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31화 (131/250)

< 일단 하나. -(1) >

신지연은 놀란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계열사라고 했어?”

“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서진은 계열사를 원하는 중이다.

신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신일승이 구속됐다 해서 그 계열사를 넘겨주기는 어려운 일.

그것은 신씨 집안의 것이고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은 패배자라고 배워 왔다.

‘하지만······.’

냉정히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서진은 신일승을 베어 낼 정도로 쓸 만한 칼.

신무학 회장이 떠나고 본격적인 재산 싸움이 벌어지면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하다.

이런 문제로 서진과 등을 돌린 채 지내기는 아깝다.

‘어쩌나······.’

신지연은 생각했다.

서진을 어르고 달래서 신마그룹을 장악할 때까지 곁에 둬야 한다고.

“일승이가 갖고 있던 게, 건설하고 전기였나? 갖고 싶은 것은 어디?”

“건설이요.”

신지연은 서진의 의도를 분명히 느꼈다.

신마건설을 인수한 후 재정건설과 합치려 하는 거다.

단숨에 도급 순위 1위를 차지할 테고, 그 꼴을 볼 수는 없었다.

“······돈은 있고?”

계열사라는 게 100원, 200원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재정그룹의 아들이라 해도 자금을 모으기는 힘든 일.

에둘러 거절하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서진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제이든 김이라고 검은 머리 외국인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인데, 한국에 투자하고 싶대요.”

제이든 김, 도광현이 자금을 세탁하며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

신지연은 서진의 예상대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 안 돼. 동생이라면 몰라도 검은 머리 외국인이면,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서진은 신지연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지금 가격으로 주워 담으면 10%는 손에 쥘 것 같다고 들었어요.”

“10%? 그 돈으로 인수는 불가······.”

“누님이 가진 백화점에서 신마건설의 지분을 20% 가지고 있죠. 제이든 김과 합치면 30%. 대표를 바꾸기에는 충분한 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동생?”

“회사 이름이 바뀔 일은 없을 겁니다. 계속해서 신마건설이 되겠죠.”

회사 이름이 바뀌는 순간 신무학 회장이 움직일 거다.

먹은 것은 절대 토해 내지 않는 그 탐욕은 조심해야 한다.

“최대 주주 역시 그대로 누님의 백화점일 거예요. 마지막으로 제이든 김과 상관없는 전문 경영인을 올릴 겁니다.”

신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적당히 거절하려 했는데, 안 되겠다.

이제는 확실한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어려워. 외부 인사가 오면 임원진이 반발할 수 있어.”

“그 사람들이 대표로 인정할 만한 사람, 신일승의 비서실장 정도면 될까요?”

“뭐?”

“비록 보좌에 실패해서 신일승이 교도소에 갔지만 경력과 짬밥으로 치면 납득할 것 같은데요.”

“아빠가 반대할 거야.”

“신일승이 돌아오면 다시 넘겨준다는 명분, 그것을 던지면 회장님께서도 반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서진은 모든 것을 준비해 왔고 신지연이 핑계를 찾으려 했지만 어려웠다.

이제는 방금보다 더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미안한데, 외국인은······.”

“건설이 신명진, 신종서 사장님의 손에 들어가면 균형은 깨질 겁니다.”

신명진과 신종서, 신지연의 오빠와 동생이다.

눈을 깜빡이는 신지연을 향해 서진이 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분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두 사람 역시 신일승이 가지고 있던 계열사를 차지하기 위해 애쓸 거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건설을 먹는 순간, 신지연의 신마그룹 장악은 어려워진다.

“제이든 김은 누님의 편이 될 겁니다. 그리고 가진 것은 고작 10%의 지분. 누님이 반대하면 할 수 있는 게 어떤 것도 없어요. 20%의 지분을 가진 누님의 말을 따라야죠.”

신지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하······ 그 외국인이 누군 줄 알고?”

“그 사람을 믿지 마세요. 20%의 지분이 가진 힘을 믿으세요. 그리고 제이든 김은 투자자입니다. 주가의 상승과 배당금을 원하는 거지, 경영을 원하지 않아요.”

게다가 건설의 대표로 올려 둘 전문 경영인도 신일승의 비서실장이다.

원래 신마그룹의 사람이라는 거다.

모든 게 준비된 것 같은 상황에 신지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동생이 얻는 것은 뭐지?”

지금껏 했던 말을 따져 보면 서진에게 이득 되는 것이 없다.

남 좋은 일 하자고 신일승을 쳐 낸 것도 아니고.

그 의도를 확실히 해야 했다.

그리고 서진은 여기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제이든 김에게 투자했습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게 펀드를 들어 뒀죠.”

펀드 투자는 문제가 없다.

직접투자가 아닌 간접투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운용사에 투자 정보를 제공하거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법에 위반되지만 서진의 행동에서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제이든 김의 이익이 동생의 이득이다?”

“네.”

겉으로만 보면 지분을 내주고 투자만 받는 이상적인 형태.

하지만 제이든 김이라는 가상의 인물 뒤에는 서진이 서 있다.

그리고 대표가 될 비서실장은 서진의 의도에 따라 좌지우지될 거다.

신마건설이 서진의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생각 좀 해 볼게.”

서진은 신지연의 말을 들으며 맥주를 입에 댔다.

신지연의 입에서 ‘생각’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그 뜻은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의 결정을 후회할 거다.

서진이 모조리 먹어 버릴 테니까.

서진이 야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금씩.’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의 저 밤, 그리고 저 야경을 모두.

* * *

그리고 그 시각, 신무학 회장의 서재.

신무학 회장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 중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곳에 김영준 검사장이 서 있었다.

신무학 회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검사장, 내가 내 아들을 직접 혼내겠다는 게 그리 잘못된 일인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랬어?”

“시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들으려고 자네를 부른 게 아니야.”

신무학 회장도 신일승의 구속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일이 단번에 터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영준 검사장을 굳이 서재로 부른 이유는.

“검사장, 다시는 내 새끼들을 건들지 마. 내 새끼 교육은 내가 시켜.”

다시는 신마그룹을 향해 칼을 휘두르지 말라는 경고.

다음에는 시기나 여론 또는 명분 같은 이유로 덤벼들지 말라는 엄포다.

“그리고 내가 경고로 끝내는 이유는 하나야.”

자비가 아니다. 환심을 사려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김영준 검사장에게 쏟아부은 돈이 아까워서다.

하지만 선을 넘으면 뒤집겠다는 선언이다.

“알아들었어?”

“네.”

“그리고······ 내 아들 사건을 지휘한 놈.”

신무학 회장이 서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일개 검사라 이름까지 기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무학 회장이 볼 때 서진은 주인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개.

한 번 우습게 보이면 놈은 반드시 또 덤벼든다.

그 전에 두들겨 패고 두려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 두려움이 존경이다.

그런데 신무학 회장의 말을 끊고 김영준 검사장이 입을 열었다.

“신일승이 경영권을 쥐고 있던 전기와 건설에 대한 압수 수색, 하지 않겠습니다.”

신무학 회장의 눈동자에 노기가 스며들었다.

“······뭐라?”

김영준 검사장 역시 경고한 거다.

검찰에 손을 뻗으면 참지 않겠다고.

신무학 회장이 우습다는 듯 끌끌끌 웃을 때, 김영준 검사장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야당에서 압수 수색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일승의 사건은 대형 호재죠. 하지만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이번 사건의 지휘 검사, 처분은 보류해 주십시오.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지금 나와 거래를 하자는 겐가?”

“아뇨. 상황을 설명드린 겁니다.”

신일승은 이미 엎어진 물이다.

다른 물마저 엎어지기 전에 여기서 끝내자는 거다.

김영준 검사장은 괜히 검찰과 싸워봤자 남는 게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신무학 회장은 탐욕에 관해서는 극단적일 정도로 이성적인 사람.

김영준 검사장의 단 한마디로 무엇이 이득일지 계산이 끝난 상태다.

김영준 검사장이 허리를 굽혔다가 폈다.

그리고 신무학 회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이 몸을 틀어 밖으로 나갔다.

신무학 회장이 살벌한 눈으로 김영준 검사장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감히······.”

신무학 회장에게 이빨을 드러낸 개가 또 한 마리 보였다.

서재의 문이 닫힐 때, 신무학 회장이 입을 열었다.

“준태야.”

“네, 회장님.”

뒤에 마네킹처럼 서 있던 비서실장이 앞으로 나왔다.

신무학 회장이 닫힌 문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백기호하고 저놈의 사이가 안 좋다고 했지?”

* * *

“신지연이 도와주기로 했어. 우리가 확보할 지분은 약 10%.”

-옙. 그 전에 미국에 한번 다녀올게요. 그쪽에 만들어 둔 투자회사를 실체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알아서 하고.”

며칠 후.

서진은 도광현과 통화하며 운전하고 있었다.

-아, 이솔아 씨 퇴원했어요.

“응.”

-이번 사건으로 소속사와도 계약이 끝났나 봐요. 제 친구 중에 중국 쪽 엔터를 취급하는 놈이 있는데, 거기하고 계약시키려고요.

“이상한 곳은 아니지?”

-아, 절대 아니에요. 저 손 씻은 거 모르세요? 이솔아 씨도 저를 보고 사기꾼이라고 하는데요.

“사기꾼 맞잖아?”

-검사님? 손 씻었다니······.

“끊어.”

서진이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차를 멈춰 세웠다.

폴리스 라인이 쳐 있고 경찰이 가득하다.

어젯밤, 강남의 한 주택가에서 화재가 났다.

사망자는 넷, 3층에 사는 일가족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부검 결과 그들은 화재로 사망하지 않았다.

그 전에 이미 칼에 찔려 사망한 상태였다.

서진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뚜벅뚜벅 폴리스 라인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오시면······.”

“검찰입니다.”

서진이 신분증을 보이자 경찰이 눈을 깜빡였다.

“검사요?”

검사가 현장에 오다니, 본 적도 없는 일이다.

아니, 어디선가 들었다.

중앙지검의 미친 검사, 김서진.

‘혹시······.’

경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진을 바라볼 때, 서진은 이미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

“면식범이에요. 예상하기로는 딸의 남자친구였을 가능성이 커요. 아버지가 문을 열어 줬고 익숙하게 집에 들어왔죠. 그리고 곧바로 칼을 휘둘렀어요, 여기서부터 저곳까지. 이 장소에서 아버지가 사망했고 범인은 몸을 틀었어요. 이쪽에 어머니가 있었겠네요.”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정민우.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했던 프로파일러였다.

경찰의 협조 요청을 받고 어떤 증거도 남지 않은 현장에 출동했다.

정민우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걸음, 두 걸음. 여기서 자신의 여자 친구였던 사람에게 칼을 찔렀어요. 부검 결과를 보면 한 번에 죽인 게 아니라 여러 번 찔렀죠? 흥분했기 때문이······.”

그렇게 말을 이어 가던 정민우가 눈을 깜빡였다.

다 타 버린 잿더미에 손을 대며 이리저리 만지는 이상한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누구죠?”

정민우의 말에 경찰들의 시선이 홱홱 틀어졌다.

서진이었다.

벽부터 시작해서 바닥까지 손바닥으로 슥슥 훑고 있다.

그리고 서진을 알아본 한 경찰이 입을 열었다.

“······김서진 검사?”

그 말에 다른 경찰들도 눈을 크게 뜨고 서진을 향했다.

“진짜, 김서진 검사네? 진짜 현장에 다니는 거야?”

“어? 반부패라고 들었는데, 형사 사건은 왜 온 거지?”

정민우도 서진을 알아봤다.

그리고 그 순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저놈이 삽질하면······.’

서진은 검사다.

즉, 엘리트 출신.

게다가 미제 사건의 전문가라며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

서진의 추리가 어긋나고 자신의 예측이 통하면,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면, 정민우는 자신의 통찰력이 더 부각될 것이라 생각했다.

정민우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지금부터 서진과의 모든 대화를 담을 생각이다.

그리고 서진을 향해 다가가서 세상 착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검사님이라고요?”

“네.”

“검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사건, 범인은······.”

“면식범 아닙니다.”

정민우의 얼굴에 짜증이 확 솟구쳤다.

오랜 시간 경찰에 몸담았고 범죄심리학으로 몇 번이나 논문을 냈다.

프로파일러로 해결한 사건이 가득하다.

그런데 처음부터 자신의 말을 단호히 부정하다니.

정민우가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어떤 근거로······.”

서진은 고개를 저으며 정민우의 옆을 스쳤다.

정민우의 생각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진의 행동이 정민우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검사님! 근거가 뭐죠? 면식범이 아니면, 이런 현장이 나올 수 없어요!”

“면식범 아니에요.”

정민우는 몰랐다.

프로파일러가 사건의 전문가라면 사이코메트리는 검사에게 사기에 가까운 능력, 아니 사기가 맞다.

“검사님!”

정민우가 소리쳤다.

하지만 서진은 정민우를 외면한 채 경찰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네 명의 경찰들 중 그 가운데에 선 형사에게 입을 열었다.

“진유경 형사님?”

서준경 때 도움을 많이 받았던 형사.

서진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 일단 하나.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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