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6화 (86/250)

<입성. -(2)>

***

중앙지검, 김영준 검사장의 사무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시선을 들었다.

그 앞에 서진이 보였다.

“처음부터 서울로 왔으면 번거롭지 않았을 텐데.”

서울에 올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데 번번이 거절했고 이제야 오게 됐다.

이유야 당연히 김윤환과 김영준 검사장이었지만 진실을 입에 담기는 어렵다.

“죄송합니다.”

“됐어. 앞으로 잘하면 됐지.”

김영준 검사장이 담뱃재를 툭툭 털며 말을 이었다.

“그래, 인사는 잘하고 왔어? 사람이 마무리가 중요한 거야.”

“잘했습니다.”

어제는 대낮부터 이소희랑 술판을 벌였고 그 전날은 형사 2부 사람들, 그리고 그 전날은 이명수 부장검사 또...

지난 일주일은 물 대신 술을 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사는 지나칠 만큼 했고 지금도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다.

-갈 줄은 알았지만 진짜 가는 거야?

-미제 해결해주던 놈이 사라지면 우리 어떻게 하지?

-야, 서진아 약속 하나 하자. 다음 공판에 거물 변호사 오면 대타 좀 뛰어줘. 어때?

-꼭 와. 안 그러면 진짜 무당 불러서 굿할지도 몰라.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슬쩍 웃을 때, 김영준 검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가고 싶은 부서는 있나?”

“조우재 부장검사...”

“조우재는 빼고.”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확실히 눈 밖에 난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담배를 짓이기며 말을 이었다.

“3차장검사 아래로 들어가는 게 어때?”

3차장검사의 아래에는 조우재 부장검사도 있다.

그리고 김윤환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반부패수사부, 앞으로 검사 인생에 좋은 이력이 될 거야.”

권유하는 말이지만 그 속은 아니다.

지시를 내리고 있다.

서진은 반론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서에 상관없이 네 롤은 프리가 될 거야.”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 말이다.

이건 예상 밖이었다.

“...프리요?”

김영준 검사장이 몸을 일으켜 창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뒷짐을 쥔 채 세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녀석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면 되나?”

분명 반가운 소리다.

하지만 서진의 입은 바짝 말라갔다.

‘이거...’

검찰은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이다.

그런데, 프리라니.

자유로운 영혼도 아니고, 욕을 처먹을 게 분명했다.

-검사장 조카라 이거지?

-이거 아들보다 더 하네?

-부서 상관없이 멋대로 수사하겠다는 거잖아?

-말이 돼?

-씨발, 빽 좋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의 난처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창틀에 몸을 기댄 채 기분 좋게 웃고 있다.

‘젠장.’

작은아버지가 검사장이라는 것은 인생의 장애물이다.

*

서진은 검사장실을 나서며 인상을 찌푸렸다.

검사장 조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미제를 해결한 경력이 있으니 질투의 시선이 누그러질 줄 알았는데.

‘이건 대놓고 편애잖아?’

욕을 안 먹는 게 이상하다.

치사한 텃세를 경험할 수도 있다.

‘아이고...’

서진은 깜깜한 앞날을 예상하며 3차장검사실로 향했다.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문고리를 돌렸는데, 분위기가 예상과 달랐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와!’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김서진이라고? 네가 윤민우 잡은 애 맞지?”

“윤민우만 잡은 게 아니야. 깡치 전문이야.”

안에는 3차장 검사 외에 7명의 부장검사와 8명의 부부장검사가 있었다.

서진이 인사를 하기도 전에 그들은 환호했다.

딱 한 명, 조우재 부장검사만 빼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억지로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씹었다.

서진이 다른 사람의 밑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최근 조우재 부장검사는 하늘을 붕붕 떠다니고 있다.

이 악물고 투자한 땅값이 쭉쭉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른 부장검사들은 서진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난 공판에서 김종재 변호사 밟았지? 기분 어땠어? 공판으로 올래? 제대로 판 깔아 줄게.”

“굵직한 것은 방위 산업이죠. 공판은 이력서에 쓸 게 있나요?”

“뭐? 다시 말해봐.”

서진은 눈을 깜빡였다.

유치한 텃세를 부릴 줄 알았는데, 대환영을 받다니.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급하게 허리를 굽혔다.

“김서진입니다.”

인사만 한 게 전부인데 박수까지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시선을 돌려 3차장검사를 향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다.

-김서진을 저에게 주세요.

3차장검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어제 김영준 검사장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서진의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빛내다니.

‘하...’

이들은 서진을 잡으면 제 2의 조우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에, 서진이 기적 같은 운을 발휘해 깡치나 미제를 해결하면 이들의 이름도 덩달아 뛴다.

말 그대로 복덩어리.

모두 침만 꼴딱거리고 있을 때, 3차장검사가 입술을 움직였다.

“반부패수사 제1부.”

동시에 부장검사 유민태가 서진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렇지. 올 줄 알았지. 우리가 메인이거든. 푸핫핫핫!”

유민태 부장검사는 로또를 잡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때, 3차장검사의 말이 이어졌다.

“김서진 검사의 롤은 프리. 주어진 업무 외에 하고 싶은 수사가 있으면 마음껏 해봐. 이건 검사장님 지시야.”

순간 적막해졌다.

모두 입을 다물고 서진과 3차장검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서진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시작됐다.

서열과 원리 원칙에 민감한 검사들은 지금의 지시를 부당하다 여길 거다.

편애라 생각하며 반발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유민태 부장검사가 서진의 목에 두른 팔을 풀며 입을 열었다.

“주어진 업무 외에 또 다른 일을 시킨다고요?”

“그래.”

3차장검사의 대답은 묵직했다.

하지만 유민태 부장검사는 숙이지 않았다.

한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애를 혹사하자는 겁니까?”

서진이 눈을 깜빡였다.

이거 또 분위기가 다르게 흘러간다.

“어린 검사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연애도 못 하고 늙어 죽는다고 말해요! 퇴근하면 새벽이라 차라리 자고 가겠대요! 그런데, 또 다른 일을 시킨다고요?”

다른 부장검사와 부부장검사들이 서진을 안쓰럽게 보고 있다.

편애가 아니라 혹사라고 생각하는 거다.

“검사장님 지시라고!”

3차장검사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유민태 부장검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못 하겠다고 말씀드려.”

“...할 수 있습니다.”

“야, 네 몸은 네가 챙겨야지! 골골대면 누가 책임져 준다고!”

*

잠시 후, 서진은 유민태 부장검사와 복도를 걸었다.

유민태 부장검사가 휴대폰을 귀에 댄다.

“다들 내 방으로 모이라고 해. 회의도 할 겸 막내도 소개해야 하니까. 그래, 지금.”

서진은 힐끗 유민태 부장검사를 바라봤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동부에 있었는데...’

강원지검의 이명수, 지세헌 부장검사처럼 성공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마음에 안 들면 상대가 누구든 이빨을 드러내고 덤벼든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의아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김영준 검사장의 스타일이다.

으르렁대는 사람도 있어야 권력자가 검찰, 나아가 김영준 검사장 본인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한다.

서진이 서준경 검사였을 때, 이곳에 있을 수 있던 이유였다.

“야, 김서진.”

부장검사실 앞에 도착했을 때다.

유민태 부장검사가 무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마음대로 프리 롤 하는 것은 뭐라고 안 하겠는데, 아프다고 갤갤대면서 링거 꽂고 있으면 죽인다.”

아프면 진짜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다.

‘네.’하고 대답하자 유민태 부장검사는 혀까지 끌끌 차며 문을 열었다.

“막내 왔다!”

반부패수사 제1부는 유민태 부장검사와 2명의 부부장검사 그리고 6명의 검사로 이뤄져 있다.

이들 역시 서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뉴스에서 본 것보다 잘 생겼네.”

“옷 벗을 각오, 그거 나도 잘 읽었어. 조금 간지럽기는 하더라. 하하하.”

“이번에도 미제 가나?”

모든 검사들의 눈에 기대가 가득했다.

김윤환이 있던 곳이 3차장 검사 아래다.

놈이 뻘짓을 하며 모두가 눈칫밥을 먹고 있다.

물론 김윤환은 이 팀이 아니라 조우재 부장검사의 아래였다.

그 사고 역시 동남지청에서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김영준 검사장은 연대 책임을 참 좋아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안 좋은 소문도 들려오고 있었다.

권력과 연계된 비리를 이들이 감춰 준다는 그런 소문.

그래서 이들은 고개 숙인 검사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진이 왔다.

새로운 인물은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다.

그리고 서진은 그 자격도 갖추고 있다.

기대하는 게 당연했다.

서진은 검사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익히 아는 얼굴들.

예전에는 후배였는데 이제는 선배로 대해야 한다는 게 참...

그런데, 서진의 시선이 단 한 곳에서 멎었다.

-최희준 검사.

서준경보다 두 기수 아래.

정말 친하게 지냈었는데 가장 먼저 배신했던 놈.

지금도 놈은 서진을 보며 친근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새끼...’

서진이 허리를 굽혔다.

모두를 향해,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희준 검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는 그렇게 끝났고 곧바로 회의가 시작됐다.

유민태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김서진 검사는 며칠 동안 분위기나 익혀. 그리고...”

유민태 부장검사가 테이블에 널브러진 기록물 하나를 손에 들며 말을 이었다.

“뭐야? 신 의원 보좌관이 참고인 조사를 거부한다고?”

“네, 바쁘다는 이유로...”

서진은 회의 내용을 귀로 들으며 테이블에 가득한 기록물을 툭툭 훑어봤다.

분위기를 익히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고 지금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기록물 하나를 손에 들었다.

어느 경찰의 죽음.

실종된 지 일주일 만에 한강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원한에 의한 타살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결국 자살로 마무리되는 중이다.

그런데, 그 순간.

서진의 시야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

“병신 새끼, 안 될 거 알면서 왜 덤벼든 거야?”

프린터에서 종이가 인쇄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 앞에 선 형사가 인쇄된 종이를 뽑듯이 손에 쥐었다.

인쇄물은 서진이 보고 있던 기록물과 같다.

형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영진아, 이 불쌍한 새끼야. 우리가 사건화시키지 않으면 묻히는 것 몰랐어? 너 없이 살아갈 새끼부터 생각했어야지. 에휴...”

*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았고 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단편적인 영상이다.

그런데, 상당히 찜찜하다.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동시에 사이코 메트리에서 본 형사의 중얼거림이 스쳤다.

-우리가 사건화시키지 않으면 묻히는 것 몰랐어?

‘묻힌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찰의 죽음과 비리가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이대로 두면 자살로 끝날 사건.

하지만 해결하면?

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을 마주친 유민태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왜? 궁금한 거 있어?”

“이거 제가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뭐? 어떤 거.”

유민태 부장검사가 기록물을 건네받았다.

피식 웃는다.

“자살? 왜? 뭔가 느껴져?”

다른 검사들이 뭔가 하고 힐끗힐끗 기록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마디씩 한다.

“이거 막내가 만지면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 되는 거 아니에요?”

“한번 시켜보세요. 혹시 알아요? 강원도에서처럼 딱! 미제를 해결할지?”

유민태 부장검사가 서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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