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94화 (94/250)

<이유가 고작 그거였어? -(3)>

*

쾅!

취조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서진이 장길주 형사를 질질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던지듯 내팽개치자 콰당탕탕! 소리와 함께 장길주 형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앉아.”

서진의 낮은 목소리에 장길주 형사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 의자로 향했다.

그리고 서진이 그 앞에 마주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이유.”

“네?”

“죽으려던 이유!”

서진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꽝!’ 내리치며 노려봤다.

하지만 장길주 형사가 웃는다.

“됐고. 그냥 죽여. 죽게 내버려 두지 그랬어!”

장길주 형사의 눈에 핏대가 섰다.

“씨발! 죽이라고!”

심지어 이마로 테이블을 쾅! 쾅! 내리치기 시작했다.

“죽고 싶다고! 어? 내 목숨이잖아! 그런데, 왜 씨발!”

장길주 형사는 생각했다.

자신은 살아 있으면 안 된다.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장은 이렇게 말할 거다.

-저 새끼가 여고생이랑 잤어요! 경찰이기 전에 딸도 있는 새끼가 미친 거죠!

서장은 충분히 그럴 놈이다.

경찰이 여고생과 놀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며 본인의 이름이 흐려지기를 바랄 거다.

세상은 ‘뇌물’의 무거움보다 ‘성관계’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에 집중한다.

그것도 여고생이라면 더욱 더.

“개새끼야! 죽이라고! 왜 살렸어!”

장길주 형사가 주먹으로 쾅쾅! 테이블을 치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 순간, 장길주 형사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 역시 오랜 시간 범인을 취조해왔다.

보통 죄인이 이런 난동을 피우면 당황해야 하는데, 서진의 눈빛은 지나칠 정도로 건조했다.

그리고 끌끌끌 웃고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서진의 웃음소리가 서늘하게 들려왔다.

장길주 형사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서진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딸이 있다고 들었어. 그런데, 여고생 앞에서 바지를 벗었네? 어떤 기분이었냐?”

“.....!”

순간 장길주 형사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손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그걸... 어떻게?”

“어떤 기분이었냐고 물었잖아. 대답해.”

순간 장길주 형사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서진이 알았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서장이지? 그 새끼가 말했지!”

장길주 형사의 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서장이 앞에 있었다면 찢어 죽일 것 같은 눈이다.

급기야 서진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묻는다.

“그 새끼 어디 있어!”

원조교제를 숨기기 위해 자살까지 시도했다.

그런데 서장이란 놈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떠벌렸다.

만약 자살 시도가 성공했다면 정말 개죽음이 될 뻔했다.

장길주 형사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 목소리가 취조실을 흔들었다.

“대답해! 어디에 있냐고!”

“하...”

서진이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동네북이네.’

이제 인정한다.

이 멱살은 이제 공공재다.

김윤환부터 최희준 그리고 이제 장길주 형사까지.

지나가던 초등학생이 멱살을 잡아도 그러려니 할 거다.

‘젠장.’

서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장길주 형사를 확 밀쳤다.

와당탕탕!

장길주 형사가 요란하게 넘어졌다.

하지만 놈의 눈빛은 아직 살벌했고 서진을 보며 발악했다.

“서장 데려와, 데려오라고!”

서진이 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서장 아니야. 수사하던 과정에서 알게 된 일이지.”

“믿으라고?”

“믿고 안 믿는 것은 네 자유. 그런데, 하나 묻자. 원조교제 사실이 가족의 귀에 들어갈까 봐 자살을 시도했지? 그 이유가 뭐야?”

장길주 형사는 ‘원조교제’라는 단어에 아찔함을 느끼며 시선을 틀었다.

하지만 서진은 그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놈의 머리채를 꽉 움켜잡은 후 다시 눈을 마주쳤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는데.”

서진은 서장이 자살을 종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튀어 나온 말은 달랐다.

“미, 미안했어. 우리 애한테, 그리고 아내한테...”

서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족한테 미안하다니...

“잘못이 밝혀지는 게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무서우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장길주 형사는 입을 열지 못했다.

시선을 피하며 허옇게 질린 얼굴로 신음만 흘렸다.

모든 게 끝났다는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장길주 형사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서진을 향해 부탁하고 싶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언론에 알리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무리다.

서진의 표정은 바늘로 쑤셔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부, 부탁드릴게요. 비밀로 해주세요. 제발...”

장길주 형사는 싹싹 빌었다.

고개를 숙이고 정말 애처롭게 행동했다.

서진이 놈의 머리채를 툭 놓으며 입을 열었다.

“약속하지. 네 원조교제 사실은 비공개 수사로 진행할 거야. 그럼, 언론에 오르내릴 일은 없겠지. 서장의 입도 걱정하지 마. 틀어막아 줄 테니까.”

장길주 형사가 지옥에서 천사를 만난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서진은 여전히 장길주 형사를 벌레 보듯 보는 중이다.

“착각하지 마. 널 위해서가 아니야. 혹시라도 피해받을 네 가족을 위해서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장길주 형사는 몇 번이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서진이 아니다.

“대신 모든 것을 자백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 처음부터 끝까지.”

장길주 형사가 고개를 다급히 끄덕였다.

“네, 하겠습니다.”

죽을 각오까지 했었다.

자백은 어렵지 않다.

원조교제를 숨길 수만 있다면, 언론을 통해 가족의 신상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장길주 형사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서진의 질문은 예상과 달랐다.

“엄영진 형사는 무슨 죄가 있었어? 서장한테 어떤 협박을 받고 자살한 거야?”

장길주 형사가 눈을 깜빡였다.

엄영진 형사의 죽음은 자신도 어제 알게 된 거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서장이 고해성사할 리가 없다.

“어, 어떻게...”

“대답이나 해.”

장길주 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저,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예상가는 게 있어요. 그런데, 약속해 주세요. 이것도 비밀로 해준다고.”

“약속하지.”

“영진이는 깨끗할 거예요.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그래요. 그런데, 제수씨가...”

장길주 형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괴로운 목소리가 흘렀다.

“제수씨가... 영진이와 결혼하기 전에 사귀었던 남자와 성관계를 한 동영상이 있어요.”

몇 달 전이다.

영상을 찍은 놈이 음란물 유포죄로 잡혀왔다.

그리고 놈의 PC에서 엄영진 형사의 아내 동영상이 나타났다.

“그놈은 만났던 모든 여자의 영상을 소장하고 있었어요.”

다행히 자기가 찍은 것은 혼자 소장하는 놈이라 유포는 안 된 상태.

“압수수색 과정에서 제가 PC를 찾았고 그 영상을 보게 됐죠. 영진이한테는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단 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바로 서장이다.

“작은 증거였으면 제가 혼자 처리했겠지만 PC라서요. 그걸 증거물에서 빼려면 서장 승인이 필요했거든요.”

경찰이 입을 다물면 증거는 사라진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장길주 형사는 엄영진 형사를 보호하고 싶었다.

“그런데 서장 그 새끼가 그걸로 영진이를 협박했을 거예요! 유포하겠다고! 동료들에게 뿌리고! 자식 다니는 학교 학부모들한테 전송한다고 협박했을 거예요! 분명 그랬을 거예요. 씨발 새끼!”

장길주 형사의 눈에 다시 핏발이 올라섰다.

서장을 향해 분노를 토해내고 있다.

하지만 위선이다.

“너도 똑같아.”

장길주 형사도 다르지 않다.

엄영진 형사가 룸살롱 수사를 시작하자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영진 형사의 죽음 뒤에 서장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다.

그 죄는 크다.

장길주 형사는 이제야 죄의 눈물을 쏟아냈다.

“...죄송합니다.”

***

“구치소 CCTV에 얼굴 잘 나왔던데. 경찰이 아니라 배우 했으면 잘 어울렸겠어.”

서장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서진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계속해서 테이블 위에 증거물을 던져두며 입을 열었다.

“변호사도 아닌 양반이 접견실은 어떻게 들어갔을까? 구치소 소장 증언도 받아 왔는데.”

“......”

“그 뒤에 장길주 형사가 자살을 시도했고 직원들이 증인 서겠다고 난리네.”

“......”

“그리고 장길주 형사의 증언도 일관되고. 이야, 이거 빠져나갈 곳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서장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인했다.

“난 모르는 일입니다.”

“경찰이 아니라 정치를 하셨나? 왜 시작부터 단기 기억 상실이야?”

“이제부터 변호사 없이는 한마디도 안 하겠습니다. 그리고 검사님의 태도는 충분히 강압적...”

서진이 서장의 앞으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뻔뻔할까. 내가 얼마 전에 윤민우라는 싸이코 패스를 만났었거든? 그런데, 넌 더해.”

“검사님!”

서장이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서진은 오히려 웃었다.

“고작 서장이라는 직위를 잃고 싶지 않아서 협박을 하고 자살로 내몰았어? 넌 사형이야. 어떤 변호사를 선임하든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내가 다 박살 낼 테니까.”

서진이 손가락으로 서장의 이마를 쿡쿡 찍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죽을 때까지 너는 감옥에서 살 게 될 거야. 병보석? 가석방? 그런 거 기대하지 마. 네가 바깥 공기를 마시는 날은 네가 죽은 날이 될 테니까. 약속할게. 그리고 내 모든 힘을 다해서라도 이 약속 지킬게.”

서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귀까지 벌겋다.

서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네가 뭐라고!”

“나? 검사 김서진.”

서진이 웃으며 서장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자 놈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서장 자신도 알고 있다.

미래는 끔찍할 거다.

마지막 동아줄이 송원태 의원이었는데 장부에 그 이름은 없었다.

그럼, 송원태 의원이 서장 따위를 도와줄 리 없다.

“하...”

서장의 입에서 한숨이 흐를때, 그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기다려. 죽여줄게.”

***

서진은 복도를 걸으며 품에서 구깃구깃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송원태 의원의 이름이 적힌 장부다.

‘잘 빼냈어.’

만약 송원태 의원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면 서장 역시 잡기 힘들었을 거다.

송원태 의원 정도의 권력자가.

-제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릴 것으로 보입니까? 제 이름이 왜 적혀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말을 내뱉는 동시에 장부는 거짓으로 바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장부에 송원태 의원은 없다.

서장만 존재한다.

그럼,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든 판사가 장부에 어떤 거짓도 없다고 선언할 게 분명하다.

그때 이 장부를 송원태 의원에게 보여준다면?

‘기대되네.’

서진이 다시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런데.

“안녕하십니까!”

큰소리가 울렸다.

계단 아래를 바라보니 로비에 송원태 의원이 나타났다.

놈은 검사 출신의 국회의원이며 여당의 원로이자 법사위 위원장.

앞으로 서진의 노예 또는 범죄자로 감옥에 갈 놈.

그 앞에 김영준 검사장이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얼굴을 보자마자 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왔는지 알고 있다.

자신의 라인이 줄줄이 잡혀 들어오자 똥줄이 탄 거다.

‘저놈...’

서진의 머릿속에서 이번 사건을 진행하며 알게 된 사실들이 빠르게 스쳤다.

우선 경찰서장과 최희준 검사가 나눴던 이야기.

-어쩌다 이렇게 쫄보가 됐을까? 서준경 쳐낼 때만 해도 안 그랬잖아? 어? 검사장 조카라 무서운 거야?

-그리고 그들 라인 중 가장 윗선에 있는 게 송원태 의원.

-마지막으로 송원태 의원은 서준경이 수사하던 쓰레기 중 하나.

서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나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지금껏 찜찜하게 놔두고 있던 불안한 실체.

서진은 품에서 대포폰과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수첩을 착착 넘긴 후 전화번호 하나를 찾았다.

서준경 검사를 성폭행으로 몰았던 실무관, 그녀와 연인 사이로 저장되어 있던 연락처.

그 연락처의 주인을 찾아봤지만 그것 역시 대포폰이었다.

서진이 그 번호를 입력 후 긴장된 한숨을 내뱉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시선을 송원태 의원에게 옮겼다.

‘설마... 너는 아니지?’

실무관은 참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서준경의 뒤통수를 쳤다고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저런 노인네와 손을 잡고 부둥킨다는 게 상상이 안 간다.

하지만 찜찜하다.

고교생과 원조 교제한 형사를 취조해서 그런지 ‘혹시?’라는 생각이 머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서진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계속 송원태 의원을 바라봤다.

여기서 전화를 받을 리는 없다.

하지만 전화가 온다는 것을 느꼈으면 뭔가 행동이 있을 거다.

그때였다.

-여보세요?

서진의 눈이 험악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