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4화 (84/250)

<거지 만들기. -(2)>

*

‘새벽 1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던 중 서진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현관 앞에 서서 부모님이 주무시기를 바라며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동생 진영이 맞이했다.

“안 잤어?”

진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틀었다.

응접실에 앉아 홀로 소주를 드시는 아버지가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혼자 끌끌끌 씁쓸하게 웃으며 소주잔을 채우고 계신다.

“작은아버지 오셨다 가셨어.”

“그래?”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 예상됐다.

김윤환이 재정 건설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이야기.

양심도 없다.

소주병으로 때려도 무죄다.

그리고 아버지도 서진이 온 것을 알아챘다.

억지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들!”

진영이 서진의 어깨를 툭 쳤다.

“가봐. 난 지금까지 시달렸으니까. 형도 왔고. 난 이제 자야겠...”

진영은 빠지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영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막내도 와야지! 형제는 원래 그래야 하는 거야!”

형제가 뭘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영은 순순히 서진과 함께 아버지 앞에 마주 앉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기분 좋게 술병을 들며 말했다.

“아빠가 요즘 너 때문에 목에 힘주고 다녀.”

서진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윤민우 사건 이후로 이은하 기자의 기사가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식을 줄을 몰랐다.

“우리 막내도 마찬가지고. 꿈을 위해 정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아버지가 서진과 진영의 잔을 채우며 계속 말했다.

“너희 둘은 평생 함께 가야 해. 그게 형제야.”

아버지는 취했다.

떠오른 말을 그대로 내뱉는 중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이해됐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진영이 서진에게 잔을 내밀며 말했다.

“윤환이 형이...”

“진영아.”

“어?”

서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술잔을 입에 댔다.

김영준과 김윤환, 두 사람은 차명으로 재정 건설의 지분을 갖고 있다.

“아버지가 오래 못 버티는 거 알지?”

아버지도 연세가 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아버지 역시 물러날 때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회사의 주인이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물론 김윤환은 아닐 거다.

서진이 막을 테니까.

김영준과 김윤환은 닭 쫓던 개처럼 손가락만 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서진이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네가 할 생각 없어?”

진지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진영이 배를 잡고 웃는다.

“형.”

“네 꿈이 이쪽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

“그게 아니고.”

“그럼, 뭔데?”

“내 나이가 몇 살이야?”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나이에 회사 중역으로 들어가라고?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가서 재벌 놀이하라고?”

진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생각 없어. 내 잘못으로 직원들이 거리로 쫓겨나 봐? 아버지한테 귀싸대기 맞을걸?”

“어?”

“잘하는 사람이 해야지. 물론 그게 윤환이 형은 아니야.”

서진은 조금 놀랐다.

지금껏 검사를 하며 무수히 잘난 사람을 만났었다.

부유한 집의 자식, 건물주의 아들.

그들이 하던 말은 똑같았다.

-부모 잘 만난 것도 재능이야!

그들은 부모가 내어준 길을 당연한 듯 걸었다.

그런데, 진영은 달랐다.

“너 조금 멋있어 보인다?”

“됐고. 윤환이 형이나 막아.”

“그건 걱정하지 마.”

서진과 진영이 잔을 부딪쳤다.

진영의 말이 아니어도 김윤환은 막을 거다.

물론 그 전에 조우재 부장검사부터 손 볼 생각이다.

술잔을 입에 대는데.

드르륵.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도광현에게 메시지가 들어온 거다.

-술 취한 김에 매물 올릴게요. 일단 16으로 시작합니다. 하하.

토지에 대한 이야기다.

현 시세가 15만 원.

그런데 도광현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내밀 미끼의 시작으로 16만 원을 제안했다.

***

-2천 평이고요. 평당 16만 원에 내놓겠다는데요. 여기 개발되는 거 알고 있으니까 네고는 절대 안 된다고 하네요. 자기도 세금 내면 남는 거 없다고요.

서울 중앙 지검.

조우재 부장검사는 복도를 걸으며 부동산 업자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하...”

조우재 부장검사는 한숨을 내뱉었다.

곧 개발이 된다고 소문이 난 땅.

투기꾼이 몰려들었고 땅값은 요동쳤다.

짜증은 났지만 매물이 없으니 16만 원도 감지덕지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2천 평?’

16만 원에 2천 평이면 3억 2천이다.

20만 원으로 올라도 4억.

남는 것은 겨우 8천.

‘씨발, 세금 떼면 쥐는 것도 없네.’

보유 기간이 1년 미만이면 양도세만 50%.

단순 계산했을 때 통장에 찍히는 것은 겨우 4천이다.

‘좆같은 세상.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벼룩의 간을 빼 먹고 있어?’

생각을 마친 조우재 부장검사가 휴대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계약금 바로 넣을 테니까 주말에 약속이나 잡아줘요. 다른 땅 나오면 연락하고.”

*

그 시각, 강원 지검.

업무를 보던 서진은 책상 위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느꼈다.

도광현이다.

서진은 발신 번호를 확인 후 몸을 일으켰다.

복도로 나간 후 통화 버튼을 누르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금 들어왔어요. 마음이 급했나 봐요. 1억을 쑤셔 넣었네요. 흐흐.

“고생했어.”

-아이고, 고생은 지금부터죠. 아직도 남은 땅이 수만 평이에요. 갈 길이 멀어요. 멀어.

“시세 올리면서 조금씩 넘겨. 20만 원 예상한다고 했지? 그럼 19만 원까지 올려. 조금씩.”

-그런데, 계속 살까요? 이게 한두 푼도 아닌데.

당연히 살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작게 사서 적게 먹지 않는다.

“2천 평에 기대 수익은 4천. 그거 먹으려고 달려들 사람이 아니야.”

조우재 부장검사는 많이 사서 크게 먹으려 한다.

김영준 검사장의 뒤를 쫓으며 주워들은 정보에 거짓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먹이만 던져주면 배고픈 개처럼 뛰어올 테니까.”

그리고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돈에 대한 집착을 잘 알고 있었다.

“사채를 끌어안고서라도 살 거야. 사게 만들 거고.”

-알겠어요. 그럼, 계속해서 작업 진행할게요.

***

‘도둑놈도 아니고...’

주말이었다.

춘천의 부동산에 조우재 부장검사는 토지대장을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앞에 앉은 노인, 불과 몇 달 전에 10만 원에 산 땅을 16만 원에 팔고 있다.

‘미친.’

잠깐 사이에 1억 2천의 이득.

세금을 제해도 평범한 월급쟁이의 연봉 넘는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도장을 꾹 찍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파시려고 합니까?”

“돈이 필요해서죠.”

조우재 부장검사가 손을 저었다.

“아니, 그런 원론적인 말 말고요. 정말로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해서 그래요.”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이 뺨을 긁적였다.

“개발 소식이 들려오는 지금이잖아요.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는데 묵혀둘 생각은 없거든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픽 웃었다.

대선이 직전이다.

그 전에 정부는 민심을 얻기 위해 돈을 뿌릴 거다.

선거법에 어긋나지 않게 돈을 주고 환심을 살 수 있는 게 토지개발이다.

‘병신, 조금만 견디면 20만 원까지는 갈 텐데.’

조우재 부장검사와 일반 투기꾼이 다른 점이었다.

투기꾼은 믿을 수 없는 정보와 직감에 의존해 돈을 벌지만 조우재 부장검사는 확실한 게임에 승부를 걸고 있었다.

“뭐,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부자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우재 부장검사와 노인은 서로 악수하며 거래를 끝냈다.

그리고 노인이 부동산을 벗어나자 업주가 다급히 조우재 부장검사의 앞에 앉는다.

“3천 평짜리가 매물로 나왔는데, 어떠세요?”

“얼만데?”

“하, 이게 또 소문을 들었는지... 16만 3천 원 달라네요.”

“아, 진짜! 우수리 떼고 가자고 해요! 맹지잖아!”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길 건너편 땅 있잖아요? 거기가 그저께 16만 5천 원에 거래됐어요. 동네 사람들이 그 소문을 다 들었는데, 누가 우수리를 떼겠어요. 맹지가 금싸라기가 됐어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3천 평...’

4억 9천 5백만 원이다.

땅이 20만원까지 오르면 산술적으로 5천 정도가 남는다.

‘미치겠네.’

조우재 부장검사가 입술을 매만질 때, 업자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아, 소식 들으셨구나? 맞아요. 이쪽에 개발 소식이 있어요. 매물이요? 있죠. 평당 16만 5천. 3천 평짜리 있는데요. 그쵸? 많이 올랐죠? 그런데 이게...”

순간 조우재 부장검사가 업자의 휴대폰을 뺏더니 통화 종료 버튼까지 눌러버렸다.

업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시는 거세요?”

“내가 산다니까?”

조우재 부장검사는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아내의 연락처를 찍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나야. 장인어른한테 돈 좀 빌릴 수 없나? 2억 5천. 나머지는 대출로 잡을 거야. 내가 헛소문 듣고 움직이는 것 봤어?”

조우재 부장검사가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만족스러운 답을 들었는지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계약금부터 걸까요?”

잠시 후, 조우재 부장검사가 떠났다.

그리고 부동산의 문이 딸랑 소리와 함께 열리며 도광현이 들어왔다.

부동산 업자가 찡긋 윙크한다.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도광현이 테이블에 앉아 서류를 툭툭 넘겼다.

그 앞으로 업자가 앉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아깝지 않으세요?”

“뭐가요?”

“이 땅, 20만 원까지 간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요.”

업자의 말에 도광현이 한숨을 내뱉었다.

“아깝죠. 아까운데! 하...”

이 지역 전체가 투기꾼의 축제가 되었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폭등하는 중이다.

그런데, 한순간에 폭락시킨다니.

‘그게 가능해?’

도광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진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중이지만 미심쩍은 게 사실이었다.

‘모르겠네.’

도광현은 눈을 찌푸리며 서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3천 평, 16.5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답 메시지가 왔다.

-이제 13에 팔아. 이번에는 조우재말고 투기꾼한테. 꽤 많이.

시세가 15다.

16.5에 올려도 조우재 부장검사가 다급히 사들이고 있다.

그런데.

‘13만 원?’

도광현은 잘못 봤나 싶어서 몇 번이나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서진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뭘 하려는 거야?’

도광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

“요즘 자주 오시네요?”

그날 밤, 서진은 한정식집에서 조우재 부장검사를 만났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젓가락으로 나물을 짚으며 낄낄 웃었다.

“요즘에 춘천 땅값 오르는 거 알지?”

자랑할 사람이 필요했는지 성급할 정도로 진실을 꺼냈다.

그럼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아, 들었어요. 우리 지검 사람들도 알아보더라고요.”

“아, 그래? 나도 이쪽에 땅을 좀 샀거든.”

은행 빚은 물론 사돈에 팔촌 심지어 장인어른의 지갑도 털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서진은 정말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언제요?”

“몇 달 됐어.”

“그럼 땅값 오르기 전이네요? 그런 정보 있으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서민들 싸우는데 너 같은 금수저 들어오면 안 돼. 체급이 맞아야지.”

“제 돈인가요? 아버지 돈이지. 그리고 윤환이 형이 들어올 거라면서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술잔을 입에 댄 뒤 탁!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야, 꿍쳐둔 돈 있으면 지금이라도 들어가. 지금 16만 원 선에서 거래되거든? 20만 원까지는 올라갈 거야. 더 오를 수도 있고.”

“부장검사님은 얼마나 넣으셨어요? 아, 이런 것은 여쭤보면 안 되는 것인가요? 그냥 궁금해서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너한테만 알려준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보수적으로 30억은 남을 것 같아.”

“30억이요?”

“어.”

30억을 얻으려면 몇 배의 돈을 태웠다는 거다.

얻은 정보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몰라도 무서울 만큼 인생을 걸고 있다.

“껌값 번 거지.”

게다가 허세를 부린다.

서진이 감탄사를 곁들이며 조금 더 띄워주자 가르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서진아, 우리 같은 놈들의 최대 장점이 뭐야?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거야. 개미들이 긴가민가할 때 우리는 확신을 하고 들어갈 수 있지.”

“그래도 30억이 남으려면... 리스크가 크지 않나요?”

살짝 말리는 제스쳐를 취했다.

하지만 놈은 이미 투기의 맛을 느꼈다.

말린다고 멈추면 말이 안 된다.

“리스크는 개미들이 감당하는 거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자신 있는 목소리와 함께 술잔을 손에 쥐고 쭉 마셨다.

그리고 계속해서 투자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다.

정부 정책과 가치 투자에 대한 열변, 말만 들으면 이미 워런버핏이다.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 끄덕 움직였다.

“아, 저도 부장검사님 쫓아서 투자나 해야겠어요.”

서진이 휴대폰을 두들겼다.

땅을 찾고 이곳저곳에 문의했다.

그리고.

“아까 16이라고 하셨죠? 여기는 평당 13이라는데요? 이거 들어갈까요?”

조우재 부장검사의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거다.

“13만 원?”

“네.”

조우재 부장검사는 오늘 낮에 16만 5천 원에 거래했다.

그런데, 13만 원이라니.

평당 3만 원이지만 몇천 평으로 올라가면 1억 가까이 차이가 난다.

조우재 부장검사 눈을 부릅뜨고 다시 물었다.

“13만 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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