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감을 만나면. -(3)>
신주언 보좌관이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잠시다.
억지로 웃기 시작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이유는 하나.
지금 이 대화를 송원태 의원이 듣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막아야 해.’
서진이 가져온 의혹을 별것 아닌 것으로 포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 선거의 공천이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신주언 보좌관은 송원태 의원의 성격을 잘 안다.
모든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는 노인네.
죄가 드러나면 가차 없이 버림받을 거다.
‘그건 안 돼.’
신주언 보좌관의 시선이 서진을 향했다.
그리고 애써 대수롭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검사님, 사람 잘 못 봤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
“이 바닥에 있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유혹의 전화를 받아요.”
-돈을 줄 테니 의원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지역 이권에 개입해주세요.
“그런데요. 한 번도 그런 유혹에 넘어간 적이 없어요. 제 행동이 의원님의 앞길에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죠.”
“......”
“보좌관들은 모시는 의원님의 승승장구, 그거 하나만 보고 삽니다. 그런데, 제가 돈을 받는다고요? 어디서 음해할 수는 있겠네요. 하하하.”
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정치 물을 먹어 그런지 혓바닥이 참 길었다.
“음해하는 것도 이해합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이 워낙 많고 그중에 깨끗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
그런데 목소리를 이어가던 놈이 뒷말을 줄였다.
그리고 치아를 빠드득 갈며 서진을 노려봤다.
“검사님...”
서진의 표정 때문이다.
서진은 신주언 보좌관을 비웃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의 예의 없는 행동에 놈이 소리를 질렀다.
“검사님!”
순간 서진이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살벌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개소리 그만.”
저놈의 야비한 계획 때문에 서준경은 성폭행범으로 몰려 치욕을 당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서준경이라는 이름 뒤에는 성폭행 검사라는 단어가 낙인으로 찍혀 있을 정도다.
‘고작 이런 놈 때문에...’
송원태 의원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놈.
공천만 바라보는 쓰레기, 이런 놈 때문에 서준경의 인생이 병신처럼 어그러졌다.
급기야 서진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으핫핫핫핫!”
그 웃음소리가 살벌했고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자 신주언 보좌관의 표정이 처참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증거가 있나?’
신주언 보좌관이 마른 침을 삼켰다.
고위 공무원도 한 수 접는 게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다.
그런데 신주언은 다른 국회의원도 아닌 송원태의 아래에 있다.
의혹을 넘어선 증거가 없다면 일개 검사가 이렇게까지 행동할 수는 없다.
‘씨발...’
신주언 보좌관이 눈동자를 휙휙 굴렸다.
그리고 입술을 핥으며 정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뜬금없는 말에 서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하지만 놈은 절박하다.
옆방에서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원하는 게 있으니까 따로 보자고 한 거 아닙니까? 뭐가 필요하세요? 검사님 아버지가 재정건설 대표라고 들었는데, 혹시 재개발 사업 하나를 밀어주면 되겠습니까? 적어도 수백억은 먹을...”
신주언 보좌관이 말을 이어가며 슬쩍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서진의 눈빛은 건조했다.
관심이 없다는 뜻.
놈이 곧바로 말을 돌렸다.
역시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게 아니면... 이건 어떨까요? 제가 다음 지방 선거에서 공천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어요. 시작은 지방 단체장이지만 목표는 중앙정치. 제가 검사님의 뒤를 봐 드리겠습니다.”
“......”
“송원태 의원님의 연세를 생각해 보세요. 검사님의 인생에 큰 도움은 안 될 겁니다. 김영준 검사장님? 마찬가지예요. 곧 은퇴하겠죠. 하지만 저는 달라요. 앞으로 십수 년은 친구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신주언 보좌관이 다시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긍정의 표현에 신주언 보좌관이 주먹을 꽉 쥐었다.
‘됐어.’
이제 서진을 구슬려서 이곳만 벗어나면 된다.
이곳만 조용히 넘어가면.
‘죽여줄게.’
지금껏 신주언 보좌관이 했던 모든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놈은 시간이 주어지면 서진을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검사장 조카? 그게 뭐?’
놈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정치인과 어울리는 사람.
그 거인들에 비하면 서진은 언제든 짓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와 같다.
‘서준경도 그렇게 까불다가 뒈졌지. 너도 마찬가지야.’
신주언 보좌관이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속삭였다.
“검사님, 지금 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고민되시죠? 그런데, 굳이 저를 믿을 필요가 있을까요? 검사님이 쥐고 있는 제 약점, 그걸 믿으세요. 그 약점을 목줄로 삼으면 완벽한 파트너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서진이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은 이야기네요.”
서진의 입에서 다시 존댓말이 흘렀다.
신주언 보좌관이 활짝 웃으며 서진을 향해 악수를 권했다.
“그 목줄이 검사님 인생의 하이패스가 될 겁니다.”
그런데 서진은 그 악수를 받지 않았다.
놈의 손이 민망할 정도로 빤히 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데, 부족해요.”
“네?”
“재개발 현장에서 받은 돈, 아파트 올라가고 몇 년 지나면 흐지부지되겠죠. 완벽히 세탁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만 믿고 보좌관님과 함께하기는 어렵죠. 오늘의 일을 품고 있다가 뒤에서 칼을 꽂을 수도 있잖아요?”
“검사님!”
“세상에 믿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정치인의 약속이라는데, 제가 어떻게 믿어요?”
신주언 보좌관이 인상을 찡그렸다.
다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다니.
놈이 다급히 말했다.
“제가 그런 양아치는 아닙니다.”
“부족하다고요. 보좌관님을 믿고 제 등을 맡기기에는 안전장치가 더 필요해요.”
“하... 뭘 원하시는 겁니까?”
서진이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다른 비리도 테이블 위에 올리세요. 판돈이 가득해야 저도 믿고 갈 수 있겠죠?”
“검사님!”
동시에 서진이 신주언 보좌관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보좌관님, 함께 가자면서요. 파트너라면서요? 파트너가 되려면 서로 믿어야 하지 않겠어요? 믿고 베팅하세요.”
“......!”
“보좌관님이 제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는 가슴에 묻고 살게요. 그게 아니면 재건축 비리 한번 들쑤셔 볼까요? 파트너가 아니라 피고인과 검사로 대화 나누기를 원하세요?”
“......!”
“보좌관님, 고민 그만하고 믿고 갑시다!”
서진의 마지막 목소리가 컸다.
일부러 목소리를 높인 거다.
옆방에는 송원태 의원이 있고 놈은 지금의 대화가 흘러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예상대로 신주언 보좌관은 화들짝 놀랐다.
“조용히 하세요! 가게 직원들이 들어요!”
서진은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신주언 보좌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저 얼굴이 박살 날 것을 생각하니 참기 힘들 정도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놈은 서진의 미소를 여전히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좋아요. 테이블에 올리겠습니다. 하, 이거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하는 것도 아니고...”
“편히 말씀하세요.”
“지금 우리 지역구에 있는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들 있잖아요? 후보 공천받을 때 힘써주는 대가로 용돈 좀 받았습니다.”
기초 의원의 목줄은 해당 지역구 의원이 쥐고 있다.
국회의원의 입김으로 그들의 공천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회의원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지역 상주 보좌관, 신주언이었다.
“의원님께 말씀드려서 공천심사에서 유리한 점수를 받도록 도와줬죠. 그게 몇 번이더라...”
그렇게 받은 돈이 지금껏 약 20억 원.
“이 정도면 안전장치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놈은 서진이 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계획했던 대로 이곳을 나가는 즉시 처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린놈의 새끼가.’
따박따박 반말을 한 것부터 자신의 목줄을 잡으려 한 것까지, 신주언 보좌관은 서진을 죽여야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옆방에 송원태 의원만 없었어도 넌 이미 죽었어 새끼야!’
신주언 보좌관이 미소를 흘리며 술잔을 쥐고 털어 넣었다.
그리고 서진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를 채울 것을 떠올렸다.
-검찰! 또 성폭행!
-김서진 검사, 자신의 권세와 지위를 이용해 성폭력.
-검찰의 민낯, 어디까지!
신주언 보좌관이 술잔을 탁 내려뒀다.
‘좋네.’
술맛이 좋았다.
하지만 술은 여기까지다.
다음은 술은 서진의 장례식장에서 마실 거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증발했다.
‘어?’하는 순간 서진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공천에 개입하고! 건설업자에게 금품을 받고!”
신주언 보좌관의 얼굴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처럼 쩍! 갈라졌다.
“거, 검사님!”
속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신주언 보좌관이 눈을 깜빡일 때 서진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 같은 새끼가 의원님의 아래에 있으면 안 돼! 그동안 먹은 돈이 20억? 미친 새끼.”
신주언 보좌관의 시선이 옆방으로 틀어졌다.
이 정도 목소리라면 송원태 의원이 모두 들었을 거다.
‘아, 안 돼.’
신주언 보좌관은 아찔함을 느꼈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더 큰 목소리를 내뱉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신주언 보좌관도 밀릴 수 없었다.
옆방에 송원태 의원이 있다.
놈이 테이블을 쾅! 쾅! 두들기며 벌건 눈으로 서진을 쏘아봤다.
“대놓고 사람을 죄인 만드는 거야? 그동안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날 건드는 것은 의원님을 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지금은 어떤 증거도 없다.
그럼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다.
이곳만 넘기면 된다.
이곳만...
그때, 문이 드르륵! 열렸다.
송원태 의원이 무서운 표정으로 들어온 거다.
갑작스러운 등장.
서진은 몰랐던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의, 의원님?”
신주언 보좌관은 재빨리 송원태 의원의 옆으로 붙어 섰다.
“의원님! 저놈이 우리를 음해하고 있습니다! 장부에 이름이 없으니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면서 저를 검찰에 소환하겠다고 합니다!”
신주언 보좌관은 송원태 의원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서진에게 시선을 돌리는데 그 표정이 싹 바뀌었다.
서진을 향해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다.
‘미친 놈.’
십 년이 넘게 송원태 의원의 곁에 있었다.
구둣발을 핥으라면 핥았고 개처럼 기라고 하면 바닥을 네발로 기었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이 있다.
‘여기서는 내 말을 믿어줄 거야.’
그리고 밖으로 나간 후 계획을 앞당기면 된다.
서진이 증거를 꺼내기 전에 처리하면 되는 거다.
‘새끼야 넌 끝이야.’
신주언 보좌관이 악랄하게 웃었다.
그런데, 서진이 주섬주섬 들고 온 가방을 뒤졌다.
꺼낸 것은 두툼한 서류.
놈의 눈동자가 움찔거렸다.
‘뭐지?’
서진이 그 서류를 두 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허리까지 굽히며 정말 공손한 자세로 송원태 의원에게 건넸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심지어 목소리마저.
“이렇게 의원님을 뵙게 돼서 죄송합니다.”
송원태 의원의 시선이 서진이 들고 있는 서류로 향했다.
“...뭐지?”
“보좌관이 재개발 현장에서 뒷돈을 받은 정황 증거입니다. 수사가 시작되면 의원님께 피해가 갈까 봐 조용히 보좌관직을 그만두라고 전하던 중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야당에서 알게 되면 시끄러워질 테니까요. 그런데, 보좌관은...”
신주언 보좌관이 분노했다.
“야!”
놈은 다급했다.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을 짓밟고 넘어오더니 순식간에 서진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시뻘건 눈동자로 서진을 노려보며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저런 가짜 증거로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이 우스워 보여? 어!”
“하...”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또... 멱살을 잡혔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초조하게 떨리는 놈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니 정말 즐거웠다.
“우스워 보이냐고!”
순간 송원태 의원이 버럭했다.
“그만, 그만, 그만! 신주언!”
신주언 보좌관이 시선이 홱! 송원태 의원에게 틀어졌다.
동시에 송원태 의원이 손에 든 서류를 놈의 얼굴로 집어 던졌다.
꽤 두툼한 서류가 그대로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서류가 후드득 땅으로 떨어졌다.
공간은 적막해졌고 신주언 보좌관은 멍한 얼굴이다.
놈이 서진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스르륵 풀었다.
“의, 의원님...”
그리고 울 것 같은 눈으로 송원태 의원을 바라봤다.
개처럼 살았던 인생이다.
공천을 받아 사람처럼 살아보려 했는데 개처럼 끝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앞으로 송원태 의원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지역구에서 돈을 받아?”
보좌관이 뇌물을 받으면 국회의원이 몰랐다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공천에 개입을 해?”
문제는 공천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송원태 의원의 지지기반이 무너진다.
“씨발 새끼가!”
송원태 의원이 폭발했다.
그때, 서진이 그 앞을 빠르게 막아섰다.
“의원님!”
송원태 의원의 부릅뜬 눈이 서진을 향해 기울어졌다.
“왜? 내가 저놈을 때리면 폭력으로 기소할 텐가?”
“아뇨. 시계는 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원님이 다치실 수도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