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3)>
도광현이 슬쩍 웃었다.
사기꾼으로 살아온 인생, 이기승의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미 추안영 검사장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없었다.
‘오직 돈, 끝없는 탐욕.’
이기승은 오랜 시간 추안영 검사장의 곁에서 손바닥을 비벼 왔다.
하지만 의리는 여기까지.
도광현은 휴대폰으로 계좌를 열어 이기승의 앞에 밀었다.
“확인해 보시죠.”
이기승이 마른침을 삼켰다.
50억이란 돈이 찍혀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이기승의 눈동자가 흔들릴 때, 도광현이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원하는 모양으로 건네드리죠. 스위스 계좌? 비트 코인? 아니면 사과 박스? 뭐든 탈 날 일은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과일이 좋겠네요.”
“오가는 현금 속에 정이 싹트는 법이죠.”
이기승의 시선이 도광현을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작은 비리면 된다고 했습니까?”
“떨어지는 낙엽 정도면 됩니다.”
도광현이 사람 좋은 미소를 그렸지만 이기승의 시선은 다시 휴대폰에 처박혔다.
50억, 검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인생을 바꿀 기회는 흔치 않다.
이기승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죠.”
***
잠시 후, 이기승이 떠났다.
그런데 도광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서진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문이 드르륵 열리며 서진이 들어왔다.
“고생했어.”
“제가 실패한 적이 있나요? 하하하.”
넉살 좋게 웃는 도광현을 보며 서진이 마주 앉았다.
그리고 고생한 도광현을 향해 술을 따랐다.
“앞으로도 계속 성공해야 해. 한 번만 삐끗해도 끝이야.”
“넵!”
도광현이 기분 좋게 술을 마신 후, 서진의 잔에 술을 채웠다.
“검사님도 한잔하셔야죠?”
이제 이기승은 준비됐다.
김영준 검사장의 계획만 망가뜨리면 된다.
대검의 차장검사로 전동국을 집어넣어 견제하는 것, 그게 서진의 계획이다.
***
청문회 당일.
김영준 검사장은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 눈빛이 건조하다.
총장 자리가 눈앞에 있지만 그 눈빛에 기쁨과 즐거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반 왔어.’
김영준 검사장에게 검찰총장이라는 자리는 그저 정거장일 뿐, 목표는 그 위에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점.’
그게 아니면 지금껏 발악하듯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무할 것 같다.
김영준 검사장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 밖을 바라봤다.
날이 좋다.
3월은 봄이 다가오는 냄새가 물씬 나는 계절이다.
김영준 검사장은 창밖을 보며 잠시 옛 기억을 떠올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날.
가진 돈은 얼마 안 되는 토지 보상금이 전부였다.
가난한 형제는 일을 해야만 했다.
매일같이 막노동.
던져지는 돈으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때 형이 김영준 검사장을 앉혀 놓고 했던 이야기가 있다.
“넌 머리가 좋으니까 공부나 해. 나머지는 형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김영준 검사장은 형의 말을 따랐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한국 최고의 대학교, 그것도 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형 때문이다.
공사판을 전전했던 형은 매일같이 끙끙 앓았다.
오직 김영준, 본인을 위해.
김영준 검사장은 형의 몸에 스며든 멍과 굳은살이 가슴 아팠다.
그 기억을 떠올리던 김영준 검사장은 혀를 끌끌 찼다.
‘멍청했어.’
멍청했던 것은 형이 아니다.
김영준 검사장이었다.
형의 고생이 안쓰러워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거다.
입술을 씹던 김영준 검사장의 머릿속에 인생이 변했던 그날이 스쳤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큰손의 딸.
당시만 해도 김영준 검사장은 그녀에 대한 존재조차 몰랐다.
학과가 달랐으며 사는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여자에게 관심을 둘 시간에 공부를 해야 했다.
그게 형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라 생각해서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손의 딸, 그 집안의 사람들이 김영준 검사장을 찾아왔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회장님은 지금 딸의 남자 친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네가 그 딸의 남자가 되라.
부모도 없고 돈도 없지만 머리는 좋은 법학과 학생.
항상 도서관에 처박힌 공부벌레, 그들의 시선에 김영준 검사장은 최고의 데릴사위였다.
-돈 걱정은 없게 해 주지.
김영준 검사장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돈이 있으면 형이 더 이상 고생을 하지 않을 것이란 멍청한 생각.
‘내가 희생을 한 거야.’
김영준 검사장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일이 지금도 발목을 잡고 있다.
그때 묶인 낙인은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제는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다.
똑똑똑.
노크 소리에 김영준 검사장은 과거의 상념을 떨쳤다.
시선을 틀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 가실 시간입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준비는 잘되셨습니까?”
“준비는 무슨, 질문이 오면 답하면 되는 게 전부인데.”
청문회라는 것은 국회의원들에게 망신을 당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에게 부담은 없었다.
이미 국회의원의 입에 돈을 쑤셔 박았고 그 대가로 그들의 질문과 원하는 답변을 얻었다.
앵무새처럼 답변을 하면 그다음은 총장이다.
“가지.”
김영준 검사장이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복도에 검사와 수사관 그리고 직원 들이 쭉 도열해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이 동시에 허리를 굽히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축하드립니다!”
김영준 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들의 인사에 답변했다.
그리고 허리를 굽힌 그들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러다가 한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에 서진이 보였다.
서진 역시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정함이 느껴진다.
서진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네 덕이야.”
그런데 서진은 허리를 굽히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서진을 내려다보는 김영준 검사장의 눈빛.
그 눈빛이 묘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도 서진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서진은 빙긋이 미소 짓고 있었다.
***
-정치권과 무관한 공정한 검찰, 어느 곳에도 기울지 않을 검찰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의 청문회가 이어지고 있는 시각.
법무부 장관 윤설화는 텔레비전을 통해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윤설화 장관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안 돼.’
청문회는 일사천리다.
국회의원들이 쉬지 않고 질문했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이대로라면…….’
김영준 검사장은 어떤 흠집도 없이 총장의 자리에 앉게 된다.
대검찰청의 주요 인물이 모두 김영준 검사장의 뜻대로 채워질 거다.
‘막고 싶어도 명분이 없어.’
최근 중앙지검은 사이비 종교부터 저후안이라는 사채업자까지 잡아넣었다.
그 덕에 김영준 검사장을 향한 국민의 지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그리고 여론은 말한다.
김영준 검사장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라고.
그 여론을 법무부 장관이 모른 척하기는 어려웠다.
‘하…….’
윤설화 장관은 한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을 김영준 검사장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정말 꼴 보기 싫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비서가 안으로 들어와 입을 열었다.
“장관님? 동부지검의 부장검사가 급히 만나 뵙고 싶다고…….”
윤설화 장관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냉랭히 말했다.
“없다고 해.”
“장관님께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필요?”
필요하다는 말, 그제야 윤설화 장관이 고개를 틀었다.
비서의 뒤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동부지검 부장검사 김관용입니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그 순간 김관용 부장검사는 서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법무부 장관을 만나 주세요. 법무부 장관은 판사 시절부터 검사를 한 단계 아래로 내려다보던 사람이에요. 선민의식을 갖고 있으며 자신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런 사람이 저희 작은아버지와 어울리기는 힘들어요. 작은아버지 역시 굽히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두 사람은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싸울 거예요.”
서진은 계속 말했다.
두 사람은 물과 기름.
절대 섞이지 않은 거라고.
“김영준 검사장의 차장검사 인선을 방해한다고 하면, 그리고 그 명분을 주면 승낙할 거예요. 그리고 전동국 검사장님을 차장검사에 올리겠죠.”
검사의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
윤설화 장관의 손가락으로 결정되는 거다.
“지금은 김영준 검사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기 때문에 조용히 있지만 명분이 생기는 순간 언제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게 분명해요.”
김관용 부장검사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그리고 서진이 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했다.
“그 명분, 청문회 날에 터뜨릴 겁니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윤설화 장관을 향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윤설화 장관이 눈을 가늘게 뜨고 김관용 부장검사를 바라봤다.
***
한편, 국회.
청문회가 끝났다.
짜고 친 고스톱, 예상대로 어떤 문제도 없었다.
이제 대검으로 이사만 가면 된다.
차에 오른 김영준 검사장이 입을 열었다.
“과천으로 가지.”
“네.”
기사가 핸들을 틀었다.
과천, 그곳에 법무부가 있다.
법무부 장관은 그 안에서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었을 거다.
‘이제…….’
김영준 검사장은 자신의 사람으로 대검을 채워야 총장이라는 막강한 권한과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의 기세를 꺾은 후 자신을 위한 완벽한 검찰을 떠올렸다.
***
“대통령님께서도 정치권과 재계의 비리에 힘써 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은 법무부 장관 윤설화와 마주 앉아 있었다.
윤설화 장관이 찻잔을 손에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래서, 대검의 인사는 제게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장관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손발을 맞춰 온 사람들과 행동하고 싶습니다.”
윤설화 장관은 이번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내려 뒀다.
“그러셔야죠. 그런데 하나만 여쭤볼게요. 청문회에서 답하셨던 대로 정말 공정하게 수사할 건가요?”
“네, 그럴 겁니다.”
“그래요? 저는 김영준 검사장님의 야망이 크다고 들었거든요. 총장을 지나 그다음으로 가려면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고, 국민의 지지는 사실 전부 얻을 필요가 없잖아요?”
진영 논리.
어차피 반대편은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같은 편이라 생각되면 그게 인간쓰레기라 해도 뽑아 준다.
“그래서 한쪽만 공격하지 않을까 우려되네요.”
김영준 검사장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느릿하니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그런 야망은 없습니다. 오직 제 사명에 열중할 뿐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야망이 있다고 해도 공정할 겁니다. 그리고 한쪽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요?”
“……!”
“우리 국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진영 논리 외에 또 하나의 답답함을 가지고 있죠.”
“……?”
“제발 썩은 것을 도려냈으면 하는 희망. 그 희망, 제가 될 생각입니다.”
순간, 윤설화 장관은 섬뜩함을 느꼈다.
김영준 검사장은 여야를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휘어잡으려 한다.
그것은 자칫 독재다.
윤설화 장관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할 때, 김영준 검사장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럼 제 인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차장검사에…….”
그때 문이 쾅 열리며 비서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비서가 윤설화 장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동시에 윤설화 장관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기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서부지검 검사장이 술집 여종업원을 폭행했다는 소식입니다. 영등포의 한 룸살롱, 신원을 밝히지 않은 관계자는 폭행 영상을 제보했고…….
김영준 검사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부지검 검사장은 대검 차장검사로 생각했던 놈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폭행이라니.
-서부지검 검사장은 현재 어떤 연락도 받지 않고 있으며…….
윤설화 장관이 김영준 검사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차장검사요? 그래, 누굴 생각하시죠?”
“……!”
김영준 검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꺼냈던 종이를 꽉 쥐어 구길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윤설화 장관이 입을 열었다.
“생각해 둔 사람이 없으면 제가 추천해도 될까요?”
“…….”
“동부지검 검사장 전동국. 검사장님의 파트너로 꽤 괜찮을 것 같은데요.”
***
그 시각, 서진은 중앙지검의 야외 휴게실에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쯤…….’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계획의 뒤에 서진이 숨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거다.
서진이 캔을 우그러뜨리며 쓰레기통에 툭 버렸다.
‘아직 당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