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팀. -(1)>
그렇게 유골함을 향해 다가가던 서진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사진 속 서준경을 조용히 바라봤다.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고 있다.
저 사진을 찍은 게 죽기 3개월 전, 여당의 국회의원을 잡았던 날, 그 기념으로 이동영 수사관과 얼큰하게 소주를 마셨을 때다.
부어라 마셔라, 앞으로 몇 놈만 더 잡으면 대한민국이 바뀔지도 모른다며 희망을 노래했었다.
그때, 성아가 들어와 찍어줬던 사진.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틀었다.
고작 개인적인 원한을 갚았을 뿐, 과거를 붙잡고 있기에는 갈 길이 멀다.
송원태 의원, 김영준 검사장 그리고 등등의 쓰레기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다 부숴줄게. 이 세상에 있는 것, 다 가져 줄게. 그때 다시 올게.’
서준경과 서진은 다르다.
힘이 없으면 모든 것을 빼앗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 웃음도, 함께 했던 동료도.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져야 한다.
놈들이 가진 모든 것을 부수고 뺏기 전까지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을 스치며 입을 열었다.
“먼저 나가 있을게요.”
이동영 수사관은 눈을 꾹 감고 있었다.
아직 눈물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납골당 밖에는 엄청나게 많은 기자가 서 있었다.
서준경 검사의 유골함을 찍으러 온 거다.
그리고.
“기, 김서진 검사다!”
누군가의 외침으로 기자들의 시선이 홱! 틀어졌다.
동시에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이 계단을 내려가는 서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셔터를 눌러댔다.
찰칵! 찰칵!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기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서진 검사님! 서준경 검사의 누명을 풀어줬는데요. 납골당까지 오신 것을 보면, 어떤 인연이 있었습니까?”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검사님!”
서진은 말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
중앙지검, 한창 업무를 보던 조우재 부장검사의 시선이 틀어졌다.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해서다.
‘누구야?’
무심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었는데, 순식간에 긴장이 확! 솟아올랐다.
-올라와.
김영준 검사장이었다.
‘뭐지?’
조우재 부장검사가 마른 침을 삼켰다.
검사장의 호출을 받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김윤환의 일로 미운털이 박힌 후 눈칫밥을 먹고 사는 중인데.
‘잘 못 한 게 있나?’
조우재 부장검사는 눈동자를 굴리며 혼나야 할 것이 있는지 살펴봤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설마... 춘천의 땅?’
조우재 부장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다.
김영준 검사장은 개인적인 투자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그 정도는 넘어가 주는 스타일이다.
‘그럼, 뭐지?’
조우재 부장검사의 머릿속이 계속해서 회전했다.
하지만 혼날 일도 칭찬 받을일도 없다.
‘젠장, 도대체 뭐야?’
조우재 부장검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긴장된 표정을 풀지 못한 채 검사장실을 향했다.
잠시 후, 김영준 검사장실.
김영준 검사장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부르셨습니까?’라고 인사했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몸을 틀지 않았다.
조우재 부장검사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하며 창밖만 보는 중이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속으로 ‘씨발, 씨발’ 거리며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김영준 검사장이 천천히 고개를 틀어 조우재 부장검사를 향했다.
“왔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김영준 검사장이 가장 무서울 때는 웃을 때와 착한 척할 때다.
“앉아.”
김영준 검사장이 소파를 가리키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김영준 검사장이 그 앞에 마주 앉으며 입을 열었다.
“서준경의 명예가 회복됐어.”
“아, 네.”
“정말 좋은 일이지.”
그렇게 말했지만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과 말투는 건조했다.
애초에 서준경을 눈엣가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서진이를 관찰해.”
“네?”
조우재 부장검사가 눈을 깜빡였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진이를?’
조우재 부장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김영준 검사장이 계속 말했다.
“서진이가 춘천에 있을 때 이동영과 함께 있었다고 들었어. 그런데 이번에 서준경의 누명을 벗겨줬지.”
“......!”
“신주언을 잡는 그 자리에 이동영이 함께했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단번에 이해했다.
김영준 검사장은 그동안 이동영 수사관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수사관 정도의 사람은 언제든 밟아 죽일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서진과 관계가 있다.
“서진이가 어떤 사상을 받아들였을지 몰라.”
서진은 아직 초년생이다.
경력 많은 수사관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수도 있다.
“어긋난 정의를 부르짖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지켜봐.”
“그런데, 서진이가 제 부서에 있는 애가 아니라...”
“김인용 사건, 공소 유지 전담팀을 꾸릴 거야. 우재, 네가 그 팀의 장을 맡아.”
김인용,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자 납치해 살인을 저질렀고 끔찍한 살해 방식에 세상은 충격을 받았다.
범행에 사용된 톱과 칼 등 모든 증거에 놈의 지문이 남아 있지만 놈은 끝까지 범죄를 부인하는 중이다.
“그 팀에 서진이를 넣어주지. 누구와 연락을 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보고할 수 있도록 해.”
***
“김인용 사건 알지?”
다음 날.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와 함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아, 네.”
서진이 대답하며 조우재 부장검사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호출을 받고 달려왔더니 뜬금없이 살인사건을 말하고 있다.
‘뭐지?’
서진과 조우재 부장검사는 반부패수사 제1부와 2부다.
소름 끼치는 살인사건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할까 생각하며 표정을 살피는데, 조우재 부장검사가 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공소 유지 전담팀을 만들 거야. 내가 팀장을 맡을 거고 너도 팀에 들어올 거야.”
“네? 제가요?”
“어.”
조우재 부장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서진이 그 뒤에 서며 감추고 있던 미소를 드러냈다.
‘뻔해.’
조우재 부장검사가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듣지 않아도 뻔했다.
‘날 감시하라고 했겠지.’
예상하던 일이다.
서준경 검사는 김영준 검사장과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앓던 이였다.
그런데, 그 명예를 회복시켜준 게 서진이며 함께 있던 것은 이동영 수사관이다.
‘걱정이 됐을 거야.’
서준경 검사는 길들이기 힘들 정도로 사나웠다.
권력자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나이 어린 검사가 동경하기 딱 좋은 스타일.
김윤환도 없는데 서진마저 그런 물이 드는 것을 바라지 않을 거다.
‘걱정도 해주고 정말 고맙네.’
서진이 발끝으로 엘리베이터의 바닥을 툭툭 차며 빙긋이 웃었다.
놈들의 계획을 알고 있는 이상 당할 일은 없다.
게다가 서진은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춘천의 땅이 폭망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조우재 부장검사 개목걸이를 선물할 예정이다.
서진의 시선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뒷모습으로 향했다.
그 시선이 서늘하다.
‘지옥을 보여주마.’
조우재 부장검사는 앞으로 서진의 개가 될 거다.
서진의 지시에 따라 김영준 검사장의 눈과 귀를 가려 버릴 예정이다.
서진이 생각을 마친 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런데, 조우재 부장검사의 말이 가관이었다.
“미안한데, 가르쳐 줄 것은 없을 거야.”
“네?”
“증거가 다 그 새끼를 가리키고 있잖아. 휴가 왔다고 생각해. 쉬엄쉬엄하다가 공판에 나가서 구형이나 때리고 오면 되는 거야. 어?”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기분이 정말 좋아 보였다.
지금껏 검사장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찬밥이나 꾸역꾸역 먹다가 다시 뜨뜻한 밥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는 거다.
‘한심한 새끼.’
조만간 땅값이 폭락하면 어떤 구겨진 표정을 지을지 생각만 해도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분을 맞춰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형사 3부에서 뭐라고 안 할까요?”
살인 사건은 강력범죄전담인 형사 3부의 일이다.
지금껏 사건을 만졌고 키웠는데 갑자기 조우재 부장검사가 스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기분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검사장님 지시잖아? 어쩔 건데?”
조우재 부장검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 윗선을 중요시 생각한다.
김영준 검사장이 출셋길을 열어 줄 것이라 믿어서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취조실이 있는 곳이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의 등을 쓸며 즐거운 목소리를 이어갔다.
“그놈들 신경 쓰지 말고 쉽게 가자. 쉽게.”
“네, 부장검사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물론 서진은 조우재 부장의 말대로 쉽게 갈 생각이 없었다.
어떤 사건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쩡한 사람이 죄인이 될 수도 있다.
서진이 그 뒤를 쫓으며 물었다.
“그런데, 다른 팀원은 또 누가 있나요?”
“몰라. 형사 3부에서 한 명 지원해 준다고 했는데...”
생각에 빠졌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기억이 안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누구였더라...”
그때, 복도의 끝에서 공판 제2부 부장검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고, 조우재 부장검사님.”
공판 제2부 부장검사 역시 서준경과는 앙숙이었다.
그리고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조우재 부장검사와는 꽤 친하게 지냈다.
놈이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첫 마디부터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서준경 그 새끼가 무슨 히어로처럼 됐어요. 새끼...”
그 말과 동시에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서준경 검사의 일로 서진을 관찰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표정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서진의 표정은 덤덤했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다시 놈을 향했다.
“자고 일어나면 스타가 된다더니, 딱 그 꼴이야. 더러워서...”
“그래도 죽은 놈이잖아요. 곧 잊힐 겁니다. 그게 아니면, 우리 쪽에서 서준경 쓰레기 만들기 작업해 볼까요?”
“작업?”
“서준경의 지난 공판을 뒤져봤더니 쓰레기였다. 이런 거 찌라시 하나 만들어서 기자들한테 흘리면 좋아할걸요? 쓰레기는 쓰레기로 남아야죠. 흐흐.”
한참 말을 이어가던 놈이 이제야 서진을 알아봤다.
“...김서진 검사? 미안. 자네가 서준경 명예 살려줬지? 이해해줘. 내가 사이가 안 좋았거든. 그냥 하는 말이야.”
“괜찮습니다.”
“미안, 미안.”
검찰에는 아직도 서준경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었다.
누명에서 벗어났지만 그동안 수많은 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적이 많은 것은 상관없지만 놈들의 의도대로 쓰레기로 남을 생각은 없었다.
“신경 끄고 조만간 술이나 한잔해요.”
놈이 떠났다.
그리고 서진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옆에 섰다.
“서준경 검사를 안 좋아 했나봐요?”
“적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쓰레기로 만들면 안 좋을 것 같은데요.”
“어? 왜?”
조우재 부장검사가 눈을 반짝였다.
서진이 서준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서다.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데, 차라리 서준경을 영웅으로 만드는 게 어때요?”
서진의 말에 조우재 부장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입술이 자신도 모르게 뒤틀렸다.
서준경 검사는 눈엣가시.
그런데.
“...영웅?”
***
“검사장님!”
조우재 부장검사가 검사장실의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업무를 보고 있던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이 조우재 부장검사를 향했다.
“왜?”
조우재 부장검사가 김영준 검사장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섰다.
다급한 표정에 김영준 검사장의 눈이 찌푸려졌다.
김영준 검사장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서진을 관찰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저 표정을 보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뭔데?”
하지만 조우재 부장검사의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서준경을 영웅으로 만드는 게 어떨까요?”
김영준 검사장이 읽고 있던 서류를 콱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집어 던지려 할 때, 조우재 부장검사가 빠르게 말했다.
“검찰의 이미지가 좋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며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죠. 그런데, 서준경 검사가 권력에 대항하다가 살해당한 겁니다.”
“......!”
“사람들에게 전하는 거죠. 우리의 권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언제나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법의 수호자로서 목숨을 걸고 일한다. 그리고 서준경의 죽음은 그 증거다. 시민 단체에 용돈을 주고 장례식을 다시 치르는 겁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하는 것처럼 꾸미는 거죠. 감동적으로!”
“우재야...”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낮았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움찔거렸다.
그런데 김영준 검사장이 쥐고 있던 서류를 내려두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디.
“해봐.”
조우재 부장검사의 입이 죽 찢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허리를 굽혔다.
“알겠습니다.”
이번 일을 잘 해내면 다시 김영준 검사장의 옆에 설 수 있다.
이제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준경을 기필코 영웅으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