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1)>
작은어머니의 표정은 서진의 예상과 달랐다.
서진이 기대했던 것은 작은어머니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는 모습.
목전까지 온 칼날을 느끼며 초조해하는 표정.
하지만 작은어머니에게 갈등이나 초조 따위의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웃고 있다.
서진 따위는 언제든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서진은 인지도 있는 검사가 되었지만 손에 쥔 권력은 하찮다.
작은어머니가 보는 서진은 그저 일개 검사.
그 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서진은 달랐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작은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셨어요?”
작은어머니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서늘한 목소리로 느릿하게 입을 연다.
“고생했다며?”
“아, 네.”
서진은 별일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며 작은어머니의 곁을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서진의 귀에 작은어머니의 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말했지? 사채업자, 잘 알고 있다고. 선 넘지 마. 지금,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어.”
서진이 발걸음을 멈추며 천천히 작은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틀었다.
“넘으면요?”
“또 다치겠지. 또 기억을 잃고. 또 죽을지도 몰라. 이 작은엄마가 너무 걱정되네. 우리 귀여운 조카, 아프면 어떡하나?”
작은어머니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보며 서진은 확실히 느꼈다.
원래의 서진, 그 죽음에도 작은어머니가 확실히 얽혀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서진은 이번에도 감정을 숨겼다.
“충고, 감사합니다. 새겨들을게요.”
서진은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몸을 틀었다.
거실로 향하는 중 작은어머니의 시선이 뒤통수에 박힌 것처럼 따끔거렸다.
*김영준 검사장이 가족 모임을 연 이유는 총장으로 가는 길 때문이었다.
“형, 자금 좀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
김영준 검사장은 총장의 길에 발을 올렸다.
하지만 내정이 확실시되었다 해도 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언제든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작은 돌부리 하나에도 뒤집히는 게 총장이라는 자리다.
그래서 김영준 검사장은 돈이 필요했다.
반대편에 선 언론과 국회의원의 마음을 녹일 돈과 마지막까지 대통령의 귀에 김영준이라는 이름을 재잘거릴 청와대 실무진에게 줄 보답.
돈은 귀신도 부리는 것.
돈이 뿌려진 길은 꽃길과 같다.
그것은 아버지도 알고 있었고.
“그럼, 총장은 확실시되는 거지?”
“순조로울 거야. 서진이가 잘해 준 덕에 나와 비견될 사람은 없어. 청와대 쪽에서도 나를 말 잘 듣는 개로 생각하고 있고.”
대통령의 마지막은 검찰과의 싸움이다.
이 시기가 되면 검찰은 대통령의 친인척부터 칼질을 시작한다.
힘 빠진 대통령을 통해 검찰의 힘을 보여 주는 거다.
그래서 대통령은 말 잘 듣는 사람을 총장에 올리려 한다.
서진은 아버지와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생각에 빠졌다.
‘김영준 검사장이 총장에 오르는 것은 양날의 검이야.’
서진은 총장이 된 김영준 검사장을 등에 업고 원하는 길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언젠가 꺾어야 할 상대.
가만히 놔둬서는 반드시 위협이 될 사람.
지금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은 권력에 꽂혀 있다.
총장 그리고 그 너머까지 바라본다.
하지만 권력을 손에 쥔다고 탐욕이 끝날까?
‘다음은 돈을 탐하게 될 거야.’
당연히 아버지와 재정건설을 노릴 거다.
김영준 검사장은 그동안 재정건설의 성장을 지켜봤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미 재정건설에 대한 압수 수색까지 지시했던 경험이 있다.
형의 회사를 건드는 것,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일도 아니다.
‘견제할 사람이 필요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게 될 김영준 검사장.
감시하고 견제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진은 마땅한 인물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전동국.’
바로 동남군의 지청장이었던 전동국, 그는 지금 서울동부지검의 검사장.
전동국 검사장을 이용하면, 뭔가 길이 보일 것 같다.
생각을 마친 서진의 시선이 김영준 검사장을 향했다.
눈을 마주친 김영준 검사장이 슬쩍 웃으며 와인 잔을 들었다.
“한잔해야지.”
서진이 잔을 들어 김영준 검사장의 잔에 살짝 건배했다.
그리고 서진은 또 생각했다.
김영준 검사장이 가진 권력, 그중에서도 철저히 단물만 빼먹겠다고.
***
“갑자기 웬 소고기야? 그것도 밀실?”
소고기 전문점이었다.
그곳에 서울동부지검 검사장 전동국과 김관용 부장검사가 들어왔다.
전동국 그리고 김관용, 동남군에 있던 사람이며 유배를 당했던 칼잡이들.
서진이 춘천으로 이동할 때, 이 두 사람은 동부지검으로 발령을 받았었다.
전동국 검사장이 김관영 부장검사의 맞은편에 자리하며 단호히 말했다.
“돈은 안 빌려준다.”
“아이고, 돈 빌려 달라는 놈이 소고기를 사겠습니까? 그럴 땐 불쌍한 척하면서 깡소주 들고 검사장실에 찾아가겠죠.”
“그럼 뭔데? 네가 이유 없이 소고기를 살 놈이 아니잖아? 설마, 사고 쳤냐? 국회의원? 장관?”
김관용 부장검사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설마…… 그 위? 야, 그건 아니야. 멈춰. 나도 커버 못 쳐.”
“하…… 제가 그렇게 사고 치는 놈으로 보이세요?”
“동남군에 있던 놈들은 다 사회 부적응자야, 새끼들이 순응하며 살 줄을 몰라요.”
김관용 부장검사는 “그건 검사장님도 마찬가지잖아요?”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대신 넥타이를 풀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진짜 문제 있는 놈이 있습니다.”
“문제?”
“네.”
전동국 검사장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문제 있다고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거다.
“……누군데?”
김관용 부장검사가 손목을 비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올 시간이 다 됐는데…….”
동시에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렸다.
전동국 검사장과 김관용 부장검사의 시선이 열린 문으로 틀어졌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놈입니다.”
문 앞에 서진이 서 있었다.
술잔을 들던 전동국 검사장의 행동이 뚝 멎었다.
그리고 반가운 미소가 걸렸다.
“김서진?”
서진이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이제야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울에 왔으면 재깍재깍 인사했어야지, 빠져 가지고.”
*술이 한 잔, 두 잔 돌았다.
동남군의 추억을 이야기했고 시답잖은 우스갯소리로 반가움을 나눴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전동국 검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쩐 일이야?”
서진이 서울에 온 지 꽤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동안 안부 전화를 한 것이 전부.
평검사가 다른 지검의 검사장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갑자기 찾아온 이유가 있을 거다.
전동국 검사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서진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유가 있으니까 찾아왔겠지?”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동국 검사장의 얼굴을 살폈다.
‘전동국…….’
여당 대표의 아들을 교도소에 집어넣고 정치권을 상대로 칼을 휘둘렀던 사람.
그 대가로 동남군으로 유배되었다가 서울로 복귀했다.
지금은 때를 기다리며, 정치권 앞에서 몸을 바짝 낮춘 상태.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에 대한 견제 인물로 전동국 검사장을 선택했다.
“건방지게 들리실 수도 있는데요.”
서진은 뒷말을 끌었다.
그러자 전동국 검사장이 괜찮다는 듯 웃었다.
“괜찮아, 넌 원래 건방졌어.”
“네?”
“내 앞에서 서울행 티켓을 찢었던 것, 기억 안 나? 살면서, 그런 놈은 처음 봤어. 하하하.”
동남군에 있을 때, 전동국 검사장이 서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었다.
함께 서울로 가자고.
하지만 당시 서진은 계획이 있었고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서진이 고개를 숙이자 전동국 검사장이 손을 저었다.
“됐어. 하고 싶은 말이나 해.”
전동국 검사장은 서진이 어떤 말을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며 느긋하게 술잔을 입에 댔다.
그런데.
“대검 차장검사에 오르셨으면 합니다.”
“…….”
전동국 검사장의 행동이 또 멎었다.
김관용 부장검사도 마찬가지, 큰 눈을 굴리며 ‘이 새끼가 미쳤나?’ 하는 눈빛으로 멀뚱멀뚱 서진을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조용히 있던 전동국 검사장이 술을 쭉 들이켰다.
그리고 잔을 탁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김영준이 보냈나?”
“네?”
갑자기 김영준 검사장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서진이 눈을 깜빡이자 전동국 검사장이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김영준이 총장에 내정될 것이란 소문은 들었어.”
“…….”
“날 차장검사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전동국 검사장은 생각했다.
김영준 검사장이 차장검사의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만지작거릴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자네를 보내 날 떠보라 한 것인가?”
전동국 검사장은 김영준 검사장과 반대편에 선 사람.
만약 전동국 검사장이 차장검사가 되어 김영준 검사장을 보좌하면.
“반대측에 선 검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만약 그런 거라면 거절이야.”
전동국 검사장은 정치권과 끈이 닿은 정치 검사는 도려내야 할 고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준 검사장이다.
“맞나?”
전동국 검사장의 눈빛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뒤에 있지 않으면, 평검사가 찾아와 차장검사 어쩌고 내뱉는 것부터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김영준 검사장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네.’
김영준 검사장은 자신의 아래를 보지 않는다.
밑에서 들려오는 비판은 철저히 무시한다.
어린아이의 칭얼거림과 같다고 여기며 언제든 비틀어 버릴 자신이 있어서다.
‘그런 사람이 일반 검사들의 지지를 생각해서 반대 편 인물을 차장검사에 올린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김영준 검사장은 잔혹한 권력자만이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대검 인선은 자신의 인물로 채울 거다.
완벽한 힘을 얻어 검사들에게 두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서진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기로 했다.
“제 작은아버지의 의사와는 무관합니다. 제 생각입니다.”
“……?”
전동국 검사장의 입꼬리가 비틀어졌고 서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냉랭해졌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작은아버지를 견제할 사람이 있었으면 합니다.”
전동국 검사장도 김영준 검사장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의 조카.
섣불리 그 말을 믿기는 어려웠지만 집안 사정이라는 서진의 설명에 흔쾌히 넘어갔다.
‘하지만…….’
서진은 평검사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차장과 총장이란 단어를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이건 건방짐을 넘어 천둥벌거숭이 같은 짓.
전동국 검사장은 서진의 철없는 소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했다.
“계속해 봐.”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될수록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김관용 부장검사는 좌불안석, 서진에게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내며 애꿎은 물만 마셔 댔다.
하지만 서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익히 예상했다.
그리고 전동국 검사장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할 때, 서진이 가방을 열어 두툼한 노트를 꺼냈다.
“이번에 저후안이라는 사채업자가 잡힌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
“놈들은 우리나라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었고 성 상납을 벌였습니다.”
전동국 검사장이 노트를 펼쳤다.
안나 루를 통해 얻은 장부.
명단과 시각, 금액과 성 상납에 관한 것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 숫자가 참혹할 만큼 많다.
이런 사람들이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그 사람들을 통하면 대검까지 가시는 게 수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탁하라?”
전동국 검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치권과의 결탁.
다시 말하지만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다.
“결탁이 아니라 이용하는 거죠.”
“김서진!”
전동국 검사장의 주먹이 콱 쥐였다.
곧 폭력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냉기가 공간을 채웠다.
하지만 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라고 합니다.”
힘없는 정의, 그것은 전생의 자신 서준경에 대한 이야기다.
깨끗함을 부르짖었지만 결국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한 채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당해야 했다.
“더러운 놈들과 싸우는데, 내 몸 깨끗하기를 바라는 것이 보신 정치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정정당당하게 싸웠지만, 저놈들은 치사했어. 정정당당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야.”라는 말은 패배자의 비겁한 변명이다.
싸움은 스포츠가 아니다.
그곳에 룰은 없다.
상대가 똥통에서 기다리면 망설임 없이 들어가야 한다.
그 똥통은 대검찰청.
“상대가 총칼을 들고 있는데, 두 주먹 쥐고 상대하는 것은 만용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검으로 가 주십시오.”
서진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전동국 검사장은 대답이 없었다.
조용히 뇌물 장부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지금껏 흔들림 없던 눈동자가 떨려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