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25화 (125/250)

< 재벌 집 아들. -(4) >

그리고 서진의 옆에 도광현이 섰다.

지금껏 실실 웃고 있던 도광현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조금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비서실장은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문제는 신지연 사장이죠. 믿을 수 있을까요?”

신마 그룹 회장의 장녀, 신지연.

그녀는 신일승을 잡기 위해 서진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못 믿지.”

신지연이 서진을 돕는 이유는 ‘정의’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오직 재산 싸움.

더 많은 계열사와 더 많은 지분 그리고 돈.

목적은 탐욕이다.

그 이유로 서진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서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신일승을 잡으면 돌변할 거야.”

신지연은 신일승이 교도소에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히든카드로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신일승이 검찰에 오면, 신지연이 본격적으로 나설 거야. 그리고 신일승을 만나 협상하려 하겠지.”

-가진 지분을 내놓아라. 그럼, 빼내 주마.

신지연은 그럴 힘이 있다.

그 준비는 지금도 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성공만 하면 신지연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일승의 지분을 손에 얻을 수 있다.

-신마 그룹의 회장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지금은 아군이어도 그때는 적이다.

그 준비도 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비서실장이 신일승의 죄를 폭로해도 타격을 받지 않을 거야. 언론을 통해 비서실장을 정신 나간 놈 취급하겠지. 그리고 주가조작 피해자 중 목소리 큰 몇 명을 만나 돈을 줄 거야. 조용히 해 달라고.”

“......”

“그다음은 검찰에 영향력을 펼치겠지. 그 상황까지 가면 게임은 끝이야. 그 누구도 신일승의 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서진의 말을 듣던 도광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사회에서 재벌이라는 직함은 절대 권력 중 하나.

게다가 신지연은 신일승과 다르다.

신일승의 나이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하는 재벌.

하지만 신지연의 나이는 오십이 넘었다.

재력과 권력 그리고 그 성격도 완성에 가깝다.

도광현의 시선이 서진에게 옮겨졌다.

서진이 아무리 겁 없는 검사라 해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게 있다.

신지연은 그런 존재다.

그런데, 서진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싸움은 이겨 놓고 하는 거야.”

“네?”

“내가 신일승이 마약을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신지연이 이런 말을 했었어.”

-그건 몸이 안 좋아서 진통제 대신 썼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끝이야. 몰라요?

마약으로 걸린 놈들의 변명은 가지각색이다.

그중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두 가지.

-마약인지 몰랐어요.

-정식으로 처방받았어요. 약으로 쓰는 거예요.

“그런데, 마약을 비타민처럼 처먹었다는 게 밝혀지면, 어떤 변명을 할까? 그거 정말, 궁금해지네.”

서진이 알 수 없는 말을 던져둔 채 뚜벅, 뚜벅 계단을 내려갔다.

***

쿵쾅! 쿵쾅!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곳,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모두 클럽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건물.

사람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웨이터 한 명이 다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곧장 건물 뒤편의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그곳에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웨이터를 알아본 남자가 저벅, 저벅 걸어왔다.

“1.8g, 60명 정도 사용할 수 있어요. 혈관에 꽂으면 효과는 6시간에서 10시간.”

“고순도네?”

“우리 아이스가 확실하잖아요. 멕시코에서 어제 들어온 신선한 거라고 하면 좋아할 거예요.”

아이스는 필로폰의 은어.

그들의 손과 손으로 작은 비닐 포장지, 필로폰이 오갔다.

그리고 웨이터가 비닐 포장지를 흔들며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헤이.”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틀어보니 낯선 그림자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마약 거래했어?”

서진이었다.

웨이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누구?”

“검사.”

두 사람의 눈이 부릅떠졌다.

몸을 틀어 도망가려 한다.

“야, 그쪽으로 가지 마. 거기는 무서운 형사님들이 지키고 있어. 마약 수사대 무서운 것은 알지?”

서진의 말과 동시에 두 사람이 서로 눈짓했다.

그리고 선택은 빨랐다.

다시 몸을 틀더니 서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사든 뭐든 도망치면 끝이다.

게다가 이들은 둘.

“비켜 새끼야!”

그런데, 서진은 두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도 소풍을 나온 것처럼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들어와.”

“미친 새끼가!”

모자 쓴 남자는 서진이 미쳤나 싶었다.

보통은 이렇게 달려들면 형사도 겁을 먹는다.

혹시 칼을 들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런데, 서진은 달랐다.

이 상황에도 여유가 가득했다.

‘뭐지?’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숨어 있던 경호원들이 덮쳤고 쾅! 소리와 함께 남자와 웨이터가 땅에 처박혔다.

‘억!’하는 소리도 허우적댈 시간도 없었다.

경호원들이 재빨리 남자와 웨이터를 제압했다.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입으로 욕을 내뱉는 게 전부였다.

“씨발!”

그리고 서진이 남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더니 놈의 모자를 벗기며 입을 열었다.

“약쟁이네?”

눈만 보면 안다.

오랫동안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눈동자가 다르다.

서진이 놈의 팔을 확 걷었다.

주삿바늘이 가득했다.

“아이고, 주사까지 했어?”

마약은 맥주 등 음료에 타서 마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점점 더 강한 자극을 바라는 게 약쟁이의 운명.

결국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꽂게 된다.

여기까지 오면 말 그대로 중독자다.

“난 아무것도 몰라! 모른다고!”

서진이 놈의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알았어. 기다려.”

서진이 이번에는 웨이터의 팔을 걷었다.

이놈은 멀쩡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라는 거다.

“저, 저는 이게 뭔지 몰라요. 그냥 이 사람이 갑자기 줘서...”

물론, 약쟁이에 비해 말이 통한다는 것이다.

이놈도 횡설수설 변명을 내뱉고 있었다.

서진이 웨이터의 입에 담배를 물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너희들 통해서 윗선을 알아내려는 게 아니니까.”

“...그럼요?”

웨이터가 눈을 깜빡였다.

윗선을 건드는 게 아니면 누가 잡혀가든 상관없다.

그게 아니라면 누구의 이름이든 떠벌릴 수 있다.

서진은 놈들의 습성을 알고 있었고 휴대폰을 꺼내 웨이터의 앞에 보였다.

“이 여자 알지?”

놈의 눈이 부릅떠졌다.

서진이 웨이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일 하나 하자.”

***

며칠 후, 드라마 촬영 현장.

일을 마친 여배우가 고급 밴 차량에 탑승했다.

이솔아, 신마 그룹 신일승이 요즘 만나는 여자다.

“호텔로 가줘.”

이솔아가 피곤한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지만 매니저의 얼굴은 탐탁지 않았다.

“요즘에 찌라시에 누나 이름 나오는 것 알지? 조금만 긴장...”

“그만. 계속 말하면 확 잠수 탈거야.”

“누나!”

“신마 그룹이 연예부 기자 하나 통제 못 할 것 같아? 신경 쓰지 말고 가.”

매니저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정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누나, 신일승 소문이 안 좋아. 그 사람이 뭐라고 속삭이는지 몰라도 그거 다 거짓...”

“한마디만 더 해. 나 진짜 잠수 탈거니까.”

이솔아의 눈이 싸늘했다.

매니저는 더 말하지 않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차량이 움직였다.

이솔아는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간간히 미간을 찌푸린다.

신일승에게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서다.

‘바쁜 가?’

그리고 잠시 후.

운전을 하던 매니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에 있는 승용차 때문이다.

“저 새끼가 술 마셨나?”

이곳은 시골 길.

늦은 시간에 차가 다닐 곳이 아니다.

그런데, 앞의 승용차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멈춰 서기까지 한다.

“얼씨구?”

이곳은 1차선 도로다.

옆으로 빠져나갈 수도 없다.

매니저가 크락션을 울렸지만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하, 또 어떤 또라이 새끼가!”

매니저가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승용차를 향해 다가갔다.

승용차 운전석의 문을 손으로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이봐요!”

운전석의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

매니저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려는 순간.

“뒤에 이솔아 씨 타고 있죠?”

서진이었다.

하지만 서진을 알아보지 못한 매니저가 얼굴을 구겼다.

“스토커? 이런 또라이 같은 새끼가!”

매니저의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서진은 차분히 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동시에 매니저의 얼굴이 덜컥거렸다.

“거, 검사?”

“잠깐, 이솔아 씨와 할 얘기가 있는데? 자리 좀 마련해 주세요. 싫으면 검찰로 불러서 조사할까요? 그럼 기자들이 좋아하겠네. 청순가련의 여배우, 검찰에 불려오다. 어때요?”

“이, 이유가 뭔데요?”

“그건 알 필요 없고. 지금은 확인차 온 거라 잠깐 대화만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할래요?”

매니저는 서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길을 막는 미친 검사가 어디에 있나 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뉴스에서 본 얼굴이다.

매니저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서진은 이솔아가 타고 있는 차량에 올랐다.

이솔아는 서진을 향해 시선도 틀지 않고 그저 휴대폰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검사님이 무슨 일이래요?”

“궁금한 게 있어서.”

“어떤?”

“혹시 신일승과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난데없는 질문에 이솔아의 눈에 짜증이 확 솟아올랐다.

가뜩이나 신일승에게 연락도 안 오는데 검사라는 놈이 갑자기 찾아와 이런 질문을 하다니.

그녀의 날카로운 눈이 서진을 향해 틀어졌다.

“하! 야, 너 검사 아니지?”

서진은 담담했다.

이솔아의 이런 반응은 예상했던 것.

그리고 날이 서 있으면 서 있을수록 서진이 원하던 상황이다.

“신마 그룹에서 연예인 며느리를 받아들인 사례가 있는 것 같아?”

“야!”

“연예인은 첩으로도 안 둬. 그런데, 마약까지 했던 여자를 신마 그룹에서 혼인시킨다고? 웃기네.”

“...지금 뭐라고 그랬어? 뭐? 마약?”

“어, 마약.”

서진은 휴대폰의 녹음 어플을 틀었다.

녹음된 웨이터의 목소리가 흘렀다.

-이솔아요? 하...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1주일에 한 번은 와요. VIP실에 와서 아이스를 찾거든요? 그러니까 아이스가 뭐냐 하면요...

이솔아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불안한 눈동자를 애써 감추며 고개를 틀어 서진을 향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마약을 했고 그 앞에 검사가 있는데도 이솔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신일승을 믿고 있는 거다.

신마 그룹의 힘을 알고 있어서다.

이솔아가 다급히 손가락을 움직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일승에게 거는 거다.

그녀는 신일승이 전화만 받으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안 받을 거야.”

“.....!”

서진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서진의 말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이솔아의 눈동자가 다시 서진을 향했다.

서진이 말을 이었다.

“엘미? 그런 이름의 아이돌 가수라고 들었는데. 어쨌든, 그 가수가 신일승이 있는 호텔에 들어갔어.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쎄쎄쎄를 하지는 않겠지.”

서진이 휴대폰을 틀자 몸매로 유명한 아이돌 가수 엘미의 사진이 보였다.

그것도 호텔의 VIP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모습.

어디로 향하는지는 뻔했다.

이솔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배신감을 느꼈는지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문다.

그리고 서진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확인해 봐. 그리고 복수하고 싶거나, 신일승의 인생을 망쳐 버리고 싶거나, 그런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이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노한 눈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

-VIP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시면 되요. 언제쯤 도착할 수 있어요?

12월 27일, 한해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서진은 장관의 아들 이중호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2시간 후에나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요.”

-주말에도 고생이시네요. 천천히 오세요.

오늘은 권력자의 아들과 딸 그리고 신일승, 그들의 모임이 있다.

드디어 신일승의 얼굴을 보는 거다.

서진이 서류를 책상에 올려두며 창밖을 바라봤다.

‘비싼 얼굴 한번 보겠네.’

하지만 그것도 업무가 끝났을 때다.

서진은 다시 서류를 쭉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확인할 게 있어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어?’

속보가 떠 있다.

-이솔아, 잠적.

바로 기사를 확인했다.

이솔아가 드라마 촬영을 펑크내고 잠적했다는 내용.

동시에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네, 김서진...”

-봤지?

이솔아였다.

대뜸 반말을 하고 있다.

“지금 어디야?”

-기사 봤냐고!

“어.”

원하는 대답을 해줬더니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서진은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흘렀을 때, 힘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죠? 필요해요. 도움.

서진은 차 키를 손에 쥐며 몸을 일으켰다.

*

다시 만난 이솔아는 경기도 양평의 별장에 있었다.

며칠 전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는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꽤 예쁜 얼굴이었는데.

“...설마 폭행을 당했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지만 코와 광대가 검게 멍든 게 보였다.

그리고 이솔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선글라스를 벗었을 때는 정말 처참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지 않아도 예상됐다.

이솔아는 신일승에게 여자관계를 캐물었을 거다.

그리고 신일승은 폭력을 사용했다.

잔인할 정도로.

이솔아가 선글라스를 테이블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마약 했어요. 인정할게요.”

이솔아의 목소리는 정말 서늘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한다는 말이 확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혼자 한 거 아니에요. 신일승이랑 같이 했어요.”

“......”

“왜 대답이 없어요? 그 새끼 인생 망치고 싶으면 연락하라면서요?”

“......”

“못 해요? 생각해 보니까 어려워? 그 새끼가 재벌이니까?”

“......”

“씨발! 대답하라고!”

이솔아의 눈빛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리고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

***

“유명한 분 오셨네요!”

모임이 있는 VIP실이었다.

서진이 들어가자 놈들이 환영했다.

이미 만취된 놈들이 흐느적거리며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서진은 놈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직.

‘신일승.’

곧 박살 날 놈이 거만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서진을 보고 있었다.

놈이 와인 잔을 들며 입을 연다.

“검사님, 나 알지?”

< 재벌 집 아들.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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