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8화 (88/250)

<정말 궁금하네. -(2)>

머릿속이 복잡했다.

서준경으로 살며 성폭행으로 몰렸을 때, 최희준 검사가 가장 먼저 배신하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죽음과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 서장?’

갑자기 어떤 접점도 없던 경찰 서장이 튀어나왔다.

‘뭐지?’

서진은 계속해서 서준경으로 살았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김영준 검사장을 비롯해 그 모든 집단을 수사하고 있었다.

여야의 국회의원부터 각 장, 차관 그리고 재계의 인사까지.

그 덕에 조우재 부장검사와 대립했고 중앙지검의 거의 모든 검사가 서준경을 외면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 서장과 관련된 적은 없다.

‘하...’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하나의 시나리오를 써보기로 했다.

‘경찰 서장과 관련된 라인...’

그 위에 서준경의 수사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있다.

서준경의 그림자가 다가올수록 자신의 권력 또는 재력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거다.

‘그놈이 서장과 최희준을 엮었고...’

서진은 미간을 좁혔다.

서장의 뒤에 있을 그놈이 누군지 생각해 봤지만 의심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때였다.

“그럼, 일 보고. 지검에서 봐.”

최희준 검사가 서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소름 끼치는 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서진은 지금 당장이라도 최희준 검사의 목을 꺾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으며 친절한 후배의 미소를 그렸다.

“그럼, 들어가세요.”

그리고 최희준 검사가 멀리 사라졌을 때, 몸을 틀며 형사에게 입을 열었다.

“가시죠.”

엄영진 형사의 죽음으로 시작된 사건이다.

하지만 타고 올라가면 서준경이 사망한 그 배경이 드러날 것처럼 느껴진다.

*

유류품은 엄형진 형사가 입고 있던 옷이 전부였다.

게다가 깨끗하다.

어떤 흔적도 없다.

“저희도 타살을 의심했어요. 아무래도 엄 형이 유흥가를 수사하고 있었고 그쪽 애들이 거칠잖아요. 그런데, 타살이었다면 옷이 이렇게 깨끗하겠어요?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찢어지거나 했을 텐데?”

서진은 형사의 말을 들으며 품에서 부검결과를 꺼내 펼쳤다.

-익수 사고로 일주일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생존 상태에서 손상된 외상은 발견되지 않음.

-플랑크톤이 심장과 간 등에서 검출되었기 때문에 익사로 진단.

-혈액에서 알콜 농도 0.15%가 검출.

서진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알콜 농도, 엄영진 형사는 적어도 한 병 이상의 술을 마신 후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의 흔적은 이게 전부다.

그 흔한 CCTV에서도 엄영진 형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파트너였던 형사분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하... 제정신이 아니에요.”

마누라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게 파트너다.

하루 종일, 화장실 갈 때도 붙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엄영진 형사가 갑자기 죽었다.

그것도 자살.

“자책하고 있어요.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조금만 신경 썼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형사의 말이 이어질 때, 서진이 유류품을 손에 쥐었다.

“거친 놈들 잡겠다고 유흥업소를 살폈는데, 뜬금없이 이탈해서 술을 마시고 투신했다고요?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돼요. 부탁드립니다. 확인하고 싶어요.”

“하... 됐습니다. 가시죠. 가.”

형사가 머리를 박박 긁으며 보관실의 문고리를 잡았다.

***

“미치겠네, 요즘 검사들 한가한가 봐. 탐정 놀이 한다더니 진짜였어.”

서진이 경찰서에 들어왔다는 소식이 서장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서장이 끌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고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하루 평균 38명, 1년에 1만 명 이상이 자살을 선택하지. 엄영진은 그중에 하나였어. 그런데, 왜 귀찮게 하는 거야?”

서장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그 앞에 마주 앉은 형사가 보인다.

형사는 엄영진의 파트너였다.

이름은 장길주.

장길주 형사가 입을 열었다.

“알겠죠. 탐정 놀이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

“걱정 안 해도 되지?”

“증거가 없습니다. 기자들도 관심 없고 요즘은 영진이 집사람도 조용합니다.”

“그 아줌마가?”

엄영진 형사의 아내는 하루가 멀다고 경찰서를 들락거렸다.

하지만 최근 그녀의 모습을 경찰서에서 보기 어렵다.

“먹고 살아야죠.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애가 있거든요. 마트에서 바코드 찍는다고 합니다.”

“하... 불쌍하네. 가끔 얼굴 비추고 용돈도 좀 주고 그래.”

“그러고 있습니다.”

드르륵.

장길주 형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가 손을 뻗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 알았어.”

장길주 형사가 휴대폰을 내려두며 서장을 향했다.

“검사가 저를 찾는 모양입니다. 내려가 보겠습니다.”

“잘해.”

“네.”

장길주 형사가 휴대폰을 품에 넣으며 서장을 향해 고개 숙였다.

그렇게 복도로 나선 장길주 형사가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에 그 얼굴이 비친다.

방금까지 침착했던 그 얼굴이 조금씩 변했고 곧 눈물을 흘린 것처럼 일그러졌다.

‘괜찮네.’

장길주 형사가 힘없이 복도를 걸었다.

*

“제가 영진이의 파트너였습니다.”

복도의 끝에서 만난 장길주 형사의 목소리는 처참했다.

눈동자에는 영혼이 빠져 있었고 손이 가늘게 떨린다.

그런데, 서진은 장길주 형사가 불쌍하고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람...’

사이코 메트리에서 봤던 그 형사다.

그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됐다.

-영진아, 이 불쌍한 새끼야. 우리가 사건화시키지 않으면 묻히는 것 몰랐어? 너 없이 살아갈 새끼부터 생각했어야지. 에휴...

그런데, 그놈이 지금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

잠시 눈을 가늘게 떴던 서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힘드신 것은 알지만, 몇 가지 이해 안 되는 정황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장길주 형사가 수락했다.

판이 깔리자 서진이 곧바로 기록물을 건네며 물었다.

“차량 내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통화 내역이 없었어요.”

“...검사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지만, 대포폰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보원이랑 전화할 때 서로 조심해야 할 순간이 있으니까요.”

“대포폰...”

서진이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대포폰일 가능성은 서진도 예상하고 있었다.

“형사님은 엄영진 형사가 대포폰을 사용한다는 것은 몰랐나요?”

“거기까지는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파트너인데?”

“...그러니까요. 저도 미치겠습니다.”

장길주 형사는 힐끗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했다.

팩트가 섞인 거짓말은 판별할 수 없다.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것은 진실.

-사용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은 거짓.

서진의 질문이 이어졌다.

장길주 형사는 그때마다 준비했던 답을 모두 내뱉었다.

-술이요? 원래 자주 마셨어요.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쥐꼬리만 한 경찰 월급으로 대출 갚기가 어렵다면서요.

-제2금융권까지 손댄 모양이에요.

-그렇게 돈이 힘들었으면 나한테 얘기라도 하지...

마지막 말을 내뱉은 후 장길주 형사가 다시 서진을 향했다.

서진은 팔짱을 낀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장길주 형사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들을 거 다 들었으면 탐정 놀이 그만하고 집에나 가라.’

대부분의 수사는 경찰의 손끝에서 이뤄진다.

검찰이 하는 일은 그 수사를 토대로 ‘기소’와 ‘불기소’를 결정하는 게 전부다.

범인을 잡아 취조할 때도 마찬가지, 경찰의 수사를 베이스로 깔고 있다.

장길주 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어.’

하지만 상대는 서진이었다.

“가볼 수 있을까요?”

“네? 어디요?”

“잠복근무했다던 그 룸살롱이요.”

장길주 형사가 눈을 깜빡였다.

경찰서에서 적당히 이야기하고 보내려 했는데 뜬금없이 현장을 가자니.

세상에 이런 미친 검사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검사님, 거기 간다고 해서 더 나올게...”

“부탁드립니다.”

서진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

“씨발! 나도 슬프다고!”

장길주 형사는 차에 오르며 욕을 내뱉었다.

“그 월급으로 어떻게 살아!”

장길주 형사는 유흥주점에서 뒷돈을 받았고 매춘과 마약이 오가는 것을 눈감아 줬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아끼는 엄영진이 그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막았어야 했는데...”

장길주 형사는 과거를 기억하며 눈을 콱 감았다.

머릿속에 엄영진의 목소리가 스치고 있었다.

-룸살롱에서 마약이 거래되고 있대. 2차가서 주사 꽂고 광란의 밤을 보내나 봐. 그리고 우리 윗선도 엮여 있는 것 같아. 형, 우리 이거 하자!

장길주 형사는 당연히 말렸다.

-윗선? 위험해! 아니, 괜한 짓이야. 알잖아? 위에서 덮으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위에서 사건화하지 않으면 범죄는 범죄가 아니야! 그러다 모가지 날아가면? 애를 생각해!

하지만 엄영진 형사는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거야. 준규가 내년에 초등학교를 들어가. 아빠가 근무하는 경찰이 좆같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장길주 형사의 입에서 ‘끄음’ 신음이 흐를 때, 조수석의 문이 벌컥 열렸다.

서진이 들어오며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내밀고 있었다.

“가시죠.”

“아, 네.”

장길주 형사는 숨을 내뱉으며 시동을 걸었고 핸들을 틀었다.

그렇게 차량은 룸살롱 밀집 지역을 향해 출발했다.

차가 신호에 걸렸을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사건 관련해서 연락을 드려도 될까요?”

“네, 뭐.”

“그럼, 제 휴대폰으로 전화 좀 걸게요.”

서진이 장길주 형사의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진동이 왔고 발신 번호에 장길주 형사의 전화번호가 찍혔다.

장길주 형사가 서진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을 텐데요.”

“그건 가봐야 아는 거죠.”

서진은 창밖으로 시선을 틀었다.

*

“저깁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한 룸살롱이었다.

장길주 형사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계속 말했다.

“깡패 새끼 하나가 저기에 자주 간다고 해서... 어? 어디 가세요?”

서진은 이미 차에서 내렸다.

장길주 형사가 말릴 틈도 없이 룸살롱을 향해 가는 중이다.

“검사님!”

장길주 형사는 눈을 찌푸렸다.

“저런 미친 새끼!”

장길주 형사는 휴대폰을 재빨리 손에 들고 메시지를 두들겼다.

-검사가 그쪽으로 간다. 메시지 확인하고 지워.

*

“오빠, 혼자 왔어? 아니네, 둘이야?”

마담이 서진을 반겼다.

그녀는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화이트 블라우스를 입은 채 카운터에 팔을 기대고 서 있었다.

서진은 마담의 말을 뒤로하며 룸살롱을 살폈다.

길게 뻗은 복도에 다닥다닥 방이 붙어 있고 천장에 달린 붉은색 네온이 야하게 느껴진다.

“더 올 사람 없으면 들어가서 아가씨들 소개부터 받을까? 우리 애들 화끈해.”

서진의 눈동자가 마담을 향해 틀어졌다.

그리고 뚜벅, 뚜벅 마담의 앞으로 걸어갔다.

짙은 향수 냄새와 담배 냄새가 역겹게 여겨졌다.

“왜...요?”

마담은 장길주 형사를 통해 검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얼굴이 앳돼서 조금 놀랐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서진의 눈이다.

서진은 마담을 벌레처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악!”

서진이 마담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었다.

“전화 한 통만 하자.”

“뭐 하는 짓이야! 안 내놔!”

마담이 앙칼지게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서진의 눈은 무심하다.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툭 카운터로 던졌다.

“검사야.”

하지만 마담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소리를 더 크게 높였다.

“검사면 다야! 영장 있어? 어!”

“전화 한 통 하는 데 영장까지 필요해? 원하면 영장 들고 와서 전부 쓸어줄까?”

“야!”

마담의 목소리에 서진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가 서늘했다.

그리고 서진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마담을 바라봤다.

“살다, 살다 술집에서 ‘야’라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보네.”

마담이 움찔했다.

서진의 눈빛은 산전수전 다 겪은 마담도 두려울 정도였다.

순간 서진이 주먹을 쥐고 카운터를 쾅! 찍었다.

그리고 마담을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이며 무서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문 닫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비밀번호나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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