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믿음. -(1)>
***
집에는 조우재 부장검사 혼자 있었다.
놈은 멍한 눈으로 식탁에 앉아 얼굴을 쓸어내리는 중이다.
아직도 자신이 당한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고 있어서다.
몇 번이나 얼굴을 쓸어내렸고 혹시 몰라 뺨도 때려봤다.
하지만 꿈에서 깨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하...’
조우재 부장검사의 머릿속에 조금 전, 서진이 내뱉은 고압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개가 되라고?’
순간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동시에 식탁에 놓인 컵을 손에 쥐고 집어 던졌다.
“씨발!”
쾅! 소리와 함께 컵이 산산조각 났다.
“씨발! 씨발! 씨바알!”
조우재 부장검사가 흉악한 눈으로 거실을 서성거렸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 던졌다.
하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조우재 부장검사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김영준 검사장의 개 노릇을 하는 것도 엿 같은데 이제는 그 조카의 애완견까지 되어야 한다니.
지랄 같은 인생이 정말 더럽기만 했다.
그때, 삐리릭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험악했던 조우재 부장검사의 얼굴이 갑자기 순한 양처럼 바뀌었다.
그리고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왔어? 어디 갔다 온 거야?”
잠시 나갔던 서진이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서진은 대답 없이 거실을 둘러봤다.
박살 난 유리 조각이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30억. 그쪽 영혼 값에 비해 꽤 많이 쳐줬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 안 되나 봐요?”
“아니야. 그냥... 손이 미끄러워서...”
조우재 부장검사가 멋쩍게 입을 열었다.
서진이 식탁을 가리켰다.
“앉으세요.”
“어? 어.”
조우재 부장검사가 자리에 앉자 서진이 싱크대에서 물컵 하나를 꺼내 올렸다.
검은 비닐봉지에서 소주를 꺼내 컵에 채운 후 조우재 부장검사의 앞에 밀어뒀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입을 열었다.
“마시세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물컵을 손에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마실 생각이었다.
제정신으로 앉아 있기 힘들었다.
벌컥벌컥 소주를 마신 뒤 탁! 내려두자 서진이 품에서 봉투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읽어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허겁지겁 봉투를 꺼내 본다.
대출 서류다.
“요점만 말씀드리죠. 30억, 이자는 없습니다.”
어차피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땅을 팔아 번 돈이다.
놈의 돈으로 놈의 목을 쥐었다.
“저와 이동영 수사관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채무 절차가 일어날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상이 생기면, 일시적 상환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유력 일간지에 부장검사님의 이름이 도배될 겁니다. 투기꾼으로. 이해하셨죠?”
“......”
“그러니까, 내가 오래 살기를 바라셔야 할 겁니다.”
서진의 행동을 김영준 검사장에게 보고하지 말라는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그런데, 잠시 생각에 빠졌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이동영 수사관에 대한 일은 검사장님께 보고했는데, 어쩌지?”
“그쪽이 벌린 일이니 수습도 알아서 하세요. 내가 그것까지 설명해야 하나요?”
“아니지,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할게.”
조우재 부장검사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펜을 쥐고 서류에 싸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서진을 바라봤다.
이제 서진의 개가 되어 지시를 받아야 할 때다.
“작은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죠?”
조우재 부장검사가 턱을 쓸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반반이야.”
김윤환은 사건 조작이 들킨 후 미국으로 가기 직전까지 서진을 탓했다.
아무리 병신 같아도 아들은 아들.
“네 능력은 인정하시는데, 신뢰하고 있지는 않아. 그러니까 안 믿는다는 말이 아니라 완벽하게 신뢰하지는 않으셔.”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던 일이다.
신뢰를 얻었다면 김영준 검사장이 나가는 모임에 초대받았을 거다.
정치인과 재력가, 그들만의 리그에 함께 하며 후계로서 착착 인정을 받았어야 한다.
검사는 실력만으로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고만고만한 실력의 검사는 세상에 깔려 있고 위로 올라가려면 권력의 손을 붙잡아야 한다.
하지만 서진은 고작 중앙지검에 와 있을 뿐이다.
김영준 검사장을 통해 그 어떤 권력자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신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내가 잘 말씀드릴게. 알지? 검사장님이 그래도 내 말은 믿는...”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말을 끊었다.
“그건 당연한 거고.”
앞으로 조우재 부장검사는 혀가 닳도록 서진을 칭송해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30억의 채무를 선물 받으며 투기꾼이 되어 치욕을 받을 게 분명하다.
서진이 손가락으로 식탁을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다른 거.”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를 통해 김영준 검사장의 신뢰를 받을 생각이다.
그리고 힘을 가진 후에는 조우재 부장검사를 앞세워 김영준 검사장의 목을 벨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놈들이 가진 모든 것을 손에 쥔다.
그게 서진의 목표였다.
“말하세요. 어떻게 하면 작은아버지가 나를 신뢰할까요?”
“충성심을 보여줘야지. 위험한 일이지만 해결하는 거. 아! 그런 게 하나 있어.”
조우재 부장검사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
부운 교회라고 있다.
부흥할 운명을 믿으라는 이름을 줄여 만들어진 교회, 기독교의 간판을 걸고 있지만 전형적인 사이비다.
헌금을 많이 낼수록 천국에 갈 확률이 높아진다며 천국 티켓을 팔아 대는 곳.
용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의 교주 이름은 신지석이다.
그리고 신자들은 신지석을 가리켜 스승님이라 부른다.
‘얼마 전...’
경기도 가평에서 시신 7구가 발견됐다.
폭행을 당한 후 개에게 물어 뜯겨 죽은 시신으로 이들 모두는 부운 교회의 신자로 알려졌다.
어처구니없게도 신지석은 이들을 부활시키겠다며 난리를 쳤고 죽은 지 3일이 넘어 부활에 실패했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검찰은 부운 교회의 간부들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신도 3백여 명의 방해로 제대로 된 증거를 밝혀내지 못하고 수사를 종료했다.
*
서진은 기록물 보관실에 와 있었다.
부운 교회의 기록물을 넘겨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김영준에게는 앓는 이처럼 느껴지겠어.’
김영준 검사장은 총장 그리고 나아가 그 위를 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충수가 될 수도 있으니까.’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 검찰의 수사는 자칫 종교를 억압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내버려 두기도 어렵다.
한 번에 7명이 죽은 사건, 그걸 또 부활시킨다며 가증스러운 눈물을 흘린 교주 신지석.
네티즌은 난리다.
-중앙지검 검사장이 부운 교회와 유착한 거 아니야?
-적극적으로 수사 안 하는 거 보면 다 한통속이야.
-그런데, 교주를 구속 못 하는 이유가 뭐야? 신도 7명이 죽었고 폭행 흔적도 있고 개한테 던졌다며? 다 나와 있는데, 왜 못 잡아? 서민들은 혐의가 없어도 구속하면서. 퉤퉤퉤.
-구속을 어떻게 하냐? 그리고 개한테 던져? 어디 피셜? 들개한테 물려 죽었을 수도 있잖아? 누가 보면 교주가 죽인 줄 알겠네.
ㄴ네 다음 부운교 신도.
ㄴ아니, 신도가 아니라 팩트를 이야기하자고.
ㄴ신도 7명이 가평에 왜 모였겠냐? 무슨 기도회? 이런 거 했겠지. 그러다가 믿음이 부족하다며 존나 팼을 테고. 안 봐도 뻔하네.
ㄴ헌금 내면 정말 천국 자유이용권 주나요?
ㄴ헌금을 부운교만 받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럼?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잘못된 신앙에 빠진 사람과는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수사를 진행하는 서진을 마귀로 생각하며 죽이려 달려들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걸 해결하면 김영준 검사장의 확실한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앓던 이를 뽑아 준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서진이 기록물을 덮으며 몸을 틀었다.
‘사기로 잡기는 어려워.’
천국행 티켓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억대의 현금을 챙겼어도 사기 혐의를 씌우기는 어렵다.
판례에 따르면 ‘마음의 위안을 목적으로 하는 것, 원하는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 해도 기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살인 또는 그 외에 행했을 위법적 행위다.
서진이 보관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부운 교회는 전국 2백여 개의 교회와 15만 명이 넘는 신도를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놈들의 본거지인 서울 중앙 부운 교회, 이곳은 축구장 20개의 규모에 가까울 정도로 거대하다.
이 모든 게 천국을 향한 티켓값으로 지어진 성전이다.
그리고 서진은 서울 중앙 부운 교회에 와 있었다.
높은 담벼락에는 붉은 글씨로 ‘종교 탄압 OUT!’, ‘왜곡 보도 NO!’ 등과 같은 푯말이 을씨년스럽게 걸려 있었다.
서진이 창살로 된 입구에 섰다.
너머로 길게 이어진 도로와 나무만 보인다.
건물은 한참을 더 들어가야 나타날 것 같다.
입구에 손을 대고 힘을 줘봤다.
철컹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열리지 않는다.
그때,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남자 세 명이 서진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도사견 한 마리의 목줄을 쥐고 있다.
서진이 대답하지 않자 한 놈이 다시 물었다.
“누구냐니까? 기자? 아니면?”
서진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그들을 살필 뿐이다.
딱 봐도 이곳의 신자다.
세 명 모두 나이는 50대,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낡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누구냐고!”
놈들이 인상을 구기며 팔을 걷었다.
힘으로 서진을 쫓아낼 기세다.
그런데, 도사견의 목줄을 쥐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
“아, 검사잖아! 못 봤어? 요즘에 유명한 애!”
검사라는 말과 동시에 놈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경계 가득한 눈빛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적대적으로 바뀌며 살벌하게 노려본다.
동시에 한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씨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검사면 뭐? 우리가 무서워할 줄 알았어? 확!”
이들은 국가의 법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로지 신의 뜻을 두려워한다.
서진은 신에 대항하는 마귀며 악마다.
그런 악마를 잡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서진은 여전히 덤덤했다.
폭행을 가하면 땡큐다. 이들을 잡아끌고 곧바로 취조실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곳에서 지켜보는 경호원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고 눈짓했다.
경호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진이 놈들을 향해 한발 다가섰다.
놈들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너희가 죽였지?
-신지석이 죽였나?
어떤 말을 내뱉을까 고민하며 놈들을 살폈다.
혹시 날붙이라도 숨기고 있으면 자극하는 것을 멈추고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서인데, 도사견의 목줄을 쥐고 있던 남성이 거칠게 말했다.
“물어!”
그 한 마디에 도사견이 사나워졌다.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것처럼 ‘컹컹!’ 거렸고 쇠사슬로 된 목줄이 끊어질 것처럼 팽팽해졌다.
남자가 목줄을 놓친다면 도사견은 곧바로 달려들어 사나운 이빨로 서진을 물어뜯을 거다.
목줄을 쥔 남자가 이죽거렸다.
“여기는 너 같은 놈이 올 곳이 아니니까 그냥 가라. 가라고 이 개새끼야! 확! 놔버릴까? 어?”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 때였다.
“잠깐! 잠깐만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틀어졌다.
입구 안쪽에서 한 여자가 절박한 표정으로 다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서진의 눈이 찌푸려졌다.
‘이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