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51화 (151/250)

<부모도 재능 (1)>

“그리고…… 죄송하지만 작은어머니에 대한 조사는 제가 나서기 힘들 거예요.”

이동영 수사관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서진의 처지를 이해한 거다.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의 조카이며 나름 얼굴도 알려져 있다.

조사하는 데 있어서 행동이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조사에 필요한 인력과 자금은 전부 지원할 테니까, 인력이 필요하시면…….”

“걱정 마세요. 흥신소라도 가져다 쓸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진이 고개를 숙인 후, 파일 철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기밀 수사는 작은어머니 엄시영이다.

하지만 눈을 가릴 사건이 필요하다.

“SR제약입니다.”

신마그룹의 신지연에게 들었다.

SR제약에 채용 비리가 있었다는 첩보를 들었다고.

“타깃은 식약처 처장 이종석 그리고 그 딸 이하람.”

서진이 서류를 한 장 넘기며 말을 이었다.

“채용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이종석 처장의 딸, 이하람.

지방대를 졸업했고 영어 인증 점수 역시 좋지 않다.

게다가 그녀의 SNS를 보면 도서관에서의 모습은 없다.

오직 놀고먹는 게 전부.

“2년 전, 계약직으로 SR제약 본사 사무직에 입사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문제는 2년 후가 된 지금이죠.”

아웃소싱 업체를 통해 계약직으로 입사한 이하람은 얼마 전 정직원이 되었다.

물론 아웃소싱 소속의 계약직 직원이 정직원으로 채용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SR제약에는 그런 사례가 단 한 번도 없었죠. 물론, 열심히 노력해서 새로운 사례를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서진이 서류를 한 장 더 넘기자 이하람의 SNS에서 뽑아 온 사진이 담겨 있었다.

“이하람은 지난 2년 동안 해외여행을 아홉 번, 제주도를 일곱 번 다녀왔습니다. 연차를 넘어 휴가를 즐긴 거죠.”

“…….”

“그런데 이하람은 정직원이 되었습니다.”

서진이 서류를 또 넘겼다.

취준생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적힌 SR제약 면접 후기.

-하…… 탈락했습니다. 면접에서 석박사 수준의 질문이 훅 들어오네요. 생명공학 전공 안 한 사람은 절대 대답 못 함. 연구원 뽑는 것도 아니고 사무직 뽑으면서 왜?

└스펙 안 좋은 사람이면 그렇게 압박해서 떨어뜨린다고 들었어요.

└거기 면접이 악명 높기로 유명하죠.

-맞아요. 말만 면접이었지, 테스트였어요. 전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대답해야 했어요.

-전 중국어, 중국과 거래할 일이 많다면서…….

└면접이라도 보신 분 부럽네요. 실례지만 학력이 어떻게 되세요?

└서울 중위권 대학이에요. 기본 자격증 다 있고 토익은 900 넘고요.

서진이 서류를 착착 앞으로 넘겼다.

다시 이하람의 스펙이 보인다.

학과는 문헌정보학과.

“석박사 수준의 생명공학 지식이 있기는 힘들죠.”

게다가 영어 점수도 형편없다.

“기본적인 영어 대화조차 어려울 겁니다. 중국어에 대한 것은 적혀 있지 않네요.”

“…….”

“이하람의 순수한 실력이었다면, 채용될 수 없어요. 그런데, 합격했죠. 특별한 시험 없이, 계약직에서 정직원으로. 여행 다닐 것 다 다니면서.”

서진의 손가락이 서류의 가장 위로 옮겨졌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이하람의 아버지 이종석 처장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하람이 정직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버지를 잘 만나서입니다.”

“…….”

“저는 여기를 수사하겠습니다.”

불법 채용, 공정하지 못한 결과.

취업 준비생을 힘 빠지게 만드는 청탁과 비리.

그들의 노력은 부모 잘 만난 사람 앞에서 거품처럼 무너진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세상은 시끄러워질 거다.

서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죠.”

***

며칠 후, 서진은 SR제약 본사 근처의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가져온 노트를 넘기며 다시 한번 사건을 확인하는 중이다.

‘입사 문제로 제약 회사를 압박했어. 대가가 있었을 거야.’

기업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이득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 식약처 처장은 어떤 대가를 약속했을 테고.

‘어쩌면 채용 비리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의약품은 생명에 직결되는 것.

사람의 생명을 두고 장난질을 했다면 그것은 선을 넘은 거다.

서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노트를 툭 덮었다.

뭐가 됐든 이 사건을 조용히 넘길 생각은 없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는 즉시 불을 지를 거다.

공평하지 못한 채용에 대한 경고.

장난질에 대한 대가.

그리고 시선이 이쪽으로 향할수록 이동영 수사관이 움직이기에 편하다.

“……김서진 검사님?”

낯선 목소리에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임창범입니다.”

SR제약 영업부장 임창범.

서진이 이곳에 온 이유였다.

“김서진입니다.”

서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지만 임창범 부장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당연하지만 검사가 회사까지 찾아오는 게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앉으세요. 아이스 라테 시켜 놨는데, 괜찮죠?”

“아, 네.”

임창범 부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서진의 앞에 앉았다.

하지만 서진은 그 뒤로 입을 열지 않았다.

이따금 창밖을 보며 커피를 입에 댈 뿐이다.

답답한 것은 임창범 부장이었고, 결국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나요?”

“제가 왜 왔을까요?”

“네? 그걸 제가 어떻게…….”

임창범 부장은 말끝을 흐리며 힐끗 서진을 살폈다.

하지만 서진은 여전히 입을 닫고 있다.

무심한 눈으로 임창범 부장을 보는 게 전부다.

임창범 부장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저기…… 제가 할 일이 많아서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일어나도 괜찮을까요?”

“안 괜찮겠죠?”

이런저런 설명 없는 건조한 말투에 임창범 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는 못한다.

찔리는 게 있어서다.

‘설마…….’

임창범은 영업부장이다.

영업 사원과 영업 대행업체를 향해 지시하고 있다.

각 병원의 의사와 약사 그리고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리베이트를 주라고.

‘하…….’

임창범 부장은 한숨을 내뱉었다.

최대한 은밀히 진행하고 있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 비밀은 없다.

검사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이미 검찰의 눈과 귀에 그 소식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일단 발뺌해야 한다.

리베이트를 지시한 것, 생각해 보면 “돈을 줘!”같이 대놓고 말한 적은 없다.

그런 어투로 지시를 내린 것뿐.

빠져나갈 구멍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제약 회사의 영업부장이다 보니 이런저런 의혹에 휩싸이기도 하는데요. 혹시, 리베이트 때문에 오셨습니까?”

“네.”

임창범 부장은 입술을 씹었다.

설마 했는데, 예상이 맞았다.

그럼 이제는 무조건 오리발이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쪽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리베이트에 관여한 적도 없고요.”

서진은 슬쩍 웃었다.

덤덤한 표정으로 있었더니 알아서 술술 불고 있다.

즉, 겁이 난다는 것이며 겁이 많다는 것.

지금 생활을 잃고 싶지 않다는 거다.

이런 사람은 남의 상처보다 제 손에 찔린 가시를 가장 아픈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이었죠? 제약 회사에서 돈을 넘어 성 상납까지 했던 것.”

“네? 저, 저희 직원들도 그런 짓을 했나요?”

“아뇨, 그냥 알려 드리는 거예요. 그 일로 그 제약 회사의 영업 사원들은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최종적으로 영업부장은 구속까지 됐네요.”

테이블 아래 임창범 부장의 손이 파르르 떨려 왔다.

다른 회사의 사례를 들며 자신을 대입한 거다.

서진이 겁을 먹은 임창범 부장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 회사 잘되라고 한 일인데, 결국 책임은 부장이 지네요. 그렇다고 불법적인 영업을 하지 않으면 매출이 떨어지는데, 그 책임 역시 부장이 져야 하고요.”

“……!”

“회사에 충성할 필요가 있습니까?”

서진은 지금 당장 리베이트를 끝장낼 생각이 없었다.

잡아봤자 벌금 1,500만 원 선고를 받는 게 끝.

지금은 식약처 처장을 신경 쓸 때다.

괜히 영업 사원을 쑤시다가 놈을 놓치는 멍청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임창범 부장은 서진이 전한 뜻을 알아챘다.

회사에 충성할 필요가 있느냐. 그 말은 회사를 배신하라는 것.

“……뭐가 필요하신 겁니까?”

“글쎄요.”

“돈이 필요하신 겁니까?”

리베이트로 부장까지 오른 사람이라 그런지 첫마디가 뇌물이다.

하지만 서진에게 돈은 필요 없다.

“아뇨.”

“그럼…….”

“생각해 보세요. 뭐가 필요할까요? 원래, 영업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거라고 들었는데. 궁금하네요, 부장님이 제게 무엇을 주실지.”

임창범 부장은 확 솟는 짜증을 느꼈다.

스무고개도 아니고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니.

하지만 죄를 지은 놈은 검사 앞에서 한없이 을이어야 한다.

눈동자를 굴리며 서진이 찾아온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진은 커피만 마셨다.

서진이 원하는 것은 채용 비리.

하지만 일부러 입을 열지 않는다.

회사를 배신하라는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다.

서진의 지시 역시 휴지처럼 버릴 수 있다.

저런 놈은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탈이 없다.

“설마…… 채용 비리?”

임창범 부장이 구렁텅이에 들어온 순간이다.

서진이 자세를 고쳐 앉아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녹음이 되고 있다는 표시.

놈의 눈이 부릅떠질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채용 비리에 대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제 말을 따라 주시면, 두 가지를 약속하겠습니다.”

임창범 부장은 여우에게 홀린 기분을 느끼며 서진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나, 지금 주신 정보는 관계자의 밀고 정도로 해 두죠. 둘, 다시는 리베이트를 지시하지 마세요. 그럼 임 부장님을 향한 수사는 없을 겁니다. 물론, 제 말을 따라 주셨을 때 지킬 약속입니다.”

“……따르지 않으면요?”

“리베이트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겠죠. 압수 수색을 할 테고 회사는 물론 관련된 병원은 쑥대밭이 나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채용 비리에 대한 정보를 누가 흘렸는지도 정확히 알릴 생각입니다.”

임창범 부장의 입에서 끔, 신음 소리가 흘렀다.

하지만 서진의 건조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임 부장님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네요. 채용 비리가 없어진 공정하고도 편안한 회사 생활 그리고 법원을 오가는 지옥 같은 생활. 그래서, 선택은?”

임창범 부장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선택이 어디 있을까, 그저 악마 같은 놈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막말로 서진이 했던 말처럼 회사는 자신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모든 잘못을 직원에게 돌릴 뿐이다.

임창범 부장이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며 타는 목을 식혔다.

그리고 서진을 바라봤다.

“……뭘 하라는 거죠?”

“간단해요. 결정적 증거를 가져다주셔도 됩니다. 인사 팀의 메일이나 채용에 관한 서류 같은 거요.”

임창범 부장은 욕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그는 영업부다.

그런데 메일이나 채용에 관한 서류는 인사 팀의 것.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정말 끝장이다.

하지만 따라야 한다.

선택지는 없다.

***

서진은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며 핸들을 틀고 있을 때, 차량 앞을 스쳐 가는 이종석 처장의 딸 이하람이 보였다.

자신이 드라마 속 커리어 우먼이 된 것처럼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있다.

서진은 이하람을 보며 픽 웃음을 터뜨렸다.

사냥개는 풀었다.

이제 무엇을 물고 올지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세상은 또 한 번 시끄러워질 거다.

***

며칠 후.

서진의 가족은 김영준 총장의 집을 찾았다.

김영준이 총장에 오른 후 첫 가족 모임.

집에 들어가는 순간 작은어머니는 관찰하는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서진은 모른 척,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그리고 축하 인사가 시작됐다.

아버지는 김영준 총장의 손을 꼭 붙들고 “정말 고생했다. 고생했어.”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어머니와 진영도 마찬가지.

그렇게 이들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오늘의 가족 모임에는 김영준 총장의 딸 김유미도 참석했다.

김유미는 의사, 레지던트로서 바삐 생활하고 있지만 오늘은 운 좋게 시간이 맞았다고 한다.

‘동갑이라고 했지?’

서진이 김유미를 보는 것은 깨어난 후 첫 가족 모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김유미는 식사를 하면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리고 서진도 김유미에게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딱히 재정건설이나 집안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의사 생활이 고된지 피곤한 모습만이 가득했다.

이번 모임도 아버지와 김영준 총장의 대화가 대다수였다.

역시 어머니와 작은어머니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진영도 접시에 코를 박고 밥만 먹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대화하던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서진아.”

“네?”

서진이 김영준 총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영준 총장이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즘에 어떤 사건을 준비하고 있어? 검사장이 물어보더라.”

김영준이 총장으로 올라서며 중앙지검에 새로운 검사장이 취임했다.

서진은 평검사의 신분, 그래서 마주쳤을 때 고개 숙여 인사만 했을 뿐 딱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검사장이요?”

“그래, 네가 어떤 사건을 물어 올지 잔뜩 기대하는 눈치던데?”

김영준 총장이 굳이 저런 말을 던진 이유는 하나.

서진의 아버지 김준만에게 보여 주고 싶은 거다.

자기 자식이 기대받고 있다는 것을 싫어할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의 속뜻은 다르다.

서진이 높은 사람의 눈에 들게 된 원인을 자신에게 두고 있다.

즉, 김영준 총장이 서진을 잘 돌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는 것.

아버지에게 빚을 지우려는 거다.

언젠가 김윤환이 왔을 때, 그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서진은 그 목적이 빤히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조우재 부장검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요. 채용 비리가 있다는 제보를 받아서 그거 준비하고 있어요.”

사채시장에 신경을 끄고 채용 비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말.

지금껏 조용하던 작은어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서진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고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그래. 그렇게 안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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