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믿음. -(2)>
강원도에 있어야 할 이소희가 뜬금없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뭐지?’
서진이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이소희는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잠깐만...”
서진과 신경전을 벌이던 남자 세 명도 이소희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짖어대는 도사견을 진정시키며 뒤로 물러섰고 그사이 이소희가 창살로 된 입구를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는 사람이에요?”
남자의 질문에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친구예요. 친구.”
“그럼, 전도?”
“아, 음... 네.”
이소희의 대답과 동시의 놈들의 표정이 다시 한번 돌변했다.
조금 전만 해도 놈들의 눈빛은 사나웠다.
살기를 질질 흘리며 도사견을 앞세워 죽일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지금은 살살 웃는다.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자매님과 함께 오셨다면 다 스승님의 제자지요. 환영합니다.”
“저희가 실수했습니다. 요새 하도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아서요.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선하고 사람 좋은 얼굴, 누가 봤다면 진정한 신앙인으로 여겨질 것 같은 말투.
하지만 서진은 그게 더 끔찍했다.
놈들의 미소가 광기에 휩싸인 미친놈들로 여겨질 뿐이다.
놈들이 서진과 이소희를 향해 꾸벅, 꾸벅 인사한 후 자리를 피했다.
“그럼, 말씀 나누세요.”
그런데, 서진은 놈들의 눈빛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소희를 바라보는 시선, 미약하지만 의심의 눈길을 담고 있다.
그게 서진과 함께 있어서 그런 것인지, 처음부터 이소희를 좋지 않게 보고 있어서 인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꺼림칙하다.
“이제 가.”
이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진이 고개를 틀자 이소희는 민망한 얼굴로 서 있었다.
“가라고?”
“어.”
“전도 안 해?”
“야, 그건 그냥 한 말이잖아.”
“됐고. 우리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이소희가 서진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입을 열었다.
“...그냥 안 하면 안 될까?”
서진이 방금 서진과 시비가 붙었던 세 명의 남자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수색을 하는 것처럼 담벼락을 따라 걷는 중이다.
서진이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난 저 사람들을 잡아갈 거야. 사나운 개를 앞세워 검사를 협박한 죄, 머리채 잡고 끌고 가기엔 충분할 것 같은데. 어쩔래?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이소희는 ‘정말 못 됐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자. 해.”
이소희가 서진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커피숍이었다.
교회 주변에 있는 가게는 대부분 신도가 운영하는 곳이라며 멀리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이소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좋아하는 쿠키와 케이크도 내버려 둔 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서진은 재촉하지 않았다.
서진이 알고 있는 이소희는 저런 종교에 빠질 사람이 아니다.
동남에서도 춘천에서도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잘못된 신앙에 의지해 살아갈 정도로 의지가 약하지 않다.
그런 이소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소희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저 교회 신자야. 우리 집이 사연이 좀 있는데, 어쨌든 그 가정사 때문에 괴로워하셨거든. 그때부터 의지했던 것 같아.”
조금은 예상했던 말이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씩 오고 있어. 믿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 내가 교회에 가지 않으면 엄마가 힘들어하거든. 지옥 간다고. 믿음을 방해하는 마귀가 들어섰다고. 그래서 가족의 평화를 위해 시간 날 때 참석하는 중이야. 지금은 휴가 중. 됐지?”
이소희의 성격은 덤덤하고 무던하다.
그런데, 지금의 표정은 괴로워 보였다.
“말해줘서 땡큐.”
“하...”
이소희가 한숨을 내뱉으며 커피를 손에 들었다.
목이 타는지 참 많이 마신다.
그리고 그녀가 커피를 내려뒀을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친구로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들었고. 이제 검사로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어?”
서진이 휴대폰을 들어 이소희의 앞에 내려뒀다.
가평에서 죽은 7명의 신자, 그들의 기사가 보였다.
서진이 기사를 손으로 툭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아는 거 있어?”
이소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 마.”
“이유는?”
“중앙지검으로 신자들이 찾아갈 거야. 그리고 너를 보며 외칠 거야. 지옥에나 가라고. 그게 하루, 이틀 어쩌면 몇 개월 또는 몇 년이 될지도 몰라. 저 사람들 그러고도 남아.”
“지옥?”
서진이 슬쩍 웃었다.
“상관없어. 지옥이면 더 좋네. 나쁜 놈들 많고. 그놈들 다 잡으면 왕이 되는 거잖아? 누가 그러더라. 지옥에서도 왕 잡으면 그곳이 천국이라고.”
“그 말이 아니잖아!”
“아니, 맞아. 신지석이라는 놈 잡으면 그곳이 나한테는 천국이야. 그러니까, 아는 것 있으면 말해 줄래?”
“없어.”
이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할 말이 끝났다는 듯 커피숍을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서진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이소희가 눈동자를 움직여 서진을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내뱉은 말은 싸늘했다.
“놔.”
“넌 검사야. 그런데, 지금 살인을 외면하려...”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색을 잃기 시작했다.
*
이소희는 춘천의 집, 책상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툭툭 움직이며 사진을 보는 중이다.
사진은 다양했다.
-작은 철창에 갇힌 십여 마리의 큰 개.
-철창 옆에 놓인 찢어진 옷가지.
-여섯 살로 보이는 귀여운 남자아이.
이소희의 손가락이 남자아이의 사진에서 멎었다.
“없어진 아이 그리고...”
이소희의 시선이 노트북으로 향했다.
기사가 보인다.
-부운교 신자 7명 사망.
이소희가 중얼거렸다.
“...죽어버린 아이의 아빠.”
이소희가 노트를 펼치고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모두 부운 교에 대한 거다.
이어서 휴대폰에서 주소록을 열더니 서진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이소희가 멈칫거린다. 그리고 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위험해. 나 혼자 해야 해. 얘는 계속 검찰에 있을 거지만 난 아니잖아. 내 업이야. 내가 해야 해.”
드르륵.
책상에 놓인 이소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엄마다.
이소희가 힘없는 눈으로 발신 번호를 바라봤다.
“미안, 엄마. 부운 교, 부숴버릴 거야. 때리고 욕해도 상관없어. 검사가 된 이유는 두 가지. 그중에 하나는 하고 그만둬야지. 기다려. 금방 구해줄게.”
이소희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
사이코 메트리가 끝났다.
서진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뭐야.’
이소희는 수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 때문에 부운 교에 드나드는 게 아니라 혼자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방금 전, 부운 교 입구에서 봤던 놈들의 의심스러운 눈빛이 이제야 이해됐다.
“놓으라고 했어.”
이소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서진은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놈들은 이미 이소희를 의심한다.
의심의 눈빛이 크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관찰할 게 분명하다.
그럼, 언젠가 꼬리를 밟힐 테고 큰일을 당할 수도 있다.
‘그건 안 되지.’
서진이 이소희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야!”
이소희가 소리를 지르며 빼앗긴 휴대폰을 되돌려 받으려 했지만 늦었다.
서진은 이미 사진 갤러리를 열고 있었다.
그리고 이소희를 향해, 사이코 메트리에서 그녀가 보고 있던 남자아이의 사진을 보였다.
동시에 이소희의 행동이 뚝 멎었다.
그녀의 큰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같이 가자. 지옥. 천국이 될 거야.”
***
‘담임’이라는 푯말이 걸린 방이었다.
머리를 잘 빗어 넘긴 중년의 남성이 책상에 앉아 성경을 넘기고 있었다.
이름은 서동식.
부운 교회의 목사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이들은 목사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선생님이라 부른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서진과 시비가 붙었던 남자, 도사견의 목줄을 쥐고 있던 사람.
서동식이 안경을 벗으며 앞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죠?”
남자가 쭈뼛쭈뼛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소희가...”
“이소희?”
서동식의 주름진 눈가가 가늘어졌다.
이소희, 최근 교회에 오는 횟수가 늘었으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다닌다.
그 모습이 미심쩍어 관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지금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왜? 뭐가 있습니까?”
“이소희가 전도를 했습니다. 지금 이소희가 새 신자 대기실로 안내하는 중입니다.”
“그런데요?”
“그게... 검사입니다. 요즘에 유명한 검사, 김서진이라고...”
“김서진?”
남자가 서동식의 책상 위로 휴대폰을 내려뒀다.
화면에 서진의 얼굴이 있었다.
다시 안경을 쓰고 서진의 얼굴을 살피던 서동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본 적 있어요.”
서동식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최근 교회의 상황이 좋지 않다.
7명의 신자가 죽으며 세상은 부운 교를 비난했고 많은 사람이 검찰의 수사를 종용하는 중이다.
서동식이 입술을 쓸며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이 상황에 검사가 왔다?’
그것도 이름이 꽤 알려진 검사가 찾아왔다니, 뭔가 냄새가 난다.
‘뭐지?’
서동식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잘됐네요. 검찰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있잖아요? 새 신자 대기실에 있다고요? 가죠.”
***
“천국으로 가는 티켓값이라며 걷히는 헌금이 매년 약 4천억. 그 돈의 상당수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뒷주머니로 들어가고 있어.”
서진은 이소희와 부운 교회의 건물을 걷고 있었다.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긴 복도는 걸어도 끝이 없다.
“나머지는 다 목사들이 나눠 먹나?”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아직 조사 중인데, 매년 신지석의 이름으로 건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돈은 신지석의 뱃속으로 들어간다는 거다.
하지만 아무리 교주라 해도 혼자 독식할 수는 없다.
그것은.
“횡령이네?”
“의혹이 사실이라면 횡령이지.”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소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어쨌든, 사건이 벌어져도 검찰과 경찰이 서로를 탓하며 핑계를 대고 있어. 세무서는 눈을 감고 있고. 이래서 어렵다, 저래서 힘들다. 잘 못 하면 높으신 양반들을 건들 수도 있으니까.”
“......”
“정치인들이 단지 돈 때문에 눈감는 것은 아니야. 이곳의 신도. 그 숫자만큼의 표를 무서워하는 거지.”
“......”
“그런데, 할 수 있겠어? 검사장급이 되어도 주저할 텐데?”
이소희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조우재 부장검사.’
서진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부장검사님.”
-진짜 하는 거야?
“네.”
-하...
조우재 부장검사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부운 교회에 관해 이야기한 사람은 조우재 부장검사다.
그런데, 서진이 정말 뛰어 들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거대한 종교를 건드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을 말렸다.
-서진아, 내가 다른 것 찾아볼게. 이건 아니야. 어?
“알았으니까 말씀이나 해주세요.”
서진은 이소희에게 서동식과 면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곧장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연락해 서동식의 재산 사항을 물었다.
그 답변이 들려왔다.
-드러난 재산은 약 40억. 그중 아파트가 23억이고 나머지는 토지, 현금은 3억 정도 있어.
“감사합니다.”
-저기...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걱정스러웠다.
“왜 그러세요?”
-주, 죽으면 안 돼.
서진이 죽으면 조우재 부장검사의 인생은 끝이다.
그래서 정말 서진의 안녕을 기도하는 것 같다.
“알겠습니다.”
서진이 끌끌 웃으며 통화를 종료했다.
부장검사의 목줄을 쥐고 휘두르는 게 생각보다 짜릿한 일이었다.
그렇게 서진은 이소희와 함께 계속 복도를 걸었다.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창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고 복도를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이 서늘한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악마.
-마귀.
그들은 서진의 얼굴을 알아봤다.
그리고 어떤 논리도 없이 서진을 적대적으로 보고 있다.
검사는 그저 적인 거다.
서진과 이소희의 말수도 적어졌다.
지금부터는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한다.
자칫 신의 뜻이라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이곳은 광신도의 집단이다.
그렇게 ‘새 신자 대기실’이라는 이름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이소희가 문고리를 손에 쥐며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문 연다.”
“서동식의 재산이 약 40억. 많은 돈이지. 그런데, 여기는 수천억의 헌금이 오가는 곳이야. 그 돈은 모두 신지석이 꿀꺽하는 중이고. 서동식은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궁금해지네.”
“어?”
이소희는 서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빤히 바라볼 뿐이다.
서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만나봐야지. 어서 문 열어.”
문이 활짝 열렸다.
안에는 서동식이 환하게 웃으며 앉아 있었다.
그가 팔을 활짝 벌리며 서진과 이소희를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서진도 활짝 미소를 그렸다.
악마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