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37화 (137/250)

< 일단 하나. -(7) >

* * *

중앙지검.

야외 휴게실에 앉아 생각에 빠져 있던 서진의 옆에 장지혁 검사가 군고구마를 들고 앉았다.

김포 창고 살인 사건을 함께했던 경찰대 출신의 검사다.

그가 서진에게 군고구마 하나를 내밀며 뜬금없이 물었다.

“여자 친구랑 싸웠어?”

“아뇨, 여자 친구 없는데요.”

“그럼, 표정이 왜 그래?”

“표정이 왜요?”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 같아서.”

서진이 끌끌 웃었다.

서진은 며칠 전 만난 전창현의 연락을 기다리며 안나 루의 조직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안나 루, 그녀는 불법체류자다.

그런데 그런 신분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서슴없이 만나고 있다.

그것만 봐도 그녀가 속한 조직의 자본과 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조직을 들여다봤을 때, 썩어 버린 권력자의 민낯을 마주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기쁠 정도로 두근거렸다.

“별일 없으면 됐지. 먹어.”

장지혁 검사가 슬쩍 웃으며 군고구마를 베어 물었다.

서진이 군고구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사신 거예요? 요즘 군고구마 잘 안 보이잖아요?”

“길 건너에 있더라.”

서진이 군고구마를 입에 댔다.

오랜만에 맛보는 것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장지혁 검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 인사 발령 봤어? 너희 부서에 부장검사님이 교체되던데?”

정기 인사 발령 시즌이다.

연차를 채운 검사는 이곳저곳으로 이동한다.

서진의 부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부장검사가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온다.

“까칠한 사람이래.”

“그러게요.”

지금 부장검사의 성격은 꽤 좋다.

그 덕에 팀의 분위기 역시 다른 부서에 비해 즐거웠다.

하지만 새로 온다는 부장검사의 소문은 다르다.

성과 위주로 팀을 운영하고 예민한 성격 때문에 팀의 분위기가 살얼음판이라고 들었다.

뭐, 그건 앞으로 닥치면 천천히 알게 될 일이고.

서진의 시선이 장지혁 검사에게 틀어졌다.

장지혁 검사는 뜨거운 군고구마를 후후 불며 먹고 있다.

‘같이해 봐?’

서진은 사채업자를 상대하는 중이다.

그런데 노출된 상태다.

조금 과하게 말해서 자살 특공대까지 보낼 정도.

세밀하게 관찰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림자처럼 움직여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우직하니 밀고 나갈 용기가 있으면서도 놈들에게 노출되지 않은 사람.

서진은 그동안 장지혁 검사를 지켜봤고 이 역할에 딱이었다.

“검사님.”

“왜?”

“사업 하나 같이해 보실래요?”

“사업? 군고구마?”

“아뇨, 사채업자.”

장지혁 검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옮겨졌다.

장지혁 검사도 서진이 사채시장을 쑤시고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 혼자 하기 버거워?”

“네,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장지혁 검사가 군고구마를 내려 둔 후 서진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말하는 거면 진짜 꽤 센 놈인 거지?”

“네?”

“네가 약한 놈은 안 건들잖아?”

장지혁 검사가 보는 서진은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는 놈이었다.

문이 잠겨 있으면 해머로 부수고, 범죄자가 숨어 있으면 쫓아가 머리를 쥐어 잡고.

그런 놈이 도와 달라고 하자 흥미가 생겼다.

“좋아. 사업 계획부터 말해 봐.”

“일단, 큰 그림만 말씀드리면 제가 외곽을 치고 검사님이 메인으로 향하는 건데요. 자세한 것은 조만간에 시간 잡고 천천히 설명드릴게요.”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유곤 의원의 아들 전창현이다.

서진이 몸을 일으키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아버지가 전화하는 것을 들었어요.

전유곤 의원의 비공식 미팅.

일주일 후, 대정호텔의 중식 레스토랑 VIP실이다.

* * *

서진이 차에서 내렸다.

평소 타고 다니던 차가 아니다.

오늘은 특별히 진영의 차를 빌려 타고 왔다.

그런데 서진의 복장 역시 평소와 달랐다.

정장이 아니라 캐주얼한 옷.

서진은 트렁크로 향했고 모자를 꺼내 쓴 후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언뜻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서진을 아는 사람이라 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 것 같다.

‘괜찮네.’

놈들은 서진의 차량 번호는 물론 얼굴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진영의 차를 빌려 왔고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서진은 트렁크를 닫으며 뚜벅뚜벅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곳은 대정호텔의 지하 주차장.

서진은 로비로 올라갔고 입구를 확인할 수 있는 커피숍에 자리했다.

캐러멜마키아또를 주문 후 느긋하게 앉아 시선을 출입구로 돌렸다.

놈들은 서진처럼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 주차하지 않을 거다.

무조건 호텔 입구에서 발레파킹.

약속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기다려도 늦지 않다.

서진이 가방에서 신문을 꺼낸 후 펼쳤다.

물론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다.

시선은 계속해서 입구를 향한 상태였다.

잠시 후, 전유곤 의원이 나타났다.

보좌진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전유곤 의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워낙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기에 누가 나타난다 해도 관심 없을 거다.

서진은 힐끗 CCTV를 살폈다.

전유곤 의원의 얼굴이 정확히 찍히고 있을 거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더 지났다.

‘왔다.’

사진으로만 봤던 안나 루가 덩치 큰 사내 십여 명과 함께 로비에 나타났다.

익히 들었던 것처럼 꽤 예쁜 외모, 쫙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어서 그런지 완벽한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안나 루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천천히 로비를 살폈다.

범죄자의 특징, 사람 많은 곳에서 주변을 신경 쓰는 거다.

서진은 신문을 올려 얼굴을 가렸고 안전하다는 것을 느낀 안나 루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그렇게 안나 루가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서진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조우재 부장검사다.

“부탁드릴 게 있어요. 대정호텔인데 경찰 협조를 요청해 주세요. 한······ 삼십 명 정도?”

뜬금없이 삼십 명을 요청받은 조우재 부장검사가 황당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삼십 명? 이번엔 깡패를 때려잡으러 간 거야?

“뭐, 비슷하죠.”

잡으려는 게 불법체류자지만, 그 옆에 덩치 십여 명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대정호텔이라고 그랬지?

호텔에서 깡패를 잡겠다니, 조우재 부장검사는 걱정부터 했다.

-호텔에도 알려 둘게. 대정호텔이 누구 건 줄 알지? 거기서 문제가 일어나면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고······.

“아뇨, 그냥 가죠.”

-야······.

“연락하면 어차피 반대할 겁니다. 나가서 싸우라고 하겠죠. 그리고 이번은 정말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해요.”

서진은 아직 안나 루가 속한 조직의 실체를 모른다.

놈들이 어디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대정의 관계자와 연계되어 있다면 연락이 들어가는 순간 놈들은 도주할 거다.

-하······ 알았어.

어차피 조우재 부장검사는 고분고분 서진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진은 통화를 종료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머릿속에서는 안나 루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갖가지 상황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중에 서진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혹시라도 일반인을 인질로 잡을 수 있어.’

가장 뼈아픈 상황은 일반 사람이 다치는 거다.

안나 루는 십여 명의 덩치들에게 보호받는 중이고 확인은 못했지만 품에 날붙이를 숨겼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곳은 사람이 많고······.’

로비는 불특정 다수가 이동하며 게다가 공간이 넓다.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럼, 놈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을 노릴까?’

기습적으로 놈들을 치는 것.

지금까지 생각으로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서진이 엘리베이터에 올라 놈들의 약속 장소인 중식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식당에서도 모든 곳을 살폈다.

놈들의 이동 경로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게 모든 공간을 샅샅이 확인한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또 조우재 부장검사다.

“1층 로비 엘리베이터 3, 4호기 앞에 경찰 배치 부탁드려요.”

서진은 생각하고 있던 동선을 이야기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손을 툭툭 털었다.

‘자······ 이제.’

안나 루를 놓치기만 하면 된다.

‘제발 도망가라.’

서진은 정말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놈들의 끄나풀이 경찰에도 있기를, 그래서 미리 정보를 듣고 제발 도망치기를.

안나 루가 도망칠 곳은 놈들의 조직일게 분명하다.

혹시라도 잡히면, 그것 역시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최선은 아니었다.

*

그 시각, 대정호텔 중식 레스토랑 VIP실.

전유곤 의원은 안나 루와 마주 앉아 있었다.

“1차로 50억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2차, 3차는 본격적으로 대선 국면에 들어간 후 드리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깨끗하게 세탁된 돈이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유곤 의원이 마른기침을 ‘큼큼’ 내뱉었다.

당은 대선을 준비하는 중이고 대선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공식적인 활동 외에 물밑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자금의 일부를 전유곤 의원님이 댄다면, 다음 그리고 그다음 공천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당권을 잡고 차차기 대선 주자로 올라설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차피 정치도 돈이다.

하지만 전유곤 의원은 가방에 가득한 신사임당을 보지 않는다.

저 돈은 자신의 손에 잠시 거쳐 갈 뿐, 당에 입금될 돈이다.

물론 전유곤 의원이 꿀꺽할 수도 있지만, 그는 소탐대실의 마지막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유곤 의원의 시선은 안나 루에게 향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

향긋하게 풍겨 오는 그 체취.

가볍지 않은 도도한 표정과 지적인 말투.

욕망으로 가득한 전유곤 의원의 시선을 안나 루도 느꼈다.

하지만 모른 척, 짙은 아이라인이 그려진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전유곤 의원이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거참, 우리 술 한잔해야 하지 않겠어요?”

안나 루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의원의 손을 잡고 객실로 들어가는 순간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남자의 욕망을 이용할 줄 안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의원님을 알아 가고 싶습니다.”

안나 루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틀어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매끄러운 목선을 드러난다.

전유곤 의원이 음흉한 시선과 함께 마른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

안나 루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사장님······. 네?”

안나 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서진의 예상대로 그녀의 조직은 경찰과 맞닿아 있었다.

서진이 그녀를 잡기 위해 경찰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녀가 통화를 종료하며 다급히 일어섰다.

“의원님, 술은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지금?”

전유곤 의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안나 루는 자세한 말을 전하지 않았다.

가진 것이 많은 놈일수록 겁이 많다.

경찰에 쫓기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앞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피할 수도 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안나 루의 시선이 방 안을 살폈다.

어차피 돈이 오간 흔적은 없다.

경찰이 온다 해서 어떤 혐의도 없는 국회의원을 잡지는 못한다.

위험한 것은 불법체류자 신분인 안나 루뿐이다.

자신만 빠져나가면 된다.

안나 루는 전유곤 의원에게 “나중에 술 한잔 따르겠습니다.”라고 여지를 남겨 둔 채 머리를 숙이고 VIP 룸을 빠져나왔다.

*

엘리베이터 옆에 서서 창밖을 보고 있던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호텔이라는 특성을 배려해서 사복 경찰이 우르르 내리는 게 보이고 있어서다.

‘오늘따라······.’

경찰이 정말 빠르게 왔다.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온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라면 안나 루는 잡힌다.

십여 명의 경호원이 있다 해도 기다리고 있던 경찰 삼십 명을 따돌리고 도주하기는 어려울 거다.

그때,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틀어 보니 안나 루와 함께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있다.

안나 루의 표정에 당황은 없다.

경찰이 있든지 말든지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걷고 있다.

그렇게 놈들은 모자를 쓴 서진을 알아보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꾹 눌렀다.

서진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이대로 안나 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잡힌다.

그럼, 몸통을 구경 못 한다. 놈들은 더 어두운 곳으로 숨어 버릴 거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서진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전화가 온 것처럼 휴대폰을 귀에 댔다.

천연덕스러운 목소리가 서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응? 3, 4호기 앞에 경찰이 있다고? 뭔 일 있나? 어, 여기 창밖으로 보여. 저 사람들이 경찰이야?”

서진이 힐끗 안나 루를 살폈다.

‘이 정도 힌트를 줬으면 좀 알아들어라.’

그리고 안나 루는 다행히 알아들었다.

서진의 옆으로 슥 오더니 창밖을 내려다본다.

서진은 안나 루를 살피며 계속 거짓된 통화를 이어 갔다.

“다른 엘리베이터도 그래? 여기만? 알았어. 빨리 내려갈게. 기다려.”

안나 루는 서진의 말을 들으며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서진이 그녀의 뒷모습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모든 것은 서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중이다.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좋네.’

일단 하나, 안나 루를 잡는다.

< 일단 하나.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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