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00화 (100/250)

<명예란? -(3)>

***

십 분 전이었다.

서진과 진윤희가 앉아 있는 바로 옆 방, 이름은 가람.

그 방에 다섯 명의 기자들과 신주언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은하 기자도 보였다.

신주언이 봉투를 건네자 기자들이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왜 갑자기 독약을 찔러 주세요? 하하하!”

“요즘 이런 거 받으면 큰일 나는 거 몰라요? 흐흐.”

그리고 기름지게 생긴 기자가 봉투를 품에 넣으며 물었다.

“왜? 우리 손가락이 필요한 일이 있나? 의원님 주변에 뭔 일 있어요?”

보좌관이 기자들을 불러놓고 돈을 찔러 넣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리 의원님이 남몰래 좋은 일을 했는데 주변에 알렸으면 합니다.

-우리 의원님에게 문제가 생겼어요. 당분간 기사 좀 쓰지 말아줘요.

이들은 아직 신주언이 버려진 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돈을 건넨 이유가 위의 두 가지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주언은 그 장단에 맞췄다.

“지난주에 의원님이 보육원 가서 후원금을 크게 내고 왔어요. SNS에도 올렸는데 아무도 기사를 안 내시네? 슬슬 지방 선거 다가오는데 민심 좀 잡게 도와주십시오!”

“에헤이, 그런 거야 그냥 전화 한 통이면 되는데 기름칠까지 하고 있어? 뭐, 어쨌든 잘 쓸게.”

그렇게 봉투 전달식이 끝나자 신주언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오늘은 죽을 때 까지 마셔봅시다!”

술이 돌았다.

한 잔, 두 잔.

그때였다.

-아아아악!

옆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기자들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틀어졌다.

“뭐야?”

“비명 맞지?”

기자들도 이 호텔의 이 식당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다.

불륜의 온상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런데 비명이 들려온다는 것은?

기자들이 웃기 시작했다.

“잘 안 되나 보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을 살핀 신주언의 입술이 뒤틀렸다.

‘시작했구나.’

계획 대로였다면 지금 기자들에게 사실을 알린 후 옆방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신주언은 술잔을 입에 대며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서진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다.

-기대할게. 뭐든 해봐.

신주언이 웃었다.

‘병신 새끼.’

젊은 사람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만이다.

세상은 만만치 않다.

나이 많은 사람의 연륜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거다.

신주언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주를 쭉 마셨다.

옆방에서는 계속해서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씨발 새끼가!

기자들의 시선은 아예 옆방으로 틀어져 있다.

그들이 중얼거린다.

“이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사람 하나 잡겠는데?”

“아이고, 요즘 젊은 애들 싸우는 거 보면...”

아직까지 기자들의 얼굴에 심각함은 없다.

그저 연인의 싸움으로 여기며 그게 연예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뺏어봐! 손만 대봐! 너 정말 성폭행이야! 검사 새끼들! 너희만 똑똑한 줄 알지? 병신 새끼!

검사라는 단어가 나왔다.

기자들의 행동이 뚝 멎었다.

그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두고 휴대폰의 녹음 어플을 켜는 기자도 있다.

신주언이 입을 열었다.

“사실... 옆방의 목소리가 기자님들을 부른 이유입니다.”

그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기자들의 눈동자가 신주언을 향해 홱홱 틀어졌다.

그들의 눈빛이 묻고 있다.

-뭐? 뭔데!

신주언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옆방에 있는 사람... 김서진 검사입니다. 그리고 지금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진윤희, 서준경 사건 때의 그 사람이죠.”

“......!”

기자들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여자, 그런데 또 검사와?

특종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신주언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정확한 이야기는 저도 잘 모릅니다. 잠시 설명해 드리면 저는 진윤희 씨와 아는 사이죠. 그리고 어제 진윤희 씨에게 연락을 받았고 이런 말을 들었죠.”

-만나지 않으면 네 얼굴을 세상에 공개하겠다.

신주언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쓸쓸한 표정으로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며 계속 말했다.

“저런 놈이 대한민국의 법을 지키는 검사라는 게...”

기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대한민국 법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오직 특종!

신주언이 말을 이었다.

“서준경 사건 때, 정말 다행히도 진윤희 씨의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어요.”

“......!”

“기자님들... 진윤희 씨의 얼굴이 공개되지 않게 힘 좀 써주십시오. 부탁드릴게요.”

신주언이 허리를 굽힐 때, 기자들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지금 신주언이 내뱉은 말을 기사로 써도 되는지 안 되는지 고민하는 거다.

-김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의 조카.

-아빠가 재정 건설의 대표.

계산은 곧 끝났다.

재정 건설? 꽤 규모 있는 회사지만 언론을 쥐고 펼 정도의 재벌은 아니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을 직접 마주하는 것도 아니다.

서진은 고작 조카다.

게다가 ‘성 문제’에 연루되면 김영준 검사장이 지랄해도 막을 수 없다.

‘괜찮네.’

순간 옆방에서 치명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개새끼! 개새끼야!

욕설이 나무하더니 쾅! 쾅! 뭔가 집어 던지고 깨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신주언이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안 되겠네요. 얼굴이 알려지는 것만 막으려 했는데, 막아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만 옆방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식사하고 계세요.”

신주언이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기자들도 정의의 사도가 된 것처럼 그 뒤를 쫓았다.

신주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김서진, 넌 끝이야.’

이제 서진은 성폭행범이 될 거다.

그리고 서진 하나만 사라지면 신주언의 인생은 다시 궤도에 올라선다.

‘됐어.’

몇 발 걷지 않고 바로 옆방에 도착했다.

신주언이 거칠게 문을 열며 벼락처럼 소리를 내뱉었다.

“뭐 하는 짓이야!”

신주언의 입에 걸린 미소는 더 짙어졌다.

정말 최고였다.

사방에 널브러진 액자의 유리와 뜯어진 벽지!

진윤희의 머리는 미친년처럼 산발이었고 블라우스는 모두 뜯겨 있다.

심지어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진을 향해 파리처럼 손을 비벼대고 있다.

마치 살려 달라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진윤희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른다.

그게 정점을 찍었다.

누가 봐도 강간이다.

‘윤희야! 넌 최고야!’

신주언이 기자들을 향해 다급히 고개를 틀었다.

“기자님들!”

그런데 진윤희의 입에서 예상과 다른 말이 나왔다.

“모두 저 새끼가 시킨 짓이에요!”

“......!”

신주언의 시선이 천천히 진윤희를 향했다.

진윤희의 손가락이 신주언을 가리키고 있다.

신주언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됐다.

넋 나간 눈동자를 움직여 다른 곳을 둘러봤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사람은 정확히 신주언이다.

그리고 진윤희가 악을 질렀다.

“어딜 봐, 너! 너잖아!”

진윤희가 빠르게 서진을 향했다.

신주언을 삿대질하며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검사님, 저 새끼가! 저 새끼가! 아아악! 다! 성폭행처럼 꾸미라고 했고요! 맞아요! 서준경도 저 새끼가 시켰어요! 난 시킨 대로 한 죄밖에 없어요! 믿어줘요, 제발!”

진윤희는 흥분했다.

헐벗은 채로 날뛰며 두서없는 말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을 맞춰 보면 ‘범인은 신주언’이다.

그제야 신주언의 눈에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상황 파악이 된 거다.

눈알을 굴려 주변을 살피며 사태를 빠져나가기 위해 갖가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방법을 찾았다.

옆에 있는 기자들, 이들과는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했다.

아니라고 말하면 믿어줄지도 모른다.

함께 했던 세월이 있으니 적어도 시간은 벌어줄 거다.

게다가 방금 돈까지 줬고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이 있다.

“기자님들! 지금 저 말 믿는 거 아니죠? 저 개새끼가 지금 어디서! 야, 진윤희! 언론에 얼굴 알려지는 게 무서워서 나를 팔아? 은혜도 모르...”

“영치금으로 쓰세요.”

신주언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은하 기자가 신주언의 양복 주머니에 봉투를 꽂아 넣고 있었다.

방금 신주언이 건넸던 그 봉투다.

신주언의 목소리가 당황스럽게 울렸다.

“기, 기자님?”

“왜요?”

“지금 뭐 하는 거죠?”

이은하 기자는 처음부터 이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서진의 지시에 따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돌려준다.

“영치금이라니까요?”

“기자님!”

동시에 다른 기자들도 ‘큼, 큼.’ 거리며 신주언의 주머니에 봉투를 꽂아 넣었다.

신주언이 ‘씨, 씨발...’ 중얼거렸지만 다들 외면했다.

그리고.

-찰칵!

이은하 기자가 휴대폰을 들어 신주언의 얼굴을 찍었다.

신주언이 무섭게 노려보자 이은하 기자가 생글 웃으며 얄밉게 말했다.

“아, 혼자 보기 아까워서요.”

기사를 올리겠다는 거다.

신주언이 벌건 눈으로 이은하 기자를 노려봤다.

그리고 이빨을 꽉 다문 채 협박했다.

“당장 지워. 사실이 아니라고 했어.”

신주언이 소름 끼치는 눈으로 이은하 기자를 바라보며 저벅, 저벅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찰칵! 찰칵!

다른 기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휴대폰을 꺼내 신주언의 얼굴을 찍고 있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동영상 촬영 중이다.

이런 특종을 놓칠 수 없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신주언의 걸음이 멎었다.

절망적인 눈으로 기자들을 바라봤다.

방금까지 술을 마시며 낄낄댔던 사람들인데...

“아...”

그때, 신주언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들어와.”

신주언의 눈이 서진을 향해 홱! 하고 움직였다.

서진이 냉랭한 눈빛으로 신주언을 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들어오라고. 이야기는 나하고 해야지?”

신주언의 턱에 힘이 꽉 들어갔고 이마에는 핏줄이 솟아났다.

모든 원흉은 김서진이다.

신주언이 인상을 구긴 채 구둣발로 들어갔다.

걸을 때마다 깨진 유리 조각 밟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서진이 진윤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넌 문 좀 닫고.”

“아, 네.”

진윤희는 서진의 말에 복종하며 재빨리 문으로 달려갔다.

문밖에 선 기자들은 앞으로 벌어질 일이 궁금했지만 진윤희는 ‘드르륵!’ 문을 닫아 버렸다.

문이 닫히자 방은 고요해졌다.

서진이 무심한 눈으로 술을 따라 입에 댔다.

기자들은 이은하 기자가 알아서 해결할 테고 서진이 할 일은 하나.

서진의 눈이 신주언을 향했다.

“앉아.”

신주언이 핏발선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마주 앉았다.

그러자 서진이 컵에 술을 따르며 신주언의 앞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난 무기징역을 생각하는데, 어때?”

“개소리하지 마. 서준경? 증거 있어? 그리고 뇌물? 좆까. 실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

“실력 있는 변호사?”

“그래, 돈만 주면 달려오는...”

서진이 끌끌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불안했다.

신주언이 미간을 좁힐 때 서진이 비웃듯 입을 열었다.

“돈 있어?”

“뭐?”

신주언은 이제야 서진의 눈을 제대로 봤다.

서진은 신주언의 모든 것을 박살 내려 하고 있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그리고 서진이 살벌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형이 IT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 정부 정책 사업, 대놓고 밀어줬더라? 결과는 안 나오는데, 돈만 따박따박 잡아먹는 엿 같은 회사. 맞지?”

신주언의 얼굴이 구겨지기 시작했지만 서진은 상관 않고 말을 이었다.

“네 형, 내일 소환될 거야. 회사는 공중분해 시킬 생각이고.”

“......!”

“그리고 네 지갑 뒤지다 보니까 차명으로 땅을 좀 사놨던데, 그거 환수할 거야. 아, 아직 당황하지 마, 또 있으니까. 사촌 작은 형이 돈놀이하던데, 네가 경찰 수사 막아줬지? 그건 방금 조사 들어갔어. 이자를 꽤 세게 받더라?”

신주언이 벌떡 일어섰다.

몸을 파르르 떨며 서진을 노려본다.

하지만 서진은 느긋했다.

소주잔을 빙그르 돌리며 슬쩍 웃었다.

“사돈에 팔촌, 너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숴버릴 거야. 그러니까 좋은 변호사는 기대하지 마. 네가 기대할 것은 앞으로 아무것도 없을 거야.”

“씨발 새끼야!”

신주언이 서진의 멱살을 콱 움켜잡았다.

서진이 픽 웃었다.

“아직 안 끝났는데... 네 아버지 뭐하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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