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을 다물어도. -(3) >
김재훈 경정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디알쓰리 출판사, 김재훈 경정도 잘 알고 있는 곳.
그곳에서 용돈을 받았고 건물을 구입했으며 그 대가로 뒤를 봐줬다.
말 그대로 결탁.
결과는 처참할 예정이다.
“씨이발.”
김재훈 경정이 입술을 씹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평소 서글서글하던 표정은 흔적도 없다.
그 상황에도 화면 속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가고 있다.
-디알쓰리 출판사 직원들은 표현의자유를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김서진 검사는 비리를 저지른 곳과 타협은 없다며······.
화면에는 강제 진입을 시도하는 수사관의 모습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부수고 싸우고 말리고, 전쟁 통 같은 상황.
그런데 화면의 끝자락에 서진이 잡혔다.
그들이 싸우든 말든 느긋하게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모습.
-김서진 검사는 출판사 회계장부와 세무서 신고자료, CCTV 영상, 출판사 간부들의 휴대폰 등을 확보했다고······.
김재훈 경정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줬다.
휴대폰에 자신의 연락처가 담겨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재훈 경정의 눈동자가 초조하게 흔들릴 때, 아나운서의 긴박한 목소리가 끝나 가고 있었다.
-디알쓰리 출판사의 세무 담당 회계 법인과 관할 세무서도 압수 수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김재훈 경정은 의문을 가졌다.
‘갑자기 왜?’
출판사에 이어 회계 법인과 관할 세무서의 압수 수색.
검찰의 저런 행동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뿌리를 뽑으려 하거나.
-국민에게 열심히 수사한다는 것을 보여 주거나.
그리고 지금 상황은 당연히 전자, 뿌리를 뽑아내려는 거다.
출판사와 관련된 게이트가 있었다면 ‘검찰의 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쇼가 아니다.
어떤 전조도 없이 정말 뜬금없이 출판사를 타깃으로 잡고 쑤시는 중.
게다가.
‘검찰이 경찰에게 알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한 이유가 뭐지?’
여기까지 생각한 김재훈 경정은 마른침을 삼켰고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검찰이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무차별적인 압수 수색을 했다는 것은······.
‘젠장.’
김재훈 경정은 서진의 칼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느꼈다.
‘······나를 노리고 있어.’
김재훈 경정이 재빨리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안나 루에게 연락하기 위해서다.
김재훈 경정은 안나 루가 잠수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안나 루의 인맥이라면 서진을 막을 수 있는 고위급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김재훈 경정이 다급히 주소록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순댓국 하나 주세요. 소주 하나 먼저 주시고요.”
앞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김재훈 경정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그리고 눈을 찌푸린 채 천천히 앞을 바라봤다.
“······!”
서진이 앉아 있었다.
서진은 가게 주인에게 소주병을 넘겨받은 후 어떤 일도 없던 것처럼, 김재훈 경정을 향해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출판사의 세무 업무를 담당한 세무사가 강남구에 있거든요. 압수 수색하기 전에 밥은 먹어야죠.”
“······.”
“여기 계시다는 것 듣고 왔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알고 왔냐는 말은 묻지 마시고. 이유는 아시죠? 구속영장 바로 집어넣었어요. 아, 같은 경찰에게 취조받는 치욕은 없을 겁니다.”
“······.”
“밥 먹고 들어갈 테니까, 한잔 받으세요.”
서진이 술병을 기울이자 술이 빈 잔을 쪼르르 채웠다.
김재훈 경정은 어떤 말도 입에 담지 못했다.
그저 굳은 채 채워지는 술잔을 바라볼 뿐이었다.
김재훈 경장은 술이 채워지는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그 짧은 시간에 인생을 되돌아보는 중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뭐가 문제였을까.
모든 것은 탐욕이 시작이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욕심과 그 욕심을 파고든 놈들.
던져진 돈을 외면할 수 없었던 자신.
그리고 모든 술잔이 찰랑일 때, 서진이 술병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경찰이잖아요. 깨끗하게 비우고 갑시다.”
서진의 말과 동시에 김재훈 경정은 술잔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술잔을 탁 내려 두며 결심했다.
어떤 것도 말하지 않기로.
묵비권을 행사하며 놈들의 조직을 지키기로.
그래야 몇 년 살고 나왔을 때,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탐욕은 끝나지 않았다.
감옥에 가는 것은 순간이고 인생은 길다.
“그래요. 갑시다.”
* * *
“솔직히 여쭤보고 싶습니다. 출판사에서 뇌물을 받은 사람, 정치권에 몇이나 달려 있습니까?”
“······.”
“잡히는 것은 나 혼자, 그 사람들은 털끝도 건들지 못하겠죠?”
중앙지검 취조실이었다.
김재훈 경장은 시종일관 억울한 태도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고 있다.
“세상이 다 그렇잖아요? 수십억 받은 놈은 발 뻗고 자고! 나처럼 몇 억 받은 놈은 구치소의 빈방을 찾겠죠.”
“······.”
“정치권을 건들면 앞일이 걱정되니까, 만만한 경찰 하나 잡아다가 끝내려는 것 맞잖아요?”
징징거리는 목소리를 더 듣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수사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고. 안나 루라고 알고 있죠?”
“모릅니다.”
“출판사의 대표는 바지 사장이고 안나 루라는 불법체류자 여성이 실질적인 사장이잖아요? 오랜 시간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는데 모른다고요?”
“네, 몰라요.”
“외국인이, 그것도 불법체류자가 우리나라 국민의 피를 빨아먹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
김재훈 경정이 어이없다는 듯 낄낄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검사님, 계속 말씀드렸어요.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변호사가 오면, 그쪽하고 이야기하세요.”
서진은 김재훈 경정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꽉 다문 입과 굳은 눈빛은 모든 것을 떠안고 교도소에 가려 한다.
하지만 서진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상관없어.’
김재훈 경정이 입을 열지 않아도 상관없다.
김재훈 경정은 자신 스스로가 꽤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김재훈 경정은 놈들의 끄나풀일 뿐.
그리고 서진에게는 안나 루를 코너로 몰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지금의 취조 역시 놈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쇼다.
10시간이 넘는 취조.
놈들은 이 안에서 어떤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해 미칠 게 분명하다.
‘그러면······.’
곧 들어올 변호사.
그 변호사 역시 놈들과 한배를 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잠시 후, 변호사가 들어왔다.
테이블에 놓인 명함.
JG법률사무소의 김성원 변호사.
서진이 명함을 슥 보며 장지혁 검사에게 몰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사람과 이 법률 사무소가 그동안 맡은 사건을 확인해 주세요.
장지혁은 함께 사채업자를 조사하기로 손잡은 경찰대 출신의 검사.
서진의 뒤에서 그림자로 활동하며 놈들의 덜미를 잡을 사람이다.
서진이 휴대폰을 의자에 내려 두며 변호사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이어질 서진의 목소리는 변호사를 통해 고스란히 놈들에게 전해질 거다.
그래서 서진은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해야 놈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느낄까, 꼬리를 감추는 것만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습을 드러내고 이빨을 드러내게 할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다는 물음표의 이어짐.
그렇게 긴 시간의 취조가 끝난 후 김재훈 경정은 구치소로 이동했다.
서진이 가방을 챙기는 변호사를 향해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던졌다.
“회장이 누굽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변호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네?”
지난번, 사이코메트리에서 봤던 상황.
배달원으로 가장해서 들어온 남자가 말했었다.
-사장님이 회장님께는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어. 무슨 뜻인지 알지?
서진은 안나 루와 그 남자가 했던 말.
당시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직접 듣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말을 그냥 지나가는 듯,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대단한 것 같아서요. 그 여자 하나 빼내려고 철가방과 택배 회사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아, 모르시나 보네요. 그냥 못 들은 말로 해 주세요.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지금 서진의 말이 놈들의 귀에 들어가면, 놈들은 분명 내부 고발자가 있다고 판단할 거다.
놈들은 연결 고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점조직.
그렇기에 정점으로 올라갈수록 강한 이득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
모두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 약한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리면 놈들은 무너진다.
그리고 서진은 변호사의 눈이 순간 반짝이는 것을 봤다.
* * *
그 시각.
커튼으로 가려진 어두운 방.
한 남자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계속 고생해 주세요.”
남자는 통화를 종료했다.
놈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나 루······.’
남자가 통화한 상대는 방금 취조실에 있던 변호사다.
그리고 변호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서진이 안나 루에게 직접 듣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단지 우리를 끌어내려는 수작인 줄 알았는데······.’
남자는 며칠 전, 안나 루가 서진과 스치는 CCTV 영상을 봤다.
서진이 그냥 놓아주기에 꼬리를 밟으려는 하찮은 전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남자가 전화기를 들었다.
“청소부 하나 불러 봐. 치울 것은 안나 루. 아니, 칼은 세련되지 못해. 세련된 방식으로 끝내라고 해. 확실하지 않아도 괜찮아. 경고는 되겠지, 그 검사 놈한테도.”
남자가 전화기를 내려 뒀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을 살짝 열어젖히자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자가 야경을 내려다보며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사람의 일생에는 불꽃의 시기와 잿더미의 시기가 있다지? 오늘 너는 잿더미가 될까? 아니면, 계속 불꽃의 시기를 살아갈까?”
* * *
“신기하네요.”
서진은 장지혁 검사와 마주 앉아 있었다.
장지혁 검사는 변호사의 이력을 가져왔고 서진은 황당한 듯 고개를 저었다.
변호사가 지금껏 맡은 사건의 대부분은 지역 자영업자의 분쟁 또는 조직폭력배다.
장지혁 검사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렇지? 잘못하면 인생이 쫑 날 수도 있는 사건인데, 이해할 수 없는 변호사를 썼어. 그래서 JG법률사무소가 어떤 곳인지도 찾아봤거든? 그런데, 큰 실적도 없는 곳이야. 이런 사건에 전문도 아니고.”
경정급 경찰이면 알고 지내는 변호사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말 한마디로 인생이 기울어지는 순간에 듣도 보도 못한 곳에 의뢰를 한다니.
보통의 사람들도 최대한 좋은 변호사를 찾기 위해 발 벋고 뛰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변호사가 놈들의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럼······.’
서진이 한 말이 정말 놈들의 귀에 전해졌다는 거다.
서진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장지혁 검사를 향했다.
“이 사무소에 있는 변호사들의 재산 형성 과정 좀 조사해 주세요.”
“냄새가 나지?”
“네.”
“오케이. 그럼, 난 이걸 확인할게. 넌?”
“저는 그때 말씀드렸던 안나 루라는 여자의 뒤를 계속 밟을게요.”
“뭐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장지혁 검사가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중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안나 루를 지켜보고 있던 경호원이다.
안나 루의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할 때는 꽤 힘들어 보였는데, 최근에는 재미를 붙였다며 즐거워한다.
안나 루가 남자를 만나며 이곳저곳 활동하는 사진을 찍는 게 꼭 심부름센터 같다면서.
이번 연락도 안나 루가 어떤 남자와 어느 곳을 갔는지에 대한 보고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김서진입······.”
-부, 불이 났습니다!
“······네?”
경호원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이어졌다.
-그 여자가 통화를 하며 급하게 나왔어요! 그리고 주택 밀집 지역에 있는 2층 노래방에 들어갔는데, 불이 났어요. 그 여자는 못 빠져나왔고요! 소방차는 아직······. 아, 지금 왔어요!
*
-······3층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건물 2층 노래방에서 발생한 화재, 이 업소는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해 왔으며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리포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체에 우레탄폼으로 시공돼 화재 확산이 빨랐고 불이 처음 난 곳이나 원인은 더 조사를 해 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합선으로 인한 화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진이 도착했을 때, 건물은 이미 잿더미였다.
당혹스러운 눈으로 건물을 바라보고 있던 서진의 옆으로 경호원이 섰다.
“안나 루는요?”
“······일단 살았습니다. 정말 다행히, 극적으로요.”
경호원이 복잡한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소방관이 의식을 잃은 그녀를 엎고 나왔다는 말과 함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서진이 치아를 꽉 다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직 연기가 가시지 않은 건물을 바라봤다.
‘도대체······.’
화재의 발생 원인을 추정하면 전기 합선.
안나 루가 들어가자 뜬금없이 불이 났다.
뭔가 연관되지 않는다.
‘안나 루는 놈들의 처단 대상 중 하나. 정말 합선일까? 아니, 방화? 그런데, 굳이 방화를 저지를 이유가 있나?’
안나 루의 목숨을 확실히 끊으려 했다면 이런 식의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았을 거다.
서진이 안나 루를 감시하며 예상하던 대로 깡패 몇 명을 보내면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연일까?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서진은 화재 연장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을 밀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어깨가 부딪칠 때, 뜬금없이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
술에 취한 척 연기하는 놈이 카운터에 섰다.
그리고 오만 원권을 내려 두며 주인에게 입을 연다.
“담배 세 갑 좀 사다 주세요. 나머지는 가지고요.”
주인은 신나서 떠났다.
그런데 주인이 사라지자 담배를 사 달라고 했던 놈이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놈이 담배를 입에 물고 주변을 살피며 낄낄 웃었다.
“CCTV도 없고, 들킬 일은 절대 없고. 불 지르기 좋은 날이네.”
*
그렇게 잠깐의 사이코메트리가 끝났다.
서진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틀어졌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구경을 하는 놈.
사이코메트리에서 봤던 그놈이다.
서진이 놈의 어깨를 잡았다.
“어이?”
< 입을 다물어도.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