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24화 (124/250)

< 재벌 집 아들. -(3) >

서진의 대담한 말에 신지연이 깔깔깔 웃었다.

그러다가 뚝 웃음을 그치며 서진을 향했다.

“잘생긴 줄만 알았는데, 화끈한 남자네?”

“그 칭찬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잘못 짚었어요. 누나가 돼서 막냇동생이 옥살이 하는 꼴을 볼 수는 없잖아요? 아무리 썩은 이빨이라 해도 고쳐서 써야지.”

거짓말이다.

신지연과 신일승은 어머니가 다르다.

그래서 신지연은 신일승을 정말 싫어한다.

뒤늦게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과 재산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지연이 거절한 이유는 하나다.

자신에게 명분을 달라는 것.

동생을 감옥에 처넣어도 될 만한 명분을 준비해 달라고 눈짓하고 있다.

그리고 서진은 준비해 왔다.

“동생분이 ENS 주가조작에 참여한 것은 아시죠?”

“제 이름으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걸요? 다 차명일 거예요. 그리고 이미 옥살이를 대신할 사람도 준비해 뒀을 거예요. 걔가 머리가 나빠도 그런 잔머리는 있거든.”

“제가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것은 동생분이 차명을 사용했다는 증언과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신지연의 눈빛에 기대가 서렸다.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요?”

“네, 그리고 또 하나······ 마약을 기호 식품으로 사용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신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몸이 안 좋아서 진통제 대신 썼다고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끝이야. 몰라요?”

“주가조작과 마약, 두 개의 혐의. 그리고 연예인.”

신지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연예인?”

“지라시에서도 많이 소개됐었죠? ‘여배우 A 양이 재벌 그룹의 아들 B 군과 만나 마약을 한다는 소문’. 그거 이솔아라는 여배우와 신일승입니다.”

신지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거 밝혀지면 시끄럽겠네?”

“네. 회장님을 생각하셔야죠. 연세 드셔서 건강도 안 좋으신데, 기자가 찾아오면 안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

“최대한 조용히 잡겠습니다.”

“내가 도울 것은?”

“회장님을 막아 주십시오.”

“오케이, 또?”

“우리 검사장도 좀······.”

신지연이 물끄러미 서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입을 막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작은아버지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더 어렵죠. 제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좋아요. 거기까지는 내가 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신지연이 와인 잔을 손에 들었다.

“잘생긴 어린 친구랑 한잔 하고 싶은데, 어때요? 연말이잖아.”

“주시면 잘 먹겠습니다.”

“어쩜, 말하는 것도 예쁘고.”

신지연이 서진을 음탕한 눈으로 바라봤다.

서진은 소름 끼치는 것을 느꼈지만 최대한 웃으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왜? 이 누나가 무서워요?”

*

잠시 후, 서진은 호텔방을 나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향하며 슬쩍 웃었다.

‘좋네.’

신마그룹의 가족 관계도는 서준경 검사였을 때 조사해 뒀던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쳤었어.’

가진 것 하나 없는 놈이 검사 신분증 하나 믿고 세상 모두를 적으로 만들었었다.

몇 년 더 살아 보니, 그게 참 천둥벌거숭이 같은 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진의 힘은 서준경이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다.

돈이 있고 권력자들의 치부도 손에 들고 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강해지니까 알 것 같다.

알고 있는 것만큼 보인다고, 이제야 상대가 얼마나 거대한지 느낄 수 있었다.

법 위에 사는 놈들은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을 법으로 잡겠다고 날뛰었으니, 정말 스스로 죽기 위해 달려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둘러야지.’

서진의 최종 타깃이 명확해졌다.

신마그룹을 밟고 그 계열사를 먹고 권력자들의 머리채를 쥔 후.

‘김영준 검사장을 찍는다.’

김영준 검사장은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자신의 행동에 거침이 없다.

형제와 아들마저도 언제든 죽일 수 있는 놈이다.

그래서 그놈을 잡아야 가족이 행복하다.

서진은 호텔 밖으로 나왔다.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 취기가 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몸을 웅크리지 않는다.

‘가자.’

서진이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걸었다.

* * *

-불법 대부업 특별 단속으로 무등록 대부업체, 연 이자 최대 3만 1천 퍼센트의 고금리를 받아 온 사채업자 김모 씨 등 20여 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금융기관에서 대출이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건당 20만에서 100만 원씩······.

“김서진이지?”

“어.”

다른 사람들은 연말의 즐거움을 느낄 때였다.

하지만 중앙지검, 그곳에서 서진을 싫어하는 검사들에게는 겨울의 추위가 더 시리게 느껴졌다.

서진이 닥치는 대로 사채업자를 잡아 오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책상에 가득 쌓인 서류를 보며 기소와 불기소로 고민할 때 서진은 계속해서 트로피를 진열하고 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새끼, 검사장 백 있다고 업무 빼 준 거 아니야?”

“아니래. 내가 그쪽 팀한테 물어봤는데, 업무는 밤새면서 하고 낮에는 저 지랄 하고 다닌대.”

어떻게든 까 내릴 것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저런 새끼가 있으니까 우리가 노력해도 병신 취급······. 잠깐만?”

한창 서진을 씹어 대던 검사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발신 번호를 확인하더니, 주변을 눈치를 슬슬 보며 흡연장을 빠져 나갔다.

놈이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걸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사장님.”

-에이, 사장은 무슨, 그냥 편하게 해요. 편하게. 그렇다고 퍼질러지지는 말고.

신마그룹의 막내아들 신일승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형님, 좀 봅시다. 소율이는 잘 크고 있죠? 내가 우리 조카 용돈 준 지가 오래 된 것 같은데.

검사의 눈에 탐욕이 깃들었다.

용돈이라고 말하지만 그 액수가 크다.

한 번에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 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알고 있다.

“어디서 뵐까요?”

-내가 묵는 호텔 알죠? 요즘에는 여기 항상 붙어 있으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알겠습니다.”

검사의 이름은 한창희.

서진의 4년 선배 검사다.

*

그리고 호텔.

신일승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낄낄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배우가 신일승에게 딱 달라붙은 후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누구야?”

“있어. 돈 벌겠다고 새벽에 출근해서 아등바등 사는 사람들. 그렇게 일하고도 천만 원도 못 버는 사람들. 거지새끼들.”

“응? 그런데 그런 사람을 왜 만나려고?”

신일승이 픽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더니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저쪽 아래에 있는 개새끼 한 마리가 나한테 짖어 대네, 개새끼들의 규칙을 따르라고. 그런데 인간이 개하고 싸울 수는 없잖아? 개끼리 싸우는 걸 보면서 돈을 거는 게 인간이지. 그래서 개싸움 한번 구경하려고 해, 얼마나 잘 싸우나.”

잠시 후.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신일승이 여배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넌 방에 들어가 있어.”

여배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옷가지를 들고 방으로 향했다.

신일승이 뚜벅뚜벅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검사가 보인다.

방금 통화했던 중앙지검 한창희 검사다.

신일승이 활짝 웃으며 한창의 검사를 반겼다.

“아이고, 우리 형. 오랜만에 봤더니 신수가 훤해지셨네.”

서른도 안 된 놈이 이런 말을 지껄였지만 한창희 검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 가진 놈이 왕이 되는 사회다.

이놈에게 돈을 받아야 딸이 계속해서 수천만 원 학비의 국제 학교를 다닐 수 있다.

신일승이 소파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앉아요.”

“네.”

한창희 검사는 테이블에 놓인 대마초를 발견했다.

하지만 보지 못한 척 고개를 틀어 신일승을 바라봤다.

신일승이 씩 웃으며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원하는 것은 내 얼굴이 아니라 이거일 테고.”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하나 조지고 싶은 새끼가 있어서요. 사냥 좀 부탁드립시다.”

“누구죠?”

“검사는 옷 벗을 각오를 한다면 누구든 박살 낼 수 있다면서요?”

“하하, 옛 말입니다.”

“못해요?”

신일승의 삐뚤어진 눈빛에 한창희 검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상대에 따라 다르겠죠.”

“같은 검사.”

한창희 검사의 눈빛이 짙어졌다.

“······누구죠?”

“김서진.”

“······!”

한창희 검사의 당황한 눈빛을 보며 신일승이 킥킥킥 웃었다.

그리고 대마를 꺼내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알아, 알아. 그 새끼 작은아버지가 검사장이라며?”

“검사장을 막아 주실 수 있습니까?”

“에이, 내가 어떻게 막아요. 그쯤 되는 사람은 늙어 죽기 기다려야지. 그런데요, 김서진을 잡으면 옷 벗어야 해서 걱정하는 거죠?”

한창희 검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신일승이 방긋방긋 미소를 그리며 계속 말했다.

“평생 검사 할 거예요? 어차피 진급 못하면 옷 벗어야 한다며? 그럼 변호사 하려고? 평생 변호사 해서 얼마 벌 수 있어요?”

“사, 사장님······.”

“김서진 목에 큰 거 한 장 걸게요.”

한창희 검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신일승이 비열하게 웃으며 계속 말했다.

“내 스케일 쩨쩨하지 않은 거 알죠? 내가 큰 거라고 말하면 진짜 큰 거야.”

* * *

“실장님이 총알받이가 될 겁니다.”

그 시각.

서진은 남한산성의 한 한정식집에서 신일승의 비서실장을 만나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여섯, 특이 사항으로 초등학교 6학년의 아들이 있다.

비서실장이 끌끌끌 웃었다.

“그래서요? 지금 신일승 사장을 밀고라도 하라는 겁니까?”

“네.”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 궁금해서 왔는데. 괜히 왔네요.”

비서실장이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서진이 말을 던졌다.

“신마그룹 회장님의 장녀 신지연 사장님이 허락했습니다.”

비서실장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고개를 비틀어 서진을 향한다.

“······신지연 사장님이?”

“신일승은 포토 라인에 세워지겠죠. 그런데 실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곳에 서는 것은 실장님이 될 겁니다. 모든 죄를 떠안은 채, 부끄러운 아빠가 되겠네요.”

알고 있다.

그게 재벌가의 방식이다.

문제 될 게 있으면 총알받이를 찾는다.

검찰이 수긍할 만한 선에서 처리한다.

그 선이 신일승에게는 비서실장이다.

서진이 술병을 들어 자신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사채를 이용한 주가조작, 여기까지는 재벌의 힘으로 정말 좋은 변호사를 써서 3년 정도 살고 나올 수 있다고 하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국민 정서. 이번 주가조작으로 자살한 사람이 몇인지 알고 계십니까?”

“······.”

“아들이 6학년이라고 들었는데, 군대에서 제대하고 만나겠네.”

“······.”

“난 그럴 자신이 있고. 이해했으면 다시 앉아요. 서 있는 사람 보고 있으니까 목 아파요.”

비서실장이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서진이 술병을 들어 비서실장의 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전 상관없어요. 실적만 채우면 되니까. 신일승이든, 실장님이든.”

“······.”

“그런데 죄 없는 분이 남의 죄를 짊어지고 보릿고개 건너는 꼴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 결정하세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비서실장은 멍하니 있었다.

‘신지연이 뒤에 있다고?’

장녀가 나섰다.

그리고 앞세운 칼잡이가 김서진이다.

정재계에서 미친놈이라 소문나고 있는 그 김서진.

정말 아들을 다시 안아 볼 수 있는 게 10년 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진의 말을 마냥 따르기도 어렵다.

비서실장이라 하지만 월급쟁이, 매달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으로 가족이 먹고사는 중이다.

그게 사라지면 굶어 죽는다.

대출은 어떻게 갚고, 아들의 학원비 그리고 지금껏 누리던 안락한 생활은 또······.

비서실장 역시 신일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신일승은 밥줄이었다.

비서실장의 입에서 끔, 소리가 흘렀다.

고민으로 가득한 표정이 눈빛에서부터 전해졌다.

순간 비서실장의 귀에 서진의 목소리가 박혔다.

“회사 생활은 계속 이어 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죠.”

“네?”

“제가 아는 투자자가 있는데, 신일승을 흔들면서 신마그룹 계열사 하나를 꿀꺽 하려고 해요. 아, 그것도 실장님이 도와주면 되겠네요. 어떤 계열사가 좋은지, 어떻게 하면 계열사를 먹을 수 있는지.”

비서실장은 서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리고 선글라스를 낀 도광현이 들어왔다.

도광현이 비서실장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사주 한번 보세요. 오늘 귀인을 만날 것이라고 적혀 있을 테니까.”

사이비 종교의 3천억을 손에 넣기 위해 해변으로 한 달 동안 출장을 다녀온 도광현.

겨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탔다.

도광현이 거침없이 비서실장의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합시다. 지금 연봉이 얼마예요? 그게 얼마인지 몰라도 두 배 줄게요.”

“그게 무슨······?”

“그리고 신일승을 잡고 계열사를 먹으면······.”

비서실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앞에 앉은 까만 남자, 도광현은 연봉 두 배에 이어 ‘그리고’라는 말을 전했다.

갑자기 나타난 미친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그게 사기일지라도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었다.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도광현이 입을 열었다.

“그 계열사 대표는 그쪽이 하세요.”

“······!”

“난 투자자, 경영은 몰라요. 왜?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거짓말 같죠? 막 미친놈이 떠벌리는 것 같죠? 자금이 얼마 있는지 확인시켜 드려야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선금을 드려야 믿으실까?”

잠시 후, 비서실장은 신일승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

도광현의 말은 가벼웠지만 그가 내세운 자산과 계획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신지연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망설일 이유는 없다.

신일승의 곁에 있으면 평생 뒤치다꺼리, 또는 교도소에 있다가 퇴직하겠지만 도광현의 손을 잡으면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

그리고 한정식집을 나올 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지난번 모임에서 만난 장관의 아들 이중호.

“네, 김서진입니다.”

-모임 날짜 정해졌어요. 이번 주에 망년회 할 겸 보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네, 괜찮죠.”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이제 신일승을 만날 시간이다.

< 재벌 집 아들.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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