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재능 (2)>
***
식사 자리가 끝났다.
아버지와 김영준 총장은 와인을 몇 병이나 싹 비운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가 김영준 총장을 향해 기분 좋게 미소를 그렸다.
“앞으로도 필요한 거 있으면 말 하고.”
“그래. 항상 고마워, 형.”
마무리 인사를 마친 후, 서진의 가족은 현관을 나섰다.
그런데 서진은 누군가가 자신의 옷깃을 잡아끄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틀어 보니 작은어머니다.
“잠깐만.”
“네.”
서진은 부모님께 잠시 후 가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진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지만 서진은 손을 살짝 드는 것으로 안심시켜 줬다.
그렇게 가족이 떠났고 서진이 작은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러자 작은어머니가 따라오라는 눈빛을 보내며 몸을 틀었다.
다시 주방, 먹었던 음식이 채 치워지지 않은 곳.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접시를 치우는 중이지만 작은어머니는 식탁의 의자를 빼내며 앉았다.
작은어머니에게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조심성이 없는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는 듯 서슴없이 입을 연다.
“채용 비리를 준비한다며?”
“네.”
“사채시장은 이제 손 안 댄다고?”
서진도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이 바로 옆에 있지만 상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떠벌릴 생각이었고 듣는 사람이 많을수록 감사한 일이다.
“작은어머니가 말씀하셨잖아요, 선 넘지 말라고. 그래서 넘지 않으려고요. 걱정까지 해 주셨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요.”
“정말이야?”
작은어머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 눈은 더욱 또렷하게 서진의 표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서진은 멍석이 깔렸을 때 준비했던 연막을 더 뿌리기로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얼마 전에 작은아버지의 취임식이 있었잖아요.”
물론 그 자리에는 작은어머니도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고상한 척하며 조용히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어머니의 눈동자가 과거를 떠올릴 때, 서진이 계속 말했다.
“과일이나 먹고 있었는데, 작은아버지가 불렀고 그 덕에 여러 검사장님들과 인사를 하게 됐어요.”
작은어머니가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렇게 모든 분들과 인사하고 다시 구석으로 가는데 한 분이 저를 조용히 부르더니 ‘지금의 이력으로도 충분하니까 무리해서 이력을 쌓으려 하지 마. 앞으로는 업적이 아니라 흠집을 잡히지 않는 게 중요해.’라는 말씀을 하더라고요.”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관리가 필요하다.
누구나 우러러볼 완벽한 이력이 아니라 흠집 잡히지 않을 이력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어머니의 눈빛이 반짝이는 순간 서진은 그녀가 원하는 말을 내뱉었다.
“망치로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동안 호승심으로 어떻게든 이력을 쌓으려 했는데, 그게 다 필요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작은어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 미소가 점차 짙어졌고 서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가야 할 길이 먼데, 벌써부터 돈 많은 사람과 싸우며 다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작은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의 목적을 착각하기 시작한 거다.
작은어머니가 서진을 위하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래, 높은 곳에 가려면 업적보다 흠집이 중요하지.”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작은어머니는 검사의 아내로 총장까지 지켜본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그래서, 서진이 너도 총장 자리를 원하는 거야?”
기대로 가득한 눈빛, 서진의 목적을 확정 짓고 싶어 하는 표정.
그리고 작은어머니는 권력이라는 술에 빠진 서진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김윤환에게 도움이 될까?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서진은 작은어머니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그 모든 생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겸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이, 전 아직 평검사예요. 총장까지는 생각도 안 하고요. 그래도 이왕 검사가 됐으니 검사장까지는 해 보고 싶어요.”
서진의 말에 작은어머니가 깔깔깔 웃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다가오더니 서진의 팔을 쓰다듬는다.
서진은 뱀이 스치는 느낌을 받았지만 표정을 관리하며 조용히 웃었다.
“우리 조카, 검사장 될 때 이 작은엄마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열심히 해.”
“열심히 해요?”
작은어머니가 희미하게 웃었다.
“살살 해.”
***
주방 옆에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서진과 자신의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거다.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에게 취업 비리를 쑤시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SR제약 임창범 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없다.
‘약이 약했나?’
그럴 리는 없다.
임창범 부장은 바짝 겁을 먹었고 서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
하루만 더 기다려 보기로 생각했을 때다.
드르륵.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임창범 부장.
-말씀하신 것, 찾았습니다. 그런데…… 전 정말 아무 일 없는 거죠?
임창범 부장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다.
서진은 흔쾌히 임창범 부장의 걱정을 해소해 줬다.
“그럼요.”
***
SR제약 근처의 커피숍.
다시 만난 임창범 부장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핼쑥했다.
망가진 피부와 진해진 다크서클.
임창범 부장이 테이블에 USB를 올려 두며 말했다.
“PDF 파일로 저장했고…….”
서진은 노트북을 꺼내 USB를 꽂았다.
화면에 임창범 부장이 말한 PDF 파일이 쭉 나열됐다.
윗선의 지시.
계약직에서 정직원으로 올리라는 내용.
정직원 채용 직전 이종석 처장의 딸 이하람과 주고받은 메일.
이하람의 근태 기록.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서진이 노트북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불법적인 영업만 하지 않으시면 저를 다시 볼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에 임창범 부장은 한숨을 내뱉으며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솟은 땀을 닦았다.
“……이제 안 할 겁니다.”
다시 볼 일 없다는 말, 임창범 부장에게는 가장 바라던 말이었을 거다.
서진은 몸을 일으켜 임창범 부장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그럼.”
서진은 커피숍을 나와 곧바로 차에 올랐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작은아버지, 서진이에요.”
서진은 이 사건은 김영준 총장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영준은 총장이 된 후 3일에 한 번 언론에 자신의 이름을 내고 있다.
김영준 총장이 어디어디를 방문했다.
김영준 총장이 어떤 사건에 전담 팀을 꾸리라고 지시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전략.
수십억 단독주택에 사는 놈이 서민적인 모습을 내보이려는 선전 선동.
국민은 언론에서 비치는 모습만 보고 김영준 총장을 칭찬하고 있다.
새로운 검찰을 기대하는 중이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만지는 사건은 전부 전임 총장의 연장선.
부정부패를 깨부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면 거품은 사라질 거다.
그럼 지금껏 새로운 검찰을 기대했던 국민은 돌변한다.
달라지지 않은 검찰을 향해 돌을 던질 거다.
‘그래서…….’
서진은 식약처 처장을 김영준 총장의 제물로 삼으려 한다.
김영준 총장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 주며 굳건한 신뢰를 얻는다.
‘나를 인형으로 생각해라, 나를 사냥개로 여겨라.’
서진은 액셀을 꾹 밟았다.
신호가 바뀌며 서진의 자동차가 대검을 향해 달려갔다.
***
김영준 총장은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임창범 부장이 건넨 USB, 그 안의 PDF 파일.
한참을 살피던 김영준 총장이 시선을 들어 서진을 향했다.
“이 일을 대검에서 지시하라?”
“네.”
김영준 총장은 서진이 내민 먹이를 곧장 삼키지 않았다.
USB를 뽑아 테이블에 내려 둔 후 한참 동안 말이 없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김영준 총장이 입을 열었다.
“왜 직접 하지 않지?”
서진은 김영준 총장이 이렇게 나올 것도 예상했다.
그래서 준비한 말을 꺼냈다.
“아직 옷 벗고 싶지 않아서요.”
검사는 그 한 사람이 하나의 기관이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에 칼을 들이밀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행복하지 않다.
유배 또는 옷을 벗고 검찰을 떠나는 것.
“상대가 처장이잖아요. 아무리 작은아버지가 총장이라 해도 그 뒤에 일어날 일은 관례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
“그리고 제 힘으로 한 기관의 처장을 잡아내기는 힘들다고 판단됐고요. 그 사람들, 우리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흔적을 지울 수 있는 힘이 있잖아요.”
서진의 답변이 끝나자 김영준 총장이 USB를 손가락으로 툭 건들며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열었다.
“그게 끝인가?”
서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김영준 총장은 서진의 그 뒷생각도 원하고 있다.
그 눈빛에 서진은 잠시 고민했다.
어디까지 밝혀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견제되지 않지만 계속해서 쓰일 만한 놈으로 남을 수 있을까.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작은아버지의 총장 취임 선물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서진의 말에 김영준 총장이 황당한 듯 바라보다가 이내 껄껄껄 웃었다.
그리고 USB를 손에 쥐며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바로 중앙지검장에게 연락하마. 수사의 주체는 반부패수사제2부, 조우재 부장검사와 네가 될 거야. 바로 지검으로 돌아가도록 해. 식약처와 SR제약에 대한 압수수색을 준비해.”
김영준 총장은 받은 선물을 혼자 삼키지 않았다.
그 공을 서진에게도 넘겨줬다.
이력을 쌓게 하는 거다.
차근차근 위로 올라올 수 있도록.
서진은 김영준 총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럼, 바로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서진은 몸을 틀어 총장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김영준 총장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허 참…….’
김영준 총장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그렸다.
서진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다.
조심스레 행동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것에 거침이 없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하고 있다.
***
-검찰이 SR 제약 채용 비리 제보를 받고 기습적인 압수 수색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SR 제약은 당혹스럽다는 입장과 함께 검찰의…….
뚜벅뚜벅.
서진이 SR 제약의 복도를 걸었다.
검찰 박스를 든 수사관들이 우르르 인사 팀으로 달려가고 있다.
쾅! 문을 열고 들어간 수사관들이 외쳤다.
“검찰입니다! 거기, 손대지 마세요! 증거인멸이에요!”
서류를 파쇄하고 PC를 감추려던 인사 팀 직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미 늦었다.
검찰은 모든 것을 알고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서진은 인사 팀을 스쳤다.
계속해서 복도를 걸으며 경영 지원 팀으로 이동했다.
이종석 처장 이하람이 있는 곳.
그런데 복도의 끝에서 명품 가방을 들고 빠르게 걸어오는 20대 중반의 여성이 보였다.
이하람이다.
채용 비리로 압수수색을 한다는 말을 듣고 도망치려 하는 거다.
잠시 피해 있으면 아빠가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있어서다.
서진이 손을 뻗어 이하람의 앞길을 막았다.
“스톱.”
이하람이 겁먹은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봤다.
SNS에 취업 못 하는 친구들을 향해 ‘세상 탓하지 말고 노오오력을 해!’, ‘나도 계약직부터 시작했어.’라는 말을 적어 놨던 이하람.
그녀가 서진에게 한 첫마디는.
“우, 우리 아빠가 누군 줄 알아요?”
“어, 알아.”
서진의 담담한 목소리에 이하람의 눈동자가 떨려 왔다.
서진이 자신의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거다.
“지금까지 인생이 편했지?”
취업 준비생들은 날밤을 새우며 시험을 봐야 입사할 수 있는 회사였지만 이하람은 달랐다.
메일 몇 번 오간 것만으로 계약직에서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여기까지다.
아버지를 통해 맛봤던 천국, 이제 지옥을 경험할 시간이다.
“여, 영장 있어요?”
이하람이 주춤주춤 물러서며 물었다.
영장이라니, 영화나 드라마가 애들을 망쳐 놓는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없어도 돼.”
이하람의 옆으로 여자 수사관들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여자 수사관들이 이하람의 팔을 꽉 잡을 때,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모든 취준생을 대표해서 내가 말하지. 48시간 안에 구속시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