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궁금하네. -(1)>
“네, 할 수 있습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당당했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당돌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의 검사들은 다르다.
그들이 서진에게 기대하는 것은 미제를 해결하는 괴물이다.
그 관심이 모이고 있다.
어떻게 해결할지 눈을 빛낸다.
그리고 유민태 부장검사가 손에 든 볼펜을 빙그르 돌리며 입을 열었다.
“타살로 의심하는 거야? 이유는?”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가족의 주장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뿐이야? 밖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서는 티를 내지 않고 억지로 웃는 가장들이 많아.”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티를 낸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알아챈 가족들이 힘들어하고요. 그리고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경찰의 주장이 의심스럽습니다.”
서진과 유민태 부장검사의 말을 듣던 검사들이 웃었다.
“와, 오늘 온 막내가 부장검사님과 입씨름하는 용기!”
“부장검사님, 저희도 깡치가 해결되는 신화를 보고 싶어요!”
농담처럼 던지지만 이죽거리는 게 아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이 사건의 끝을 궁금해하고 있다.
그것은 유민태 부장검사도 마찬가지였다.
들고 있던 기록물을 서진에게 툭 던지며 입을 열었다.
“해봐.”
허락이 떨어졌다.
서진이 고개를 숙였고 유민태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조심해. 경찰 분위기도 생각해야 하니까.”
경찰은 자기 식구를 잃었다.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자살을 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타살이라 주장하는 검사가 나타나면...
“관계 어그러지면 서로 피곤해.”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타살이라 주장했다가 자살이라고 판결되면 경찰은 공개적으로 검찰을 비난할 거다.
“조심스럽게 접근하겠습니다.”
서진이 대답하자 유민태 부장검사가 다른 검사들을 보며 핀잔했다.
“야, 너희도 좀 배워라. 의심 가는 게 있으면 끝까지 파고들어야지. 이놈들이 게을러 빠졌어.”
“네, 게을러서 어제도 퇴근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회의부터 하시죠.”
“미안. 회의하자...”
다시 회의가 이어졌다.
서진은 검사들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강원 지검에서도 정말 좋은 팀에 있었는데 이곳 역시 마음에 든다.
딱 한 명, 최희준 검사를 제외하고.
저놈은 서진이 서준경이었을 때 제일 먼저 배신하고 가장 심하게 비난했었다.
그 목소리가 지금도 서진의 귓가를 스친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서준경 검사는 원래 여자를 밝혔어요!
-술을 마실 때면 자기 실무관 가슴이 크다면서 반드시 모텔로 끌고 간다고 말했었어요.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음담패설을 하는데...
그때, 최희준 검사가 서진과 눈을 마주쳤다.
서진이 눈을 마주치며 싱긋 미소 지었다.
‘넌 갈아 마셔 준다.’
*
회의가 끝났다.
복도를 나서 사무실로 향하려 하는데 갈아 마시기로 다짐한 최희준 검사가 옆에 붙었다.
“최희준이야.”
눈이 작아 별명이 ‘실눈’.
둥글게 휘어진 것이 정말 착하게 생겼다.
시장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를 만나면 모두 사줄 것 같은 이미지.
게다가 키도 크고 훤칠하다.
검사 생활 적당히 하다가 정계로 진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런데 놈이 서진의 옆에 바짝 붙는다.
김영준 검사장의 친척이니 나름 친하게 지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사건은 왜 맡으려는 거야? 정말 타살이라고 생각해?”
당황스럽게도 사건을 질문했다.
“네?”
“자기 식구 죽었는데 경찰이 대충 수사했겠어? 이 악물고 뒤졌겠지. 그런데, 아무것도 안 나왔잖아?”
놈이 실눈을 휘며 웃었다.
겉모습만 보면 후배를 가르쳐 주는 친절한 선배로 보인다.
하지만 상대는 뱃속이 가식으로 가득 찬 최희준 검사다.
서진이 물끄러미 최희준 검사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안 나와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이런 사건을 많이 봐서요.”
“강원도하고 서울은 달라. 거리마다, 매장마다 CCTV가 있고 차량마다 블랙박스가 있어. 여기서 없으면 없는 거야. 그러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최희준 검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뭔가를 느꼈다.
‘이놈 뭔가 있어.’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더러운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입을 열 성격이 아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서진은 놈의 비리를 손에 쥐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때가 되면 놈의 얼굴이 쩍 갈라질 거다.
착한 척 웃고 있던 실눈이 어떻게 될지 기대된다.
서진은 슬쩍 웃으며 최희준 검사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놈들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마약보다 더한 중독이다.
*
잠시 후, 서진은 양손 가득 커피와 간식을 들고 복도를 걸었다.
이곳에서 함께 지낼 수사관과 실무관에게 건넬 간식.
첫인사에 이만큼 좋은 것도 없다.
“안녕하세요?”
서진은 반갑게 인사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기다리던 수사관과 실무관은 간식을 보고 환호했다.
만약 이 모습을 강원지검의 실무관이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먹지 마! 독약이야!
***
그날 오후.
서진은 김포대교에 와 있었다.
경찰의 시신이 발견된 곳,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이 보인다.
자살한 경찰의 이름은 엄영진, 계급은 경장으로 종로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으며 강력반 소속이다.
실종된 지 일주일 만에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엄영진 형사는 유흥주점과 경찰의 유착관계를 수사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실종되던 그 날, 어느 룸살롱의 앞에 차를 대고 잠복근무를 하고 있었다.
‘유일한 흔적은 하나.’
잠복근무하던 차량의 블랙박스다.
그곳에 엄영진 형사의 마지막 음성이 녹음되었다.
-여보세요? 네? 어디? 네, 지금 갈게요.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은데요. 네.
엄영진 형사가 통화를 종료하며 파트너를 향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야, 어디 가는데!
-금방이요. 금방!
엄영진 형사는 급하게 차량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게 끝.
그는 일주일 뒤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곧장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고 엄영진 형사의 통화 기록을 살폈어.’
문제는 그 시각 통화한 내역이 없었다.
분명 누군가와 통화를 했는데 그 사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다.
그리고 함께했던 파트너의 증언에 따르면 엄영진 수사관은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 한다.
경찰은 그 증언을 토대로 자살이라는 결론을 성급히 내렸다.
서진은 강줄기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한강의 하류는 쓸쓸하다.
게다가 아직은 2월, 강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서진은 허리를 굽혀 강물에 손을 대봤다.
저릿할 정도로 차갑다.
2월의 강도 이렇게 차가운데, 1월이었다면 그 추위는 상상하기 어렵다.
물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을 때 사람의 생존 시간은 15분 미만.
엄영진 형사는 차가운 물 속에서 바동대다 그 생명을 마쳤을 거다.
간절히 가족을 생각하며...
서진은 눈을 감았다.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본 형사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영진아, 이 불쌍한 새끼야. 우리가 사건화시키지 않으면 묻히는 것 몰랐어? 너 없이 살아갈 새끼부터 생각했어야지. 에휴...
서진이 강물에서 손을 빼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형사가 했던 말을 중얼거렸다.
“묻히는 것 몰랐어? 몰랐어? 묻힌다...”
몇 가지 생각이 정리되었다.
-엄영진 형사는 유흥주점과 경찰의 유착관계를 조사하고 있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묻으려 한다.
분명 뭔가 있다.
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면 끔찍한 탐욕을 마주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이 사건이 해결되면...’
대한민국은 또 한 번 난리가 날 거다.
서진이 손을 툭툭 털며 차량을 향해 걸었다.
*
“영진이요? 좋은 녀석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왜?”
서진은 종로 경찰서의 야외 흡연장에 서 있었다.
마주한 형사는 엄영진 형사의 동료.
의심스러운 눈빛에 서진이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제가 엄영진 형사님하고 아는 사이였거든요. 이번에 발령받아서 인사나 드리려고 했는데, 비보를 듣게 돼서요.”
물론 거짓말, 일부러 이렇게 말한 거다.
다짜고짜 타살로 생각된다고 말하면 경찰과 알력 싸움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형사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찝찝한 시선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영진이가 검사를 알고 있었다고요?”
“말씀 안 했나 보죠?”
“네, 뭐. 아는 사이라 치고요. 갑자기 왜요? 영진이 어떤 놈이었는지 물어보러 오신 것은 아닐 테고.”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뭘?”
“정말 자살인지요.”
형사의 눈빛이 일그러졌고 곧 붉게 충혈됐다.
주먹을 떨며 입을 연다.
“...검사님, 우리라고 안 알아봤겠습니까? 우리라고 안 슬펐겠어요? 그런데요. 자살 맞습니다. 맞더라고요! 형수님도 매일 와서 재수사를 요청하는데요! 하면 뭐해요? 아무것도 없는데.”
형사는 흥분했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증거부터 보고 싶은데요. 유류품 보관했죠?”
형사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래서, 재수사하겠다고요? 그래, 하면요? 그래서 자살이 아니면요! 죽은 사람이 깨어납니까!”
“다 부숴버릴 겁니다.”
“네?”
“만약,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면 관련된 모든 것을 부숴버릴 거예요. 그러니까, 가죠.”
서진이 형사의 옆을 스쳤다.
그리고 곧장 건물로 향했다.
형사가 서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술을 꽉 씹었다.
“알았어요! 가요! 가!”
서진이 뒤에 따라오는 형사를 슬쩍 바라봤다.
‘씨발, 씨발’ 거리며 성큼성큼 따라오고 있다.
슬쩍 웃으며 다시 앞을 보는데.
퍽!
건물에서 서둘러 나오던 누군가와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
사과를 하며 앞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
최희준 검사였다.
그가 어색하게 웃는다.
“어? 김서진 검사? 사건 맡겠다더니 경찰서부터 온 거야? 역시 대단해.”
그 순간 세상이 흑백으로 물들었다.
*
“검사? 검사가 뭘 알아? 책상에만 붙어 있는 놈들이 현장을 알아?”
머리가 희끗한 남자, 종로경찰서 서장이었다.
그가 블라인드를 내리며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최희준 검사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서장이 최희준 검사를 향해 다가서며 히죽 웃었다.
“아, 오해하지 마. 검사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야. 서로 전문 영역이 다르잖아.”
최희준 검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서장님, 그런데, 김서진이라는 놈은 탐정 놀이 하는 애예요. 말도 안 되는 미제를 해결한 게...”
서장이 손을 저었다.
“강원도에서나 통했지. 여기 서울이야. 그리고 김서진 작은아버지가 김영준 검사장이라며? 그 미제라는 걸 정말 혼자 해냈을 것 같아?”
“......!”
“김윤환 그놈 병신 짓 한 것을 생각해봐. 그거 다 이력 쌓게 하려고 무리하다 그렇게 된 거야. 김서진이란 놈도 다를 것 없어. 빽 믿고 설치는 애송이야.”
서장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그리고 최희준 검사의 옆에 서서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최희준 검사야, 어쩌다 이렇게 쫄보가 됐을까? 서준경 쳐낼 때만 해도 안 그랬잖아? 어? 검사장 조카라 무서운 거야?”
*
서진의 눈에 다시 어색하게 웃는 최희준 검사가 보였다.
최희준 검사가 실눈으로 웃으며 묻지도 않은 말을 떠든다.
“난 지난 사건 때 고생한 경찰분이 계셔서 밥 좀 사려고 왔어.”
서진은 멍하니 있었다.
아직도 사이코 메트리에서 봤던 서장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아서다.
-어쩌다 이렇게 쫄보가 됐을까? 서준경 쳐낼 때만 해도 안 그랬잖아? 어? 검사장 조카라 무서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