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천 억. -(3) >
***
“엄마! 가야 한다고!”
이소희는 집에 있었다.
부운 교에 빠진 엄마를 설득하는 중이다.
지금 피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어려웠다.
“놔!”
교회에 간다며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쓰러진 이소희를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딸을 보는 눈이 아니다.
마귀 또는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때, 삑삑삑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눌렸고 이소희의 시선이 현관을 향해 틀어졌다.
밖은 서진이 붙여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들어올 사람이 없는데, 비밀번호가 눌린다는 것은...
“엄마, 나가야 해! 지금, 나가야 해!”
이소희가 다급히 일어나 엄마의 팔을 끌었다.
집은 1층이다.
창문으로 넘어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안 가! 놔!”
“가야 한다고!”
이소희는 반항하는 엄마의 팔을 질질 끌고 베란다를 향해 이동했다.
“제발...”
순간 현관문이 덜컹 열렸다.
그리고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소희의 눈이 공포에 질려갔다.
광신도라면 끝이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놈들은 사람을 죽이는데 거침이 없다.
순간,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판이야...”
백기호 의원이었다.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백기호 의원이 천천히 시선을 틀어 주변을 살폈다.
엎어진 액자와 깨진 유리 조각.
백기호 의원이 입을 열었다.
“나와.”
이소희가 베란다 문을 열고 주춤주춤 밖으로 나왔다.
그 옆에 선 이소희의 엄마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소희의 엄마는 백기호 의원을 애틋한 눈으로 보고 있지만 몸은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신보다 백기호 의원이 더 무서웠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달랐다.
감정 없는 눈으로 이소희와 그녀의 엄마를 보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거실로 나오자 리모컨을 툭 눌렀다.
텔레비전 화면에 서진이 보였다.
-중앙지검 김서진 검사가 교단 내부에 잠입해 신지석 부운 교 회장과 서동식 목사의 체포에 성공했습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없었으며...
백기호 의원이 천천히 고개를 틀어 이소희의 엄마를 향했다.
“당신의 신은 끝났어.”
“......!”
이소희의 엄마가 후들후들 떨었다.
눈에는 절망만 가득하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상관하지 않고 저벅저벅 이소희의 엄마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걱정하지 마. 앞으로는 내가 지켜주지. 거절은 하지 마. 난 내 손이 민망하기를 원치 않아.”
이소희의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백기호 의원의 시선이 이소희에게 향했다.
그런데, 이소희의 눈빛은 그녀의 엄마와 달랐다.
적대적인 시선으로 백기호 의원을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이소희의 눈빛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예쁘게 컸구나.”
“...역겨우니까 그만 해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생각은 자유지. 하지만 뒷감당은 생각하고 내뱉어야 할 말이야.”
이소희는 입술을 씹는 게 전부였다.
그러자 백기호 의원이 화면에 보이는 서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놈이 네 친구라는 말을 들었는데.”
“......!”
“겁먹지 마. 당황하지도 말고. 저놈은 관심 없어.”
백기호 의원은 거인이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에게는 관심이 없다.
“저놈의 작은아버지가 궁금한 거지.”
***
그 시각, 부운 교 입구.
서진을 향해 카메라가 몰려 있었고 기자들의 입에서 쉬지 않고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교단 잠입이 사전에 계획되어 있던 겁니까?”
“위험 요소는 없었습니까?”
서진은 기자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바라봤다.
그리고 이은하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세상을 본다 이은하 기자입니다. 체포할 당시 신지석 회장이 반항하지는 않았나요?”
“조금은 반항했지만 그게 전부였고 순순히 동행했습니다.”
서진이 처음으로 대답했다.
다른 기자들이 이것저것 물어왔지만 서진은 이은하 기자만 바라봤다.
위험한 상황에 메시지를 보내준 사람이다.
이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이은하 기자가 부끄럽게 웃으며 다시 질문했다.
*
한 편, 입구를 막고 있는 부운 교 신도들.
그들의 앞에 서동식이 서 있었다.
신도들의 눈은 살벌했다.
서동식의 명령이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죽창을 들고 경찰과 싸울 각오였다.
하지만 서동식은 고개를 저으며 인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싸움은 안 됩니다. 스승님과 저는 스스로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하고 계세요. 검찰의 압수수색에 협조하세요. 우리는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이번 일도 우리의 떳떳함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서동식은 신지석을 팔아먹고 교주가 될 생각이었지만 신도들이 그 계획을 알기는 어렵다.
서동식의 말을 들으며 죽창을 내려뒀고 폭력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이 천천히 입구를 열었다.
드디어 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수사관들이 검찰 박스를 들고 교단에 진입했다.
그중 가장 앞서 걷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한 수사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사관, 부탁 좀 할게요. 압수수색은 우리한테 맡기고 김서진 검사가 또 위험한 짓 할 수 있으니까 옆에...”
순간, 뜬금없이 터져 나온 목소리.
“불이야! 불이야!”
“119 불러!”
검은 연기가 확 피어올랐다.
교회가 불타기 시작한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 어떤 새끼가...”
부운 교회의 목사는 서동식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외에도 수십 명의 목사가 있다.
그들이 받은 매뉴얼 중 하나.
-교주가 잡혀갔을 때, 신전을 불태워라.
단 하나의 증거도 남겨두지 않고 태워버려야 그다음을 기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다급히 말했다.
“김서진! 잡아둬요! 당장!”
서진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지금껏 봐온 성격을 생각하면 불타는 곳으로 뛰어들어 증거를 꺼내 오려 할 가능성이 크다.
“어서요!”
그런데, 수사관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흘렀다.
“어, 없어졌습니다.”
“네?”
조우재 부장검사의 시선이 홱 틀어졌다.
방금까지 기자들과 인터뷰하던 그 장소, 서진은 없었다.
“씨발, 홍길동도 아니고!”
조우재 부장검사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김서진 검사 어디 있어? 주변 찾아봐! 있으면 잡아! 아무 곳도 못 가게 수갑이라도 채워!”
동시에 무전기에서 한 수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서진 검사 여기 있습니다. 신지석 인도 차량이요.
*
수사관들이 타고 온 승합차.
다른 사람은 없었다. 오직 서진과 신지석만이 마주 앉아 있었다.
신지석이 창밖을 보며 자신 있는 미소를 그렸다.
“활활 타네요. 마음에 들어요.”
창밖에는 검은 연기가 미친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소방차가 와도 증거를 보존하기는 힘들 거다.
불이 꺼지면 모든 게 잿더미, 놈의 죄가 사라지는 거다.
바깥 풍경을 즐기던 신지석의 시선이 서진에게 향했다.
놈이 느긋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검사 양반, 그쪽이 우리를 배신하게 만든 것은 성공했어요. 하지만 재판에서는 실패할 겁니다. 난 죄가 없거든.”
“그것도 신의 뜻인가?”
신지석이 재수 없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
“네, 신의 뜻이죠. 우리가 교단을 왜 목조 건물로 지어뒀을까요? 휘발유를 왜 보관하고 있었을까요? 생각해 봤습니까?”
“생각이라... 그럼, 그쪽은 생각해 봤나? 당신을 체포할 때, 내가 왜 화장실에 갔다 왔을까? 그 다급한 순간에 왜? 잠깐만 참으면 될 텐데, 도대체 왜?”
신지석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서동식이 신지석의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던 순간이었다.
서진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말했었다.
급박하던 상황에 이해할 수 없던 행동.
기억을 끝낸 신지석이 눈을 깜빡였다.
“...왜?”
서진이 품에서 노트와 USB를 꺼내 보였다.
동시에 신지석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 그건...”
노트는 권력자에게 뇌물을 꽂아 준 장부다.
USB에는 자신의 재산 사항, 즉 교단의 자금을 횡령한 파일이 들어 있다.
서진이 악마처럼 웃으며 말했다.
“서랍에 숨겨 뒀더라?”
신지석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아직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얼마 전, 100억 원 이상을 횡령한 목사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고작 3년!’
실력 있는 변호사를 구하면 자신도 그만큼만 살고 나올 수 있다.
그다음은 하기 나름이다.
‘다시 신도를 모으면...’
하지만 그 믿음은 끝났다.
서진이 신지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는데, 하나 더 말해줄까? 신자 명단도 확보했어. 지금부터 그 명단에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가릴 생각이야.”
“......!”
“살인을 저지른 놈이 누군지도 알고 있어. 무슨 집사였는데? 뭐, 어쨌든 그놈도 곧 체포될 거야.”
신지석의 얼굴이 끔찍할 정도로 창백해졌다.
그리고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서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궁금하네. 그놈이 끝까지 입을 다물어 줄지, 아니면 그 입에서 네 이름이 나올지.”
“......!”
“서동식이 내 손을 잡았잖아? 그놈이 도와주면 곧바로 네 이름을 내뱉을 거란 것에 만 원을 걸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신지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허옇게 변한 얼굴로 손만 바르르 떨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게 끝이다.
그리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서진이 놈의 어깨를 꽉 잡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거물인 척 허세 부리지 마. 넌 그저 쓰레기야.”
***
그 시각, 서진의 엄마와 동생 진영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부운 교의 건물이 불에 타는 장면이 생방송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현장은 아수라장입니다! 신지석 회장과 서동식 목사의 체포에는 성공했지만, 아! 건물이 무너지는 중입니다!
서진의 엄마는 눈을 감았다.
차마 화면을 볼 수 없어서다.
손을 모으고 서진이 무사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기자의 목소리는 긴박하게 이어졌다.
-인명 피해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인멸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수사의 난항이 예상됩니다!
그런데, 소식을 전하던 기자가 멈칫거렸다.
누군가에게 쪽지를 전해 받더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빠르게 입을 열었다.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내부에 잠입했던 김서진 검사가 증거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신지석 회장의 횡령을 밝힐 수 있는 명확한 증거로... 저기! 김서진 검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어서 어디로 달려가는지 카메라가 흔들렸다.
당연하지만 목적지는 서진이다.
서진의 얼굴이 확 줌인 되며 기자가 다급히 물었다.
-증거를 확보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화면 속 서진의 얼굴은 침착했다.
그 얼굴을 본 엄마는 이제야 안정됐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진영도 마찬가지다.
눈을 크게 뜨고 텔레비전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과자를 먹으며 농담도 던진다.
“엄마, 형이 저 기자한테만 대답해 주는 것 맞죠?”
“어?”
가만히 보니까 그렇다.
서진은 한 기자의 질문에만 답하고 있었다.
진영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은하라고 미인 기자로 꽤 유명해요. 형이 저 기자하고 인터뷰도 몇 번 했어요. 혹시 여자 친구?”
“설마, 서진이가 맞선을 미루는 이유가...”
서진의 엄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은하 기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치 고가의 도자기를 살피는 것처럼 샅샅이 확인하고 있다.
진영이 과자를 아삭거리며 말했다.
“형이 기억을 잃더니 취향도 바뀌었네, 예전에는 가슴 큰...”
엄마의 시선이 진영을 향했다.
서진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표정이다.
진영이 손을 저었다.
“그러니까, 몸매 좋은 걸 좋아했다는 소리죠. 아, 댓글이나 봐야겠다. 사람들이 형을 뭐라고 말하는지...”
진영이 엄마의 시선을 피하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때였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 인터폰 화면에 나타난 사람.
진영이 휴대폰을 내려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은어머니?”
< 3천 억.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