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01화 (101/250)

<명예란? -(4)>

아버지의 이름을 듣자마자 신주언의 얼굴이 붉어졌고 멱살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하지만 서진은 여전히 건조하다.

“물었잖아? 네 아버지 뭐하시냐고.”

신주언의 아버지는 몇 개의 동전 노래방과 오락실 그리고 동전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는 은퇴 후 소일거리로 생각할 수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 그 직종을 선택한 게 아니다.

“이유는 하나, 다량의 현금이 움직이는 업종이기 때문이야. 그렇지?”

신주언이 뇌물을 받으면 그 돈이 아버지의 사업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뇌물을 받은 게 아니라 직접 돈을 번 것처럼 싹 바뀐다.

즉, 자금 세탁이다.

서진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런데, 좀 작작 했어야지. 그것도 걸렸어. 새끼야.”

신주언의 눈에 분노가 확 솟아올랐다.

서진과 만난 것은 며칠 안 된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친인척은 물론 아버지까지 탈탈 털다니.

처음부터 타깃으로 삼고 접근했다는 거다.

“개새끼가!”

신주언이 주먹을 치켜 올렸다.

하지만 서진은 이번에도 느긋했다.

“왜? 때리게? 제발 때려. 검사를 폭행한 것까지 네 어깨에 올리고 싶으니까.”

“야!”

그때,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서진이 휴대폰을 꺼내 발신 번호를 확인 후 신주언을 향해 화면을 돌렸다.

-송원태 의원.

신주언의 행동이 뚝 멎었다.

눈동자가 기울어지며 불안하게 떨려왔다.

그런데 이 순간에도 놈은 송원태 의원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다.

‘나에 대한 수사를 멈추라고 하는 게 아닐까? 그래, 내가 잡혀 들어가면 의원님께도 좋은 게 없잖아? 그럴 거야.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만데...’

서진이 빙긋이 웃으며 스피커폰을 꾹 눌렀다.

송원태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신주언의 마지막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김 검사, 지금 기자들 불러서 신주언 그놈이 뇌물을 받았다고 말했어.

신주언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놈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의, 의원님...”

그 목소리를 들은 송원태 의원의 말투가 언짢아졌다.

-김 검사, 신주언이랑 있었나? 신주언, 이 더러운 새끼. 김 검사, 당장 체포해!

서진이 서준경이었을 때, 정치인의 지시라면 이를 악물고 거절했었다.

하지만 이런 지시라면.

“따르겠습니다.”

통화가 종료됐다.

서진이 휴대폰을 바닥에 던지며 다시 신주언을 향했다.

그리고 영혼 빠진 놈의 얼굴을 즐기며 입을 열었다.

“3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실행력이 빠르시네.”

신주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의 멱살을 잡고 있는 손만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기대할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지옥 같은 미래가 결정되었을 뿐이다.

‘아니, 하나 있어!’

신주언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놈이 서진의 멱살을 놓더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이어서 간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 안고 가겠습니다.”

“.....!”

“그러니까 저로 끝내 주십시오. 아버지는 시골에서 소작농을 하던 분이셨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에요. 제가 다 시켰고 아버지는 그걸 따랐을 뿐입니다.”

“......”

“가뜩이나 건강이 안 좋으신데, 그 나이에 법정을 오가다 보면...”

다 거짓이다.

아버지가 시골에 살기는 했지만 잘 먹고 잘살았다.

건강 역시 염려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신주언은 그 말이 진실인 것처럼 눈물을 질질 흘렸다.

“제 형이나 사촌 작은 형도 마찬가지예요. 농사일을 돕던 사람들이고 아무것도 몰라요. 그 사람들도 제 지시를 따랐어요. 그러니까 저만 잡아가 주십시오. 제발... 제발!”

놈이 엉엉 소리가 날 정도로 오열했다.

“검사님도 부모님이 있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그분들이 법정에 서면...”

신주언이 고개를 들어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서진의 얼굴을 살폈다.

서진의 눈빛이 씁쓸했다.

놈이 바닥을 벅벅 기어오더니 서진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그리고 더 애처로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검사님, 검사님!”

신주언이 펑펑 울면서 마른 입술을 핥았다.

‘됐어.’

조금만 더 인정을 호소하면 된다고 믿었다.

검사도 인간이다.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감정이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쏘리.”

“네?”

신주언이 당황한 얼굴로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이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고.”

“거, 검사님...?”

“형과 아버지가 살아남으면 돈을 챙길 수 있고 그럼, 괜찮은 변호사를 선임해서 형량을 확 낮출 수 있겠네? 이런 생각하는 거지? 어쩌지? 빤히 보이는데.”

서진이 천천히 자세를 낮춰 신주언과 눈을 마주쳤다.

서진의 눈에 온기는 없었다.

냉랭한 눈빛만이 신주언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런 것은 판사한테 가서 빌어라. 난 검사야. 죄가 있으면 잡고 없으면 됐고.”

“......!”

“그런데 너희 집안은 죄가 있네. 그럼, 난 잡아야지. 그러라고 월급 받는 건데.”

“......”

“그러니까 발버둥 치지 마. 넌 끝이야.”

서진의 목소리가 놈의 귓가에 천둥처럼 울렸다.

하지만 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보다 더 발악했다.

“검사님, 한 번만 봐주세요. 검사님도 부모가 있잖아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서준경의 복수.”

“네?”

서진이 놈의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넌 주제넘게 검찰을 건드렸어. 그래서 널 벌하는 거다.”

신주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고 창백해진 입술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어떤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거다.

‘끝났어...’

모든 게 끝났다.

공천만 바라보며 개처럼 살아왔던 인생이 와르르 무너졌다.

‘김서진 이 새끼 때문이야.’

순간 놈의 눈이 회까닥 돌았다.

벌떡 일어서더니 서진을 향해 거칠게 달려들었다.

“씨바알!”

놈이 서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평생 공부만 하던 놈이다.

서진이 가볍게 피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놈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쩍!

놈이 ‘컥’ 소리를 내며 주춤주춤 물러섰다.

손을 저어 때리지 말라는 표시를 하며 고통스러운 숨을 토해냈다.

정말 한심한 모습에 서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저런 놈에게 당했다는 게 쪽팔려서 잠도 안 온다.

차라리 송원태였으면! 차라리 고위직이었으면! 이해라도 되는데...

‘하...’

서준경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방통대를 졸업했고 이 악물고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검사가 되었지만 성공보다는 자신과 같은 약자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었다.

그 모든 게 이따위 새끼 때문에 어그러졌다.

서진은 놈의 모습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끝내자.”

서진이 몸을 틀어 드르륵!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이동영 수사관이 저벅저벅 들어왔다.

진윤희의 눈이 커졌다.

“어... 어?”

진윤희가 부끄러운지 옷을 추스를 때 이동영 수사관이 신주언의 팔을 꺾으며 수갑을 꺼냈다.

수갑을 본 신주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놔, 놔!”

“신주언 씨, 뇌물수수와 자금세탁 행위...”

건조한 목소리를 이어가던 이동영 수사관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울분을 토하듯 말을 이었다.

“서준경 검사의 살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신주언의 눈이 부릅떠졌다.

“...살해? 그건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이동영 수사관이 신주언을 꽉 눌렀다.

놈이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런데,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벌건 눈을 뜨고 사정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라고! 증거 있어!”

이동영 수사관이 진윤희를 향했다.

“검사님께 죄송하지 않아? 여기까지 왔으면 그만 말해.”

“저, 저는 몰라요.”

“말해!”

“모른다고요!”

진윤희가 시선을 피했다.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서진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다 나올 거야. 하지만 알지? 수사에 협조하면 형을 조금은 감면 시켜 줄 수 있다는 거.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감옥보다는 밖이 낫잖아?”

서진이 진윤희의 코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대답해. 저놈이랑 같이 무기징역을 도전해 볼까? 아니면 1년이라도 빨리 바깥 공기를 마실까? 아, 너희 가족도 한번 털어볼까?”

서진의 눈빛은 악마 같았고 진윤희의 선택은 빨랐다.

“저, 전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불법 체류자가 있다고 했어요. 돈을 건넸고...”

신주언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씨발! 뭐라는 거야!”

***

신주언은 송원태 의원의 고소로 잡힌 것처럼 일단락됐다.

하지만 세상은 신주언의 뇌물 사건에 집중하지 않았다.

충격적인 일은 따로 있었다.

이은하 기자가 함께 있던 다른 기자들과 준비했던 기사를 쏘아 올린 거다.

-고(故) 서준경 검사 누명 벗었다!

-실무관 성폭행 고(故) 서준경 검사, 실무관의 뒤늦은 자백, 모든 것은 거짓.

-고(故) 서준경 검사 자살이 아닌 타살 의혹!

기사는 순식간에 포털을 장악했고 댓글 역시 난리였다.

-대박. 뭐야 이거.

-실무관이 신주언인가? 그놈한테 돈 받고 통수 친 거라잖아.

-어쩐지... 사법고시까지 패스한 양반이 그렇게 대놓고 성폭행을 했겠어? 거기에 갑자기 자살? 난 처음부터 안 믿었음.

ㄴ지랄 ㅋㅋㅋ

-그런데, 신주언이 힘 있는 놈인가? 처음 들어봤는데.

ㄴ송원태 보좌관이었다네.

ㄴ보좌관도 저만큼 힘이 있음? 언플해서 몰아갈 만큼?

ㄴ언론은 똥냄새 나니까 달려들었겠지. 팩트 체크는 등한시한 거고.

ㄴ카더라로 들었는데, 종로 경찰서 서장하고 쿵짝쿵짝해서 샤바샤하했다는데?

-지금까지 서준경 욕했던 놈들 대가리 박고 반성해라.

-죽은 사람만 불쌍.

-섹검이라 불렀던 것 당분간 취소합니다.

댓글에는 서진의 이름도 간간히 등장했다.

-그런데, 이것도 김서진 작품이라며?

ㄴ어, 미제 전문 검사.

ㄴ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더라.

ㄴ미친 ㅋㅋㅋ

ㄴ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잖아? 미제를 한두 개도 아니고 저렇게 씹어 먹는 검사가 어디 있어? 진짜 죽은 사람 목소리 듣는 것 같은데?

-실무관 우는 거 보니까 사이다! 김서진 검사 파이팅!

-고등학교 때 김서진이랑 같은 반이었다. 질문받는다.

검찰도 흥분의 도가니였다.

지금껏 김서진이란 이름이 검찰의 치욕으로 남아 있었다.

인터넷 댓글에 보면 ‘검찰 너희들이나 잘해라. 성폭행이나 하지 말고. 똥 묻은 개가 씨발’ 같은 말이 종종 달릴 정도였다.

그런데, 그 의혹이 해소된 거다.

검사들 역시 모이면 서준경에 대한 이야기로 난리였다.

“와, 서준경 검사... 진짜 억울했겠네. 우리도 실무관 말만 믿고 다 모른 척 했잖아.”

“미안하네...”

검사들이 잠시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김서진이지?”

“어. 그 새끼는 진짜 뭐야?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다가 후배한테 진급 밟히고 옷 벗겠다.”

“이게... 김서진이 잘하면 좋기는 좋은데, 그게 막 뭔지... 심장이 아프네.”

“응, 넌 밟힐 거니까. 그런 거야.”

검사들이 끌끌끌 웃었다.

“잠깐만, 그럼 이동영 수사관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 이동영 수사관?”

“서준경 의혹 해소하겠다고 난리 치다가 유배 갔었잖아?”

***

그 시각, 서진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유골이 있는 납골당,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곳.

봉안실로 들어가자 이동영 수사관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동영 수사관은 주먹을 꽉 쥔 채 서준경의 사진을 보고 있다.

“서준경 검사님... 죄송합니다. 이제야, 이제야 명예가 회복됐어요. 조금 더 일찍 했어야 했는데...”

이동영 수사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오고 있었다.

서진이 이동영 수사관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동영 수사관의 옆에 서서 그 등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이동영 수사관이 왈칵 눈물을 흘린다.

참으려고, 울지 않으려고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입을 꽉 물지만 눈물이 줄줄줄 흐른다.

그리고 서진의 시선 역시 서준경의 사진을 향해 틀어졌다.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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