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3화 (83/250)

<거지 만들기. -(1)>

신호등이 바뀌고 김영준 검사장과 조우재 부장검사가 뚜벅, 뚜벅 다가왔다.

그리고 서진의 앞에 선 김영준 검사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식 중이었나?”

“아, 네.”

김영준 검사장이 조용히 웃으며 서진의 옷깃을 매만졌다.

그리고 서진의 팔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잘했어.”

윤민우 사건으로 바닥에 처박혔던 검찰의 위신이 조금은 회복했다.

김윤환의 이름은 아예 거론도 되지 않는 중이다.

김영준 검사장은 만족스러울 거다.

그런데, 뭔가 의아했다.

단지 칭찬을 위해 이곳까지 올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로 다정한 성격이었다면 김윤환이 그렇게까지 엇나가지 않았을 거다.

무슨 이유일까 의문 가득한 눈동자로 바라봤더니.

“지나가던 길이었어. 너희 검사장한테 할 말도 있고.”

“......”

“우리 조카, 이제 서울 데려가야지.”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일반 검사의 인사 명령은 보통 2년에 한 번 돌아온다.

즉, 서진의 발령은 예외적인 것.

김영준 검사장은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여준혁 검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의 말은 모든 것이 원활하게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진이 멍하게 서 있자 옆에 서 있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좋아해도 돼.”

“아, 감사합니다!”

서진이 허리를 굽혔다.

이제 서울이다.

그동안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거부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였다.

-당당히 입성하고 싶어서.

이제는 거부할 이유가 없다.

깡치와 미제를 연이어 해결했고 이번에는 검찰의 위신까지 세웠다.

서울에 간다고 검사장의 조카라는 냉랭한 시선은 없을 거다.

게다가 김윤환도 없다.

그 들러리로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

김영준 검사장이 서진의 등을 쓰다듬은 후 몸을 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곁을 떠났고 서진은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혔다.

앞으로 남은 몇 달.

이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열리면 정식 인사 명령이 떨어질 거다.

‘그때까지 해야 할 일...’

서진이 천천히 허리를 폈다.

시선은 조우재 부장검사로 옮겨져 있었다.

‘조우재...’

서진의 얼굴에 방금까지 웃고 있던 표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날카로운 눈으로 조우재 부장검사의 뒷모습을 집어삼키는 중이다.

‘앞으로 바쁘겠네.’

***

“서진이 서울로 올렸어. 내년이면 집으로 들어올 거야.”

며칠 후, 주말.

김영준 검사장이 뜬금없이 서진의 아버지 김준만을 찾았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김준만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고맙다. 다 네 덕이야.”

“뭘, 이력서가 좋았던 거지. 서진이가 잘한 거야.”

“술 한잔해야지?”

김준만은 김영준 검사장을 이끌고 한강이 보이는 응접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와인 하나를 손에 들며 입을 열었다.

“이거 어때? 괜찮다고 하던데.”

그런데, 와이셔츠를 걷던 김영준 검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랜만에 소주 한잔할까?”

“소주?”

“어.”

김준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후 나란히 앉아 소주를 마신 적이 없었다.

점잖을 떨며 와인을 마셨고 취하고 싶을 때면 위스키를 기울였다.

소주는 가난한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오랜만에 보는 동생인데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김준만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셔보자.”

잠시 후,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바삐 움직였고 테이블에는 음식이 가득 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소주 두 병이 싹 비워졌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김준만이 소주병을 기울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윤환이 미국으로 보냈어.”

“언제?”

“오늘.”

“하... 말이라도 하지.”

“됐어. 도망가는 놈인데, 뭘 자랑이라고 소문을 내?”

김영준 검사장이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고 빈 잔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미국으로 보내는 게 가슴 아팠는데, 공항에서 제 엄마 손 잡고 펑펑 우는 걸 보니까 화가 나더라고. 내가 잘 못 키웠나 싶기도 하고.”

김영준 검사장이 씁쓸히 웃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형밖에 없어.”

동생의 말에 김준만은 한숨을 내뱉으며 소주잔을 입에 댔다.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유미는 잘하고 있는데, 윤환이는 왜 그런지 모르겠어.”

김유미는 김영준 검사장의 둘째로 서진과 동갑이다.

지금 대학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다.

김영준 검사장이 소주잔을 탁 내려두며 말을 이었다.

“젠장, 아픈 손가락이 문제지.”

김준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잔을 채워주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술이 몇 잔 더 오갔다.

김영준 검사장이 김준만의 술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형. 서진이는 검사야. 빈말이 아니라 그놈만큼 검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놈이 없어. 그놈 앞길은 내가 닦아 줄게.”

“......”

“진영이는 레스토랑을 차리는 게 꿈이라고 그랬지? 어울리네. 어릴 때부터 남 챙기고 음식해주는 것 좋아했잖아?”

김준만이 눈동자만 움직여 김영준 검사장을 향했다.

갑자기 서진과 진영을 거론하며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회사, 누구한테 물려줄 거야?”

김준만의 눈이 찌푸려졌다.

서진은 검사, 진영이는 요리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의 딸 유미는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럼, 남은 자식은 하나다.

‘하...’

웬일로 소주를 먹자고 했나 했다.

*

그 시각, 서진은 서초동의 골목을 걷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지하에 있는 바였다.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자 외관과 다르게 모던한 분위기가 나타났다.

서진은 바텐더의 인사를 받으며 시선을 틀었다.

손님은 단 한 명이다.

바에 앉아 통화를 하고 앉아 있는 사람, 조우재 부장검사였다.

“뭐요? 판다는 사람이 없다고? 몇 장 더 얹어 준다고 했잖아? 하씨, 투기꾼 붙었네.”

서진이 그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인기척을 느낀 조우재 부장검사가 고개를 틀어 서진을 향했다.

손으로 미안하다는 표시를 한 뒤 계속 통화를 이어갔다.

“그래, 있는 물량 다 보내라고. 내가 은행 빚을 얻어서라도 매입할 테니까. 알았어요. 알아보고 나오면 바로 연락해요.”

조우재 부장검사가 통화를 종료하며 입을 열었다.

“아, 미안. 중요한 전화 때문에.”

중요한 전화는 개뿔, 춘천에 있는 땅 때문이다.

조우재 부장검사는 개발이 된다는 정보를 얻었고 있는 대로 다 주워 담는 중이다.

“그런데, 어쩐 일이야? 갑자기 보자니.”

“감사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그 사이 바텐더가 서진의 앞에 잔을 내려뒀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의 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윤환이 가는 것 보고 온 거야?”

“가다니요?”

“몰랐어? 오늘 미국 갔잖아.”

몰랐다.

도망칠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 몰랐어요.”

“하긴, 웬만하면 조용히 움직이시는 분이니...”

김영준 검사장은 은밀히 움직였고 김윤환은 미국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하지만 상관은 없다.

다시 끌고 오면 된다.

비행기를 타며 벗어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증거를 조작한 죄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서진이 모든 것을 틀어막을 생각이니 김영준 검사장이라 해도 보호하기 힘들 거다.

벌써부터 질질 짜고 있을 모습이 기대된다.

“아, 그거 알아? 윤환이가 재정건설에 들어갈 수도 있어.”

“네?”

“너희 아버지도 이제 연세가 있잖아. 그런데, 후계는 없고. 윤환이가 딱이지 않아?”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조용히 입을 닫고 귀를 기울이자 조우재 부장검사가 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윤환이 성격이 자유롭잖아. 그런데, 변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조우재 부장검사가 잔을 입에 대며 서진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

그는 일부러 이 말을 꺼냈다.

-우재야, 지방으로 가.

지금도 김영준 검사장의 그 냉랭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김영준 검사장이 지정한 곳은 검사가 4명밖에 없는 지방 지청의 부장검사, 완벽한 좌천이었다.

-검사장님!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나서야 김영준 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잘해. 마지막 기회야.

따지고 보면 김윤환이 폭주하며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조우재 부장검사는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그렇게 충성을 했는데...’

조우재 부장검사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씹었다.

억울하게 무릎까지 꿇었던 것, 분란이라도 던져놓고 싶었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었다.

“몰랐던 것 같은데,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아뇨, 괜찮아요. 어차피 알게 될 일인데요.”

“그렇지?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전문 경영인보다 가족이 하는 게 좋지 않아. 윤환이면 꼼꼼히 잘할 거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서진이 인상을 쓰기를 바랐다.

가족은 피로 이뤄졌지만 피를 토하며 원수가 되는 게 경영권과 돈이다.

그런데 서진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진심으로 활짝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럼요. 가족인데요.”

“...그렇지?”

서진은 또 하나를 기대하고 있었다.

김영준 검사장은 김윤환을 검찰의 핵심으로 만들려 했었다.

하지만 실패.

이제는 김윤환을 재정 건설의 대표로 만들려 한다.

그런데, 그것마저 실패할 거다.

‘김윤환이 대표?’

서진은 그렇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김윤환에게 어울리는 곳은 대표실이 아니라 감옥의 독방이다.

그곳에서 인생 공부 좀 해야 한다.

그때, 김영준 검사장의 표정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됐다.

서진은 술을 마신 후 잔을 내려뒀다.

그리고 천천히 눈동자만 움직여 조우재 부장검사를 향했다.

놈이 번들거리는 입술을 보이며 웃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마구 꺼내는 것을 보면, 서진 정도는 언제든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안 되겠네.’

남의 집안에 똥을 집어 던지는 조우재 부장검사, 이놈을 혼내줘야겠다.

*

조우재 부장검사와 헤어진 서진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도광현이었다.

-전통 주막이에요. 검사님 기다리느라 목 빠져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있어요.

잠시 후, 서진은 도광현과 마주 앉았다.

도광현이 파전을 찢어 서진의 앞 접시에 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오늘은 또 무슨 일을 시키시려고 부르셨어요?”

“춘천에 땅 산 거 있지?”

지난번, 서진은 도광현에게 조우재 부장검사의 뒤를 밟으라 했다.

그리고 도광현은 조우재 부장검사가 사는 땅을 쫓아 매입했다.

도광현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 세상은 정보에요. 그거 폭등하고 있어요. 벌써 몇십억을 먹었는지 몰라요. 푸핫핫핫!”

정부 정책을 미리 알고 있으면 돈 버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쉽다.

“투기꾼들 몰려들었고요. 8만 원 했던 땅이 15만 원에 나와도 개떼처럼 몰려들고 있어요. 매물이 없어요.”

“슬슬 팔아.”

“네?”

신나게 웃고 있던 도광현의 행동이 뚝 멎었다.

자신이 들은 게 정말 맞는지 확인하는 눈빛이다.

“팔아요? 정말?”

“어.”

“...검사님? 이제 오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20만 원까지는 충분히 갈 것 같아요.”

“팔아.”

“수십억이 왔다 갔다 해요!”

도광현이 흥분했다.

목이 타는지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신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돈은 싸우기 위한 무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다.

서진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린 후 메신저로 접속해 조우재 부장검사의 프로필 사진을 꾹 눌렀다.

“이 사람한테 다 팔아. 원주민 부동산 섭외하고 여러 명의로 쪼개. 절대 눈치 못 채게. 할 수 있지?”

도광현이 조우재 부장검사의 프로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검사 할아버지가 와도 못 찾게는 할 수 있는데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팔아요?”

“어. 그 땅 폭락시킬 거야.”

“네?”

“그 땅에 손댔던 투기꾼은 다 거지가 될 거야. 그러니까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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