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23화 (123/250)

< 재벌 집 아들. -(2) >

캐비닛 안에는 007 가방이 보였다.

서진이 소상우에게 줬던 것, 총 8억.

‘좋아, 그대로 있네.’

자신의 것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게 세상 사는 법이다.

8억인데, 놓고 가는 게 이상한 거다.

캐비닛에서 007가방을 꺼낸 후 이번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첫 번째 서랍에는 담배, 그 옆에는 라이타.

마지막 서랍을 열자 휴대폰이 스무 개 정도 보인다.

‘이것도 땡큐.’

서진이 놈의 휴대폰을 모두 가방에 쓸어 넣었다.

이 안에 소상우의 쩐주와 연결되는 고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때,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네, 부장검사님.”

-지금 압수 수색 출발했어. 20분이면 도착할 거야.

역시 부장검사의 백이 좋다.

압수 수색부터 수사관까지 일사천리다.

“감사합니다.”

서진은 기분 좋게 말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20분이라······.’

시간은 충분하다.

서진은 필요한 것을 착착착 챙기기 시작했다.

***

중앙지검, 취조실.

문이 끼익 열리고 서진이 들어왔다.

테이블에 인상을 구기고 앉은 소상우가 보였다.

“어이, 깡패! 사무실에서 거들먹거리는 것보다 거기 앉은 모습이 더 잘 어울리네?”

서진의 말에 놈이 한숨을 내뱉으며 답했다.

“긴급체포는 48시간이죠?”

소상우는 깡패 출신이다.

검찰에 하도 끌려와서 그런지 조잡한 법을 잘 알고 있다.

서진이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48시간은 기대하지 마. 어차피 구속될 거야. 너희 그 팀장인가? 그놈이 술술 불고 있다던데? 네 지시로 폭력을 휘둘렀다고.”

소상우가 입술을 씹었다.

팀장이 떠벌렸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검찰이다.

피를 나눈 형제도 서로를 배신하는 곳, 게다가 사전에 입을 맞추지도 않았다.

소상우는 팀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젠장.’

소상우가 팀장의 행동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서진이 놈의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주가조작, 그거 하나만 가자.”

“······!”

“대신 고금리는 법정금리 이하로 낮춰. 지금껏 넘게 받은 게 있다면 원금에서 제해. 마지막으로 폭력을 썼던 사람에게는 피해 보상을 확실히 해. 지켜볼 거야. 약속할 수 있겠어?”

소상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원하시는 겁니까?”

“이해 빨라서 좋네. 네 쩐주 누구야?”

“네?”

“쩐주 누구냐고.”

소상우는 이제야 서진의 눈을 봤다.

이글거리고 있다.

앞에 선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만 같다.

“그······ 검사님을 밀었던 것 때문에 그런 겁니까?”

“어. 그러니까 머리 굴리지 말고 대답해. 그리고 결정해. 주가조작으로 7년 살지, 모든 것 다 끌어안고 12년 갈지.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서진은 확신했다.

소상우는 털어놓을 거다.

돈으로 엮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 저도 7년만 살고 싶은데요. 이미 끝났을 겁니다.”

“뭐?”

“저희 회사가 엄밀히 말하면 네트워크 방식이거든요.”

가장 큰 손이 돈을 뿌린다.

그 돈을 밑의 놈이 받아 그 아래에 빌려준다.

그리고 또 그 밑, 그 아래로 쭉쭉 이어져 내려간다.

피라미드, 다단계 구조였다.

“제가 검찰에 잡혀 온 소식이 이미 올라갔을 거예요.”

“그래서?”

“숨었겠죠. 대포폰은 바다에 집어 던졌을 거고 대포통장도 정리에 들어갔을 겁니다. 검사님이 지금부터 시작한다 해도 저 같은 핫바지가 전부인 거죠. 아시잖아요? 경찰이나 검찰은 언제나 사건이 모두 종료된 다음에 도착하죠.”

서진이 소상우를 조용히 바라봤다.

입꼬리가 움직이고 있다.

뭔가 알고 있다는 뜻.

“표정 보니까, 잡을 방법이 있다는 거네? 원하는 게 뭐야?”

“이 나이에 옥살이 7년은 좀 길고 3년으로 맞춰 주시면 안 될까요?”

“좋아.”

“정말요?”

소상우의 눈이 번뜩였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단, 주가조작에 신마그룹 막내아들이 관여했다는 것을 증언해.”

“네? 신마그룹이요?”

소상우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껌뻑였다.

그러다가 낄낄낄 웃기 시작했다.

“와, 검사님, 지난번부터 느끼기는 했지만 진짜 예사롭지 않은 분이네요? 신마그룹을 건들 생각이에요? 진짜?”

“어.”

“큰손하고 신마그룹하고 둘 중 하나만 하세요. 안 그러면 진짜 위험해요.”

“됐고. 어떻게 할래? 3년? 아니면 7년? 그것도 싫으면 12년?”

소상우가 손을 저었다.

“신마는 됐습니다. 그쪽 막내아들은 나이가 어려요. 그리고 그 사람들 성질 알죠? 저 같은 놈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면 제가 죽을 때까지 괴롭힐걸요.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소상우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놈은 진심으로 신마그룹을 두려워하고 있다.

“좋아. 그럼 큰손만 말해.”

“3년.”

“12년 갈까?”

“하······ 야박하시네. 3년.”

그 말을 끝으로 소상우는 입을 꾹 닫았다.

3년이 아니면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됐다. 15년 구형할게.”

“네?”

“15년 구형한다고.”

“주가조작은 보통 5년 이하잖아요! 2년, 3년 살다 온 놈도 많은데!”

놈이 억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서진이 놈을 향해 냉랭하게 말했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어. 사채를 조달해 주식을 고가에 매수했고 허위 사실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한 사건. 어때? 너랑 비슷하지? 그런데 이 사람 12년 받았더라. 그런데 넌 죄질이 더 악랄해. 병합되는 죄가 더 존재하지. 네가 지금 똥오줌 가릴 때가 아니야.”

“······!”

“됐다. 협상 끝.”

서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으로 향했다.

소상우를 초조하게 서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협박이야, 협박. 분명히 다시······ 몸을 돌릴 거야. 넘어가면 안 돼. 검사들은 원래······.’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1분, 2분, 10분이 지나도록 서진을 돌아오지 않았다.

소상우의 머릿속에는 15년 후 자신의 나이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 두렵기만 했다.

그리고 20분, 결국 소상우가 외쳤다.

“젠장! 알았어요! 알았다고! 방금 그 검사, 다시 불러 줘요!”

동시에 벌컥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서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7년?”

“하······.”

소상우는 한숨을 내쉬며 침묵했다.

긍정의 뜻이다.

서진이 다시 취조실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소상우는 서진의 미소가 얄미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칼자루는 서진이 들고 있다.

소상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위험해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차라리 연예인 걱정을 해.”

“하······ 좋아요. 네트워크라고 했잖아요? 전 제 위는 몰라요. 필요할 때 통화만 하고 돈은 대포통장으로 받았으니까요.”

“그래서?”

“저처럼 일선에서 일하는 실무자가 없어져 봐요.”

프랜차이즈 회사도 매장이 있어야 돈을 번다.

그런데 매장이 없어지면 돈을 벌 수 없다.

놈들도 똑같다.

“그러니까 검사님이 실무자들을 계속 지켜보다가 조금만 금리를 어겨도 잡아 버리는 거예요 물론, 법정이자를 지키며 운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이들을 찾을 정도의 사람이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직전이다.

그래서 돈을 빌린 후에 배 째고 도망가는 사람, 금리가 비싸다며 신고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법정이자를 어떻게 지켜요? 먹고 튀는 놈이 반인데.”

“그래서, 내가 돈 장사를 계속 훼방 놓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나를 죽이려 할 거다?”

“네, 그 새끼들이 검사님의 앞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좋네, 마음에 들어.”

소상우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아는 우리 회사의 가맹점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 말씀드릴게요.”

대한민국의 대부 업체는 약 8천 곳.

이용자 수는 200만여 명.

당연하지만 그 전체를 쑤실 수는 없다.

소상우의 정보를 이용해 타깃으로 삼아 공략해야 한다.

서진이 노트를 꺼내 소상우의 앞에 건넸다.

“적어.”

“······그럼 구형은 3년.”

“닥치고 적어.”

소상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무실을 적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돈으로 이렇게 많은 불법 대부 업체가 운영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쭉쭉 나왔다.

그리고 한참 펜을 움직이던 소상우가 시선을 들어 서진을 향했다.

“제 휴대폰을 챙겼다고 하셨죠? 거기 빨간 케이스로 덮인 것 있거든요? 이놈들의 전화번호는 거기에 박혀 있어요.”

“땡큐.”

소상우는 다시 업체명을 적기 시작했고 서진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소상우에게 엮인 게 둘이다.

신마그룹의 막내아들 그리고 사채시장의 큰손.

그 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돈.

처절하게 살아가는 노예.

보이지 않는 계급.

뿌려지는 돈에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서진은 놈들을 찢어 버릴 거다.

***

며칠 후 밤이었다.

사람들이 송년회를 가지며 새해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호텔의 펜트하우스.

신마그룹의 막내아들 신일승이 배를 잡고 웃는 중이었다.

“병신 새끼.”

텔레비전에는 이두진 변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신일승 사장은 코스닥 상장사인 ENS의 주가를 조작하고!

신일승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나를 잡겠다고? 저러니까 코미디 프로그램이 망하는 거야. 저 헛소리가 더 재밌으니까. 하하하!”

신일승은 이두진 변호사가 자신을 잡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개미 한 마리가 코끼리를 물어 죽이는 게 빠르다고 여겼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나라의 법은 저들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 같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니까.

애초에 법은 강자들이 만들었다.

법은 약자들을 위한 게 아니다.

강자를 위한 거다.

그때였다.

신일승의 휴대폰이 벨 소리를 울렸다.

신일승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 말해.”

-소상우가 사장님에 대한 것을 떠벌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 누구? 소상우?”

-네, 김서진 검사가······.

신일승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김서진, 어디선가 들어 봤던 이름이다.

“김서진, 김서진······.”

잠시 중얼거리던 소상우가 그대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주소록을 찾아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나야. 김서진이란 놈이 이번에 우리 모임에 들어온 새끼 맞지?”

-어? 어.

소상우가 픽 웃었다.

“오랜만에 모임 좀 갖자.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고 싶어졌어.”

***

그 시각, 서진은 어느 호텔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고 서진이 내렸다.

저벅저벅, 복도를 걸었다.

긴 복도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좌우로 도열해 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묵직한 목소리에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마피아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복도의 분위기는 흉흉했고 수십 명의 사내가 서 있는 것만으로 깡패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 것 같았다.

사내의 손에 의해 방문이 열렸다.

서진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VIP 룸.

흰색 모피 코트를 두르고 있는 50대 초반의 여성이 창밖을 보고 서 있었다.

서진이 들어온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녀가 입을 연다.

“김서진 검사?”

“네.”

그녀가 천천히 몸을 틀었다.

그리고 서진을 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신마그룹의 장녀 신지연, 차세대 여성 리더라는 칭호가 항상 따라 다니는 사람이다.

신지연이 들고 있던 와인잔을 테이블에 내려 두며 서진을 바라봤다.

“듣던 대로 잘생겼네.”

“감사합니다. 사장님도 듣던 대로 미인이시네요.”

“나이도 어린 사람이 그런 말 하면 못 써요. 나이 많은 누나 마음이 설레거든.”

“뭐, 사실입니다.”

“어쨌든, 기분은 좋네.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나이 많은 누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거죠?”

서진이 그녀에게 연락했다.

한번 보자고.

그리고 신지연은 수락했다.

재벌가의 딸이 일개 검사의 연락에 콜을 외치지는 않는다.

검사는 자신과 만날 급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신지연이 굳이 서진을 만났다.

이유는 하나, 서진의 의도를 예상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서진은 빙빙 돌리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앓는 이 뽑아 드리겠습니다.”

“어마, 내가 요즘 치과에 다니는 건 어떻게 알았대? 그래서, 어떤 이를 뽑아 줄 건데요?”

“신일승.”

< 재벌 집 아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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