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38화 (138/250)

< 입을 다물어도. -(1) >

* * *

“죄송합니다. 어려운 걸음 해 주셨는데.”

호텔 밖의 흡연장이었다.

서진은 경찰의 간부를 만나 고개를 숙였다.

삼십 명 가까이 출동했지만 경찰은 어떤 성과도 없이 돌아가야 한다.

물론 경찰 내부의 누군가가 놈들의 조직과 손잡고 정보를 흘렸다.

그 바람에 안나 루의 도주가 조금 더 수월해진 것도 있지만 서진이 사과해야 한다.

경찰 간부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힐끗 서진을 바라봤다.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원래 도둑놈들은 도망가고 우리는 쫓는 건데요.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데, 김서진 검사님이시라고요?”

“네.”

“윗선에서는 검사님을 안 좋아할지 몰라도 우리처럼 현장 뛰는 놈들은 달라요. 현장을 이해할 줄 아는 검사님이시잖아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경찰 간부가 서글하게 웃으며 악수를 권했다.

그리고 경찰 간부와 손을 잡는 순간 서진은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봤다.

‘이놈이야?’

놈들과 내통하던 놈.

안나 루에게 경찰이 진입한다고 알려 준 놈.

누군가 했는데, 사람 좋게 웃으며 가식적인 말을 내뱉는 이놈이었다.

‘하······.’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이놈을 잡을 수는 없다.

큰놈을 위해 잡놈은 일단 놔둬야 한다.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안나 루의 뒤를 쫓는 경호원이었다.

서진이 경찰 간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흡연장을 벗어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말씀하세요.”

-계속 뒤를 밟았는데요. 집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집이요?”

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쫓겼으면 바로 조직 또는 그 위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할 줄 알았다.

불안하면 기댈 곳을 찾는 게 사람 심리니까.

그런데 집이라니.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담하네.’

안나 루는 검찰과 경찰의 추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불법체류자가?’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안나 루가 조직을 찾아가지 않는다 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그녀의 집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그 뒤를 쫓으면 된다.

그럼 그 조직의 실체가 드러날 거다.

“죄송한데, 감시 좀 부탁드릴게요.”

-감시오? 잠복근무 같은 거죠? 유치하게 들리실 수 있어도 한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서진은 나중에 보너스를 두둑이 챙겨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 * *

“창문에 그림자는요?”

퇴근 후, 서진은 경호원과 함께 안나 루가 사는 집 앞에 서 있었다.

경호원이 고개를 저었다.

“못 봤어요. 24시간 전부 창문만 보고 있던 것은 아니라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요.”

호텔에서 안나 루의 뒤를 밟은 지 3일이 지났다.

하지만 집의 불이 켜지고 꺼지는 것만 반복되었다.

이튿날 배달 음식이 오갔던 게 전부라고 한다.

안나 루는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만에 만난 경호원은 핼쑥해져 있었다.

세 명이 돌아가며 잠복을 한다고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자리에 머물며 멍하니 있는 것은 고문과 마찬가지.

“고생하셨습니다.”

서진의 말에 경호원이 낄낄 웃으며 농담을 내뱉었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 형사들이 잠복하는 게 나오잖아요? 볼 때는 멋있어 보였는데, 해 보니까 죽을 맛이네요.”

서진은 경호원의 농담에 맞춰 웃으며 다시 안나 루의 집을 바라봤다.

수십억짜리 초호화 빌라.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저런 곳에 살려면 얼마나 많은 불법을 저질렀을지, 얼마나 많은 국민의 등골에 빨대를 꽂았을지 상상도 힘들었다.

서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3일이지?’

안나 루는 3일간 나오지 않았다.

언제 나올지 모를 사람을 계속 지켜보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상대는 범죄 단체.

경호원들의 눈을 피해 이미 집을 빠져나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확인해 봐야겠어.’

서진이 휴대폰을 들고 안나 루의 집으로 배달 음식을 시켰다.

잠시 후, 오토바이가 앞에 섰다.

배달원이 경비실로 향했다.

“301호요.”

가게 이름을 확인한 후 경비가 고개를 끄덕였고 배달원이 빌라로 들어갔다.

서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쯤.’

배달원이 문 앞에 도착했을 시간.

‘초인종을 누르겠지.’

서진은 일련의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초인종을 누르고 배달을 시킨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서진이 시선을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지금.’

정문으로 배달원이 사장과 통화하며 나오고 있다.

여기까지는 서진의 모든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배달원의 통화 내용은 예상과 다르다.

“사장님, 사람 없는데요? 초인종 계속 눌러 봤죠. 전화해 보세요.”

서진의 입술을 쓸었다.

‘사람이 없어?’

세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없는 척하거나 도망갔거나 또는 죽었거나.

서진이 배달원을 향해 걸어갔다.

일단, 시킨 음식을 받아야 한다.

“죄송해요. 나갔다 오느라 못 받았네요. 가지고 갈 테니까 주세요.”

“네?”

서진이 휴대폰 어플을 통해 주문 내역을 보여 주자 배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뒤에 선 경호원이 배달 음식을 받았고 서진은 계속해서 경비실을 향해 걸어갔다.

경비원은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보던 경비원은 서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자세를 바로 했다.

“무슨 일이시죠?”

서진이 품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검찰입니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는데,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

서진은 CCTV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안나 루가 들어온 3일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경호원들의 말처럼 이튿날, 모자를 눌러쓴 배달원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서진이 영상을 멈추며 물었다.

“배달원은 상호만 확인되면 출입이 가능한가요?”

“네, 택배 같은 경우는 무거운 게 아니면 이 앞에 받아 두는데, 음식은 직접 받기를 원하는 분들이 많아서요.”

서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배달을 시켰을 때, 상호 확인 과정은 정말 단순했다.

명부에 적혀 있는지 없는지 보는 게 전부.

서진은 다시 모자 쓴 배달원이 들어가는 과정으로 영상을 되감았다.

그리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며 시간을 확인했다.

모자 쓴 배달원이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17분.’

배달 음식을 전달하는 과정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길다.

“현관에는 CCTV가 없죠?”

“네, 아무래도 그쪽은 사생활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엘리베이터까지가 끝입니다. 개인적으로 달아 둔 분들이 아니면.”

서진은 뭔가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가장 낮게 두고 있던 가능성.

안나 루가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17분은 살인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시간.

서진이 휴대폰을 귀에 대고 다급히 말했다.

“조우재 부장검사님, 압수수색 영장 하나 하고 열쇠 전문가 부탁드릴게요. 청담동이고요.”

서진이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경비원을 향했다.

“일단 올라가 보고 싶은데요. 같이 가 주시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경비원도 압수수색 어쩌고 하는 통화 내용을 들었다.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빨리빨리 끝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경비원이 몸을 일으켜 앞장섰다.

*

안나 루가 거주하는 301호.

경비원의 말대로 CCTV는 없다.

‘여기서 17분.’

아무래도 불안했다.

서진은 초인종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귀를 대고 안의 소리를 들어 보려 했지만 마찬가지.

인기척은 없다.

‘젠장!’

서진은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

띵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나 루가 문을 열자 모자를 눌러쓴 배달원이 서 있었다.

놈이 성큼성큼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고 있던 철가방을 내밀며 말한다.

“필요한 것은 넣어 뒀으니까 숨어 있어.”

“숨어?”

“짭새 달고 왔더라?”

배달원이 말한 짭새는 서진이 붙여 둔 경호원이었다.

놈은 경호원을 경찰로 착각했다.

안나 루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냥, 이 나라에서 뜨면 안 돼? 구질구질해서 살기 싫은데. 더러운 한국인 새끼들 비위 맞추는 것도 싫고.”

“사장님이 회장님께는 보고하지 않겠다고 했어. 무슨 뜻인지 알지?”

죽이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하라는 지시다.

안나 루가 한숨을 내뱉었다.

“고맙네, 내일도 뜨는 해를 볼 수 있어서.”

“오늘 새벽 2시, 201호에 새벽 배송이 올 거야. 아령이라 무겁다고 집 앞에 배송해 달라고 했어. 배송 기사는 당연히 우리 쪽 사람이고.”

“그 사람이 가져온 다른 상자에 숨어서 도망치라는 거지?”

“택배 차를 의심하는 경찰은 없어.”

안나 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배달원이 쪽지를 건넨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지방에 있는 오피스텔. 두 달 정도 놀다가 와. 알잖아? 이 나라, 사법 체계. 며칠 들쑤시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릴 거야. 그리고 네가 숨어 버리면 잡을 방법은 없어.”

안나 루는 불법체류자다.

대한민국에 그녀의 신분을 확인할 방법은 단 하나도 없다.

마치 유령처럼 살고 있는 거다.

“오케이. 알았어. 심심하니까, 그쪽에 일이나 잡아 줘.”

“어떤?”

“지방 유지의 애인 정도면 괜찮겠네. 나이는 상관없고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일부러 걸려서 이혼하게.”

“미친.”

배달원이 낄낄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배달원이 몸을 틀었고 안나 루가 쪽지를 든 손을 작별의 인사처럼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봐.”

*

사이코 메트리가 끝났고 세상은 색을 되찾았다.

서진은 벨을 누르던 것을 멈췄다.

‘하!’

서진은 헛웃음을 토해 냈다.

잠시나마 안나 루의 생사를 걱정했다.

하지만 놈들은 이 나라의 사법 체계를 비웃으며 이곳을 빠져나갔다.

‘미치겠네.’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도망쳤다.

그것도 서진과 이 나라를 비웃으면서.

잠시 가만히 있던 서진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서진의 눈이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 * *

안나 루는 오피스텔에 앉아 있었다.

약 25평의 넓은 공간이지만 원래 살던 고급 빌라에 비하면 정말 거지 같은 곳.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엎어서 탁 트인 야경이 훤히 드러난다는 거다.

‘김서진이라고 했지?’

안나 루가 이곳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뒤를 쫓은 게 누구였는지 찾은 거다.

그리고 결론은 서진으로 모아졌다.

호텔의 CCTV에 서진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오간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게 서진이 맞는다면, 심지어 안나 루를 다른 엘리베이터로 보낸 것도 서진이었다.

‘귀엽네.’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나 루는 입술을 씹고 있었다.

왜 사장이 서진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서, 살려 두면 안 되겠어.’

안나 루는 느꼈다.

서진은 위험하다고.

아직은 일개 검사에 불과하지만 몇 년만 지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어쩌면 이들의 조직을 위협할 정도로 클지도 모른다.

그 전에 치워야 한다.

안나 루가 립스틱을 손에 쥐고 입술을 붉게 칠했다.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며 묘하게 미소 지었다.

‘뭐.’

지금은 깊은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두 달의 긴 휴가.

이 동네의 돈 많은 남자를 가지고 놀다가 휴가가 끝날 때쯤 적절히 이혼을 시키고 싶었다.

남의 남자를 가지고 노는 것.

그 남자가 자신의 품에서 헐떡이며 사랑한다 외치는 것.

그러다가 들키는 것.

그 일그러진 표정을 보는 게 안나 루에게는 최고의 재미였다.

그때, 안나 루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호구에게 연락이 온 거다.

안나 루가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 오셨어요? 죄송해요. 책을 읽다가 깜빡 시간을 놓쳤어요. 네, 지금 내려갈게요.”

*

안나 루가 오피스텔을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천히 올라온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안나 루는 팔짱을 낀 채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안나 루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그리고 굳은 것처럼 멈췄다.

안나 루는 끔찍한 것을 본 것 같은 뻣뻣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서진이 내리고 있었다.

서진이 안나 루의 앞에 서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미소를 그렸다.

“어디 가?”

< 입을 다물어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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