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4)>
***
대검찰청, 대강당.
검찰총장 김영준의 취임사는 간단했다.
-검찰총장이라는 자리는 국민이 부여한 것, 국민께서 기대하는 검찰, 신뢰하는 검찰이 될 수 있도록…….
김영준 총장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서른 번 이상 사용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국민을 위한 검찰을 목표로 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을 아는 사람은 다르게 해석한다.
김영준 총장의 목표는 그 위에 있다고.
-권력과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검찰로서…….
서진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진은 김영준의 취임사를 한 귀로 흘리며 주변을 살폈다.
자리를 꽉 채운 각 지검의 검사장, 그리고 귀빈.
게다가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가 다 모여 있는 것처럼 카메라가 바글거렸다.
이게 권력이다.
권력의 주변은 언제나 북적거린다.
그게 똥파리인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취임사가 끝나며 김영준은 검찰의 정점에 서게 됐다.
***
취임사가 끝난 후, 다과가 시작됐다.
서진은 조카의 명분으로 참석했고 구석에 서서 조용히 사람들을 살폈다.
다과, 가볍게 생각하면 취임을 끝낸 총장을 축하하는 자리.
하지만 실체는 다르다.
‘권력 게임의 축소판.’
김영준 총장의 곁에 어떤 사람이 얼마나 가깝게 붙어 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에 따라 앞으로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영준 총장의 가까이에 서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자랑한다.
‘바로 옆에는 부산지검장.’
김영준 총장의 옆에는 부산지검장과 반부패강력부장이 서 있었다.
이어서 각 지검의 검사장과 대검의 부장들.
‘저 사람도 김영준 총장의 라인이었나?’
서진은 그들을 지켜보며 김영준 총장의 권력 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의 시선이 전동국 차장검사에게 향했다.
대검 차장검사는 검찰의 2인자.
하지만 전동국 차장검사의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무늬만 2인자일 뿐, 아직 어떤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전동국 차장검사는 서진과 시선을 마주쳤다.
서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끝냈다.
‘전동국 차장검사와 가깝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어.’
서진과 전동국 차장검사의 친분을 다른 사람은 몰라야 한다.
김영준 총장을 견제하려면 어쩔 수 없다.
‘전동국 차장검사와의 인연은 동남지청에서 잠깐 스친 정도로 알려야 해.’
전동국 차장검사도 서진의 생각을 이해했다.
조용히 시선을 피하며 모른 척한다.
그렇게 서진의 시선이 다시 김영준 총장을 향했다.
김영준 총장은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과 악수하고 있었다.
‘슬슬…….’
서진은 다과회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이곳에 더 있을 필요는 없다.
김영준 총장의 권력 지도를 눈으로 확인했고 그 크기 역시 느꼈다.
이곳에 붙어 있을 시간에 지검으로 돌아가 기록물을 보는 게 낫다.
“서진아.”
천천히 문으로 향하던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김영준 총장이 가까이 오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서진이 가까이 다가가자 김영준 총장이 서진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 조카입니다.”
“……!”
서진이 김영준 총장의 조카인 것은 익히 알려진 일.
하지만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은 처음이다.
“워낙 잘생긴 녀석이고 언론에도 가끔 얼굴을 비치니,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
“제가 총장이 된 것도 이 녀석의 도움이 커요.”
서진의 이름과 활약이 각 검사장과 대검의 권력자들에게 정식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이것은 권력자의 모임에 소개됐던 것과는 다르다.
김영준 총장이 약속한 대로 검사 생활에 고속도로가 깔리는 거다.
‘카르텔.’
서진은 카르텔을 떠올렸다.
김영준 총장은 몇 개월 후, 대통령의 교체와 함께 은퇴할 거다.
하지만 그 뒤에도 검찰에 끼치는 영향력은 줄지 않는다.
김영준 총장의 라인 중 한 사람이 총장의 자리를 차지할 테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은퇴해도 마찬가지야.’
다른 검사장, 그리고 대검의 부장, 그들이 줄줄이 라인을 타고 올라 총장의 자리에 앉을 거다.
서진에게도 그 길이 열렸다.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서열과 순서에 의해 총장의 자리를 향해 걸어갈 운명.
계속해서 이어지는 권력의 카르텔.
김영준 총장이 꿈꾸는 세상이다.
“아직 많이 부족한 놈이니 여러분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지금껏 관심을 보이지 않던 검사장들이 서진을 향해 다가왔다.
다정히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인다.
“미제 전문이라고?”
“김서진입니다.”
서진은 예의로 가득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고개 숙인 서진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서진은 웃고 있었다.
‘진짜 고맙네.’
호랑이를 잡으려면 그 굴에 들어가야 한다.
김영준 총장은 그 굴의 입구를 활짝 열어 준 거다.
자신이 사냥감인 것도 모른 채.
서진은 칼을 숨긴 채 선량하게 미소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잠시 후.
다과를 끝내고 총장실로 들어온 김영준 총장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서진이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김영준 총장은 굳은 것처럼 창밖만 바라봤다.
5분, 10분, 15분이 지나도 마찬가지.
어떤 생각에 빠졌는지, 이따금 한숨만 내쉴 뿐이다.
서진은 손목을 비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김영준 총장의 손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지만 계속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아직은 평검사.
지검에 가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작은아버지?”
“아…….”
김영준 총장이 몸을 틀고 뚜벅뚜벅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진의 맞은편에 앉아 식어 버린 차를 입에 대며 입을 열었다.
“저기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어.”
“어떠세요?”
“글쎄, 생각했던 것보다 감흥이 없어. 그것보다는 8개월에서 10개월짜리, 시한부 총장. 그 안에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그 뒤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될 뿐이야.”
그렇게 말했지만 김영준 총장의 눈빛에 고민은 없었다.
이미 계획을 세워 둔 거다.
김영준 총장이 찻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것을 말해 봐.”
“생각해 봤는데, 없어요.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서요.”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었다.
“종로경찰서 서장, 사이비 종교 그리고 저후안, 네 덕에 이 자리에 앉는 게 수월했어. 얻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게 세상의 이치야. 없어도 말해.”
서진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진 척 고개를 갸웃거린 후, 준비했던 말을 조심스레 입에 담았다.
“그럼, 이동영 수사관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이동영?”
김영준 총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몇 번 ‘이동영’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김영준 총장에게는 이미 기억 속에 없는 이름이다.
일개 수사관의 이름 따위를 기억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진은 추가 설명을 전했다.
“제가 춘천에 있을 때, 함께 있던 수사관이에요. 미제 사건을 해결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고 호흡도 괜찮았어요.”
“아!”
김영준 총장은 이제야 이동영 수사관을 떠올렸다.
서준경과 함께했던 수사관.
서준경의 전말을 파고들다가 유배까지 갔던 인물.
하지만 이미 서준경의 사건은 끝났으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다.
게다가 이동영 수사관은 김영준 총장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서진이 그와 함께 있다 해도 마찬가지.
불순한 일이 생기면 다시 내치면 그만이다.
“그래, 그렇게 해 주지. 그리고?”
“조우재 부장검사와 함께 일할 수 있을까요?”
서진은 반부패수사제1부, 인사 시즌과 함께 새로운 부장검사가 왔는데 성격이 더럽기로 유명하다.
눈치를 보느니, 조우재 부장검사의 팀에서 일하고 싶었다.
김영준 총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또?”
“없습니다.”
김영준 총장은 서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서진이 원한 것 중 본인을 위한 욕심은 없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순간 김윤환이 떠올랐다.
만약 김윤환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다면, 곧바로 대검의 주요 자리를 꿰차려 했을 거다.
‘달라도 너무 달라.’
김영준 총장은 씁쓸히 웃으며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렇게 찻그릇을 비운 후 조심스레 입을 연다.
“네 아버지, 그리고 내 형. 난 형이 비리를 저질렀을 때, 눈감았어. 시선을 돌렸고 모른 척했지.”
그 비리, 다 김영준 총장이 부탁했고 지시했던 것이다.
서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준 총장이 계속 말했다.
“형과 내가 우애가 깊다 해도 가끔은 싸우지, 뒤에서 욕도 해. 하지만 그런 일에는 언제나 똘똘 뭉쳐. 가족이기 때문이야.”
“…….”
“윤환이와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서로 싸우고 감정도 상하지만,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해.”
김영준 총장의 말을 들으며 서진의 눈앞에 작은어머니의 얼굴과 김윤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미국으로 도망간 김윤환.
죄를 지어 놓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호시탐탐 아버지의 회사를 노리는 놈.
서진은 그놈이 계속해서 미국에서 즐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서 한국에 들어오기를 원하고 있다.
죄를 지었으면 옥살이를 해야 하는 게 법 앞의 평등이다.
“작은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윤환이 형에 대한 나쁜 감정이 없어요. 만약 형이 저를 좋지 않게 생각해도 소주 한잔하며 털어 버리고 싶어요. 영원히 안 보고 살 사람도 아니고, 그게 가족이잖아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김영준 총장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잠깐이었다.
서진이 몸을 일으켜 총장실을 떠났을 때, 김영준 총장의 눈은 살벌하게 변했다.
그가 담배를 입에 물고 중얼거린다.
“계속 희생을 할 수는 없어.”
그리고 총장실을 나온 서진의 눈빛도 변했다.
작은아버지를 바라보던 친근함은 없다.
그 역시 냉랭하다.
서진이 복도를 걸으며 중얼거렸다.
“당신 생각은 뻔해.”
김영준 총장은 형제는 물론 자신의 가정마저 성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
그는 서진이 권력의 단물에 취해 허우적대기를 원하고 있다.
서진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서진이 자신에게 의지하기를 바란다.
서진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칼을 숨긴 채 그 앞에서 선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조금만 더 웃어라.’
***
총장이 바뀌었고 본격적인 부서 이동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서진은 약속한 대로 반부패수사제2부, 조우재 부장검사의 밑으로 들어갔다.
함께할 수사관은 이동영이다.
이동영 수사관은 서진에게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학생이 된 딸 성아가 홀로 서울에 지내는 게 못내 신경이 쓰였나 보다.
그리고 이동영 수사관이 온 날, 서진은 그를 끌고 서준경일 때 함께 가던 껍데기집으로 향했다.
그날 서진은 참 많은 술을 마셨다.
테이블에는 소주병이 늘어섰고 반가움을 나눴다.
끝에는 이동영 수사관의 딸 성아도 등장했다.
성아의 주량에 이동영 수사관은 깜짝 놀랐지만, 뭐…… 이미 성인이었다.
***
다음 날, 숙취는 없었고 서진과 이동영 수사관은 곧바로 업무에 들어갔다.
“수사관님, 개인적으로 조사하고 싶은 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이동영 수사관이 수첩을 꺼내며 눈에 힘을 줬다.
서진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것 같은 분위기.
어떤 이야기도 끝까지 입을 다물 것 같은 눈빛.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의 그런 성격을 알기에 서울로 올렸다.
지금부터 시작할 수사는 어떤 사람의 귀에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손을 잡은 전동국 차장검사나 김관용 부장검사는 물론 장지혁 검사나 이두진 변호사에게도, 절대.
“제 작은어머니, 그러니까 총장의 아내 엄시영의 모든 것을 조사해 주세요.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 살아온 환경 그리고 지금 하는 모든 행동.”
“네?”
뜬금없는 말이었다.
작은어머니를 조사해 달라니.
이동영 수사관의 얼굴이 황당하게 변했지만 서진의 표정에 농담은 없었다.
이전의 서진이 남긴 단서.
그리고 작은어머니가 보이는 행동.
모든 것의 중심에 작은어머니가 있다.
‘어쩌면 김영준까지 끌어내릴 수도 있어.’
권력자의 몰락 중 하나는 가족의 비리다.
그 아내와 그 아들이 저지른 비리로 권력자는 왕좌에서 끌려 내려와 치욕을 받는다.
서진은 그 타깃으로 작은어머니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