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고작 그거였어? -(1)>
서진의 대답과 동시에 놈의 눈빛이 흔들렸다.
흉악했던 눈빛이 곱게 변한다.
덩치 큰 남자들의 앞에서 순한 양이 된 거다.
그리고.
“일단 잡아 주세요.”
서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자 넷이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반전은 없었다.
다부진 체형에 살벌한 느낌을 주던 놈은 구겨진 종이처럼 땅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놈이 잔뜩 겁을 먹은 시선으로 앞을 바라봤다.
저벅, 저벅 서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놈은 서진을 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분명 순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착하고 잘 생겼다는 말로 정의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서진은 악마도 혀를 내두를 것 같은 눈동자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이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놈과 눈을 마주쳤다.
동시에 놈의 머리카락을 확 쥐며 무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영진 형사, 네가 죽였어?”
*
수사관들이 도착한 것은 십여 분이 더 지난 뒤였다.
“검사님!”
계단을 뛰어 올라온 수사관들은 깜짝 놀랐다.
빨랫줄로 묶여 있는 놈.
“이, 이게...”
놈은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시선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누, 누굽니까?”
“증거를 없애려고 온 놈이에요. 회사로 데려가 주세요. 위험한 놈이니까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거예요.”
서진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수사관들은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몇몇 수사관이 놈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후 어깨를 잡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차로 질질 끌고 갔다.
놈은 어떤 반항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순순히 끌려갔다.
서진의 시선이 잠긴 문으로 옮겨졌다.
놈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가서 하면 된다.
지금은 이 문을 열고 들어가 장부를 찾아야 할 시간이다.
철컥!
수사관들이 문고리를 돌렸다.
역시 잠겨 있다.
수사관들이 복도에 놓인 화분을 들어 올리며 열쇠를 찾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쩌죠?”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압수수색영장의 집행에 있어서 열쇠를 열거나 개봉 등 필요한 처분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전문가를 불러 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강제 개문합니다.”
서진이 수사관들이 가져 온 해머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수사관들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그대로 휘둘렀다.
꽈아아앙!
수사관들이 깜짝 놀랐다.
긴급을 요하여 법원판사의 영장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재물손괴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 뒤에 소명해야 할 일이 산더미.
신임 검사가 이렇게까지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은 처음 봤다.
‘이런 거 본 적 있어?’
‘빠꾸 없다더니 진짜네.’
그동안 법이라는 절차에 막혀 시간을 버려야 했던 수사관들에게는 속이 시원한 순간이었다.
꽈아아앙!
그렇게 몇 번 해머를 휘두르자 문은 손쉽게 부서졌다.
서진이 박살 난 문을 발로 밀어 차며 손을 툭툭 털었다.
“부서진 문이야 물어주면 되죠. 여기 집 주인 연락처 찾아 주세요.”
서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담의 집은 쓰레기장 같았다.
널브러진 속옷, 오랜 시간 방치해둔 그릇, 배달 음식의 흔적과 함께 소주병이 가득하다.
“컹!”
개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그 와중에 개는 잘 관리했다.
살이 통통하게 쪘고 털도 깔끔하다.
서진이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변을 살폈다.
수사관들이 검찰 박스를 들고 있는 대로 쓸어 담는 중이다.
노트북과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 그리고 패션 잡지까지.
서진의 시선은 그들의 어깨 너머로 이동했다.
‘장부가 있을 곳...’
서진은 몸을 일으키며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아래 장식장 서랍을 열어젖혔다.
담배와 라이터만 가득하다.
집안 상태를 보면 꼼꼼하게 숨겨둘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이곳에 없다는 것은.
‘나름 숨겨서 보관했다는 것인가?’
서진이 침실로 이동해서 화장대와 침대 아래를 살폈다.
‘역시.’
침대 아래에 스프링 노트가 보였다.
손을 뻗어 노트를 움켜쥔 후 품에 숨겨 화장실로 향했다.
이어서 문을 잠근 후 곧장 착착착 펼쳤다.
예상대로 장부, 친숙한 이름들이 다 보인다.
최희준부터 경찰 서장까지.
그리고 장부를 넘기던 서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송원태.
여당의 원로 국회의원이자 법사위 위원장.
서진이 서준경이었을 때 추적하던 놈 중 하나다.
김영준 검사장과 한 라인을 탄 인물로 온갖 뇌물을 받고 양아치들의 뒤를 봐주던 쓰레기.
서진이 놈의 이름을 쏘아보며 입술을 쓸었다.
‘설마...’
서준경의 죽음과 송원태 의원.
뭔지는 모르겠지만 구린 냄새가 난다.
놈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놈.
이놈이 경찰 서장과 최희준 검사에 목줄을 잡고 서준경을 쳤을 수 있다.
엄영진 형사의 죽음에 깊이 관여했을 확률도 높다.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서진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놈의 이름을 노트에서 뜯어낸 후 곱게 접어 품에 넣었다.
스프링 노트라 뜯어낸 흔적은 남지 않는다.
‘이놈의 이름이 있으면 안 돼.’
김영준 검사장은 총장을 노리며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처지다.
게다가 법사위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숨기겠지.’
김영준 검사장은 사건을 축소하려 할 거다.
장부에 놈의 이름이 있다면 위증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사건이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어쩌면...’
김영준 검사장이 이 장부를 들고 송원태 의원의 머리채를 잡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 송원태 의원은 김영준 검사장의 개가 된다.
‘그건 막아야지.’
김영준 검사장은 지금도 수많은 국회의원의 비리를 모아두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 힘이 김영준 검사장을 괴물로 만드는 중이다.
그 꼴을 또 두고 볼 수는 없다.
서진은 서준경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며 송원태 의원을 직접 잡을 생각이다.
서진이 몸을 돌려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침실로 이동해 수사관들의 눈을 피하며 장부를 던져뒀다.
오래지 않아 수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부 찾았습니다!”
***
그 시각, 중앙지검.
“최희준이 양아치 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김영준 검사장을 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은 모니터로 향해 있다.
그곳에 최희준 검사와 서진의 모습이 보였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계속해서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을 살피며 휴대폰의 녹음 어플을 꾹 눌렀다.
영상과 맞게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최희준 검사가 외친다.
-이 씨발 새끼가!
최희준 검사가 서진을 향해 달려들 때였다.
서진이 시계를 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영준 검사장이 픽 웃었다.
“시계를 풀어?”
이어진 모습은 더 가관이다.
최희준 검사가 멱살을 잡았지만 서진이 정강이를 가격하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이 껄껄 웃는다.
‘검사라면 저래야지. 성공을 하려면 저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지.’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린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한다.
그게 선배든 뭐든 상관하지 않고.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의 행동과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자신을 꼭 닮은 것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역시 핏줄이다.
“그래서 최희준 저놈은 어떻게 했지?”
“일단 취조실에 잡아뒀습니다.”
“잘했어. 서진이한테 직접 조사하라고 해.”
“옙!”
조우재 부장검사는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김영준 검사장에게 칭찬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우재야. 해야 할 일이 있어.”
“뭐든 말씀하십시오.”
“후배가 선배를 잡은 일이야.”
상하 관계가 확실한 검찰 조직이다.
후배가 선배의 멱살을 잡고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일을 반가워할 사람은 없다.
어쩌면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
그리고 배운 사람들의 치졸한 따돌림은 더 무서운 법이다.
김영준 검사장은 그 이후를 생각했고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지시했다.
“서진이가 어쩔 수 없이 저런 행동을 했다고 포장해. 최희준이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서진이를 폭행했다고 알려. 최희준을 더 악랄한 범죄자로 만들어. 이 CCTV 영상은 앞으로 누구도 볼 수 없게 봉인하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김영준 검사장의 뜻을 이해했다.
곧장 허리를 굽히며 확실하게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
-특전사에 격투 선수 출신들이에요. 푸핫핫핫!
서진은 도광현과 통화하며 지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가 위험할 때 딱! 나타나라고 부탁했죠.
도광현은 신이 나 있었다.
자신이 섭외한 경호원이 화끈하게 일을 끝냈다는 소식에 낄낄거리며 즐거워한다.
-일 잘했으니까 보너스 좀 챙겨 줄게요.
“그래, 고맙다는 말도 전해주고.”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
이번에는 동생 진영이다.
-집에 안 와? 자취방 얻었어? 여자 친구 있는 거야? 어?
진영이 빠르게 질문을 이어갔다.
서울에 왔지만 집에 들어간 적이 없다.
맡은 사건이 긴급하게 이어지며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놓고 쪽잠을 자는 중이다.
문제는 오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자취방 없고 여자 친구도 없는데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네.”
-뭐야? 오자마자 바쁜 거야?
“어, 잠깐만...”
경찰이 음주 단속을 하고 있었다.
서진이 창문을 내리는데 단속하던 경찰이 입을 연다.
“김서진 검사님이시죠?”
서진이 눈을 찌푸리며 경찰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종로 경찰서 서장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단속하던 경찰이 어렵게 말을 이었다.
“잠깐...”
“알았어요.”
서진이 핸들을 틀었다.
그리고 갓길에 댄 후 차에서 내려 서장을 향해 다가갔다.
서장의 얼굴은 심각하다.
서진이 마담의 집으로 압수수색을 나갔다는 것을 들어서다.
그리고 어디서 첩보를 들었는지 장부를 찾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장이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옆에 선 경찰에게 건넸다.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싶은데 이런 게 있으면 거추장스럽잖아요?”
녹음을 걱정하는 거다.
서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전 휴대폰이 없어요. 망가졌거든요.”
“아, 그런가요?”
서진이 자신의 몸을 툭툭 치며 없다는 것을 알리자 서장이 차량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타시죠.”
서진이 차량에 올랐고 곧이어 서장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핥으며 입을 열었다.
“검사님,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한데... 장부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장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혹시 확인해 보셨습니까?”
“네.”
“장부에 제 이름이 있는 것도 아시겠네요? 그런데, 그거 가져가도 소용없을 겁니다.”
서진이 시선을 틀어 서장의 표정을 살폈다.
경직된 얼굴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다.
초조한 눈동자는 초점을 잡지 못하는 중이다.
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장부에 송원태 의원님의 이름도 있을 겁니다. 아시겠지만 법사위에 계시고 곧 법무부 장관에 오른다는 말도 있죠. 그런데, 김영준 검사장님은 지금...”
서장의 혓바닥이 길었다.
놈의 말을 요약하면.
-김영준 검사장은 총장이 되고 싶어 한다.
-송원태 의원의 힘이 필요하고 사건은 흐지부지될 게 분명하다.
-서진의 검사 생활은 이제 시작인데 송원태 의원에게 찍힐 필요는 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장부 조작 좀 하자.
“제가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쉽고 편하게 가는 것도 인생이더라고요. 막말로 우리가 용돈 조금 받았다고 국민들이 손해 볼 일이 뭐가 있습니까? 민생치안을 잘 해결해 주면 그것만으로 만족하는데요. 그래서...”
서장은 송원태 의원을 믿지 못하고 있다.
윗선의 꼬리 자르기가 자신의 이름까지 닿을까 전전긍긍이다.
권력자들에게 경찰서장은 장기짝과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영준 검사장은 이번 일을 실적으로 삼으려 할 거다.
총장이 되기 전 경찰서장의 목을 벤 검사장으로 이름을 남기려 할 게 분명하다.
서장은 제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음주단속까지 벌이며 서진을 찾아왔다.
살기 위해.
“그러니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우리 애들이 검사님께 협조를...”
서진은 서장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장의 입가에 점차 미소가 맺힌다.
말이 통한다고 여긴 거다.
그런데 서진의 입에서 뱉어진 말은 서장의 예상과 달랐다.
“없었는데요.”
“네? 뭐가... 없죠?”
“장부에 송원태 의원의 이름은 없었다고요.”
서장의 얼굴이 당혹스러워졌다.
“그, 그게 무슨...”
“그리고 서장님? 얼굴 본 김에 말씀드릴게요. 일단 가시죠.”
“어, 어딜 가요?”
“어디긴요. 검찰이지.”
서진이 차량의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그리고 운전석으로 이동해서 블랙박스의 메모리카드를 뽑아냈다.
서장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이 새끼야! 송원태 이름이 왜 없어! 있잖아? 왜 없냐고!”
서장의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서진의 한숨을 내뱉으며 서장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섬뜩한 눈빛에 서장이 움찔할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야, 좆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