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를 선물하면. -(2)>
조우재 부장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서진?’
조우재 부장검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토지가 폭락할 예정이고 어쩌면 명단까지 공개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어서 60억에 육박하는 빚잔치는 목을 매달아도 해결할 수 없을 정도다.
월마다 나가야 할 이자만 수천만 원.
지금은 그동안 받은 뒷돈으로 겨우겨우 해결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검사 월급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게다가 검사마저 그만두게 되면, 그 뒷돈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급한 상황은 생각의 확장을 막았고 서진이 어떻게 이곳에 찾아왔는지, 왜 왔는지 따지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저 서진은 부자니까, 조금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만 가득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문을 열며 바보 같은 말을 내뱉었다.
“어, 어쩐 일이야?”
“힘드실 것 같아서요.”
“어?”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옆을 스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이불로 몸을 가린 여대생이 보였다.
“넌 나가고.”
서진의 건조한 목소리에 여대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닫자 서둘러 옷을 입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우재 부장검사도 알몸인 것을 느꼈는지 방으로 들어가 옷을 입는다.
그리고 잠시 후, 여대생은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내뱉으며 집을 벗어났다.
“...여기는 어떻게 알았어?”
이제야 조우재 부장검사의 정신이 조금은 돌아왔다.
서진이 어떻게 이곳을 찾아왔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기자들이 좋아할 이야기잖아요. ‘중앙지검 부장검사, 대학생의 스폰이 되다.’ 그래서 알았어요.”
“...기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다급히 거실의 창밖을 살폈다.
눈동자를 굴리며 기자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중이다.
“커버치고 왔습니다. 그전에 방 빼시라고요.”
조우재 부장검사는 기자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는지 긴장된 가슴을 쓸었다.
그리고 천천히 서진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사이 서진은 집을 살피고 있었다.
34평 아파트, 보증금 2억에 월세가 100정도 하는 곳.
꽤 비싸 보이는 소파와 텔레비전, 검사 월급만으로 이렇게 딴 살림을 차릴 수는 없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것은 뒷돈을 받아 이룬 거다.
그런데, 이런 새끼가 이동영 수사관을 비리로 엮으려 했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이동영 수사관은 비리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엄마 없이 딸을 키우며 그걸 행복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비리로 엮어 마녀사냥의 제물로 세우면,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작살날 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을 틀어 죽여 버리고 싶었다.
“저기... 정말 기자 때문에 온 거야?”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하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사무적이다.
“그럼요?”
“하...”
조우재 부장검사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 참고 있던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한데,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닌데...”
“편히 말씀하세요.”
“저기, 그러니까... 돈, 돈 좀 빌릴 수 있을까?”
“돈이요? 얼마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머릿속에서는 빠르게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서진의 아버지는 재정건설의 대표, 60억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굴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서진은 그 아들.
하지만 60억을 다 빌려달라고 할 수는 없다.
‘급한 불만 끄면?’
은행과는 20년 계약을 했다.
엄청난 이자가 두렵기는 하지만 지금 급한 불은 친인척이다.
사방에서 돈을 끌어왔으니 곧 압박해 올 게 분명하다.
그것만 막으면, 나머지는 뒷돈을 받아 해결하고 어쩌고 해서 견딜 수 있다고 행복회로를 돌려갔다.
“부장검사님, 혹시... 저도 오면서 뉴스로 소식 들었는데, 춘천 땅 안 팔고 가지고 계셨어요?”
서진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조우재 부장검사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서진이 운을 떼었으니 이야기하기 편해졌다고 생각하는 거다.
“어, 어. 맞아. 아직 안 팔고 있었지. 계속 오를 땅이니까. 그런데, 도지사 새끼가 똥을 뿌렸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번에 그쪽 지역에 당선된 의원이 여당이야. 이걸 키워야 춘천 민심을 잡을 수 있고 대선에 연결되거든. 춘천에 있었으니까 알지? 그러니까 잠시 땅값이 흔들리기는 할 건데, 잠깐 급한 불을 끄면...”
허세를 부리며 두서없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서진을 지푸라기라 생각하고 움켜쥐려는 거다.
“급한 게 얼만데요?”
“그... 시, 십억.”
“십억이요?”
서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울 것처럼 웃으며 입을 연다.
“...너무 많지?”
“그전에요. 지금 문제 되는 게, 이세문 도지사 측에서 투기라고 주장하면서 명단을 공개하면...”
“그건 괜찮을 거야. 명단 공개라니!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그쪽 바닥에 있는 인간들이 법을 신경 쓰며 살지는 않잖아요?”
조우재 부장검가 아랫입술을 씹었다.
서진의 말은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법을 지키고 산다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구렁텅이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다.
“야당에 아는 사람이 있어. 이세문 도지사 만나서 협의를 볼 거야. 적당히 끝내 달라고.”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부장검사님, 방금 말씀하신 게 여당이 그 토지를 개발해야 대선의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세문 도지사가 그걸 가만히 놔둘까요? 앞뒤가 안 맞는데요.”
조우재 부장검사는 최대한 설득하려 했지만 서진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의 주장에 고개를 저었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에도 짜증이 섞였다.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어서다.
이 시간에도 휴대폰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발신 번호는 모두 친척들이다.
“그래서, 빌려줄 거야, 말 거야?”
“십억이라... 있기는 한데...”
“있어?”
“네.”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에 다시 기대가 서렸다.
역시 돈 많은 집 자식이 최고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있다는 거지?”
그때, 서진은 품에 넣어 둔 휴대폰의 진동을 느꼈다.
서진이 그 진동을 느끼며 조용히 미소를 그렸다.
그러자 조우재 부장검사도 활짝 웃는다.
서진의 미소가 반가웠다.
뭔가 풀리기 시작한다고 생각한 거다.
“십억. 많지, 나도 알아. 그런데, 그거 해결하는 거 금방이야. 알지? 내가 그래도 수완이 좋아. 두 달, 딱 두 달. 그 뒤에 이자 10% 줄게. 그것만 해도 1억이야. 괜찮은 투자라고....”
서진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화면을 보였다.
발신 번호에 ‘이세문 강원도지사’라고 적혀 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눈동자를 천천히 기울였다.
“이, 이세문?”
“네.”
하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다급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서진의 팔을 잡았다.
“이세문을 알고 있어? 어서 받아봐. 그리고 말 좀 하자. 어?”
서진이 스피커폰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이세문 강원도지사의 목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김 검사, 고마워. 최근 당에서 노인데 취급을 당했는데, 오늘부터 목에 힘을 줄 수 있게 됐어. 하하하!
이세문 도지사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동시에 조우재 부장검사의 행동이 정지된 것처럼 뚝 멎었다.
눈동자만 움직여 서진을 노려본다.
이제야 뭔가 잘못된 것을 느낀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를 보며 서진이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내가 밥 한번 살게. 언제 한번 춘천으로 넘어와.
“알겠습니다. 그런데, 투기꾼 명단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거? 좀 복잡하지 않나? 고소당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굵직한 몇 명만 공개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조우재 부장검사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굵직한 놈이라는 게 자신을 뜻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 있나?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서진이 통화를 종료하며 조우재 부장검사를 향했다.
침묵으로 가득 찬 거실에서 조우재 부장검사는 살기가 질질 흐르는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는 중이다.
그리고 심각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야? 너냐고....”
“투기는 그쪽이 하셨는데, 왜 저한테 그러세요? 남 탓하지 맙시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차분한 목소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새끼야!”
짐승처럼 달려와 서진의 멱살을 콱 움켜잡았다.
그리고 핏발선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사나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미쳤어? 미쳤냐고! 사람이 웃고 다니니까 만만해 보여? 이유가 뭐야!”
“이유? 이동영 수사관은 왜 건드리려고 했어?”
조우재 부장검사의 표정이 정말 황당하게 변했다.
“수사관? 이동영? 뭐야... 고작 그것 때문에? 이 새끼야! 그건 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서진이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살벌할 정도로 공간을 채웠다.
하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무서운 줄 모르지? 씨발, 수사관 하나 살리려고 지금 이 지랄을 했다고? 그런 병신같은 이유로 배신을 해? 하! 검사장님께 연락하면 넌 끝이야!”
김영준 검사장은 아들도 내친 사람이다.
그런데, 서진의 잘 못을 들으면 반드시 박살 낼 게 분명하다.
서진 같은 성격은 김영준 검사장이 생각하는 검찰에 어울리지 않는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입술을 핥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을 재빨리 움직여 김영준 검사장의 전화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그 한심한 모습을 보며 서진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렸다.
고작 한다는 말이 ‘김영준 검사장에게 이를 거야!’라니, 그게 부장검사라니, 같은 검사라는 게 쪽팔렸다.
“부장검사님?”
서진의 존댓말에 조우재 부장검사가 픽 웃었다.
“왜? 이제야 겁이 나는 모양이지? 닥치고 있어. 끝났으니까.”
“그게 아니라... 지금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서, 투기꾼 명단에 그쪽 이름이 올라갈 것을 들으면 작은아버지 성격에 뭐라고 할 것 같아? 오히려 나한테 잘했다고 할 것 같은데?”
“...어?”
“사법고시까지 통과한 양반이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먹어. 끝난 것은 내가 아니라 그쪽이야.”
그 말이 사실이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검사장의 주소록을 찾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부르르 떨리는 엄지손가락을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틀어 서진을 향했다.
“씨, 씨발...”
그리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지금에 와서야 서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저 새파랗게 어린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다.
지금 저 눈빛은 조우재 부장검사를 죽이려 하는 것 같다.
“아...”
조우재 부장검사는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매듭이 잘 못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진의 손에 잡힌 사냥감이란 걸 알게 됐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소파에 걸려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창백해졌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서진이 그 앞으로 저벅, 저벅 다가왔다.
악마 같은 얼굴로 걸어오더니 조우재 부장검사를 노려보며 팔을 슥 올리고 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진이 치켜든 팔로 자신을 때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겁을 먹고 눈을 콱 감았다.
그런데, 서진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10억? 30억을 주지. 도지사의 명단도 막아주고. 대신 영혼을 팔아.”
조우재 부장검사가 실눈을 뜨고 서진을 바라봤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서진이 치켜들었던 손으로 바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알아들었으면 꿇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