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22화 (122/250)

< 재벌 집 아들. -(1) >

***

어느새 모임이 끝났다.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운전기사가 운전을 하고 뒷자리에 서진과 김영준 검사장이 타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은 말이 없었다.

창밖을 보며 오늘의 모임을 떠올리는 중이다.

누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눴는지, 어떤 놈을 중심으로 세력이 만들어지는지.

서진은 힐끗 김영준 검사장을 살피며 며칠 전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회사를 압수 수색했었다고?’

도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된 놈이면 제 형의 회사를 뒤집어 놓을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놈은 진짜 미쳤어.’

김영준 검사장의 머릿속에는 사회적 성공밖에 없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가족도 형제도 놈에게는 수단일 뿐이다.

이런 놈을 사회에 풀어 두면 안 된다.

이런 놈이 위로 올라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개인적인 원한을 떠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어땠어?”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에게 시선을 틀었다.

서진이 속마음을 감추며 미소 지었다.

“좋았어요.”

“오늘 모인 사람들, 검찰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너한테 전화할 수도 있어.”

“저한테요?”

“널 사냥개로 쓰려는 거야.”

하지만 사냥개가 나쁜 것은 아니다.

놈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두 서진의 손에 남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도와줘. 하지만 그 전에 나한테 보고해. 필요한 놈과 필요 없는 놈을 가려야지.”

김영준 검사장은 진심으로 서진을 위하는 것처럼 미소 지었다.

서진도 그 미소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진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서진이 내렸고 차 문이 닫혔다.

동시에 김영준 검사장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짙은 선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서진은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김영준 검사장의 얼굴에 미소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정말 묘한 눈빛으로 서진을 보고 있다.

***

“헤이, 우랑탕?”

다음 날, 서진이 소상우의 사무실을 찾았다.

“아, 진짜!”

소상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요!”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별명인가 보다.

하지만 서진이 007가방을 테이블에 올려 두자 손바닥을 비비며 좋아했다.

“3억.”

“잉? 잔금은 15억 아니었어요?”

“그건 놈들이 확실할 때지. 아직은 꼬리라며?”

소상우는 “그렇죠. 꼬리만 잡았는데 3억이면 합리적이죠.”라고 중얼거리며 가방을 열어 돈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보며 서진은 픽 웃었다.

소상우를 보고 있으면 정말 웃겼다.

돈이라면 발가락이라도 핥을 기세였다.

서진이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이야기해 봐.”

소상우는 돈을 확인 후 가방을 닫았다. 그리고 테이블 아래로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오정길이라는 놈이 있어요. 외국인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놈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이상해요. 생각해 보세요. 불법체류자나 단기 체류 외국인을 상대로 누가 돈을 빌려줘요?”

“그래서?”

“그런데 이 오정길이란 놈은 상관 않고 빌려줘요. 그리고 불법체류자 중에 유명한 놈도 끼어 있었어요.”

소상우는 기사가 인쇄된 종이를 꺼내 서진에게 건넸다.

사람을 인신매매해 장기 매매를 하려다 잡혔던 외국인의 기사다.

“이놈들도 오정길한테 돈을 빌렸었어?”

“네, 빌린 돈으로 여인숙에 달방 전전하면서 그 지랄 하고 돌아다녔던 거고요. 어때요? 냄새가 나죠?”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만 들어도 썩은 내가 진동한다.

어쩌면 외국 자본을 중심으로 한 깡패 집단일 수도 있다.

소상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 스케일의 쓰레기면, 검사님을 옥상에서 팍! 하고 집어 던지라고 지시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김서진이 이놈들을 조사했다고?’

썩은 내는 나지만 원래의 서진과는 연관성이 부족하다.

벽에 적힌 글씨를 보면 오직 작은어머니와 김영준 검사장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확답을 내리면 안 된다.

아직 벽에 적힌 글씨 중에는 해석 못 한 약어가 많았고 그곳에 이놈들의 이름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불법체류자라면 검사를 테러하는 데 망설임이 없을 거다.

언제든 배를 타고 빠져나가면 영원히 찾을 수 없으니까.

‘오케이.’

생각만 해서는 진행이 안 된다.

일단 움직여야 한다.

“땡큐.”

서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소상우가 실실 웃으며 말한다.

“수사해서 이놈들이 맞으면 나머지 돈도 주시는 것 맞죠?”

“속고만 살았어?”

“네, 속고만 살았습니다. 믿을 놈 하나 없어요. 하지만 돈은 믿을 수 있죠.”

“그래, 그 마인드 잊지 마. 대신 불법적인 일은 절대 손대지 마. 안 봐줘.”

“옙!”

할 말은 모두 끝났다.

그런데 사무실을 빠져나가던 서진이 멈칫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틀어 소상우를 향했다.

“야,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지?”

“죽는 것이나 다치는 것 빼고 뭐든 할 수 있죠. 아, 검사님 앞이니까 불법적인 일도 안 할 겁니다. 흐흐.”

헛소리를 하고 있다.

소상우의 죄는 명확하다.

-벤처기업 ENS의 주가를 장난질한 것.

-법정금리를 넘어선 이자를 받으며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은 것.

-돈을 받지 못하면 폭력을 사용한 것.

하지만 신마그룹 신일승을 잡아넣기 전까지는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그게 옛 친구에 대한 미덕이다.

그래서.

“강남 일대에 돌아다니는 마약. 클럽 이런 데 말고 돈 많은 집 애들이 이용하는 것 있잖아? 그 유통책 좀 알아봐.”

“······그건 진짜 위험한데요.”

“5억.”

“하······.”

소상우가 고개를 저었다.

안 된다는 뜻이다.

고작 5억에 마약 루트를 알아내라니.

“검사님, 세상에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게 하나가 있어요. 바로 약쟁이요. 그건 진짜 제 목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거든요. 좀 더 크게 쓰세요.”

“그럼 됐어. 다른 곳 알아볼게.”

“6억. 더는 안 됩니다.”

“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낼 수 있어. 시간이 부족해서 너한테 맡기는 거지. 싫다면, 다른 데 알아본다.”

“하······ 원래는 안 되는데요. 알겠어요, 좋습니다. 서비스로 그 가격에 해 드릴게요.”

“땡큐.”

서진이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러자 실실 웃고 있던 소상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씨발, 나이도 어린 새끼가 반말을 찍찍하고 있어.”

소상우의 방으로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한 명이 들어왔다.

돈을 받으러 다니는 채권추심 팀의 팀장이다.

놈이 곁눈질로 서진이 나갔던 곳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형님, 저놈이 신마그룹 신일승 사장님을 노리고 있다면서요?”

“어.”

“계속 놔둘 겁니까? 딱 봐도 ENS 주가조작 때문에 들쑤시는 것 같은데, 그 사건이 신마그룹까지 가겠어요? 우리만 좆 되는 거예요!”

사건이 터지면 재벌은 무사하다.

밑에 있는 놈들만 총알받이가 되어 작살나는 거다.

검찰은 재벌을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소상우는 느긋했다.

“그래서 오정길한테 보냈어.”

“······오정길이요?”

남자가 눈을 깜빡였다.

오정길, 방금 소상우가 서진에게 말한 사채업자.

돈을 안 갚는 사람이 있으면 불법체류자 등을 통해 죽인다는 소문도 있다.

소상우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이제 돈을 세는 깨끗한 놈이야. 피를 묻히는 것은 오정길 같은 양아치가 해야지.”

“······!”

“저 검사, 무사하지 못할 거야. 오정길은 경찰이고 검찰이고 안 무서워하거든.”

소상우의 웃음소리가 끌끌끌 스산하게 들려왔다.

“돈을 더 못 빼먹는 것은 아쉽지만, 우리가 검사를 믿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소상우는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오명길의 연락처를 찾는다.

“야, 정길아. 나다. 중요한 정보 하나 가지고 있는데, 3억에 살래? 안 들으면 너 좆 되는 거야. 그게 뭐냐 하면······.”

소상우는 서진에게 일부러 오정길의 정보를 흘렸다.

서진이 살아 있으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서진을 처리하면 신마그룹 막내아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서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새끼야, 3억부터 꽂아. 그럼 알려 줄게. 이거 고오급 정보다. 어?”

그런데 통화를 이어 가던 소상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소상우가 영혼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잠깐만, 다시 전화할게.”

소상우가 다급히 전화를 끊으며 입술을 씹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채권추심 팀 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 왜요?”

하지만 소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앞만 보고 있을 뿐이다.

팀장이 소상우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팀장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씨, 씨발······.”

사무실의 문에 팔짱을 낀 채 비스듬히 기대선 서진이 보였다.

그리고 소상우와 팀장의 얼굴이 굳어졌을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가방을 놓고 가서.”

의자 위에 서진의 가방이 놓여 있었다.

서진이 저벅저벅 가방을 향해 걸어갔다.

소상우가 최대한 예의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검사님, 뭔가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요. 정길이는 아까 말씀드린 그 오정길이 아니라 김정길이에요. 제 친구.”

“누가 뭐래?”

서진이 가방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어깨에 걸치며 소상우와 그 옆에 선 팀장을 바라봤다.

싸늘한 시선에 놈들의 얼굴이 심각해질 때, 서진이 살짝 웃었다.

그 미소에 놈들도 같이 하하 웃는다.

얼어붙었던 겨울에 봄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마음이 놓였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서진이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여기, 오늘 문 닫을 거야. 이해했지?”

“······!”

소상우는 잠시 머뭇거렸다.

웃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서진이 자신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야, 저 새끼 죽여.”

팀장이 놀라서 소상우를 바라봤다.

“혀, 형님! 검사예요!”

“어차피 이번에 들어가면 몇 년이 될지 몰라. 죽여! 게다가 저 새끼 혼자 왔어!”

소상우의 무시무시한 눈을 보며 서진이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이런 상황이 싫었다.

“야, 내가 미쳤다고 혼자 왔겠냐? 신고했어, 경찰에. 그런데 내 이름 대니까 경찰 버스를 보내 준다더라. 그것도 3분 안에. 표정이 왜 그래? 나 검사잖아. 이 정도는 가능한 것 같던데?”

“······!”

동시에 쾅, 소리가 나며 경찰이 들이닥쳤다.

서진이 슬쩍 웃었다.

“3분 맞네.”

수십 명의 경찰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반 직원들이 꺅꺅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경찰들이 곧장 ‘쾅!’ 하고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진이 손가락으로 소상우를 가리켰다.

소상우가 잡힌다.

아무것도 못 하고 바닥에 자빠져 바동댄다.

“씨발!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넌 검사를 살해 교사 미수했고 증권거래법을 위반했어. 그리고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도 위반했지. 자세한 것은 취조실가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지금은 날뛰어 봤자 좋을 것 없으니까 닥치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친절히 설명해 줬지만 소상우는 알아듣지 못했다.

계속해서 악을 질렀다.

“난 잘못한 게 없다고!”

서진이 몸을 낮춰 놈과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살벌한 시선을 보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웬만하면, 며칠 더 세상 공기를 맡게 해 주고 싶었는데······.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가 보다. 다시 나올 때는 착하게 살아라.”

“······!”

소상우가 눈을 깜빡였다.

서진의 눈빛을 어디선가 본 것같이 느껴져서다.

멍하니 있을 때, 서진이 놈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경찰을 향해 말했다.

“데려가 주세요.”

더 이상의 난동은 없었다.

소상우는 고개를 숙인 채 대표실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그리고 서진은 주변을 둘러봤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책상 위에 있는 놈의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다른 물건들도 착착 펼치며 살폈다.

그러다가 낯선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틀자 대표실의 문 앞에 선 평범한 직원들이 보였다.

그들이 겁에 질린 눈으로 서진을 보고 있었다.

서진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현행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는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어요. 그리고 1~2시간 안으로 검찰 압수 수색 들어올 거니까 그 전에 숨길 거 있으면 숨기세요.”

압수 수색이라는 말에 직원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들이 재빨리 자리를 향해 달려간다.

이제야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서진은 계속해서 소상우의 사무실을 확인했다.

저들이 자료를 숨겨도 상관없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 방에 다 있을 테니까, 놈의 성격은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서진이 캐비닛을 열었다.

‘찾았다.’

< 재벌 집 아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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