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39화 (139/250)

< 입을 다물어도. -(2) >

“어, 어떻게 여기를······.”

안나 루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서진은 이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안나 루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조직에서도 극소수.

누군가 검찰의 프락치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안나 루의 머릿속에는 배신할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이 사라졌다 떠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서진이 창백해진 안나 루의 얼굴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해?”

“누, 누가 알려 줬지?”

“왜 그래? 네가 알려 줬잖아.”

“······뭐?”

“너라고.”

사이코메트리.

철가방을 들고 왔던 배달원이 건네줬던 쪽지.

그곳엔 주소가 적혀 있었기에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안나 루가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을 알 수는 없다.

안나 루는 서진이 자신을 농락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눈동자를 다급히 움직여 도망칠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안나 루의 눈동자가 비상구에서 멎었다.

‘아니야.’

안나 루는 하이힐을 신고 있다.

벗고 달린다 해도 남자의 달리기를 이기기는 어렵다.

게다가 검사가 혼자 왔을 리도 없다.

분명 계단 아래에 형사들이 배치되어 있을 거다.

안나 루는 가방에 든 칼을 떠올렸다.

찌르고 도망갈 계획을 세워 봤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형사들이 달려와 자신을 제압할 테고 그 결과 형량만 늘어날 거다.

‘······끝인가?’

안나 루는 잠시 눈을 감았다.

감긴 눈에서 암담한 미래가 펼쳐졌다.

“하······.”

안나 루가 한숨을 내뱉더니 엷게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가 편안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가죠.”

“가자고?”

“네.”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닫히고 있었다.

서진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꾹 눌렀다.

닫히던 문이 다시 스르륵 열렸다.

안나 루는 생각했다.

이제 서진의 손에 이끌려 1층으로 내려가 검찰로 끌려갈 거라고.

그런데 서진이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예상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

“얼굴 봤으니까, 됐어. 그래,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

안나 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자 서진이 말을 이었다.

“나를 여기서 만난 것,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될 거야.”

“뭐요?”

“아, 이미 CCTV를 통해 보고 있을 수도 있나? 그럼 열심히 변명해야겠네. 그쪽은 나와 어떤 상관도 없다고.”

“그게 무슨······?”

중얼거리던 안나 루가 눈을 부릅떴다.

다시 말하지만 안나 루가 이 오피스텔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

그런데 서진이 찾아왔고 그냥 보내 줬다.

“······!”

이제야 확실해진다.

지금까지의 그림만 보면 검찰과 내통하던 사람은 안나 루, 그녀 자신이다.

그리고 서진의 섬뜩한 말이 안나 루의 귀를 파고들었다.

“내 차에 뛰어들던 사람, 그런 식으로 갑자기 뛰어들면 F1 선수라 해도 피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난 브레이크를 밟았고 사고가 나지 않았어. 누군가는 말하겠지, 운이 좋았다고. 그런데 누군가는 또 말할 거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거라고.”

안나 루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서진의 의도를 이제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미끼다.

“널 감옥에 집어넣으면 네 윗선은 숨어 버리겠지. 그렇다고 네가 네 윗선에 대해 떠벌리지도 않을 테고.”

서진은 일부러 안나 루를 잡지 않는다.

안나 루는 어떤 취조를 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안나 루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감옥에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년 후 출소했을 때, 반드시 보복당하는 것은 무서워하고 있다.

“하지만 널 풀어놓으면, 그리고 나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네 윗선은 널 어떻게 할까?”

안나 루의 눈에 공포가 스며들고 있었다.

조직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감옥에 가는 미래가 아니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망.

아니, 여자로서 당할지 모를 끔찍한 폭행.

그리고 안나 루는 이제야 서진이 원하던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조직의 처단을 상상하며 가늘게 떠는 중이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적다.

서진은 24시간 안나 루를 감시할 계획이고 예상했던 일이 터지면 그녀를 빼돌릴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안나 루의 입도 저절로 열릴 게 분명하다.

서진이 엘리베이터를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항상 감시하고 있으니까 번거롭게 이사 갈 생각은 하지 말고.”

서진이 몸을 틀자 안나 루가 비틀 비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금 안나 루는 서진의 옆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스르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안나 루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틈을 통해 서진을 봤다.

서진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하고 있었다.

“경찰.”

“······!”

동시에 안나 루의 눈에 핏줄이 죽 그어졌다.

‘······겨, 경찰?’

분명,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경찰을 말하는 거다.

서진은 그 경찰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그 경찰을 컨트롤하는 사람이 바로 안나 루, 자신이다.

안나 루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아······.”

그 경찰이 잡히면, 조직은 반드시 그녀를 의심할 거다.

그렇다고 그 경찰에게 위험하다고 알릴 수도 없다.

알리는 순간 검찰의 수사를 사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추궁받을 게 분명하다.

그럼 서진과 내통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지목받는다.

안나 루의 눈동자가 다급히 흔들릴 때였다.

닫히는 문틈으로 서진의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남은 시간, 잡힐 것을 알면서도 도망 다녀야 하는 양어장 물고기의 기분을 느껴 봐.”

서진은 악마처럼 사납게 웃고 있었다.

* * *

중앙지검.

사무실에 들어온 서진은 화이트보드를 보고 있었다.

안나 루와 작은어머니 그리고 엄선주의 이름이 낙서와 약어처럼 적혀 있다.

이 글씨는 직접 적은 당사자, 서진 외에는 알아볼 수 없다.

한참 동안 화이트보드를 지켜보던 서진이 보드 마카를 들고 다시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강남경찰서 경정 김재훈.

며칠 전, 호텔에서 경찰을 이끌고 온 간부.

그리고 놈들의 끄나풀.

서진이 놈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놈을 잡으면······.’

놈들의 조직은 안나 루를 더욱더 의심할 거다.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주소록을 쿡쿡 누르며 진유경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프로파일러와 작은 시비가 있을 때, 만났던 형사.

진유경 형사 역시 강남경찰서에 있고 김재훈 경정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네, 김서진입니다.”

*

잠시 후, 서진은 진유경 형사와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보드 마카를 들고 화이트보드에 죽죽 글을 적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진유경 형사와 통화했던 내용이 스치는 중이다.

-김재훈 과장요? 음······ 소문은 안 좋아요. 경대 출신인데, 집이 어려웠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대학 때부터 집안 살림이 폈다고 해요. 말로는 시골 땅이 급등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서진은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어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접속해 토지 실거래를 확인했다.

김재훈 경정이 살았던 곳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공익사업 지구에 따른 토지수용 그리고 토지 보상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

약 20년 전부터 부동산 시세가 꿈틀거렸다.

‘그런데······.’

주변 시세보다 눈에 띌 정도로 비싸게 판 토지가 보였다.

김재훈 경정의 부모님의 소유였던 곳.

서진은 입술을 쓸었다.

돈이 오가면 의심받는 일이 있으니 현물을 시세보다 비싸게 주고 사는 것.

예상대로라면 전형적인 자금 세탁과 뇌물의 방법이다.

재벌 집안 또는 범죄단체에서 연수원 또는 일류 대학의 법학과 학생을 타깃으로 장학금 명목으로 용돈을 주는 일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키워 집안의 궂을 일을 도맡아하는 부하로 만들기 위해서다.

어릴 때 건넨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평생의 족쇄를 채우는 것.

서진은 이번 일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경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취급하는 권력기관.

그곳의 간부를 손에 넣으면 앞으로의 일이 편하다.

그리고 머릿속에 진유경 형사의 목소리가 다시 스쳤다.

-아, 최근에 경기도 신도시의 상가 건물 하나를 싸게 샀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저한테 직접 한 이야기는 아니고 남자들끼리 술 마시다가······.

김재훈 경정이 룸살롱에 들어가 술잔을 들며 말했다고 했다.

-유치권이 해결 안 돼서 경매로 넘어갈 뻔한 상가가 있어. 그걸 운 좋게 내가 찾았지. 연금으로 생활이 되나? 지금부터 노후 준비는 해야지.

그 목소리를 떠올리던 서진이 보드 마카를 툭 내려 뒀다.

‘유치권? 경매?’

이것 역시 뇌물을 주기 위한 자금 세탁의 방법.

멀쩡한 건물에 막대한 금액의 유치권으로 소송을 걸어 두고 헐값에 김재훈 경정에게 넘긴 거다.

시세보다 적은 금액에 샀지만 의심하는 국가기관은 없다.

소송이 걸려 있고 경매까지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서상으로만 보면 적절히 샀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서진이 거울로 시선을 틀었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그 모습 뒤에 숨은 원래의 서진을 떠올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임 검사 주제에 도대체 어떤 조직을 건들고 있었던 거냐?”

서진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도 놈들의 조직은 상상 이상이다.

신임 검사가 혼자서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원래의 서진은 이 사건을 수사했고 결국 세상을 떠나야 했다.

서진이 원래의 서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도대체 뭘 봤기에, 무슨 생각으로 이놈들을 상대한 거야?”

가장 의심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작은어머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예측이 맞아 작은어머니를 향해 칼을 들이밀었을 때, 움직일 김영준 검사장.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을 적으로 인식하고 이빨을 드러내면······.

‘아직은 안 돼.’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김영준 검사장을 상대할 때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김영준 검사장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작은어머니를 떼어 낼 계획이 세워졌다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 * *

“문식이 파입니다.”

서진이 수사관들을 향해 브리핑하고 있었다.

“송파구 시장통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디알쓰리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죠.”

“······.”

“출판 활동은 간단합니다.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 출판계약을 합니다. 이후, 자서전이라는 이름의 쓰레기 같은 책을 출판하죠.”

물론 팔릴 일이 없고 놈들은 책을 출판하면 할수록 큰 적자를 본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정치인의 자서전을 출판하고 있다.

“즉, 정치자금을 건네는 게 목적.”

“······.”

“그런데 이놈들이 최근 건설에도 관심을 보였어요.”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김재훈 경정이 구매한 상가 건물이 나타났다.

“놈들은 상가를 건설 후 유치권을 행사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낮췄습니다.”

서진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갔고 수사관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상대는 김서진이다.

서진이 이렇게 다수의 수사관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할 때는 분명 이유가 있는 거다.

그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설마······ 조폭을 치자는 거야? 우리끼리?’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아?’

‘김서진이잖아······. 가능해.’

그리고 그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경찰의 도움은 받을 수 없습니다.”

“······!”

“수사관님들도 휴대폰을 반납하셨으면 합니다.”

순간,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서진이 메시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영장 나왔네요. 가죠.”

*

그날 오후.

김재훈 경정은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강남구의 클럽을 중심으로 마약이 돌고 있다는 소식으로 정신이 없다.

야근에 철야의 반복.

어서 돈을 벌어 옷 벗고 편히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부글부글 끓는 순댓국에 수저를 집어넣을 때다.

식당 선반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긴박하게 들려왔다.

-서울중앙지검 김서진 검사는 오늘 오전 출판사 디알쓰리를 압수 수색했습니다. 검찰은 이번 압수 수색을 통해 정치권과의 비자금을······.

김재훈 경정의 행동이 뚝 멎었다.

< 입을 다물어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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