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08화 (108/250)

<잘못된 믿음. -(3)>

서동식은 서진의 생각을 모른다.

그래서 활짝 웃는 서진의 표정을 보고 그 생각을 읽으려 했다.

그런데.

‘이 새끼 봐라?’

서동식은 수만 명의 신도를 이끌고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봤고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진의 표정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입꼬리부터 눈가의 휘어짐까지, 전부 진심으로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정말 교단에 들어오려 하는가? 아니면?’

서동식은 서진을 믿지 않았다.

조금 전, 서동식은 이곳에서 서진을 기다리며 그 이력을 살폈었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이름만 검색해도 관련 기사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서진은 짧은 시간 갖가지 난해한 사건을 해결했고 서울에 오자마자 검사와 경찰 서장을 잡아낸 스타 검사.

‘그런 놈이 생각 없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잖아?’

이 교단은 피해 의식이 가득한,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서진처럼 승승장구하는 인물이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동식이 생각을 이어가며 마른 침을 삼킬 때였다.

서진의 시선이 이소희를 향해 틀어졌다.

“그런데, 같이 있을 거야? 면담은 나 혼자 해도 되는 거잖아?”

새 신자가 입교 신청서를 작성할 때, 전도자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게 이곳의 룰이다.

그런데, 서진은 그 룰을 어기려 한다.

“안 돼.”

이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서진이 민망한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고해성사도 하던데, 네 앞에서 내 잘못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거든.”

이소희가 당황한 눈으로 서동식을 바라봤다.

“선생님...”

서동식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희 님, 나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아, 네.”

이소희가 서동식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복도로 나선 이소희가 문을 탁 닫으며 벽에 기대고 섰다.

그 순간 이소희의 표정이 변했다.

당황했던 눈동자가 침착해지며 매섭게 바뀌었다.

그리고 이소희는 머릿속으로 서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신도 명단, 서동식의 방에 있다고 했지? 내가 서동식과 면담하는 동안 확보해.

명단을 손에 얻으면 실종 또는 사망 신고가 된 사람을 추릴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의 범죄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는 거다.

이소희가 몸을 틀었다.

그리고 서동식의 방을 향해 거침없이 움직였다.

*

그 시각.

서진은 서동식의 앞에 마주 앉아 개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알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서동식은 정말 말이 많았다.

하지만 요약해 보면.

-이 교회는 신에게 선택된 참된 교회다.

-스승님 신지석은 신과 연결되는 유일한 인간이다.

-천국행 티켓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다. 등등.

서동식 자신도 개 소리라는 것을 아는지 한 마디, 한 마디를 끝낼 때마다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것을 통해 서진의 목적을 따져볼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패다.

서진의 표정은 처음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 말에 넘어가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내뱉었다.

“...저도 선택받을 수 있을까요?”

서진이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서동식의 표정이 밝아졌다.

놈이 다급히 묻는다.

“선택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께서는 진실한 마음을 듣고 싶어 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말씀하세요. 우리는 다 똑같은 형제, 자매입니다.”

“사실, 이 교회에 온 게....”

“말씀하세요!”

“처음에는 그저 종교를 갖고 싶었어요. 열심히 살아서 검사가 되었지만 공허하거든요. 어딘가 의지하고 싶었는데, 이소희가 전도해줬고요.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저도 선택받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헛소리를 내뱉자 서동식이 서진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힘차게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신도님이 우리 교회로 온 것부터 이미 선택되었다는 증거이며 신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며 사이코 메트리가 시작되었다.

*

서동식 그리고 도사견의 목줄을 쥐고 있던 남자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소희, 김서진 이 두 사람에 대한 감시를 최성돈 집사님께 맡기겠습니다.”

“...제가요?”

서동식이 최성돈 집사를 보며 미소를 그렸다.

“이소희, 김서진과 처음 마주친 것은 집사님입니다. 신께서 집사님을 선택한 거죠. 그래서 그 결정도 집사님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만약 그분들에게 악마가 끼인 것 같다면, 그때처럼 직접 벌을 내리세요. 신은 집사님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최성돈 집사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뜻이요?”

“네!”

“그때처럼... 알겠습니다.”

최성돈 집사의 표정은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졌다.

*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았다.

서진의 시선에 맞은 편에 앉은 서동식이 보였다.

놈은 인자한 미소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저 미소는 가식, 놈은 서진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서진 역시 연기를 하는 중이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살인 교사.’

사이코 메트리에서 놈은 최성돈에게 말했다.

-그때처럼 직접 벌을 내리세요.

서진이 그 목소리를 기억하며 미소를 그렸다.

‘최성돈.’

머릿속에 첫 번째 타깃이 설정됐고 이 교회를 뒤집을 순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서진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잠시 단꿈을 떠올렸다.

교주를 잡아들인 후 이 교단을 해산시킨 뒤에 일어날 보상.

-김영준 검사장에게 신뢰를 얻는다.

-그들의 리그에 합류할 수 있다.

이 나라를 제물로 삼아 비리를 저지르는 재력가와 권력자, 지옥에 어울리는 자들.

놈들의 것을 빼앗으면 천국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서진의 시선이 다시 서동식에게 향했다.

김칫국을 마시기에는 아직 이르다.

살인을 지시받은 최성돈 집사, 그는 위험하다.

놈의 눈빛은 정상이 아니었고 자신이 순교자라 생각하며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소희에게도 경호를 붙여야겠어.’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입교 신청서를 작성하시죠. 하지만 바로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껏 지은 죄를 회개하고 신께 헌신하면 스승님께서 알아볼 겁니다. 그때, 세례를 받을 수 있고 부운교의 신자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서동식이 파일철을 열어 서류를 꺼냈다.

입교 신청서다.

서진이 펜을 잡으며 빙그르 돌렸다.

그리고 궁금했던 것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천국행 티켓, 저도 얻을 수 있을까요?”

“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이 말은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치라는 뜻이죠. 모든 것을 비우고 영생을 얻으세요. 그럼, 스승님이 알아보시고 신께 고할 겁니다.”

멋대로 해석한 사이비 교리였다.

우습지도 않았지만 서진은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억?”

“네?”

“부족한가요? 그럼, 2억?”

서동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서진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거다.

하지만 서진이 휴대폰을 올리는 순간 서동식의 눈이 커졌다.

화면에 5억 8천만 원이 든 계좌가 보였기 때문이다.

서진이 휴대폰을 손가락으로 툭 치며 입을 열었다.

“3억. 헌금해도 되는 건가요?”

서동식의 눈에 순간 욕심이 스쳤다.

서동식은 아직 서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진정한 신자가 되기 위해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

하지만 눈앞에 있는 돈은 진짜다.

자고로 사람은 믿지 못해도 돈은 믿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서동식이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 돈을 헌금하면 스승이 가져가잖아?’

서동식은 깔짝깔짝 월급만 받고 있다.

헌금에 손을 대서 삥땅도 치지만 큰 금액은 아니다. 고작 용돈 벌이다.

‘하지만 3억.’

엄청난 숫자의 신도가 있지만 한 번에 3억을 집어넣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 돈이 눈앞에 보인다.

마음만 먹으면 그 돈이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오게 할 수 있다.

서동식이 결정했다.

“많은 돈이군요. 계좌로 넣으셔도 괜찮습니다.”

서진이 슬쩍 웃었다.

예상했던 대로 놈의 탐욕이 느껴졌다.

놈은 자신의 계좌 번호를 적어줄 게 분명하다.

놈은 신자들을 향해 모든 것을 바치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탐욕적으로 돈을 원하고 있다.

‘이놈도 이용해야겠어.’

세상에서 가장 이용하기 쉬운 놈이 돈에 눈먼 자들이다.

서진이 휴대폰을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계좌 주세요.”

놈이 활짝 웃었다.

***

그 시각, 중앙지검.

김영준 검사장이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세상은 서준경 검사의 장례로 시끄럽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시민 단체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 덕에 검찰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었다.

“잘했어.”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서준경을 죽였던 놈들, 몇 놈 끄집어서 장례식에 올려볼까요?”

김영준 검사장과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준경을 죽인 인간 백정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잡지 않았다.

서준경은 눈엣가시였고 그 뒤에 송원태 의원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영준 검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됐어. 죽은 놈을 이용하고 있지만 저 이름을 계속 보는 것은 불쾌해. 여기까지만 해.”

조우재 부장검사는 주장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저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

“서진이에 대한 일입니다.”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다시 조우재 부장검사를 향했다.

그러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서진이가... 그... 지금...”

“말해.”

“...부운 교회를 수사하고 있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뭐라?”

“...그러니까 검사장님이 반드시 다음 총장이 되어야 한다면서, 앓는 이를 뽑아야겠다고 부운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지금 그쪽 간부와 접촉했고...”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말이 이어질수록 김영준 검사장의 얼굴이 흉악해졌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거기가 어디라고!”

위험하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사이비의 광기는 막기 어려운 거다.

그리고 그 한 마디로 서진에 대한 의심은 사라졌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데, 믿을 수밖에 없다.

그때, 김영준 검사장의 휴대폰이 드르르륵 진동했다.

집사람에게 온 전화다.

김영준 검사장이 ‘끔.’ 신음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

-윤환이 어떻게 할 거예요?

“바쁘니까 집에 가서 말해.”

-오늘도 울면서 전화가 왔어요! 한국에 가고 싶다고! 그 여린 애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도 안 해요? 아주버님이 재정 건설에 자리 하나 못 내준대요? 당신 형이잖아! 그 회사 일으키는데, 당신 힘이 컸잖아!

김영준 검사장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조카 서진은 자신을 총장에 올리겠다고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자식이란 놈은...

“하...”

김영준 검사장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하지만 집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못하면 내가 할게요. 내가 오늘 아주버님 댁에 가서!

“하지 마!”

-하, 내 인생 망쳐 놓고 하지 마? 조용히 해요. 다 윤환이 잘 되라고 이러는 거야!

악만 남은 목소리였다.

김영준 검사장이 휴대폰을 내려뒀다.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왜... 왜!’

처음부터 잘 못 됐다.

다른 남자를 만나던 여자를 탐했던 것부터, 임신을 했고 결혼을 했던 그 모든 것.

하지만 삶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잠시 인상을 구기던 김영준 검사장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집안 일은 집에 가서 고민해야 한다.

“우재야.”

“네, 검사장님.”

“언론사 돌려서 부운 교에 대한 비난 기사 작성하라고 해. 살인 사건, 명확히 그쪽이라고 전달해.”

“네?”

갑자기 여론전이라니, 조우재 부장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이어졌다.

“부운 교, 압수수색 준비해.”

“네?”

순간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커졌다.

서진이 개인적으로 하는 수사와 검사장의 지시는 파급력이 다르다.

“거, 검사장님 자칫 종교를 탄압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살벌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우리는 종교를 탄압하는 게 아니라 살인자를 잡는 거야. 그러니까, 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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