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교계 -(1) >
서진이 슬쩍 웃었다.
“왜? 할 마음이 생겼어?”
“그... 돈부터 확인합시다.”
소상우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서진을 바라봤다.
20억, 강남의 작은 아파트를 구할 수도 있는 돈이다.
그런 돈을 가볍게 말하는 게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진짜?’라는 생각에 마냥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확인?”
“네, 신용 사회잖아요. 담보 확인은 필수죠.”
서진이 무심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틀어 계좌를 보여줬다.
통장에 찍혀 있는 금액이 37억.
동시에 소상우의 눈이 커졌다.
‘대박.’
저 통장에 들어 있는 현금만 37억, 그 외의 통장과 그 밖의 자산을 생각하면...
소상우의 눈동자에 탐욕이 채워졌다.
“저기... 이런 일에는 선금이 있다는 거 아시죠?”
“선금은 5억, 나머지는 일 끝난 후에. 어때?”
소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검사 양반을 밀었던 놈들이 누군지 찾아주면 된다는 거죠?”
“잡히는 거 있어?”
“검사를 밀어 버릴 정도면... 떠오르는 놈들이 있기는 해요. 그런데요. 진짜 알아 오기만 할 거예요. 그리고 약속해줘요. 내가 불었다는 것 비밀로 해줘야 해요.”
소상우는 지금도 갈등하고 있었다.
검사를 집어 던질 정도면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다.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억 역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놈이 ‘씨발, 씨발’ 거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서진이 그 갈등을 해결해줬다.
들고 왔던 007가방을 테이블에 올리고 열어젖혔다.
“.....!”
동시에 소상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수북이 쌓인 신사임당이 보였다.
서진이 가방을 툭툭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네 거야.”
“......”
“성공하면 나머지 15억도 네 것이 되겠지.”
“.....!”
“그것도 통장 거래가 아니라 순수한 현금. 편의점 가서 아이스크림 사 먹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
소상우는 멍한 눈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흔들며 미소 짓고 있는 신사임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 할게요. 그런데, 계약서는 어떻게 하죠? 사실 저는 제 이름이 남는 게 싫거든요? 이런 일에는 기밀이 우선이라...”
“번거로우니까 믿고 가자.”
“믿어요?”
“우랑탕, 우리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요!”
“쏘리.”
소상우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입술은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신사임당 앞에서 화를 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
“검사?”
한 호텔의 펜트하우스 룸, 개인 수영장까지 딸린 거대한 방이었다.
그곳의 썬베드에 신마 그룹의 막내아들이 누워 있었다.
놈은 소상우와 통화하는 중이다.
“내가 검사를 왜 만나?”
-중앙지검 검사인데요.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그러니까, 내가 검사를 왜 만나냐고! 내가 검사 나부랭이를 만날 급이라고 생각해? 이 씨발 새끼야!”
놈은 신마 그룹의 회장이 쉰 살이 너머 가진 늦둥이다.
늦게 가진 자식이라 그런지 물고 빨며 오냐오냐 키웠다.
그 덕에 성격이 재수 없고 운전기사가 1주일에 한 번씩 바뀐다는 소문이 있다.
나이가 서른도 안 되었지만 놈의 악랄함은 상당히 유명하다.
-죄송합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잠깐, 잠깐만.”
-네?
“혹시 여 검사야? 여 검사라면 한번은 만나 볼 생각이 있는데. 예쁘게 하고 나오라 해. 드라마에서 보면 장례식 가는 것처럼 정장 입잖아? 그거 좋네. 없으면 사준다고 하고.”
-아뇨, 남자...
놈은 소상우의 뒷말을 더 듣지 않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병신새끼, 내가 남자를 왜 만나? 여자 만날 시간도 없는데.”
휴대폰을 휙 집어 던진 놈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오늘의 데이트 상대, 예쁜 여배우가 수영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빠, 안 들어올 거야?”
여배우는 순수함의 이미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퇴폐적인 미소를 지으며 놈을 손을 벌리고 있다.
“가야지!”
놈이 걸치고 있던 가운을 훌떡 벗으며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여배우가 깔깔 웃으며 물장구를 쳤다.
“그런데, 전화 누구야? 여자 아니야?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아니지?”
“벌레 한 마리 키운다. 그 벌레가 전화한 거고.”
***
그 시각, 중앙지검.
서진은 사무실에서 소상우와 통화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일이 바쁘다고 해서요.
신마 그룹 막내아들이 서진과의 만남을 거절했다.
놈이 어떤 말을 내뱉었을지는 듣지 않아도 뻔하다.
놈은 자신과 같은 재벌 집안이 아니면 레벨이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악물고 공부해서 의사나 검사, 판사가 되어도 놈의 눈에는 쓰레기다.
“아, 알았어. 싫다면 됐어.”
싫다고 하는데,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조만간 보게 될 테니까.
‘그 전에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멘탈을 흔들어 놨으면 일이 조금 더 쉽게 풀렸을 거다.
그게 아쉽긴 했지만 상관은 없다.
놈을 죽일 방법은 많았다.
서진이 휴대폰을 내려두며 책상에 놓인 서류를 손에 들었다.
‘첫 번째 선수.’
서진은 신마 그룹과 싸울 사람들을 선별하는 중이었다.
첫 번째는 장지혁,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다고 알려진 경찰 출신의 검사.
지난번에 김포 창고 살인 사건을 함께 했었다.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다면 해결될 때까지 달려드는 성격.
상대가 재벌이라 해도 겁먹지 않고 덤벼들 것 같다.
서진이 장지혁 검사의 서류를 옆에 툭 내려둔 후 다음 서류를 손에 들었다.
‘조우재.’
다음은 조우재 부장검사다.
신마 그룹의 회장이 나타나면 알아서 꼬리를 말고 배까지 뒤집을 사람.
겁이 많고 탐욕이 많다.
‘하지만.’
서진의 손에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줄이 있다.
울면서 쫓아 올 수밖에 없을 거다.
재벌과의 싸움에서 중앙지검 부장검사라는 직함은 상당히 편리하게 쓰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서류를 넘기던 서진은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다.
“네, 아버지.”
-오늘 저녁같이 할까?
“네, 좋아요. 회사요? 네, 시간 맞춰 갈게요.”
*
그날 저녁, 서진은 양재에 있는 재정건설 사옥으로 향했다.
지상의 방문객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옷매무새를 만졌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일하는 곳이니 깔끔하게 들어가고 싶었다.
로비로 향하는 중에 퇴근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그들이 힐끔힐끔 서진을 본다.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맞지?”
“어, 맞아.”
서진은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알아보고 속닥이는 것은 조금 민망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에 알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언론에 오르내리기는 했어도 서진은 검사, 연예인이 아니다.
지난번 어떤 아주머니는 ‘재연 배우?’라고 물었을 정도다.
‘아버지 회사라 그런가?’
서진은 대표의 아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언제든 이 회사의 중역 자리에 앉아 거들먹거릴지 모른다고.
그래서 이 회사의 직원들은 서진의 기사와 인터뷰를 다른 사람보다 유심히 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진은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헐...’
로비에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멎었다.
중앙에 떡 하고 놓인 대형 스크린, 그곳에 서진의 인터뷰가 계속 반복되어 나오는 중이었다.
회사에 대한 광고가 나왔다가 다시 서진의 인터뷰, 또 회사의 광고 그리고 서진의...
이건 세뇌다.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한 거다.
서진은 정말 부끄러움을 느끼며 몸을 틀었다.
아버지가 나올 때까지 벽만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서진은 또 봤다.
로비에 찾아온 손님들이 보는 책꽂이, 그곳에 꽂혀 있는 신문.
‘설마...’
이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서진은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아버지...’
*
잠시 후.
서진은 아버지와 함께 한정식집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자주 온다는 곳으로 이 주변에서는 제일 맛집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서진은 대답 대신 한숨을 내뱉었다.
정말 고생했다.
‘방금 전...’
아버지가 로비에 나타나며 서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아들! 서진아!
당연하지만 수많은 시선이 서진에게 꽂혔다.
그리고 한 여직원이 쭈뼛쭈뼛 다가와 사진 한 장만 찍자고 했다.
아버지는 껄껄껄 웃으며 당연히 그러라고 했고 그게 시작이었다.
몇 번이나 사진을 찍었는지 세기도 힘들었다.
억지로 웃었고 손으로 브이까지 그렸다.
그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물수건을 내려두며 말했다.
“우리 둘이 식사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야. 어때? 술도 한잔할까?”
아버지가 술을 시켰다.
서진의 잔에 술을 채우며 이런저런 말을 전했다.
하지만 본심은 내려둔 채 빙빙 돌리는 중이다.
그렇게 술을 두 병 마셨을 때였다.
서진이 멍석을 깔았다.
“...말씀하세요. 괜찮아요.”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어가던 아버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아버지가 술을 한잔 쭉 비운 뒤 입을 열었다.
“네 작은애비한테 이야기 들었어. 그 모임에 초대받았다고?”
“아, 네.”
김영준 검사장이 함께 가자고 한 모임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실세들이 있는 곳.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고?”
“조금은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한잔을 마신 뒤 입을 열었다.
“...혹시, 기억이 돌아왔어?”
서진은 물끄러미 아버지를 바라봤다.
모임을 묻다가 뜬금없이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취하지 않았다.
필요 없는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니다.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래?”
아버지가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알아봤는데, 기억을 잃어도 어떤 집착은 남을 수 있다고 들었어.”
“......”
“아빠가 예전에 너희한테 못난 모습을 보였었나 봐.”
약 십 년 전, 아버지와 김영준 검사장이 어떤 이유로 틀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영준 검사장은 재정건설을 압수수색했고 회사의 자산을 동결했다.
하루, 하루 현금이 오가는 회사에서 자산 동결은 망하라는 뜻.
그게 검찰의 힘이다.
물론 김영준 검사장은 회사를 망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형에게 권력의 힘을 보여준 거다.
극단적인 소시오패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걸 너희가 봤지.”
서진은 역사학자가 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서진아, 그 모임에 가는 것, 혹시라도 이 아빠 때문이라면 안 가도 돼.”
서진은 고개를 숙였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잠시, 김영준 검사장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거다.
놈은 자신의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 생각하면 형제라도 그리고 아들이라도 버리는 놈이다.
그리고 위선을 떨 거다.
‘형을 위해서였어.’, ‘윤환아, 너를 위해서야.’ 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야지.’
조만간 신마 그룹의 일로 김영준 검사장에게 돌을 집어 던질 거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놈의 영역을 서진의 힘으로 채울 생각이다.
생각을 마친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이유 아니에요.”
“그럼?”
“검사잖아요.”
권력과 돈이 모인 곳에 사냥감이 모여든다.
서진이 놈들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잡아야죠.”
그 말에 아버지가 ‘허허’ 부끄럽게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머릿속에는 김영준 검사장이 했던 말이 스치고 있었다.
-형. 서진이는 검사야. 빈말이 아니라 그놈만큼 검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놈이 없어. 그놈 앞길은 내가 닦아 줄게.
그때는 사탕발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까 아니다.
서진은 검사다. 검사가 맞다.
아버지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감당이 안 되는 상대가 있으면 아빠한테 말해. 이 아빠가 이제는 그 정도 도와줄 힘이 있어.”
아버지의 힘은 김영준 검사장에게 당했던 10년 전과는 다르다.
재정건설은 해외의 굵직한 사업을 손에 쥐며 거대해졌다.
재벌가 전체와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각 계열사는 해볼 만하다.
게다가 서진에게는 영원한 같은 편이다.
“감사해요. 아버지.”
서진은 아버지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슬쩍 아버지를 재벌로 만들고 재벌 2세가 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봤다.
*
밤 10시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진영이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만취한 아버지를 어머니가 부축해서 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진은 책장을 끄집어내고 그 앞에 섰다.
원래의 서진이 적은 상형 문자처럼 보이는 글씨를 보는 중이다.
‘아직...’
해석하지 못한 내용이 많다.
D-C. E.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C? E?’
원래의 서진은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약어로 이것저것 끄적였다.
그래서 글자는 알아봐도 그 속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내용을 알면, 누가 죽였는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은하 기자다.
“네, 기자님.”
-혹시 사무실이세요?
“아뇨. 집인데요.”
-벌써 퇴근? 아... 벤처 기업 ENS에 대한 기사를 적었거든요. 피드백을 받고 싶어서요.
“메시지로 보내세요. 볼게요.”
-네...
이은하 기자의 목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뭔가 아쉽게 느껴지는 듯한...
“혹시 검찰 앞이세요?”
-아, 네.
서진에게 기사를 보여주기 위해 인쇄해서 달려왔나 보다.
평소 12시 1시까지 사무실에 붙어 있으니까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
서진이 슬쩍 웃었다.
“그럼, 우리 동네로 오시겠어요? 거기서 멀지 않은데요.”
*
이은하 기자가 아파트 단지 내를 걸었다.
그리고 놀이터, 가로등 불빛 아래에 벤치에 앉아 있는 서진을 발견했다.
“검사님?”
“오셨어요?”
이은하 기자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늦은 시간에... 이거 상의하고 싶었거든요. 메시지로 말하는 것보다 얼굴 보고 말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요.”
이은하 기자가 품에서 종이를 꺼내 서진에게 건넸다.
기사가 인쇄된 종이.
내일 상의해도 되는데, 뭐가 급하다고 여기까지 왔는지 몰라도 서진은 종이를 받으며 편의점에서 사 온 커피를 꺼냈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이은하 기자는 커피를 손에 쥐고 서진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서진이 기사를 읽는 동안 커피를 입에 대며 입을 열었다.
“기사 어때요? 괜히 부끄럽네요. 바로 앞에서 읽고 있으니까.”
“좋아요.”
“정말요?”
이은하 기자가 주먹을 쥐고 ‘앗싸!’라고 외쳤다.
하지만 서진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런데, 이거 기자님 이름으로 올릴 거예요?”
“어? 왜요?”
“신마 그룹의 이름이 그대로 들어가서요. 위험할 것 같은데...”
“에이, 제가 하루 이틀 기자 생활한 것도 아니고. 그거 찌라시로 돌릴 거예요. 여기에 여배우 이솔아 알죠? 걔가 요즘에 신마 그룹 막내아들을 만난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그걸 넣으려고 하는데, 어때요?”
재벌의 비리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순수함으로 승부를 보는 여배우가 끼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런데, 확실한 거예요? 괜히 애꿎은 사람 건들면...”
“확실해요. 호텔에서 나오는 사진도 있어요. 그리고 A양이라고 적을 거니까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럼, 그렇게 진행하...”
그런데, 그때였다.
서진과 이은하 기자의 사이에 갑자기 검은 머리통이 쑥 하고 튀어나왔다.
“형수님!”
진영이었다.
친구들과 술을 마셨는지, 발그레한 얼굴로 기분 좋게 이은하 기자를 보고 있다.
“야...”
서진이 인상을 썼지만 진영은 모른척하며 이은하 기자를 향해 외쳤다.
“정말 뵙고 싶었어요!”
이은하 기자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서진을 바라봤다.
“...누구?”
“원수요.”
그날 밤, 진영은 주무시고 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깨워 실제로 본 이은하 기자에 대해 열성적으로 이야기했다.
서진은 오늘 악마를 봤다.
***
주말,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과 모임이 있는 호텔로 향하는 중이었다.
한강 변을 지나는데, 김영준 검사장이 입을 열었다.
“네 또래도 있을 거야. 애들끼리도 잘 지내야 한다고 데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물며 말을 이었다.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야. 입.”
“......”
“웬만하면 듣기만 해. 떠벌리는 쪽이 지는 거야.”
권력자들이 모이는 곳, 하지만 이 바닥에 영원한 편은 없다.
사소한 이유로 언제든 등질 수 있는 게 이들이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가볍게 입을 놀리는 놈은 가장 빨리 제거당하는 게 역사다.
*
오늘은 1년에 몇 번 없는 모임의 총회, 호텔의 식당 전체를 빌렸다.
듣던 대로 권력자들의 모임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 텔레비전에서는 멱살 잡고 싸웠던 정치인들이 여기서는 와인 잔을 부딪치며 하하호호 웃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김영준 검사장을 알아봤다.
하지만 그들이 관심 보이는 것은 김영준 검사장이 아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김서진 검사잖아?”
< 사교계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