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9화 (89/250)

<정말 궁금하네. -(3)>

마담은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움직여 서진의 어깨 너머를 바라봤다.

그곳에 장길주 형사가 있었다.

하지만 장길주 형사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는 검사를 형사가 막기는 어렵다.

게다가 서진과 딱 붙어 있는 상황이다.

윗선에 연락하기도 힘들다.

‘젠장.’

장길주 형사는 이를 부드득 갈며 마담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장길주 형사의 행동에 마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비빌 언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때,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머리 굴리지 마. 네가 지금 해야 할 것은 하나야. 휴대폰 잠금 풀어.”

마담의 시선이 다시 서진에게 옮겨졌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의 눈빛에 마담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악!”

목덜미를 잡으며 휘청거리더니 급기야 바닥에 쓰러졌다.

“사장님!”

초조하게 지켜보던 웨이터들이 달려왔다.

마담의 상태를 확인하며 그녀의 뺨을 다급히 툭툭 친다.

하지만 마담은 눈을 뜨지 않았다.

어떤 미동도 없다.

“119에 연락해! 어서!”

웨이터들의 목소리가 이어지며 살벌했던 공간이 어수선해졌다.

원망스러운 시선이 서진에게 향했다.

“검사면 다야!”

“씨발! 신고할 거야!”

“힘없으면 죄인이지?”

장길주 형사가 서진의 옆에 다급히 서서 빠르게 속삭였다.

“검사님, 오늘은 그만 가시죠. 이런 일 하는 애들이지만 우리가 불리해요. 영장도 없이 들어와서 휴대폰 뺏고 이러면 갑질하는 검사라고 불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그냥 가면 되나요? 그건 안 되죠. 119 오는 거 보고, 어디 이상이 있나 확인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검사님!”

“119 부르세요.”

“이 여자 휴대폰은 왜 계속 들고 있는 거예요!”

“119 부르라고요.”

서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장길주 형사가 계속해서 말렸지만 그 고집을 꺾기는 어려웠다.

“하... 저는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말렸어요.”

장길주 형사가 양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일그러졌던 장길주 형사의 표정이 점차 편안하게 풀어졌다.

그리고 눈동자만 움직여 슬쩍 CCTV를 바라봤다.

CCTV는 모든 상황을 담고 있다.

서진이 룸살롱에 들어오는 것부터 마담이 쓰러지는 것.

마지막으로 장길주 형사가 말리는 장면까지.

장길주 형사가 고개를 숙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죽는 줄 알았네.’

서진이 마담의 휴대폰을 뺏을 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심장이 쫄깃했다.

저 안에 자신의 전화번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났어.’

마담은 쓰러졌고 비밀번호를 풀 상황이 아니다.

오늘이나 내일쯤 인터넷에 CCTV 영상을 올리면 모든 상황이 마무리될 거다.

제목은 ‘룸살롱에서 공짜 술 마시려는 젊은 검사’.

‘좋아.’

국민은 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린 검사의 갑질에 난리가 날 테고 장길주 형사는 팝콘을 뜯을 준비만 하면 된다.

장길주 형사는 처참해질 서진의 표정을 기대하며 구급대원을 기다렸다.

이제 적당히 구급대원을 돕는 척 이 공간을 빠져나가면 모든 게 해피엔딩.

엄영진 형사의 죽음은 영원히 묻히게 될 거다.

‘미안하다. 영진아. 정말 미안하다.’

장길주 형사는 엄영진 형사를 향해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잠시 후.

쾅!

룸살롱의 문이 열리며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들어왔다.

“여기요! 여기!”

웨이터들이 구급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검사와 대화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 달라!

장길주 형사가 구급대원들을 도왔다.

“7분 정도 실신해 있었어요!”

마담이 들것에 실렸다.

그리고 장길주 형사는 구급대원들을 쫓아 나서며 주먹에 힘을 꽉 줬다.

‘됐어.’

그런데, 그때였다.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턴이 Z였네.”

서진의 목소리였다.

구급대원의 뒤를 쫓던 장길주 형사의 걸음이 천천히 멎었다.

그리고 서진을 향해 느릿하게 고개를 트는 순간 ‘지이이잉.’ 휴대폰이 진동했다.

서진이 장길주 형사를 향해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받아요. 전화 왔잖아요?”

“...네?”

“받으라고요.”

서진이 마담의 휴대폰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화면을 본 장길주 형사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섰다.

-짭새.

장길주 형사가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 그러니까... 이게...”

“전화 안 받아요?”

서진의 건조한 목소리에 장길주 형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없다.

“거, 검사님...”

서진이 장길주 형사의 옆을 무심하게 스쳤다.

그리고 들것에 실린 마담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쑈하지 말고 눈 떠. 아니면, 있는 거 없는 거 다 엮어서 구급차 타고 검찰로 갈래?”

마담이 눈을 번쩍 떴다.

***

중앙지검이 소란스러워졌다.

경찰서에 간다고 전했던 서진이 뜬금없이 형사와 룸살롱 마담을 잡아 와서다.

미제와 깡치를 해결한 경력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적응하며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게다가 서진은 아직 경력이 많지 않은 검사.

중앙지검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 앞에서 긴장만 안 해도 대단하다는 말을 들을 텐데, 형사를 잡아 오다니.

“와... 미쳤네. 경찰과의 관계는 생각 안 하는 거지?”

“어, 그냥 직진이야. 검사장님 빽이 좋기는 좋아.”

“야, 검사장님의 조카라고 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내가 강원도에 있는 동기한테 들었는데, 거기서도 빠꾸 없었대. 완전 노빠꾸.”

최희준 검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복도를 걸었다.

‘그러게 조심하라니까!’

최희준 검사는 종로 경찰서 서장에게 경고했다.

서진을 조심하라고.

하지만 서장은 탐정 놀이로 치부하며 서진을 무시했고 그 결과 이런 사달이 났다.

‘미치겠네.’

최희준 검사는 손목을 틀어 시간을 봤다.

그리고 서둘러 취조실로 걸음을 옮겼다.

형사가 어떤 말이 떠들어대는지 확인해야 했다.

지금은 그게 우선이다.

*

“하...”

그 시각 취조실.

장길주 형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서진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혈기 넘치는 애송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검사가 됐다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그런 놈들.

하지만 취조가 이어질수록 장길주 형사는 입이 텁텁해짐을 느꼈다.

집요하게 늘어지는 게 고문이 따로 없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과 강약을 조절하는 페이스는 마치 베테랑 형사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파트너의 죽음과 맞바꾼 인생이다.

장길주 형사도 물러설 수 없었다.

장길주 형사의 목소리가 취조실을 울렸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검사님은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르시겠지만 이 나이쯤 되면 마누라는 여자가 아니라 가족이 돼요.”

“......”

“그리고 제가 돈 벌어오는 ATM인지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죠. 외로웠어요. 그래서 룸살롱에 자주 갔고 마담이 제 연락처를 알고 있죠. 그게 전부에요.”

“......”

“경찰이라는 놈이 룸살롱에 드나든 것, 반성합니다.”

장길주 형사는 모든 것을 부인했다.

“제가 할 말은 이게 전부예요.”

서진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마담을 취조하면 어떤 말을 들을지 궁금해지네요.”

장길주 형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담과 입을 맞춰 놓지 않았고 진술이 어긋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여자가 의리 지키고 그럴 타입은 아니잖아요?”

“...그 여자가 뭐라고 떠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진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장길주 형사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최희준 검사다.

지금쯤 유리 벽 밖에서 이 안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진술을 마담에게 전할 거다.

장길주 형사는 그렇게 믿고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서진이 서류를 툭툭 치며 몸을 일으켰다.

“밥 시켜드릴 테니까 식사나 하고 계세요.”

서진은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복도를 걸어 마담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복도의 끝에서 급하게 걸어오는 최희준 검사가 보였다.

“경찰 취조하고 있다며? 끝났어?”

앞에 선 놈이 빙긋이 웃는 얼굴로 질문을 던져왔다.

실눈 속에 가려진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스며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서진은 느낄 수 있었다.

놈은 지금 조급하다.

“아뇨, 하던 중입니다.”

“그래? 뭐라고 해? 경찰이면 취조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쉽게 입을 열지 않을 텐데, 어때? 내가 좀 도와줄까?”

모르고 보면 정말 친절한 선배다.

그리고 이 가식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검찰 내에서 평판조차 좋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사람에게나 통하는 이야기.

서진은 이미 놈에게 당한 적이 있다.

천연덕스럽게 접근하는 놈의 얼굴을 보면 역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순간 서진은 사이코 메트리에서 경찰 서장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쩌다 이렇게 쫄보가 됐을까? 서준경 쳐낼 때만 해도 안 그랬잖아? 어? 검사장 조카라 무서운 거야?

서진은 그 목소리를 기억하며 최희준 검사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생각해봤다.

-장길주 형사와 서장 그리고 더럽게 얽힌 최희준 검사.

놈이 이곳에 온 이유가 뻔히 보였다.

취조를 듣고 서진의 수사에 똥을 뿌리려는 거다.

서진의 시선이 다시 최희준 검사에게 향했다.

가만히 놔두면 어떤 식으로든 테클을 걸어올 게 분명하다.

놈의 행동에 제약을 걸어둘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역으로 놈의 얼굴에 똥을 던지기로 결정했다.

서진은 휴대폰을 들고 메시지를 보는 척 녹음 어플을 꾹 눌렀다.

그리고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뇨. 도와주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그런데...”

“그런데, 뭐?”

최희준 검사가 눈을 반짝였다.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다.

서진이 눈을 멀뚱멀뚱 뜨며 입을 열었다.

“최희준 검사님이 종로 경찰서 서장과 내통한다고 말하네요.”

동시에 최희준 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보이지 않던 눈동자가 보일 정도다.

그 눈에 분노가 서려 있다.

“...뭐라고?”

“그러니까, 저 형사 뒤에 서장이 있고요. 그 서장하고 최희준 검사님하고 손을 잡았다는 등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미친 새끼가!”

최희준 검사가 서진의 말을 끊으며 취조실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서진이 손을 뻗어 그 행동을 막았다.

그러자 최희준 검사의 살벌한 눈이 서진을 향했다.

“비켜.”

“죄송합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들어가시는 것은 좀...”

“의심하냐?”

“네?”

“의심하냐고! 아니면 비켜!”

서진이 머리를 헝클었다.

그리고 천천히 최희준 검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계속 그러니까 의심이 되잖아요.”

최희준 검사는 그제야 서진을 찬찬히 바라봤다.

멀뚱멀뚱 뜨고 있던 눈동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돌변한 눈빛이 최희준 검사를 노려보고 있다.

최희준 검사의 입술이 비틀렸다.

아무리 검사장의 조카라 해도 까마득한 후배다.

눈도 못 쳐다볼 새끼가 눈빛을 번뜩이며 노려보는 게 가소롭게 느껴졌다.

“이 새끼가...”

“서장하고 내통했습니까?”

“야!”

“했습니까?”

“하... 했으면?”

최희준 검사가 서진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대답해봐. 했으면? 뭐 어쩌라고? 저 짭새나 네 말을 누가 믿을 것 같아? 검사장 조카? 그 타이틀이 오히려 네 발목을 잡을 것은 몰라? 빽 믿고 설치는 놈이 선배를 무시한다는 소문 하나면... 재밌겠네.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할지.”

“......”

“알아들었으면 닥치고 비켜. 취조실 들어가서 저 등신 같은 놈이 뭐라고 하는지 내가 직접...”

최희준 검사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작은 실눈 속에 보이는 눈동자가 급박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최희준 검사가 천천히 시선을 옆으로 틀었다.

“거, 검사장님...”

김영준 검사장이 무서운 눈빛으로 최희준 검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