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17화 (117/250)

< 그림자. -(2) >

***

“어이? 후배님?”

책상에 엎어져 있던 이은하 기자가 고개만 빼꼼 들어 후배 기자를 불렀다.

그러자 후배 기자가 업무하던 것을 멈추고 의자를 돌려 앉으며 이은하 기자를 향했다.

“왜요?”

“나, 매력 없니?”

“잉?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답이나 해. 매력 없냐고.”

“선배는... 입만 열지 않으면, 최고죠.”

“입?”

“얼굴은 여배우도 오징어 만들 정도로 청순이고, 선배만큼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요. 정말 다 좋은데요. 입은 참...”

“확!”

이은하 기자가 책상에 있던 책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집어 던질 것처럼 치켜들자 후배 기자가 다급히 몸을 숙이며 ‘거봐요.’라며 중얼거렸다.

“하...”

이은하 기자가 한숨을 내뱉으며 책을 내려놓자 후배 기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은하 기자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왜요? 누가 선배 싫대요? 그런 미친놈이 있어요? 아니지, 설마 욕했어요? 그 앞에서 씨발새끼라고 말한 것은...”

이은하 기자는 결국 책을 집어 던졌고 후배 기자는 아파했다.

그리고 이은하 기자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법원 앞 커피숍에서 있던 일을 떠올렸다.

*

이은하 기자는 스트로를 입에 물고 서진과 이두진 변호사, 두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두진 변호사가 입을 연 것은 한참 후, 커피잔에서 얼음이 녹아내릴 때였다.

“...어떤 걸 하자는 거죠?”

“생각하시는 그거요.”

이두진 변호사가 어이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오만한 말이다.

남의 생각을 어떻게 알고 저렇게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서진이 그저 철부지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내 생각을 알고 있다고요?”

“네.”

서진이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내려둔 후 이두진 변호사를 향해 밀어 넣었다.

기사 제목이 보인다.

-ENS 주가 조작 의혹, 소액주주들 집단 소송 준비.

이두진 변호사의 눈빛에 당혹스러움이 채워졌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게 맞다.

하지만 소장은커녕 소송을 맡겠다는 공식적인 발표를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두진 변호사의 시선이 천천히 서진을 향했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죠?”

“...맞기는 한데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봤다.

그리고 공판을 진행하는 동안 벤처기업 ENS에 대한 대략적인 조사를 끝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

서진이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툭 치며 입을 열었다.

“시가 총액 6천억의 벤처 기업, 뒤에는 신마 그룹의 신일승과 종로 큰손 소상우가 있죠.”

“......”

“소상우는 ENS의 주가를 도박장처럼 활용했어요. 꾼들을 모으고 꽁짓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주가를 올렸다가 폭락시켰죠.”

“......”

“개인적으로 사채업자들의 뒤를 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ENS를 알게 됐고 변호사님이 준비한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

“그래서... 제 실력은 어땠습니까?”

서진은 ENS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자신의 실력을 물었다.

당황한 이두진 변호사가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검사님 실력이야...”

“제 실력 보려고 신지석의 변호를 맡으셨잖아요?”

서진의 도발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이두진 변호사는 마른 침을 삼켰다.

사실이다.

비난을 받으면서도 신지석의 변호를 맡은 이유는 하나.

서진의 실력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싸워야 할 상대는 재벌이다.

그중에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

어설픈 실력과 각오로 덤비면 바다에 던져져 고기밥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까지 예상했다니.

이두진 변호사는 서진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느낌을 받았고 양손을 들며 말했다.

“졌습니다. 인정할게요. 완패에요.”

“그래서, 제 실력은... 같이 할 만하다고 생각되셨나요?”

“과분하죠.”

서진은 과감하다.

사이비 종교에 독단적으로 들어갔고 판사와 변호사 그리고 검사와 경찰 서장까지 잡아냈다.

게다가 사건을 파고드는 능력까지 훌륭하다.

재벌과 싸우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이두진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진이 입을 열었다.

“서로 패는 깐 것 같은데, 하나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이두진 변호사가 긴장된 시선을 보였다.

이미 발가벗겨졌는데 또 어떤 질문을 내던질지 예상할 수 없어서다.

그리고 서진이 이두진 변호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싸우세요?”

“.....!”

이두진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가 아니다.

그런데, 돈 안 되는 일만 하고 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대답을 들었는데 또라이라 생각되면 과감히 일어설 생각이었다.

이두진 변호사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기업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아하죠. 다만 그들이 지금보다 더 이기적으로 돌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어서 막고 싶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모범 답안이네요.”

이두진 변호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꽤 부유하게 자랐어요. 아버지가 작은 회사를 운영했거든요. 김 검사님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밥은 먹고 살았죠.”

“......”

“그런데, 아버지 회사가 가진 특허권을 대기업에 빼앗겼어요. 은행이 대출을 막았고 집에 딱지가 붙었죠. 시원하게 망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의 이기심을 막고 내 작은 복수를 하고 싶다는 것. 이게 전부입니다.”

“......”

“아, 하나 더 있네요. 긴 싸움이 끝난 후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에요. 집단 소송도 꽤 괜찮아요. 손해 보는 짓은 아니죠. 이 정도 말했으면 대답이 된 것 같은데요?”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이두진 변호사가 물었다.

“내 대답은 됐고. 김서진 검사님이 이 사건을 맡으려는 이유는?”

“실적이죠. 제 꿈이 크거든요.”

“지금부터 총장 자리를 노리시나 봅니다. 하하하.”

“글쎄요.”

서진은 빙긋이 웃으며 시선을 틀어 창밖을 바라봤다.

‘검찰총장?’

서진은 그 이상을 노리고 있다.

권력과 재력 그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집어삼킬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원래의 서진, 누가 그를 죽였는지 그 그림자를 찾는다.

-신마 그룹을 흔들어 알짜 계열사 하나를 손에 쥔다.

그리고 서진은 신마 그룹의 계열사를 빼앗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키운 회사가 아니다. 그들 역시 남을 짓밟으며 인수한 거다.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자기 것 역시 털릴 수 있다는 것을 친절히 가르쳐주고 싶었다.

*

“하...”

커피숍에서의 일을 생각하던 이은하 기자가 한숨을 내뱉었다.

커피 한잔하자고 해서 기대했더니, 이두진 변호사를 만나 업무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진이 했던 말.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재벌과 싸울 때는 여론전이 필수니까요.

이은하 기자가 중얼거렸다.

“...내가 기자라서 만나는 건가? 하긴, 그래서 만나는 거지.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잖아? 검사니까, 일적으로 보는 거지. 그런 거야.”

책에 맞았던 후배 기자가 힐끗 이은하 기자를 살폈다.

중얼 중얼거리는 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후배 기자는 조심스레 물었다.

“선배님, 혹시요. 김서진 검사한테 욕한 거예요? 어? 제 말이 맞아요? 대박! 그 검사님 무섭지 않아요? 얼굴은 순한데, 하는 짓 보면...”

“아니야.”

“에이, 맞잖아요? 요즘에 김서진 검사에 꽂혀서 기사를 봐도...”

“꺼져. 닥쳐. 한 마디만 더 해봐. 이번엔 모서리로 맞출 거야.”

이은하 기자가 표지가 딱딱한 책을 손에 들었다.

후배 기자가 식겁한 표정을 지을 때, 이은하 기자의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후배 기자가 살았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뱉었고 이은하 기자는 무심한 눈으로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손에 든 이은하 기자가 갑자기,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검사님. 아뇨,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후배 기자는 여우를 보는 눈빛으로 이은하 기자를 바라봤다.

***

“경찰이세요?”

“아뇨.”

“그런데, 그런 것은 왜 물어요?”

“혹시나 해서요. 때릴까 봐.”

며칠 후, 서진은 종로의 한 사채업자 사무실에 와 있었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쾌적하지 않다.

낡은 소파와 책상, 그리고 먼지가 가득한 창틀, 책상에 앉아 있는 험악한 사내.

사채업자가 턱을 매만지며 낄낄 웃었다.

“아이고, 요즘 세상이 어떤데, 사람을 때리고 그러겠어요? 오히려 우리가 돈 달라고 절절맨다니까요? 돈 빌릴 때는 심장이라도 뽑아 줄 것처럼 하다가 막상 돈 낼 때가 되면 배 째라고 드러누워요.”

“어? 그럼, 안 갚으면 어떻게 해요?”

“고소하죠. 우리는 합당한 이자를 받는 합법적인 회사니까요. 그래, 얼마나 필요해요?”

서진이 물끄러미 사채업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2천만 원만 빌릴게요.”

“직업이?”

“공무원이요.”

“공무원? 캬! 좋은 직업이네. 요즘 공무원이 일등 신랑감이죠. 흐흐. 그럼, 선이자 24% 떼고...”

사채업자가 계산기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1,520만 원이네. 오케이?”

“갚을 땐요?”

“기간 약정을 얼마나 하실 건데?”

“1년이요.”

“보자, 보자.”

사채업자가 즐거운 표정으로 계산기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일수로 받거든요. 한 달 20일로 잡아서 우수리 떼고, 하루 10만 3천 원씩 주시면 되겠네. 하루 늦으면 연체이자가 10%니까 그거 감안하시고요.”

서진은 잠시 계산해 봤다.

받을 돈은 1,520만 원인데 1년 동안 바치는 돈이 2,480만 원.

그럼 이자는 50%가 넘어간다.

법정 이자를 아득히 넘는 수치다.

게다가 하루 늦으면 추가 이자가 10%.

미친 거다.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실제 지급받은 금액만 원금으로 인정된다고 들었는데요.”

“아이고, 고객님... 잘 못 알고 계시네. 우리는 합법적으로 24%를 받는 거고요. 선이자는 안전장치, 고객님이 돈 안 내고 튀었을 때, 채권 알죠? 그거 발행하거든. 그러니까 나가서 따져 보세요. 누가 맞나. 법을 잘 모르시네.”

“...법을 잘 모른다고요?”

“네!”

사채업자가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껏 무시하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혹시,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오셨어요? 거기 다 선무당이에요. 그 사람들이 뭘 알아? 제 말을 못 믿겠으면 법원에라도 전화해 보세요. 24%가 맞는지 틀린지? 이쪽 법을 제가 잘 알겠어요? 아니면 고객님이 잘 알겠어요?”

사채업자는 검사를 앞에 두고 계속해서 법을 들먹이고 있다.

급기야 서진을 향해 법을 잘 모른다며 타박까지 한다.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나 몰라?”

“.....?”

“좀 더 유명해져야겠네. 아직 모르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사채업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진을 바라봤다.

순둥순둥한 얼굴로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모르겠다.

“...누구세요? 연예인? 아니, 공무원이라면서요?”

“검사.”

사채업자가 빵 터졌다.

배를 잡고 한참을 웃다가 낄낄대며 입을 열었다.

“재밌는 고객님이네. 그쪽이 검사면 난 검찰총장이에요. 장난 그만치고. 돈 빌릴 생각 없으면...”

서진이 신분증을 ‘툭’ 던졌다.

사채업자의 눈동자가 던져진 신분증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신분증을 살피다가 영혼 없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진짜 검사?”

“이쪽 바닥에서 큰 손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소상우, 그놈이 네 쩐주지? 시끄럽게 하지 말고 조용히 가자. 그럼, 다른 문제는 건들지 않고 여기만 터는 것으로 약속할게.”

사채업자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 그림자. -(2)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