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5화 (85/250)

<입성. -(1)>

“네. 13만 원이요. 사건 맡으면서 부동산 전문가를 알게 됐는데요. 지금 메시지 받았는데, 20만 원이 아니라 30만 원은 갈 거라고 하는데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픽 웃었다.

13만 원으로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팠는데 30만 원까지 갈 수 있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또 전문가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20 초반까지는 가겠지. 그런데, 30은 안 가. 거기까지는 힘들어. 왜 그러냐 하면...”

한참을 듣던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 말이 틀린 적이 거의 없어요. 투기꾼이 냄새 맡고 움직이면 그 이상도 갈 수 있대요.”

“서진아, 나도 틀린 적 없어.”

조우재 부장검사가 자신 있게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

“칼질은 이미 했고. 그럼, 돌려치고 막차 태워 시집보내려 하는 거네. 새끼, 손 씻는다고 하더니 부동산으로 이직했냐?”

경기도 안산.

도광현은 친구와 함께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친구는 떴다방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기획 부동산에 정통했다.

“됐고. 칼질? 돌려쳐? 시집은 무슨 소리야? 알기 쉽게 말해봐.”

“금융사기 치던 놈이 그래프나 확인할 것이지 흙장난은 왜 하고 있어?”

도광현이 손을 저었다.

어서 본론이나 말하라는 제스쳐에 친구가 낄낄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칼질이 뭐냐 하면...”

부동산 은어다.

칼질은 대규모의 토지를 구매 후 나눠 파는 것.

돌려친다는 것은 투기꾼들끼리 매물을 사고팔며 가격을 뻥튀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끼리 짜고 쳐서 가격을 올렸지만 일반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국가가 보증한 토지 대장이 가격이 상승을 증명해 준다고 믿어서다.

“이해됐지?”

“야, 그런데, 가격 안 올렸어. 올릴 수 있는데도 내려 파는 중이야.”

“진짜? 가격을 내린다고?”

도광현이 고개를 흔들자 친구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소주를 쭉 마신 후 조용히 묻는다.

“설계자가 누구야?”

“그건 말 못 하고.”

이쪽 업계에도 룰이 있다.

입을 다물면 더 묻지 말아야 한다.

친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가격을 내리는 이유? 그래, 설명해 줄게. 완전히 죽일 생각인 거야.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주식이랑 똑같이 심리 싸움이야. 주가가 쭉쭉 떨어져. 그럼, 어떻게 돼?”

겁을 먹고 패닉 상태에 들어간다.

“그런데, 반등하네? 조금 있으니까 전고점까지 뚫었네? 그때, 개미들의 행동은?”

그 끝에 한강이 있는지도 모른 채 인생 한방이라는 생각으로 영혼까지 끌어당긴다.

친구가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으며 계속 말했다.

“그럼, 다시 가격을 쭉쭉 올린 후에 시집보내면 끝.”

시집이란 단어는 마지막에 호구 잡아서 다 팔고 손 턴다는 뜻이다.

호구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한강에 빠져 허우적댈 거다.

친구가 술잔을 들며 싱긋 웃었다.

“오케이? 이해했어?”

“아, 땡큐.”

“그런데, 호구가 누구야? 지독하게 걸린 것 같은데. 그건 말해줄 수 있지?”

“안 돼.”

도광현이 고개를 저었다.

타깃으로 잡은 호구가 다름 아닌 중앙지검 부장검사.

괜히 입을 열었다가 긁어 부스럼이 생길 수도 있다.

“술이나 먹자.”

도광현이 잔을 내밀었다.

친구가 잔을 부딪치며 묻는다.

“그럼, 이거 하나만 말해봐. 호구가 전문직이지? 야, 이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잖아?”

“어, 전문직이야.”

친구가 낄낄낄 웃었다.

학력이 높고 똑똑할수록 사기에 걸리기 쉽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사기는 병신들이나 당하는 거야. 난 절대 안 걸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정보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은 투기가 아니라 투자를 한다고 생각한다.

“털어먹기 쉽겠네.”

친구가 부러운 눈으로 도광현을 바라봤다.

***

평당 10만 원대에 거래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입술을 씹었다.

개발이 들어가면 공시지가를 베이스로 보상금이 정해진다.

그런데 시세가 떨어지면...

‘젠장.’

조우재 부장검사가 가진 땅은 약 6만 5천 평.

평균 11만 원에 매입했고 지금껏 쏟은 돈이 약 70억.

그중 은행 빚만 30억에 가깝다.

-사장님? 9만 원에 판다는 사람이 나왔는데요. 어떻게... 관심 있으신가요?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또 떨어졌다.

그것도 9만 원.

이제는 완벽히 손해다.

‘장기간으로 생각하면 오를 게 분명해.’

하지만 최근 개미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개발이 된다는 정보를 확신하고 있어도 떨어지는 땅값을 보면 불안했고 초조했다.

“생각 좀 해볼게요.”

조우재 부장검사는 통화를 종료했다.

공격적인 투자를 잠시 멈추고 지켜볼 때라고 생각한 거다.

‘하...’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이럴 때는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업자와 연락하던 휴대폰이 아니라 전혀 다른 기종.

조우재 부장검사가 휴대폰을 슥슥 넘기며 전화번호를 찾았다.

이름은 강두진 변호사.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어린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빠!

오빠라는 소리에 조우재 부장검사가 히죽 웃었다.

오빠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단어다.

“학교 몇 시에 끝나?”

*

잠시 후, 조우재 부장검사는 올림픽대로를 타고 강동구로 향하고 있었다.

-늦어요?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일이 바쁘네.”

-밥은?

“이제 먹어야지.”

-먹고 해요.

“알았어. 바쁘니까 끊어. 전화할게.”

-여보, 오늘도 늦...

아내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핸들을 틀었다.

아파트 정문이 보인다.

월세로 얻어 둔 강동구의 한 아파트.

차량을 주차하고 16층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탁한 공기가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그렇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곧 시원한 공기가 들어올 때, 삑삑삑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한참 어린 여자애가 들어왔다.

얼굴이 앳된 대학생.

그녀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폭 안기며 간지러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보고 싶었어요.”

대학생이 살랑거렸다.

아내와 달리 향긋한 냄새가 났고 여린 피부는 부드럽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조용히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씻을까?”

휴대폰이 또 진동했다.

아내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휴대폰의 전원을 종료하며 여대생과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

*

시간이 흘렀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예상대로 땅값은 반등했다.

다시 15만 원.

그런데, 조우재 부장검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9만 원에 사지 못한 게 배가 아파서다.

-15만 원에 임야 2천 평, 나왔어요. 사실 겁니까?

업자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9만 원이었던 땅을 15만 원에 산다는 게 어쩐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17만 원을 찍었다.

이어서 18만 원.

조우재 부장검사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값이 올랐으면 좋아해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리고 서진이 했던 말이 귀를 스쳤다.

-20만 원이 아니라 30만 원은 갈 거라고 하는데요?

-이 사람 말이 틀린 적이 거의 없어요.

-투기꾼이 냄새 맡고 움직이면 그 이상도 갈 수 있대요.

***

“20만 2천 원에 거래해. 천원 단위로 올리다가 21만 원 넘어가면 23으로 찍어.”

도광현은 수십 개의 명의를 들고 자기 혼자 샀다가 팔았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도광현의 널뛰기에 조우재 부장검사만 걸려든 게 아니다.

전국 투기꾼도 다 몰렸나 보다.

평소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한 쓸모없던 땅인데 거래량이 폭등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명의 돌리지 말고 무조건 조우재한테만 팔아.”

-그런데, 받을까요?

“23 넘어가면 눈이 뒤집힐 거야.”

이제 조우재 부장검사를 짓밟을 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럼, 계속 고생하고.”

도광현과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휴대폰이 부르르 떨었다.

발신 번호가 조우재 부장검사다.

서진이 정말 반가운 목소리로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부장검사님.”

-너, 부동산 투자 전문가 알고 있다고 했지?

전화를 받자마자 땅 이야기다.

도박판에 앉은 노름꾼의 벌건 눈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팔아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땅 있잖아?

“아, 맞다. 감사해요.”

서진이 뜬금없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뜨뜻미지근해진다.

-...감사? 뭐가?

“그 땅이요. 평당 9만 원할 때 3천 평 샀거든요. 며칠 전에 팔았는데...”

-팔았어? 왜?

“아버지한테 혼났어요.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배가 아플 거다.

자신이 놓친 9만 원이 서진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서진의 이득이 자신의 손해처럼 여겨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이었다.

-그 전문가라는 사람한테 그 땅 목표치... 아니다. 내가 직접 전화할 수 있을까?

“직접요?”

-그래, 부탁 좀 하자.

“010...”

서진은 도광현의 연락처를 말하며 노트북으로 메신저에 접속했다.

그리고 도광현에게 지금의 상황을 전했다.

-조우재가 전화할 거야.

조우재 부장검사는 이미 추가 매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려 하는 이유는 하나, 피드백을 듣고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다.

모든 호구의 똑같은 패턴이다.

서진은 계속해서 메시지를 적었다.

-이렇게 말해. ‘아, 이런 것 알려주면 안 되는데...’

조우재 부장검사가 도광현의 연락처를 알고 있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대포폰, 이번 사건이 끝나면 바다에 던질 생각이다.

서진이 휴대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지금 전화하면 받을 거예요.”

-고맙다. 나중에 술 살게. 그리고 너 무조건 나한테 온다고 해. 알았지?

“네?”

-그렇게 알고 있어.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한테 온다고 하라고?’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광현에게 메시지가 들어왔다.

-지금 당장 23만 원에 올릴까요?

***

2월의 끝을 알리는 싸늘한 바람이 피부를 스칠 때, 이소희는 장바구니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장바구니에는 고기와 맥주 등 이것저것이 참 많이 담겨 있다.

이소희가 도착한 곳은 서진의 집 앞.

초인종을 누르자 반팔과 트레이닝 복을 입은 서진이 문을 열었다.

“어? 어쩐 일이야?”

이소희가 장바구니를 들며 말했다.

“내일이면 가잖아. 그래서 술 한잔하고 싶었어. 이삿짐 싸는 것도 도울 겸.”

내일이면 서진은 강원지검을 떠나 서울로 이동한다.

어제도 죽을 때까지 폭탄주를 처먹은 것 같은데, 이소희의 장바구니를 보니까 오늘도 마셔야 할 것 같다.

“들어와.”

서진은 이소희를 집 안으로 들이며 도어스토퍼를 내려 문을 살짝 열어뒀다.

서진의 행동에 이소희가 웃는다.

“뭐야? 내가 너 어떻게 할까 봐?”

“아니, 뭐.”

성폭행 검사로 몰렸을 때부터다.

여자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게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뭐야? 정리할 것도 없네? 애써 장갑까지 준비해 왔는데.”

거실을 둘러보던 이소희가 아쉬워했다.

어차피 포장 이사를 할 것이지만 책과 옷은 이미 정리해 둔 뒤다.

서진이 슬쩍 웃었다.

“술이나 먹자.”

*

그 시각, 김영준 검사장의 집 앞.

중앙지검 1차장검사가 초인종 앞에 서서 넥타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에 큼큼거리며 목을 다듬는데.

“어? 차장검사님?”

고개를 틀어보자 반부패 수사 제1부 부장검사가 고개를 꾸벅인다.

1차장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자네가 어쩐 일이야?”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하... 똑같은 생각 아니겠습니까?”

3차장검사가 큼직한 홍삼 세트를 들고 서 있었다.

“에이.”

1차장검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세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또 한 번 놀랐다.

“늦으셨습니다.”

거실의 소파에는 중앙 지검의 차장검사와 부장검사가 가득했다.

그 넓은 거실이 좁아 보일 정도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이 한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아, 주말이면 쉬어야지. 왜 우리 집에 와서!”

1차장검사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검사장님, 김서진 그놈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아뇨. 저희가 데려가겠습니다. 마침 자리가 비었...”

“야, 3차장검사! 너희한테 윤환이 맡겨서 어떻게 됐어!”

두 사람이 싸울 때 조용히 있던 4차장검사가 김영준 검사장에게 속삭였다.

“검사장님, 강력부에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우리 박 부장검사가 이력 잘 캐어 하면서...”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의 조카다.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 이들이 김영준 검사장과 가까워질 수 있다.

게다가 서진의 이력서는 이미 확실하다.

김윤환같이 얼굴마담이 아니라 실적마저 올릴 게 분명하다.

다들 굴러온 호박을 넝쿨째 갖고 싶었다.

“너희는 인원 꽉 찼잖아! 그런데, 데려간다고? 양심 불량이야!”

“뭐? 양심?”

김영준 검사장이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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