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를 선물하면. -(1)>
“...김서진? 네가 여기에 왜 왔어!”
장지혁 검사의 목소리는 사나웠다.
“조우재가 감시하라고 시켰지? 어!”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의 조카, 그리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그 라인이다.
서진 역시 조우재 부장검사와 엮여 있다고 생각했다.
“대답해!”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장지혁 검사는 조우재 부장검사가 신경 쓸 급이 안 된다.
그저 미친놈 하나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말해 줄 수는 없다.
어쨌거나 선배 검사,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한다.
“확인 좀 해보려고 왔어요. 그뿐입니다.”
서진이 비켜섰다.
그러자 장지혁 검사도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서진에 대한 의심의 눈길은 풀지 않았다.
여전히 목소리가 삐뚤어져 있다.
“그래, 확인? 뭘 확인하려고?”
“별것 없어요. 저도 김인용이 범인이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장지혁 검사님이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 그게 궁금했어요. 그리고 범인으로 낙인찍어서 감옥으로 보냈는데 몇 년 뒤에 진범이 잡혀 봐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뿐이에요.”
장지혁 검사가 눈을 가늘 게 떴지만 서진은 상관 않고 창고로 향했다.
‘김인용은 주장하고 있어.’
-창고에 간 것은 맞아요!
-여자 친구한테 메시지를 받았거든요. 창고에서 기다린다고!
-그래서 갔더니... 죽어 있었어요. 머리만 남아 있었다고요! 그게 전부예요.
-톱이요? 칼이요? 주변에 있어서, 당황해서 제가 만졌어요. 어떤 새끼가 이걸로 여자 친구를 죽였나 해서요!
서진이 출입문에 손을 댔다.
그런데 그 순간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
끼이이이익.
음산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인용이다.
놈이 중얼거린다.
“씨발, 이렇게 빨리 발견돼?”
놈이 점퍼를 열어젖혔다.
검은 비닐봉지가 툭 떨어졌다.
열어젖혔더니 여자 친구의 머리가 나온다.
“하, 바쁘다. 바빠...”
놈은 건조한 얼굴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피가 담긴 500ml 생수병이 손에 들려 있다.
놈이 입술을 뒤틀며 말했다.
“혹시 몰라 보관하고 있던 게 다행이지.”
그리고 여자 친구의 머리 주변으로 피를 뿌렸다.
이곳이 살인 현장이었던 것처럼 조작하는 거다.
이어서 비닐봉지와 생수통을 창밖으로 던진 후 중얼거린다.
“톱하고 칼도 치워야지. 내가 이걸 여기에 왜 던져둬서.”
이제 계획대로 움직이면 되는데, 그때였다.
“뭐야? 누구 있어?”
창고 문이 끼이익 열렸다.
이어서.
“어? 어? 어!”
남자의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김인용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
사이코 메트리가 끝났다.
서진이 곧바로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야, 어디가?”
뒤에서 장지혁 검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서진은 창고의 뒤편으로 달렸다.
놈이 생수병을 집어 던진 창문의 바깥쪽.
휴대폰 플래시로 사방을 살폈다.
버려진 창고의 뒤편은 쓰레기도 많고 담배꽁초도 가득했다.
장지혁 검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뭐 있어?”
“장지혁 검사님, 혹시 장갑 있나요? 비닐 봉지하고.”
“어? 장갑? 봉지?”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없으면 구해 오세요. 당장!”
분명 서진이 후배다.
게다가 장지혁 검사는 서진을 좋게 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어? 어. 알았어.”
장지혁 검사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리고 ‘서울 새끼들은 선배도 몰라.’라고 중얼거리며 몸을 틀었다.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난 뒤 장지혁 검사는 근처 편의점에서 비닐장갑과 비닐봉지를 구해왔다.
“이건 왜?”
서진은 대답대신 다급히 장갑을 착용하고 쓰레기 더미에서 비닐과 생수병을 있는 대로 다 담았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사건 발생 후 시간이 꽤 지났다.
김인용이 던진 생수병이 바람에 날려 다른 곳으로 날아갔을 확률이 높다.
“장지혁 검사님, 생수병과 비닐봉지, 이 주변에 있는 것 전부 주워서 넣어 주세요.”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고!”
“자백할 거예요.”
“뭐?”
“김인용이 자백할 거라고요.”
***
취조실.
서진의 앞에 앉은 김인용이 정말 애처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아니에요.”
“생수병.”
“네?”
“네 지문 나왔어. 혈흔도 담겨 있었고.”
김인용의 얼굴이 구겨졌다.
서진이 감식 서류를 김인용의 앞에 툭 던져두며 말을 이었다.
“지난 십 년 간 대한민국 살인 사건 검거율은 98.2%. 시화호에서 여자 친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긴장했지? 잡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범행 도구를 숨겨뒀던 창고를 현장처럼 꾸며 경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겠네?”
사실이었다.
“살인 장소는 어디야? 그것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저기...”
“자백하고 반성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그래야 조금이라도 양형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김인용이 울기 시작했다.
서진의 말대로 손을 싹싹 비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
“자백했다는데?”
“정말? 끝까지 아니라고 부인했잖아? 어차피 무기 징역 당할 거니까, 양형 받으려고 반성하는 척하는 거 아니야?”
“양형은 개뿔, 사람 죽여 놓고 피를 받아 놨다더라. 어디서 추리소설 읽고서. 미친 싸이코 패스 새끼.”
“어? 그걸 어떻게 알아?”
“김서진이 쓰레기 뒤져서 증거 찾았대. 지문도 보존돼 있었고.”
또 김서진이다.
담배를 피우던 선배 검사들의 가슴이 아파왔다.
이러다가 정말 진급이 역전되면.
“젠장... 변호사 알아봐야 하나? 부장검사는 달아야 스펙 인정해 준다고 하던데.”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지문이 어떻게 있어?”
지문은 손가락의 지방성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 피가 묻는 등의 상황에 따라 보존되는 경우가 있다.
“진짜, 될놈될이네. 쓰레기에서 증거를 찾고.”
“그런데, 장지혁 어쩌나?”
“왜?”
“그 새끼, 김인용이 범인이 아닐지 모른다고 핏대 세우고 다녔잖아.”
“얼마 전에 조우재 부장검사랑도 한판 붙었다는데?”
“병신 새끼.”
그런데, 장지혁 검사는 실실 웃고 있었다.
“아, 괜찮아. 진범이어서 다행이지. 그럼, 된 거야.”
*
서진은 친구 이정우와 통화하는 중이었다.
이정우는 경찰대를 졸업한 친구.
장지혁 검사 역시 경찰대 출신이기에 알아보고 싶은 게 있었다.
-장지혁? 알지. 나보다 한참 선배인데, 우리 때도 유명했어. 또라이로... 교수님이 경찰 망신시키지 말고 검사나 되라고 간절히 추천했다던데?
경찰 망신시키지 말고 검사나 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되묻지 않고 이정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뇌가 근육이야. 유두리가 없어. 로스쿨 간 것도 꼼수 안 부리고 의무복무 꽉 채운 후에 갔을 걸? 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들었어.
“땡큐. 그런데, 하나만 더. 혹시, 고향이 어딘지 알아?”
계속 서울, 서울 입에 달고 사는 걸 봐서 지역색이 강한 곳의 출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충북 괴산. 이것도 유명해. 자기가 충청도 사나이라고 하면서...”
서진이 통화를 종료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틀었다.
‘장지혁...’
서진의 계획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중에는 저돌적인 사람도 있었으면 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 인물, 상대가 그 아무리 거대한 권력자여도 불나방처럼 달려갈 검사.
통제만 가능하면 서진의 좋은 칼이 될 것 같다.
‘통제만 가능하면...’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조우재 부장검사였다.
‘통제할 놈이 또 있네.’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부장검사님.”
-검사장실로 올라와.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는 쾌활했다.
다시 김영준 검사장의 곁에 서며 세상을 얻은 것처럼 즐거워하는 중이다.
***
그 시각, 검사장실.
조우재 부장검사는 김영준 검사장을 마주 보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했다.
“현장에 갔다고?”
“네, 며칠 전 현장에 직접 갔고 거기서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이놈이 끝까지 자백을 안 하던 놈인데...”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중이다.
서진의 활약을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뱃재를 털며 물었다.
“그래, 서준경에 대해서는?”
“서준경이요?”
“어.”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이 자신을 대신해 검찰에 남아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쓸데없는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김영준 검사장이 계속된 권력을 누릴 수 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
지금껏 관찰했을 때, 서진은 서준경에 대해 별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전하면, 다시 이 방에 들어오는 게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쓰임이 끝나면 내버리는 게 김영준 검사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하다. 서진아.’
조우재 부장검사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물이 들었어도 뺄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뭐지?”
“...이동영 수사관을 흔드는 겁니다.”
김영준 검사장의 눈에 조우재 부장검사의 속이 훤히 보였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야비한 생각.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떻게?”
“돈도 없고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양반인데, 몇 가지 의혹 집어넣고 흔드는 것은 일도 아니죠.”
“그래서?”
“사건 진행하다가 서진이한테 말하는 겁니다.”
-이동영 수사관은 사실 죄가 없다.
-하지만 이래저래서 치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계속 먹고 살 수 있다.
“물론 이동영과 함께한 세월이 있으니까 가슴은 아프겠죠.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버리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슬슬 그럴 시기도 되었고요.”
“만약에 서진이가 이동영의 손을 잡으면?”
조우재 부장검사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상황이 그 지경까지 가면 어떤 물이 들었든 상관없을 겁니다. 이번에 싹 빠지겠죠.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해도 제가 참교육을 시키겠습니다.”
김영준 검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김영준 검사장의 침묵을 단번에 이해했다.
-일이 잘못되어도 스스로 책임져라. 난 허락한 적이 없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서진이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조우재 부장검사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놈이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치며 환하게 웃었다.
“왔어? 앉아. 앉아.”
서진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옆에 앉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고 직전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이동영 수사관을 흔들어 볼까요?
그렇게 사이코 메트리가 끝나고 서진의 시선이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향했다.
‘이 새끼 봐라...’
놈이 가증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전담팀 생활은 어때? 마음에 들지?”
서진이 끌끌 웃었다.
‘참교육?’
***
며칠 후.
조우재 부장검사는 퇴근 후 강동구에 와 있었다.
월세로 얻은 아파트, 앳된 대학생과 만날 수 있는 그곳.
조우재 부장검사는 여대생과 헐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요즘, 바빠요?”
여대생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가슴을 만지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옷을 사려고 하는데, 어떤 게 예쁠지 몰라서요. 같이 가서 골라주면 안 돼요?”
사달라는 말을 돌려 하는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낄낄 웃었다.
“옷으로 되겠어? 조금만 기다려. 내가 차 한 대 뽑아줄게.”
“차요?”
“그래, 투자한 게 있는데, 슬슬 정리해도 될 것 같아.”
집은 물론 사돈에 팔촌 심지어 처가까지 담보 받아 긁어모아 손에 쥔 춘천의 땅.
평단가 14만 원에 쓸어 담은 게 지금은 30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세금 떼고 빚 갚아도 약 80억을 넘게 먹는 판떼기다.
“벤츠 어때? 어?”
여대생이 꺅꺅대며 좋아했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그 모습을 참 예쁘게 바라봤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리모컨을 손에 들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이세문 강원도지사가 인상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게 보였다.
‘저놈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어?’
정치인들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별 생각없이 채널을 돌리려 할 때였다.
-여당에서 이 지역을 개발한다고 해요.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도지사가 서 있는 곳은 조우재 부장검사가 등기 친 땅이었다.
-투기꾼이 몰려들었어요! 얼마 전만 해도 몇만 원 하지 않았던 땅이, 지금 얼만 줄 아십니까? 허참! 말도 안 나옵니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불안에 휩싸였다.
물고 있던 담배가 길게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화면에 집중했다.
그리고 원치 않은 이야기가 흘렀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막을 겁니다! 정당한 투자였다는 헛소리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가난한 농부의 땅을 빼앗았어요!
그 목소리가 사형선고처럼 들려왔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담뱃재가 이불에 떨어졌지만 멍하니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씨바알!”
텔레비전을 향해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쾅! 소리와 함께 화면에 금이 쩍 갔고 옆에 있던 여대생이 ‘악!’ 비명을 질렀다.
“조용히 해!”
조우재 부장검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금까지 예뻤던 얼굴인데 정말 짜증나게 느껴졌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대생을 향해 살벌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숨소리도 내지 마.”
여대생이 기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조우재 부장검사는 다급히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부동산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
헐값에라도 팔아야 한다.
돈도 돈이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거다.
‘최악의 경우...’
야당이 투기꾼이라며 명단을 공개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중앙지검 부장검사의 이름이 드러나면 축포를 쏘아 올릴 게 분명하다.
대선이 끝날 때 까지 정치권의 도구로 이용될 거다.
-가난한 농부의 땅을 검사가 빼앗았어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젠장! 받아! 받으라고!’
하지만 부동산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야속할 정도로 통화 연결음만 이어졌다.
그때였다.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평소 비워두던 곳, 올 사람이 없다.
그래서 무시하려 했지만 초인종과 함께 문 두들기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떤 새끼야...’
조우재 부장검사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비틀, 비틀 현관으로 다가섰다.
“누구세요?”
“접니다. 김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