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21화 (121/250)

< 사교계 -(2) >

첫 번째로 다가온 놈은 벤처창업진흥원 원장이다.

이번 대통령이 당선될 때,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떡고물을 얻어먹은 놈.

정권이 바뀔 것 같으니, 모임에 참가해 인맥을 쌓아 새로운 정권에서의 먹거리를 찾으려 하는 것 같은데.

‘이놈은 급이 안 돼.’

이 모임은 겉으로 보기에는 친목 모임이다.

하지만 모임의 목표는 또렷하다.

지금 가진 권력을 유지하는 것.

‘그런데······.’

정권이 바뀌는 것 정도로 흔들리는 놈이 이곳에서 버티기는 힘들다.

이놈은 곧 모임에서 퇴출당할 거다.

그래도 서진은 예의 있게 몸을 굽혔다.

“김서진입니다.”

놈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서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송원태.’

룸살롱에서 뇌물을 받았던 국회의원이다.

놈이 서진의 옆에 서서 친한 척을 한다.

“김영준 검사장이 자네를 지목할 줄 알았어. 잘생겼잖아. 하하하.”

“감사합니다.”

한 명, 한 명이 다가와 서진의 어깨를 두들기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서진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고 가벼운 인사만 30여 분을 이어 갔다.

그리고 다가오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 때, 서진의 시선은 한 명에게 꽂혀 있었다.

‘백기호.’

백기호 의원, 지금은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소문이 있다.

이 권력의 카르텔을 부수는 데 껄끄러운 인물 중 하나.

그런데, 그 순간이다.

백기호 의원의 시선이 천천히 서진을 향했다.

눈이 마주쳤다.

놈이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갑게 웃더니 뚜벅뚜벅 서진을 향해 걸어왔다.

그리고 서진을 스치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이력은 확인했어.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라 권력욕이 많아 보이던데.”

“······.”

“검사장의 편에 서 있으면 위로 날 수 없어. 검사장은 너에게 권력을 나눠 주지 않을 거야. 권력은 자식에게도 나눠 주지 않는 거야.”

백기호 의원과 김영준 검사장은 같은 모임에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손잡지 못한다.

서로가 위에 서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감정은 삐뚤어졌다.

지금 이 순간, 백기호 의원이 서진을 도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똑똑한 놈이니 이해했지?”

백기호 의원이 서진을 스쳐 지나갔다.

‘하······.’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김영준의 편에 선다고? 권력은 나누는 게 아니라고?’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저 양반, 잘못 생각하고 있네.’

둘 다 부숴 버릴 거다.

김영준이나 백기호나······.

‘알아, 권력은 나누지 않는 거잖아?’

그렇게 본격적인 모임이 시작됐다.

서로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하하호호 웃으며 서로에게 이득 될 사람을 찾고 있다.

그리고 서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오늘의 목적은 얼굴을 알리는 것.

처음부터 여기저기 끼어들면 가벼운 놈으로 취급받아 이용만 당할 거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놈들을 살폈다.

‘4명.’

사이비 종교, 부운교에서 뒷돈을 먹은 놈이 이 중에 네 명이나 된다.

‘저놈들이 시작이야.’

서진은 저들을 거점 삼아 이 모임을 먹을 계획을 세워 봤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약해.’

네 명 중에는 김영준, 백기호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놈도 있다.

하지만 약하다.

김영준, 백기호를 마주하면 솜털까지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데, 저들은 아니다.

저들을 앞세워 김영준, 백기호와 싸운다면 영혼까지 털릴 수 있다.

‘결국, 내 선택지는 김영준을 앞세워 백기호를 치고. 그다음에 김영준을 상대하는 것인가? 하······ 그러면 김영준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세질 수도 있는데.’

그때였다.

“김서진 검사죠?”

대충 알 만한 사람은 인사를 나눈 것 같은데, 또 누군가 인사를 전한다.

서진이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본 순간 다급히 허리를 굽혔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서진입니다.”

서울시장, 심무영.

이 사람 역시 차기 대권 주자라 불리는 잠룡.

시의원을 시작으로 경기도의 시장 그리고 국회의원 이번에는 서울시장까지 당선된 뼛속까지 정치인.

그가 서진을 보며 빙긋이 웃는다.

“내가 김 검사 덕에 요즘 위장약을 끊었어요. 하하하.”

심무영 시장은 사이비 종교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포교 활동을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서진이 떡하니 해결해 줬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서울시장 심무영이 서진을 향해 악수를 권했다.

그렇게 손을 잡는 순간이었다.

‘어?’

서진의 시야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서진은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봤다.

‘딸이 걱정이라고?’

심무영 시장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이름은 심진세, 나이는 스물여덟.

그런데 철부지.

그 나이를 먹고도 미친것처럼 날뛰고 있다.

그리고 심무영 시장은 최근 딸이 마약까지 손댔다는 첩보를 들었다.

서진의 시선이 심무영 시장을 향했다.

악수를 끝낸 후 심무영 시장은 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제 딸이 검사님과 비슷한 또래인데, 달라도 너무 달라요. 하하.”

심무영 시장이 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하나다.

혹시 검찰이 딸의 마약 소식을 알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딸의 마약 소식이 터지면 정치 인생은 그대로 끝이다.

그리고 심무영 시장의 이야기를 듣던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시장님.”

“말씀하세요.”

“······확인해 드릴까요?”

서진의 낮은 목소리에 심무영 시장의 얼굴이 확 굳었다.

서진이 무엇을 말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서진이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알아만 보겠습니다.”

심무영 시장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직전까지 굳어 있던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따님이 마약으로 잡혀간다면······.”

“검사!”

심무영 시장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쓸데없는 말을 더 지껄이면 죽이겠다는 눈빛이 살벌하게 느껴졌다.

이곳은 권력자가 모여 있는 곳, 혹시라도 주변에서 이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진은 상관 않고 계속 말했다.

“잡혀 간다면······ 끽해야 집행유예일 겁니다. 시장님의 백이 있고 집안에 돈이 있고, 다 그렇잖아요?”

“······.”

“제 실적에도 도움이 될 일이 없고요. 그래서 정말 조용히 조사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실이라면, 뭐 그건 시장님께서 알아서 하세요.”

서진이 낮게 웃었다.

순간 심무영 시장의 눈동자가 좌우를 살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목소리보다 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네요.”

심무영 시장이 긍정의 뜻을 내비친 후 서진의 곁을 떠났다.

서진이 슬쩍 웃었다.

‘저 사람 정도면······.’

김영준 검사장, 백기호 의원과 체급이 비슷할 거다.

백기호 의원이 떨어져 나가도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장기짝은 많을수록 좋은 거다.

‘좋네.’

생각을 마친 서진은 주변을 살폈다.

모임에는 권력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서진처럼 그 자식 또는 후계들이 끼어 있다.

서로 얼굴을 익히고 그다음 자리를 해 먹기 위해서다.

‘오늘은 얼굴만 내밀고 가려고 했는데.’

심무영 시장을 만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친목을 다져 놔야 할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던 시선이 한 놈에게서 멎었다.

‘저놈.’

장관의 아들 이중호.

심무영 시장의 딸과 꽤 친하게 지내는 놈, 혼자 테이블을 오가며 과자를 집어 먹는 중이다.

서진이 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김서진입니다.”

“아, 이중호입니다. 하하하.”

서진이 먼저 인사를 걸자 이중호가 정말 좋아했다.

나름 이 모임에서 서진의 등장이 센세이션했나 보다.

이중호가 떠들었다.

“제가 이 모임에 나온 지가 세 번째거든요. 그런데 처음 봤어요. 저분들이 먼저 인사하러 다가간 사람이요. 김서진 검사님이 처음이었다고요.”

“신기했나 보죠. 기사 몇 번 나왔으니까.”

“에이, 여기는 인기 연예인이 와도 무시당하는 곳이에요. 저분들에게는 다른 쪽으로 신기했을걸요?”

“어떤?”

“혼자 힘으로 해낸 사람. 그렇잖아요? 아버지가 재정건설의 대표고 작은아버지는 검사장인데, 왜 노력을 해요? 혹시 대학이랑 로스쿨 들어갈 때, 백 썼어요? 에이, 부끄러운 거 아니에요. 여기 다 그래요.”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정말 미친놈인가 싶었다.

하지만 서진은 놈에게 접근한 의도가 있었다.

친근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공부가 취미였어요.”

“취미요? 공부가?”

“네.”

“와, 대박. 진짜 그런 사람도 있구나. 혹시 지금 취미가 독서?”

“뭐, 비슷하네요.”

이중호는 뭐가 재밌는지 오버하면서 웃었다.

별것도 아닌 말에 저렇게 웃고 있는 걸 보면 이놈이 약을 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중호가 큼큼, 웃음을 멈추며 속삭였다.

“어른들 말고 우리끼리 만든 모임이 있거든요? 생각 있으시면 참여해 보실래요? 김서진 검사님이 온다고 하면 다들 좋아할 텐데요.”

어린놈들이 못된 것만 배워서 벌써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서진이 튕기는 척 가만히 있자 놈이 턱짓하며 말을 이었다.

“저기 봐요.”

권력자들이 와인을 부딪치는 방향이었다.

놈이 그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10년 뒤에는 우리가 저러고 있을 거예요. 미리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죠.”

10년, 그때 저들의 분위기는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비싼 재킷을 입고 있을까? 아니면 죄수복을 입고 있을까?

서진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의 모임요?”

“네.”

“누가 있죠?”

“글쎄요, 꽤 많은데요. 일단 서울시장님의 딸 심진세.”

심진세가 이놈과 어울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접근한 것이고.

그런데 놈의 입에서 뜬금없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유명한 사람도 있어요. 신마그룹의 막내아들 신일승.”

“······!”

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신일승, 신마그룹의 막내아들이다.

서진이 만나자고 했을 때 매몰차게 거절했던, 그리고 서진이 타깃으로 삼은 그놈.

‘신일승이?’

재벌은 그들끼리 어울린다.

다른 곳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기껏해야 권력자의 아들, 딸.

재벌은 이들을 보며 시한부 인생이라며 낄낄댄다.

‘그런데 왜?’

신마그룹의 막내아들이 이들의 모임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밖에서 새는 바가지가 다른 곳에서 안 새는 게 이상하다.

분명 문제가 있을 거다.

서울시장이 자기 딸의 마약 걱정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거······ 괜찮네.’

예상외의 성과를 얻었다.

미친놈 같았던 이중호의 얼굴이 예뻐 보인다.

서진이 이중호를 향해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번 가 보고 싶네요.”

“연락드릴게요. 주말에 만나니까 부담 가질 필요도 없어요.”

잠시 후, 서진이 꼭 연락하라는 시늉을 하며 이중호의 옆을 떠났다.

그러자 이중호가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어, 진세야.”

상대는 서울시장의 딸이다.

“대박, 우리 모임에 김서진 나올 수도 있어. 알지? 김서진, 그 미친 새끼.”

서진이 있을 때와 다른 표정, 다른 목소리다.

수화기 너머에서 심진세의 대답이 들려왔다.

-김서진? 진짜 김서진?

“어.”

-오늘 왔다고? 아 씨, 어제 술 많이 먹어서 오늘 일부러 안 나갔는데!

이어서 꺅꺅대고 있다.

그리고 이중호가 미간을 찌푸릴 때, 심진세가 말을 이었다.

-사진으로 보면 샌님처럼 생겼던데, 진짜 혼자 사이비 종교에 들어가서 회장을 잡아 오고 그랬대? 어? 어?

“하······ 미친, 그게 사실이겠냐? 김영준 검사장이 뒤에서 다 컨트롤한 거겠지. 너 콩쿨 나가서 상 탄 것도 엄마 힘이라며? 구라야, 구라.”

-구라? 그것도 상관없어. 잘생겼잖아. 옆에 끼고 다니면 으쓱하겠네. 그런데, 어때? 실제로 보니까 더 잘생겼어? 후광은? 보여?

“끊어.”

이중호가 토라진 목소리를 내뱉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주소록을 찾는다.

-신마그룹 신일승.

이중호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서진은 멀리서 이중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놈의 행동이 뻔하다.

가까이서 듣지 않아도 뭘 하고 있는지 다 알 것 같았다.

입 모양과 표정을 보면 놈이 서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느껴졌다.

‘고맙네, 계속 그렇게 생각해 줘라.’

상대가 무시하면 편하다.

거침없이 파고들어도 처음부터 한껏 낮춰 본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어? 어?’ 하다가 박살 난다.

지금껏 다들 그랬다.

그리고 그들의 모임 역시 그럴 거다.

‘땡큐.’

더 볼 것도 없었다.

이제 연락을 기다리면 된다.

서진이 몸을 돌리는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소상우.

서진은 소상우에게 원래의 서진을 죽인 자들을 찾아 달라 말했다.

그 연락이 지금 왔다.

서진이 주변을 살폈다.

곁에 있는 사람은 없다.

서진이 휴대폰을 귀에 대며 말했다.

“어, 말해.”

-꼬리를 밟은 것 같습니다.

< 사교계 -(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