과 특권 계층이 담기는 게 느껴진다.
다음의 목표가 눈앞에 온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이종석 처장은 여론전에 능하다.
상황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내가 직접 나서면…….’
김영준 총장은 생각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면 이종석 처장 정도는 꿈틀대기도 전에 박살 낼 수 있다고.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고개를 저었다.
잔챙이가 움직인다고 촐랑이며 그 뒤를 쫓으면 같은 급이 되고 만다.
잔챙이는 잔챙이가 잡는 법.
그리고 서진이 어디까지 계획하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김영준 총장이 천천히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았다.
*그 시각, 서진은 중앙지검에 있었다.
복도를 걷던 서진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창밖을 통해 대검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SR제약 압수 수색으로 인해 퇴근은 물 건너갔지만 기분은 좋았다.
채용 비리의 사건은 나비 효과처럼 커지는 중이다.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것 같았고 여기저기 또 다른 채용 비리의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장관의 아들이 제대로 된 면접도 치르지 않고 입사했어요.
-국회의원의 딸이 특채로 채용됐어요.
사건이 커지면 커질수록 작은어머니 측은 생각할 거다.
서진이 사채 시장에서 손을 놓았다고.
그리고 그 생각은 다시 숨어 있던 놈들이 고개를 드는 계기가 될 게 분명하다.
서진은 그렇게 튀어나온 놈을 다시 쑤셔 잡을 생각.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부르르.
서진의 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김영준 총장.
“네, 작은아버지.”
-추가로 나온 게 있나?
김영준 총장은 중앙지검장을 통해 사건의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 받는 중이다.
그리고 이만큼의 증거가 나왔으면 총장의 힘으로 이종석 처장 정도는 머리채를 잡고 박살 낼 수 있다.
하지만 서진에게 직접 묻는 이유는 하나.
‘내 생각을 듣고 싶겠지.’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속마음을 예상했고 곧장 그가 원하는 답변을 내뱉었다.
“여론전 때문에 그러세요?”
-그래.
이종석 처장의 발버둥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각 판사를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다.
-지금은 여론이 우리 편이지만 언제든 손바닥처럼 뒤집히는 게 그 여론이지. 문제는 또 있어.
이종석 처장의 발버둥이 무죄 또는 무혐의를 만들어 낸다면…….
-사람들의 허탈감은 검찰의 무능함을 탓할 게 분명해.
서진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서진은 이번에도 준비된 답변을 입에 담았다.
“이하람의 특혜 채용 외에 SR제약에서 뒷돈을 받은 게 있어요. 허가될 수 없는 의약품을 통과시켜 준 거죠, 이종석 처장이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그리고 여론이 식을 때마다 하나씩 풀 예정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김영준 총장은 상대가 바동대는 것을 지켜보며 즐기는 사람.
서진이 그 스타일을 똑같이 흉내 냈다.
믿음을 주기 위해.
쓸모 있는 놈이 되기 위해.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 김영준 총장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켜보지.
그렇게 통화가 종료됐다.
서진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혔다.
‘뻔하네.’
김영준 총장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예상됐다.
김영준 총장은 손에 들어오는 권력의 달콤함을 통해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을 거다.
‘하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할 때의 아픔은 크다.
사람들은 영웅의 몰락을 즐거워하며 위선자의 가면이 벗겨졌을 때, 사정없이 물어뜯는다.
서진은 그 가면이 벗겨질 날을 기다리며 사무실로 향했다.
“오셨어요?”
서진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동영 수사관이 피곤한 얼굴로 인사했다.
서진이 SR제약에 대한 압수 수색과 수사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동영 수사관은 그 자리에 없었다.
계속해서 작은어머니의 과거사를 캐는 중이다.
“재밌는 게 하나 나왔어요.”
이동영 수사관의 목소리가 즐거웠다.
작은어머니의 뭔가를 찾아낸 거다.
서진이 눈을 반짝이며 이동영 수사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동영 수사관이 싱글벙글 웃으며 서류 뭉치 하나를 서진에게 건넸다.
“작은어머니가 김영준 총장 이전에 만났던 남자가 있던데, 혹시 아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