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19화 (119/250)

< 그림자. -(4) >

***

이백 평은 되어 보이는 널찍한 사무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고급스러운 화초가 가득한 이곳은 종로의 신흥 큰손 소상우의 사무실이었다.

소상우, 나이는 43세.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양아치, 깡패 출신으로 재력가와 권력자의 발가락을 핥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 소상우가 모니터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전쟁 선언?”

화면에는 ‘김서진 검사, 이번엔 악덕 사채 시장과 전쟁 선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였다.

“미친 새끼.”

소상우가 담배를 입에 물더니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레기 제목 짓는 꼬라지 봐라. 그리고 사채 시장 없어지면 우리나라 경제 망하는 거 모르나? 밑바닥 경제는 사채가 동맥이다.

그때, 소상우의 옆으로 직원이 서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어제 우리 거래처 하나가 검찰 수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소상우의 시선이 직원에게 틀어졌다.

“누가?”

“이동준 사장이라고.”

“아... 알아. 사거리에 있는 사람이지?”

“우리도 준비 좀 해둘까요?”

“뭘 준비해? 우리가 잘못한 게 있어?”

사채업자로서는 법을 어긴 게 없다.

거래처는 물론 개인에게 빌려줘도 법정 이자를 따박, 따박 받는다.

그렇게 장부가 정리되어 있다.

고금리로 이뤄지는 대출은 철저하게 숨겼고 검찰의 할아버지가 와도 찾을 수 없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대출이 아니다.

“주가조작 사건까지 타고 올 수 있어서요.”

검찰은 곧바로 찌르지 않는다.

외곽을 빙빙 돌며 숨통을 조여 온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검사가 사장님의 이름을 몇 번이나 물어봤다고 합니다.”

소상우의 행동이 뚝 멎었다.

그리고 눈동자만 움직여 직원을 바라봤다.

“...나? 내 이름?”

“네, 그리고 지금 이 검사가, 김서진이라고 요즘 꽤 유명한 사람인데요.”

서진은 경찰 서장, 선배 검사 그리고 사이비 종교 단체의 교주까지 교도소에 보냈다.

누구든 무자비하게 잡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이 그 이야기를 전했지만 소상우의 얼굴에 긴장감은 없었다.

낄낄 웃으며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중앙지검? 무섭지, 정말 무서워. 그런데, 그거 알아? 내가 검사들을 몇 번 만나봐서 아는데, 이 새끼들이 건드는 것은 딱 서민이야. 힘도 없고 빽도 없어서 열심히 생활하는 사람들.”

“......”

“그런데, 법 위에서 노는, 진짜 힘을 가진 분들은 못 건드려. 사람을 때리고 마약 빨고 여자를 겁탈해도 모른 척하더라고.”

그 사람들이 소상우의 쩐주다.

그리고 신마 그룹의 막내아들도 그중 하나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 어서.”

소상우가 손을 흔들었다.

직원이 그 자리를 떠났고 소상우의 시선은 다시 모니터로 향했다.

서진의 얼굴이 보인다.

그 얼굴을 보며 소상우가 중얼거렸다.

“병신 새끼.”

소상우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래도... 보험은 들어둬야지.’

검사가 칼을 들고 설치기 시작했다.

혼자 날뛰다가 조용해질 가능성이 99%라고 생각했지만 만에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어쨌든 칼이 휘둘러지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상우가 주소록을 툭툭 넘기며 고민했다.

신마 그룹 막내아들에게 연락할까, 아니면 지금의 쩐주에게 전화할까.

고민은 짧았다.

신마 그룹 막내아들은 안하무인이다.

검사가 집에 찾아와 초인종을 눌러도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아빠가 신마 그룹 회장이니까.

‘그럼, 쩐주지.’

소상우가 통화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사장님. 혹시 오늘 기사 보셨나요? 중앙지검에 김서진이란 놈이 있는데요.”

휴대폰 너머에서 습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서진?

***

그 시각,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물며 무심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채 시장을 손본다고?”

“네.”

서진은 힐끗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작은어머니의 집안은 사채 시장의 큰손이다.

그리고 서진은 작은어머니가 원래의 서진을 죽인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김영준 검사장이 뭔가를 알고 있다면 표정의 변화가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은 똑같았다.

사채업자에 대한 수사 이야기를 내뱉으면서도 어떤 동요도 없다.

“단속이 시작된다고 하면 일제히 숨어 버리는 게 바퀴벌레 같아. 그리고 돈이라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놈들이야. 그러니까 웬만하면 나서지 말고 경찰을 통하도록 해.”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의 타깃이 보통의 사채업자라고 생각했다.

그 끝에 작은어머니의 집안과 신마 그룹의 막내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당장 막았을 거다.

작은어머니의 집안은 둘째 치고, 신마 그룹은 정말 위험하다.

그들은 정치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대 재벌 중 하나.

놈들이 분노하면 김영준 검사장의 총장 길이 험난해질 거다.

그래서 미안했다.

‘죄송해요.’

그리고 이번 사건은 서진이 검사장에게 던지는 첫 번째 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진이 속으로 사과하고 있을 때,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을 부른 진짜 이유가 시작됐다.

“그건 그렇고... 주말에 시간 비워 둬. 같이 갈 곳이 있어. 내가 모임을 갖는 것은 알지?”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의 실세들이 있는 곳.

송원태 의원이나 백기호 의원 같은 여, 야의 권력자 그리고 각 기관의 기관장들과 각 산업의 수장들, 그들이 있는 곳!

‘드디어...’

사교계 입성이다.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에게 손을 뻗었다.

권력의 세계로 함께 가자고.

당연히 거부하지 않는다.

그 손을 잡고 권력의 계단을 오를 거다.

그리고 서진은 생각했다.

그놈들을 천천히 말려 죽일 거라고.

그 권력을 고스란히 손에 넣겠다고.

이왕 모임에 참석했으면 그곳의 왕이 되어야 한다.

***

-슬슬 준비됐어요. 내일 오전에 공식적으로 신마 그룹 막내아들을 고소할게요.

서진은 이두진 변호사와 통화하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출국금지도 신청하세요. 그놈들 특기잖아요.”

놈들은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해외로 도망간다.

그리고 잠잠해졌을 때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한다.

완벽히 법과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행동, 사전에 막아야 했다.

-검사님은?

“저는 제 스타일대로 얼굴 좀 보려고요.”

이두진 변호사와 얼굴을 보며 회의하기는 어려웠다.

상대는 재벌이다.

철저히 수면 아래 숨어서 놈들의 약점을 갉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레처럼 짓밟혀 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무서워하면 서진이 아니다.

그리고 서진의 타깃은 신마 그룹의 막내아들 외에도 원래의 서진을 죽인 놈이 포함되어 있다.

놈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호랑이 굴에 거침없이 들어가야 한다.

서진이 휴대폰을 품에 넣은 뒤 시선을 들었다.

‘에스더블유 대출’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소상우의 사무실이다.

‘좋은 곳에 있네.’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건물, 그 한 층을 전부 사용하고 있다.

‘깡패 새끼가 성공했어.’

서진이 서늘하게 웃으며 뚜벅, 뚜벅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2층.

서진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보기에는 여느 사무실과 다르지 않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수십 명의 직원, 저들은 깡패, 양아치가 아니다.

이곳을 회사라 여기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됐고.’

하지만 모든 직원이 평범하게 꾸려지지는 않았을 거다.

누군가는 더러운 짓을 하는 놈도 분명 존재한다.

소상우의 태생이 그렇기 때문에 그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오셨어요?”

문 앞에 서 있던 직원이 서진을 반겼다.

“사장 어딨어요? 방에 있죠?”

직원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서진을 알아보는 것은 금방이었다.

며칠 전, 대부업체와의 전쟁을 선포한 악마.

“기, 김서진?”

“안내해줘요.”

“따, 따라 오세요.”

직원이 몸을 틀어 헐레벌떡 달려갔고 서진은 그 뒤를 천천히 쫓았다.

*

“사, 사장님!”

직원이 문을 벌컥 열고 소상우를 불렀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소상우가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왜? 왜?”

“그, 그러니까...”

“검사 왔어요.”

직원의 뒤에서 서진이 느긋하게 말하며 나타났다.

소상우는 서진의 얼굴을 보며 눈을 깜빡인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사장님과 대화해야 하니까 그쪽은 나가주세요.”

서진이 부드럽게 웃으며 문을 가리켰다.

직원은 소상우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서진이 문을 스르륵 닫았다.

그리고 천천히 소상우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직원이 나가며 서진의 얼굴에 존재했던 미소는 사라졌다.

깡패를 상대하는데, 좋은 말은 사치다.

“책상에서 다리 내려. 깡패 새끼가 건방지게.”

소상우가 다리를 내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입을 열었다.

“이야, 연예인 보는 것 같네. 그래, 영장은 가져오셨소?”

“아니, 오늘은 얼굴 보러 왔어.”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얼굴까지 보러 와요? 착실히, 열심히 법 지키고 사는 소시민인데.”

놈은 거들먹거리고 있다.

뒤에 있는 자신의 빽이 지켜줄 거라 믿는 거다.

멍청한 놈이다.

돈으로 엮인 세계에 의리는 없다.

쓰임이 없어지면 거침없이 버리는 게 이 바닥이다.

서진이 테이블에 있는 의자를 끄집어내 놈의 책상 앞에 놓았다.

그리고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깡패 새끼가 잘 못 한 게 왜 없겠냐?”

“손 씻고 산 게 얼만지 아세요? 난 죗값 다 치렀고 이제는 깨끗하게 살고 있습니다. 가끔 봉사도 해요.”

놈의 목소리는 끝까지 비아냥대고 있었다.

하지만 서진은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옛말에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라.”

“휴대폰 쓰는 시대에 옛말은 왜 합니까? 그런데요. 검사 양반들은 어째 말이 반 토막입니까? 나이는 내가 훨씬 많은 것 같은데.”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놈의 얼굴을 보며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놈의 이름을 중얼댔다.

“소상우, 소상우...”

“왜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

“난 검사 양반, 처음 봅니다. 아, 텔레비전에서는 좀 봤네.”

서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날것처럼 나지 않으며 답답하게 명치를 간질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소 새끼?”

소상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요?”

“우랑탕?”

우랑탕은 소의 고환으로 만드는 요리다.

그런데, 그 말과 동시에.

“씨발!”

소상우가 책상을 쾅! 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진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어디서 그딴 것 듣고 왔는지 모르겠는데, 그만 해요. 검사라고 사람 놀리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기억났다.

중학교 시절, 서준경과 함께 보육원에 있던 놈이다.

짓궂게도 이름과 신체적 특이사항을 빗대어 소 새끼니, 우랑탕이니, 별명을 부르며 놀렸던 기억이 난다.

보육원이 찢어지며 만난 적이 없는데, 중학교도 졸업 못 하고 이렇게 깡패 짓이나 하고 있다니.

‘아이고...’

서진은 놈이 다시는 이런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옛 친구에게 참교육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그 전에 해야 할 일은.

“신마 그룹 막내아들 있지?”

“하... 왜요? 이제 대부업이 아니라 그쪽도 건들려고 합니까? 검사 양반, 이거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건데요. 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그쪽 진짜 죽어요. 그쪽은 나같이 좋은 성격이 아니야.”

“요새, 내 장례식 걱정하는 사람이 많네. 됐고. 술이나 한잔하자고 해.”

소상우가 물끄러미 서진을 바라봤다.

뜬금없이 자신을 통해 신마그룹의 막내아들을 만나자니.

소상우는 서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상우가 눈을 데룩데룩 굴릴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머리 굴리지 마. 네가 할 일은 그 막내라는 놈한테 연락하는 거야. 결정은 그놈이 하겠지.”

소상우가 입술을 씹었다.

순간 서진이 놈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3년 전에 사고를 당했거든? 아파트 5층에서 날 밀었던 새끼가 있어. 그놈도 이 바닥에 있는 놈이야. 그놈 찾아와 주면...”

“......”

“10억 줄게.”

서진이 이곳에 직접 찾아온 이유다.

소상우는 갑작스레 이곳의 신흥 큰손이 된 놈.

고아 출신 양아치가 어떤 노력도 없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은 그 뒤에 진짜 큰손이 있다는 거다.

그들과의 연결점, 그리고 서진이 그 뒤를 캐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면, 놈들의 그림자가 나타날 게 분명하다.

“10억 싫어?”

소상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갑자기 10억이라니,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서진의 눈빛은 진심이다.

“그럼, 20억?”

“...지금 뭘 하자는 거죠?”

“좋아. 20억 낙찰. 30초 줄게. 고민해. 그게 아니면 다른 사무실로 찾아갈 거야.”

서진이 휴대폰으로 타임 워치 앱을 열었다.

그리고 소상우를 향해 화면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난 너 같은 심부름꾼을 잡고 싶지 않아. 그 위에 있는 놈을 잡고 싶은 거지. 20초 남았네. 20억 날아간다. 10초. 9초. 8초.”

“자, 잠깐만요!”

소상우가 서진의 손을 잡았다.

< 그림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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