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27화 (127/250)

< 재벌 집 아들. -(6) >

* * *

“이런 차는 얼마나 하나? 한 5천?”

서진의 승용차, 조수석에는 신일승이 앉아 있었다.

놈은 검찰로 끌려가는 중인데도 드라이브를 하는 것처럼 느긋했다.

“심심하니까 대답 좀 해 봐. 이 차, 얼마야?”

“3천. 그 정도 할 거야.”

서진의 자동차는 국산 중형 세단이다.

그런데 신일승이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3천? 3천짜리 차도 있어? 와, 내 시계보다 싸. 되게 신기하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올 것 같아.”

“네가 입을 죄수복은 얼마인지 모르겠네.”

서진이 비아냥대자 신일승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 검사 형님. 솔직히 말해 봐. 지금 날 잡는 게 재벌이니까 그런 거지? 댓글 보면 꼭 재벌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 생각 좀 합시다. 나도 좋은 일 많이 해. 돈 없는 놈들도 나쁜 짓 많이 하고. 돈 없다고 사람 죽이는 새끼도 많잖아? 그런데 난 돈 없다고 죽이지는 않거든.”

“저기?”

“왜, 말해 봐. 내 말이 맞지?”

“네가 검찰에 가는 것은 재벌이라서가 아니라 법을 어겼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좀 닥치고 가자.”

“와, 한마디, 한마디가 오글거리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지금도 자신의 아버지를 믿는 거다.

골프채로 몇 대 맞으면 웬만한 범죄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해서다.

신호에 걸렸을 때,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

밤 9시가 넘어서는 시각.

김영준 검사장은 종로의 어느 한정식집에 앉아 정치인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백기호가 사람들을 긁어모으고 있어요. 우리를 따돌리고 자신의 계파를 만들려는 수작이에요!”

“백기호가 시민 단체를 만나고 있다고 들었어요. 막대한 후원금을 뿌린다는데, 그 돈이 어디서 떨어졌겠습니까? 그거 조사하세요!”

“가만히 둘 겁니까?”

의원들은 김영준 검사장을 닦달하고 있었다.

백기호 의원을 수사해 달라고.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술잔을 입에 댈 뿐이다.

“검사장! 대답 좀 해 보세요!”

의원들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그 얼굴에 어떤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의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며 술을 마실 뿐이다.

사람이 모이면 파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의 모임은 크게 백기호 의원과 김영준 검사장의 계파로 나뉘었다.

정치인도 아닌 김영준 검사장이 이들 계파의 수장을 맡은 이유는 세 가지.

-김영준 검사장은 정계와 관련이 없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치울 수 있는 존재다.

-김영준을 총장으로 만들면 반대되는 놈들은 싹 다 죽일 수 있다.

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이 백기호 의원을 견제하느라 생각 못 한 게 있었다.

어느 모임이든 ‘장’에게는 권한이 존재한다.

그 권한이 권력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며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은 그 권력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들은 불만을 늘어놓고 있다.

그런데 불만은 해결해 주는 게 아니다.

외부의 적은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수단.

“검사장!”

그때 김영준 검사장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김영준 검사장이 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쥔다.

“그래, 서진아.”

그런데 김영준 검사장의 행동이 그대로 멎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김영준 검사장이 서둘러 일어서며 의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지검에 일이 생겨서요.”

의원들은 서둘러 나가는 김영준 검사장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떤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는 김영준 검사장의 얼굴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 * *

토요일은 느긋한 휴식을 취해도 모자랄 시간.

그런데 중앙지검은 달랐다.

계속해서 차량이 들어왔고 부장검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리고 있었다.

눈을 마주쳐도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게 전부.

그들은 말없이 건물로 향했다.

당직을 서던 검찰의 직원들도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며 그들이 대화를 나눴다.

“부장검사들이 왜 호출됐는지 알아? 김서진 검사가 신일승을 잡아 왔대. 이솔아가 자백하자마자 바로. 겁나 겁 없어.”

“아, 진짜······ 위장약 먹어야 할 것 같아. 난 김서진 검사 응원하는데, 너무 앞뒤를 생각 안 하고 저지르는 것 같아. 어떻게 꽂히면 지르고 보냐?”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신일승도 김서진 검사의 타이틀에 오르나?”

“되겠어? 신일승이야. 신마그룹 아들내미 신일승! 김서진 검사가 날고뛰어도 안 돼. 불구속으로 시간 끌다가 증거 불충분 또는 집행유예를 받겠지. 재벌 중에 마약으로 삐끗한 놈 봤어?”

“몇 명 있기는 한 것 같은데······.”

*

회의실의 분위기는 얼어붙어 있었다.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눈빛만 주고받는 중이다.

신일승을 잡아 온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누구든 끌려오는 게 검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타이밍.

이솔아가 자백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잡아 왔다.

신마그룹 회장은 자신의 막내아들을 타깃으로 지정한 것처럼 느낄 거다.

“하······.”

차장, 부장 검사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그리고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한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검사장님은 언제 오시는 겁니까?”

*

검사장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서진이 보였다.

“······해결 방법이 있다고?”

“네.”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이 신일승을 수사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신일승의 누나 신지연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조용히 해결하는 게 서로의 약속이었다.

재벌의 치부가 들춰지면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신마그룹의 회장이 자택을 벗어나 옷깃을 펄럭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런데 이제 조용해지기는 글렀다.

여배우, 그것도 청순함으로 인기를 끈 이솔아가 마약과 폭행을 주저없이 내뱉었다.

벌써 각 커뮤니티 사이트는 신일승의 이름으로 도배된 상태였다.

그런데, 서진은 해결 방법이 있다고 한다.

“말해 봐.”

*

그 시각.

신일승은 취조실에 앉아 있었다.

문이 딸칵 열리고 한 검사가 들어왔다.

한창희 검사, 신일승에게 용돈을 받은 사람이다.

그를 본 신일승이 환하게 웃었다.

“여기 들어와도 돼요?”

“CCTV는 껐습니다. 유리 벽 뒤에 있는 직원들도 잠시 나가 있으라 했고요.”

“역시 우리 형!”

신일승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그리고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뒤는 잘 파고 있어요?”

신일승은 한창희 검사에게 서진을 사냥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한창희 검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김서진 그놈은 깨끗해요. 이것저것 뒤져 봤는데······.”

“에헤이, 우리 형 또 뭔가 착각하고 있네. 누가 김서진이 범죄 일으킨 것을 찾아서 죽이라고 했나? 검찰이 하는 일이 뭐야? 없는 죄를 만드는 거잖아요! 난 사냥이라고 말했어요! 사냥! 대가는 큰 거 한 장!”

신일승이 조용히 웃으며 다리를 외로 꼬았다. 그리고 계속 말했다.

“김서진은 내가 패를 다 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 깐 게 아직 많아. 내가 즐기는 것이 이런 것이거든. 쭉 봐주는 거지. 그리고 김서진이 이겼다고 생각하면서 좋아할 때······.”

신일승이 손을 위로 올린 후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리고.

“꽝! 비행기를 태웠다가 떨어뜨려 죽이는 거예요. 난 그 모습을 보고 싶어. 그때 김서진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너무 궁금해. 내 앞에서 살려 달라 빌었으면 좋겠어요.”

“······.”

“검사 형, 큰 거 세 장으로 올릴게. 그러니까 확실히 하자. 김서진 그놈, 내 앞에서 무릎 꿇게 해 줘요. 금액도 확실히 할까? 300억.”

“······!”

한창희 검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300억이면 원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검찰을 그만두고 정당에 들어가 비례대표라는 금배지를 사고도 남는 돈이다.

“아, 끝이 아니에요. 검찰 때려치우고 취직이 걱정되면 우리 회사 고문으로 넣어 주죠. 거기도 용돈 정도는 나올 걸?”

신일승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있다.

사람을 움직일 때는 상대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액수를 던져라.

그럼 반드시 손바닥을 비비며 따른다.

“어때요?”

* * *

-인기 여배우 이솔아 씨가 그동안 마약을 복용했다며······.

삑! 텔레비전이 꺼졌다.

신마그룹의 장녀 신지연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창가로 걸어갔다.

신지연이 한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김서진······ 이거 재밌는 친구네.”

신지연은 신일승을 잡기 위해 서진과 손잡았고 그 과정을 돕기 위해 김영준 검사장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진행해?”

신지연이 서진에게 바라던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신일승을 체포하는 것.

최대한 ‘조용히’ 진행하는 것.

“시끄러워.”

그때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신지연이 손을 뻗자 비서가 휴대폰을 들고 건넸다.

“누구야?”

“김서진 검사입니다.”

신지연이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그리고 평소와 변함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 막냇동생을 잡아 준 것은 고마워요. 그런데, 나 지금 뒤통수 맞은 기분인데? 이건 어쩌죠?”

-찾아봬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요?”

-지금.

동시에 호텔 방의 문에서 쿵쿵쿵,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비서가 문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누구······.”

“김서진입니다.”

비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틀어 신지연을 바라봤다.

신지연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고개를 끄덕인다.

“열어 줘.”

문이 벌컥 열리며 서진이 들어왔다.

그리고 비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

“비서님은 잠깐 나가 주시고.”

비서가 지시를 받기 위해 시선을 틀자 신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있어.”

비서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신지연이 와인 잔을 보이며 말했다.

“한잔?”

“주세요.”

신지연이 디켄터에 와인을 넣어 흔들며 말했다.

“난 조용히 해 달라고 했는데, 연예인으로 시끄러워지는 것 싫다고. 잘생긴 동생분은 내 말을 어겼네? 어떻게 혼내 줘야 하나, 지금 그 생각 하고 있었어요.”

“이솔아의 일은 저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튈지 예상 못 했습니다.”

“어마? 난 그쪽이 미끼를 던졌고 이솔아가 낚였다고 판단했는데, 그게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네?”

신지연은 서진이 어떤 협잡질을 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미끼를 던진 것은 맞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

“이솔아의 형량은 기껏해야 2년 또는 집행유예. 물론 이미지를 망쳤으니 한국에서 활동하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해외 활동은 가능했을 겁니다.”

“······.”

“그런데 신일승에 대한 것을 폭로하는 순간 그 기회마저 모두 사라질 게 분명하죠. 그래서 이렇게까지 행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준비했던 변명이다.

서진이 이솔아를 움직였고 그녀의 미래까지 보장했다.

둘만의 약속이었다.

그런데 신지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런 말이 있어요. 변명이 길면, 거짓이다.”

“······!”

서진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거다.

서진이 미간을 찌푸릴 때, 신지연이 서진의 앞에 와인 잔을 내려 두며 말을 이었다.

“됐어요. 물은 이미 엎어졌고 해결 방안이나 말해 봐요. 변명이 아니라 그걸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니까.”

“회장님께는 이솔아의 개인 일탈로 보고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게 남는 것은?”

“신일승을 10년 이상 잡아 두겠습니다.”

신지연이 깔깔깔 웃었다.

서진의 말을 헛소리로 취급한 거다.

“십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아빠가 막을 텐데? 아빠가 나서면 검찰도 법원도 다 우리 편이에요.”

“형량은 제가 걱정할 일이고요. 신지연 사장님이 생각할 것은······.”

서진이 품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신일승과 신지연 사장님의 어머니가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신일승의 어머니가 몰래 차명 계좌를 만들었네요.”

“······!”

“그리고 신일승이 주가조작까지 하며 만든 비자금, 이것 역시 차명으로 관리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요?”

서진이 서류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쿡 찍으며 말했다.

“신마홀딩스의 주식을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었습니다.”

“······!”

신지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냥 철없는 애송이로 봤던 막내가 발톱을 숨기고 있었던 거다.

신지연이 마른 입술을 핥을 때, 서진이 계속 말했다.

“전 사장님과 계속 손잡고 싶습니다. 저는 신일승을 잡고, 사장님은 이 돈을 잡고.”

거래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거다.

신지연은 신마그룹의 주인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신지연이 묘하게 웃었다.

필사적으로 신일승을 잡아 둬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신지연이 붉은 입술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누나랑 비밀 친구 할래요?”

< 재벌 집 아들.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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