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팀. -(2)>
***
그 시각, 서진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수락했겠지.’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서준경의 영웅 만들기를 거론했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은 허락했을 거다.
‘김영준의 1차 목표는 검찰총장이야.’
지금 검찰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모이는 중이다.
-정치 검찰.
-무소불위의 권력.
정치권은 검찰 권력을 견제하려 한다.
검찰의 칼이 자신들을 향해 겨눠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권이 아니다.
심지어 국민들도 그들의 주장을 거드는 중이다.
지금껏 검찰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런데 서준경의 영웅 만들기가 성공한다면, 그래서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검찰의 이미지가 확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다음 검찰 총장은 역대급의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총장을 넘어 그 너머까지 바라볼 수 있을 거야.’
서초동에서 여의도로 그리고 삼청동으로.
그것이 김영준 검사장이 바라는 종착지다.
하지만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헛꿈이야.’
서진이 품에 손을 넣었다.
수첩이 만져졌다.
이 수첩 안에는 중앙지검에서 풀지 않은 카드가 들어 있다.
‘마담에게 들었던 룸살롱의 마약 루트.’
서진은 이 카드를 동부 지검 전동국 검사장에게 건네줄 생각이다.
전동국 검사장은 동남 지청의 지청장이었던 사람.
법의 올바름을 부르짖다가 유배를 당했던 검사.
서진은 전동국 검사장을 스타로 만들 계획, 그래서 김영준 검사장의 강력한 라이벌로 올릴 거다.
김영준 검사장은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에 당황하겠지만,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 외에 또 한 명의 강력한 빽이 생기게 된다.
‘좋네.’
서진에게는 조금도 손해 볼 게 없는 계획.
놈들의 손으로 서준경의 이름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빽은 많을수록 좋은 것.
‘작은아버지. 쏘리.’
서진이 슬쩍 웃으며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전담팀이 사용하기로 한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몰라. 형사 3부에서 한 명 지원해 준다고 했는데...’라고 말했었지만 사무실 안에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 명은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험악한 인상의 소유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멀끔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뭐야? 김서진?”
험악한 얼굴의 남자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서진이 넙죽 고개를 숙였다.
저들은 서진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아니다.
서준경 검사 때 중앙지검에 있었지만 당시에 있던 사람들은 상당수 바뀌었다.
게다가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약 이백 명의 검사를 모두 기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형사 3부 장지혁 검사다.”
험악한 놈의 이름이었다.
다음으로 멀끔한 놈이 입을 열었다.
“난 공판 4부 오민욱.”
서진은 두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보려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인사를 끝낸 후 서진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빠졌다.
이번 전담팀이 맡을 공판은 형사 3부가 맡고 있던 살인 사건.
공판이야 별생각이 없겠지만 형사 3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기분이 참 더러울 거다.
자신들이 애지중지 준비해 온 사건을 뜬금없이 조우재 부장검사가 떠먹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럼, 정상적인 사람을 팀에 보냈을까?’
전담팀이 구성될 때 사건을 잘 알고 있는 형사 3부에서 한 명을 데려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형사 3부 부장검사의 성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아마 ‘엿 좀 먹어봐라.’라는 생각으로 장지혁을 추천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진이 고개를 들어 슬쩍 험악한 얼굴의 장지혁 검사를 살폈다.
놈은 ‘씨발, 다 서울 놈들이네.’라고 중얼거리는 중이다.
‘수염도 안 깎고. 옷도 구겨져 있고. 머리는 반 삭발.’
넥타이도 반쯤 풀려있다.
‘정상적인 놈은 아니네.’
순간, 서진은 장지혁 검사와 눈이 마주쳤다.
살며시 미소를 짓는데 놈의 눈은 삐뚤어진다.
이어서 성큼성큼 서진에게 다가왔다.
‘검사라는 사람이 눈 마주쳤다고 시비를 걸려고 하나?’ 생각할 때, 갑자기 친한 척 서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네가 미제 전담이라고 했지?”
“전담은 아니지만 그런 소리를 듣기는 하죠.”
“뭐, 어쨌든. 너하고는 말이 통하겠네. 이번 사건, 내가 볼 때는 그 새끼가 범인 아니야.”
“네?”
“냄새가 나. 시궁창 냄새가. 그 냄새가 놈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
공판 4부에서 온 오민욱 검사가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장지혁 검사님, 또 왜 그러세요. 증거가 다 그놈을 가리키고 있잖아요. 범행 도구에 지문도 묻어 있고 CCTV에도 찍혀 있고...”
“살인 현장이 찍힌 것은 아니잖아!”
오민욱 검사가 한숨을 내뱉었다.
“제발 논리적으로 생각해 주세요.”
“씨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맞아요. 그런데, 눈으로 본 게 거짓이라면 안과부터 가야죠.”
전담팀의 첫 미팅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나운 눈빛이 오가고 있다.
“오민욱 너 이 새끼...”
장지혁 검사가 으르렁 거릴 때, 문이 딸칵 열리고 조우재 부장검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이 상기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준경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를 허락받은 것 같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사무실을 살폈다.
싸늘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나까지 네 명이었나?”
조우재 부장검사가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상석에 앉았다.
모두가 자리하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다 알겠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야. 증거는 나와 있고 타깃도 정해져 있어.”
“......”
“하지만 쉬운 일도 아니야. 목표는 사형, 최하 무기징역. 10년이나 15년을 받으면 우리가 졌다고 생각해야 해.”
“......”
“강력 범죄야.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고 여자 친구를 죽였어. 그것도 잔혹하게.”
-피고인의 이름은 김인용.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자 납치 후 잔혹하게 살해.
-범행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톱과 칼로 시신을 훼손하고 경기도 안산의 시화호에 시신을 유기했다.
“재판이 시작되면 언론은 우리를 주목할 거야. 그러니까 쪽팔리지 않게 하자. 어?”
모두가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우재 부장검사의 시선이 장지혁 검사에게 틀어졌다.
“이름이?”
“형사 3부 장지혁입니다.”
“장 검사가 이 사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오 검사와 김 검사가 서포트해서...”
조우재 부장검사의 말이 이어졌다.
요약하면 ‘난 보고만 들을 테니까 너희가 열심히 해.’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과 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서진을 관찰한다.
-서준경을 영웅으로 만든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이런 조잡한 일은 아래 검사들이나 열심히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관심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쯤 이야기하고 떠나려 했는데.
“부장검사님, 이 사건의 범인은 김인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장지혁 검사가 테클을 걸어왔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성식, 이 새끼...’
이성식은 형사 3부의 부장검사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장지혁 검사의 한 마디로 그 성향을 파악했다.
‘똥을 뿌렸구나.’
이성식 부장검사가 호락호락 사건을 넘기지 않을 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이런 미친놈을 던져 주다니.
조우재 부장검사는 또라이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땐 힘으로 눌러야 한다.
“정지혁이라고 했나?”
“장지혁입니다.”
“그래, 장지혁 검사야. 범행 도구에 지문이 나왔어.”
“얼마든지 진짜 범인이 조작...”
“네가 변호사야?”
장지혁 검사가 억울한 듯이 입을 열었다.
“부장검사님! 변호가 아니라 확실한 증거가...”
“지문과 CCTV, 또 뭐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확실한 증거가 아니면 뭔데? 칼로 찌르고 톱으로 자르는 현장을 목격해야 하나?”
“김인용은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 증언에는 증거의 허점도 존재하고요!”
“입 닥쳐, 주둥이를 찢어 버리기 전에.”
장지혁 검사가 입술을 씹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테이블을 손으로 짚어 몸을 일으키며 살벌한 눈으로 장지혁 검사를 노려봤다.
“그리고 장지혁 검사야. 잘 기억해. 김인용이 범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너는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야. 네가 할 일은 하나, 판사의 입에서 ‘사형’이라는 말이 떨어지게 만드는 거야.”
“......!”
“누명? 억울한 옥살이? 개소리하지 마. 그런 것으로 따지면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
“검찰에 잡혀 왔으면 누명을 벗겨 주는 게 아니라! 없는 죄도 만들어줘. 그게 네 실적이 될 거야. 그게 싫으면 옷 벗고 사무실이나 개업해.”
조우재 부장검사가 몸을 틀었다.
그리고 ‘씨발,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고 있어.’라는 말을 내던지며 밖으로 나섰다.
서진은 장지혁 검사와 오민욱 검사를 살폈다.
오민욱 검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몸을 일으켰고 장지혁 검사는 분한 얼굴로 주먹을 쥔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장지혁 검사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어서 말릴 틈도 없이 문을 열고 복도로 뛰쳐나가더니 조우재 부장검사의 뒷모습을 보며 거칠게 외쳤다.
“부장검사님! 진범 잡겠습니다! 검사가 할 일은 판사의 입에서 ‘사형’이라는 말이 떨어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겁니다!”
듣기만 해도 미친 소리였다.
일개 검사가 부장검사에게 저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당연하게도 조우재 부장검사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 또라이 새끼가! 그럼 나는 진실을 외면하냐? 어! 씨발, 이성식, 이 새끼는 아주 나를 엿 먹이려고 작정했지! 저런 미친 새끼를 전담팀에 보내고! 네 마음대로 해! 이 새끼야!”
***
전담팀에 들어갔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난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휴가야, 휴가. 쉽게 해.’라고 말했지만 경력 없는 검사가 부장검사와 똑같이 놀면 큰일 난다.
서진의 책상에는 쉬지 않고 서류가 쌓여갔다.
그리고 밤 11시.
서진이 뒷목을 주무르며 여행용 가방을 꺼내 들었다.
며칠 동안 집에 못 갔다.
오늘도 집에 가지 않으면 부모님이 걱정할 거다.
가방을 열어 서류를 착착착 넣었다.
남은 업무를 집에 가서 할 생각, 남들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끌고 다니는 가방이지만 검사들에게는 업무용 캐리어일 뿐이다.
가방을 질질 끌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트렁크를 열고 가방을 집어넣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고 핸들을 틀다가 잠시 멈칫거렸다.
‘잠깐만...’
서진은 집에 가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잠시 들를 곳이 떠올랐다.
내비게이션에 툭툭 주소를 찍었다.
김인용 살인 사건의 현장.
*
잠시 후, 서진은 경기도 김포에 들어섰고 시골길을 한참 달려 어느 창고에 도착했다.
-원래는 중국 식품을 보관하던 창고.
-회사는 폐업했고 그 후 3년을 버려진 상태로 보낸 곳.
-주변에 비슷한 창고가 많음.
서진은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폈다.
낮이었다면 다른 창고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겠지만 밤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변은 논밭이며 오가는 사람도 없다.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모를 거다.
게다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꺼지자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흑으로 물들었다.
‘사람 죽이기 딱 좋은 곳이네.’
서진은 휴대폰의 플래시를 사용해 바닥을 비추며 창고로 향했다.
그리고 경찰의 조사를 떠올렸다.
-김인용은 이 창고를 사용하던 중국 식품회사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음.
-이 창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을 게 분명함.
-김인용이 이 창고를 오간 것이 다른 창고의 CCTV에 찍혀 있음.
-김인용은 대치동에서 여자 친구를 납치 후 이 창고로 이동했고 살해함.
그게 결론이다.
‘그런데, 장지혁은 왜 아니라고 확신할까?’
아무리 단순 무식하게 행동한다 해도 검사까지 된 사람이다.
이유가 없었다면 극단적일 정도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왜?’
서진은 창고에 들어가지 않고 건물을 따라 걸었다.
CCTV를 피해 안으로 들어갈 길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때였다.
누군가 서진의 뒤에서 초크를 걸듯이 목을 콱 감아 잡았다.
그리고 서진의 목을 조이며 살기 넘치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씨발 새끼! 내가 나타날 줄 알았다!”
서진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손을 움직여 상대의 머리를 잡아채려고 했는데, 머리가 짧다. 잡히지 않는다.
‘젠장!’
갑자기 왜 공격했는지 모르지만 일단은 벗어나야 했다.
서진이 구두의 뒷굽으로 상대의 정강이를 정말 세게 가격했다.
“악!”
비명과 함께 목을 쥔 손이 느슨해졌다.
서진이 곧바로 몸을 틀어 놈의 옷깃을 쥐고 엎어 쳤다.
쾅!
바닥에 엎어진 놈이 허리를 잡고 바동거렸다.
“아악!”
서진이 곧장 놈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는데.
“어?”
아는 얼굴이다.
“...장지혁 검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