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악. -(1)>
김종재 변호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서진의 눈빛은 도발적이었고 지나치게 당당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김종재 변호사는 무엇인지 모를 찜찜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유를 알아볼 시간은 없다.
재판은 이미 시작되었고 첫 번째 증인이 증인석으로 향하고 있어서다.
첫 번째 증인은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성.
가명은 진희, 본명은 진예숙이다.
그녀가 윤민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민아가 실종되기 전날, 민아는 저 사람하고 같이 나갔어요.”
다음 증인은 룸살롱에서 운전하는 남성이었다.
“술을 더 마시겠다면서 중간에 내려 달라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이 아니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증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모든 증인의 말은 한결같다.
-마지막에 윤민우와 함께 있었다.
하지만 김종재 변호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똑같이 주장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의혹일 뿐입니다! 살해 도구가 발견되었습니까? 아니면, 그 현장을 찾았습니까? 입증된 것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피고인을 살인으로 몰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김종재 변호사는 서진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
그런데, 서진의 표정은 변한 게 없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됐다.
당황하는 기색은 전혀 없고 오히려 희미하게 웃고 있다.
김종재 변호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꿍꿍이가 있나?’
분명 재판은 의도대로 흘러가는 중이다.
변론은 완벽했고 검찰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없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법정의 따끔따끔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짓누르고 있다.
‘뭐야? 이 더러운 기분은...’
김종재 변호사는 증인 신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입에 대며 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정의 내렸다.
‘허세야.’
김종재 변호사는 서진의 행동을 허세라고 생각했다.
‘그래, 허세일 거야.’
2차 공판이 마무리되어 가는 중이다.
하지만 서진의 행동에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보통의 애송이처럼 우기는 게 전부다.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어. 이제 다 끝났어.’
김종재 변호사는 L 그룹의 고문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기뻐하는 아내와 자랑스러워하는 아들.
앞으로는 모든 게 행복할 거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김종재 변호사가 생각을 멈추고 눈을 부릅떴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지난 공판 때 제출했던 usb, 그 안에 담긴 영상을 공개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김종재 변호사는 웃음을 참기 위해 치아가 부서질 것처럼 입을 꽉 다물었다.
‘뭐야? 준비한 게 겨우 그거였어?’
usb는 증거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김종재 변호사는 윤민우 부장판사와 약속했다.
서진이 영상을 공개하자고 하면.
“이의 있습니다! 영상에는 윤민우 씨의 사생활이 담겨 있습니다! 공개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죄인으로 몰린 것도 억울한데,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은 2차 가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우진 부장판사가 서진의 요청을 거부하면 된다.
그런데.
‘어?’
이우진 부장판사가 김종재 변호사의 눈을 피했다.
순간 김종재 변호사는 가슴이 철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우진 부장판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 법정을 흔들었다.
“재판의 투명성을 위해 허락하겠습니다. 공개하세요!”
김종재 변호사의 머릿속에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 미친 새끼가!’
얼굴이 뻣뻣해지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어렵다.
‘뭐지? 뭐지? 뭐지?’
의문에 의문을 이어갔다.
하지만 답은 없다.
이우진 부장판사가 배신을 때렸다는 게 정답이다.
‘개새끼가!’
김종재 변호사가 이우진 부장판사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우진 부장판사는 여전히 시선을 피한다.
그 와중에 모니터가 놓였고 노트북에 usb가 꽂히고 있었다.
“재판장님!”
김종재 변호사가 테이블을 쾅! 쾅! 내리치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2차 가해입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것은 이우진 부장판사의 호통이다.
“변호인, 조용히 하세요!”
“인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보고 판단하면 되는 일입니다!”
한때는 손을 잡았던 두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서로를 향해 살벌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그때.
“저... 저!”
김종재 변호사는 방청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모니터 화면에 윤민우가 나타나고 있었다.
산에서 털레털레 내려온 놈이 히죽 웃으며 손에 든 신분증을 흔든다.
이어서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며 입을 연다.
-5분만 견디지. 가슴은 큰 게 좋은데. 아쉽네.
놈은 즐거워하고 있다.
콧노래까지 부른다.
충격적인 영상에 방청석은 침묵했고 김종재 변호사는 비틀거렸다.
그리고 방청석에서 신음이 들렸다.
“아...”
딸을 잃은 아버지였다.
치아를 꽉 다문 채 몸을 떨고 있다.
그는 지금이라도 뛰쳐나가 윤민우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주먹을 쥔 채 참는다.
놈이 엄벌에 처해질 것이라 믿고 있어서다.
그리고 서진이 윤민우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냉랭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입을 연다.
“피고인?”
윤민우는 서진을 보지 않았다.
눈동자를 굴리며 김종재 변호사를 향했다.
2차 공판을 앞두고 약속한 게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죄를 인정하지 마. 그럼, 넌 살 수 있어.
윤민우는 지금도 그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김종재 변호사의 표정이 이상하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윤민우의 눈동자가 기울어질 때, 그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스쳤다.
“저 영상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윤민우가 천천히 서진을 향했다.
그리고 더듬으며 대답했다.
“드, 등산 다녀온 거예요.”
“저 시간에?”
“...네.”
“신분증은 왜 흔들었죠?”
“그...”
“저 신분증은 누구의 것입니까?”
놈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피고인, ‘5분은 견디지.’라는 말은 뭘 의미하는 거죠?”
“그, 그러니까...”
서진이 피고인의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찍었다.
“대답해!”
그 말에 윤민우가 움찔거렸다.
심장이 덜컥거림을 느끼며 다시 김종재 변호사를 바라봤다.
이럴 때면 변호사가 ‘이의 있습니다!’ 하며 도와야 한다.
하지만 조용하다.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게다가 섭외했다는 판사의 눈빛은 차가웠고 앞에 선 서진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그제야 윤민우는 느꼈다.
‘씨발...’
윤민우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갔다.
몸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다.
그러다가 벌게진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연다.
“...걔들도 즐겼어!”
놈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열했다.
진실을 토해낸 목소리에 법정은 얼음이 쏟아진 것처럼 적막해졌다.
그때.
“이 미친 새끼야!”
지금껏 분노를 억누르던 딸을 잃은 아버지가 폭발했다.
“저런 새끼는 때려죽여야 해!”
경위가 우르르 달려들어 아버지를 막아섰다.
그의 몸을 움켜잡고 밀어낸다.
“선생님, 이러시면 안 돼요!”
“아아아악! 놔! 놓으라고!”
경위에게 잡힌 아버지는 있는 힘을 짜내며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버텨낼 수 없었다.
경위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끌려나가며 분노를 토해내는 게 전부였다.
“죽여줘요! 제발! 저런 놈... 제발!”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이 윤민우를 보며 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 살인마 새끼!”
“뻔뻔한 자식아!”
“죽어!”
“제발 사형!”
법정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우진 부장판사가 법대를 두들기며.
“조용히 하세요! 조용!”
계속해서 외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시끄러워진다.
“사형이라고!”
“죽여야 해!”
그 상황에서도 서진의 시선은 윤민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윤민우는 고개를 숙인 채 심각할 정도로 몸을 떨고 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외침은 발악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윤민우를 바라보던 서진이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최종 의견 및 구형을 해도 되겠습니까?”
딱 한 마디였다.
서진의 목소리에 소란스러웠던 법정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이우진 부장판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세요.”
동시에 서진의 목소리가 거침없이 흘렀다.
“피고인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살인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있음에도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부인했습니다.”
윤민우는 스물두 명의 여성을 죽였고 친구에게 성폭행과 그 살인죄까지 떠넘겼다.
심지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서진을 속이려 했다.
하지만 지금 윤민우는 무력했다.
신음을 흘리며 몸을 꿈틀거리는 게 전부다.
그리고 서진의 마지막 목소리가 윤민우의 귀를 때렸다.
“...이에 본 검사는.”
그때였다.
와들와들 떨리던 윤민우의 몸이 뚝 멎었다.
놈이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서진과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나, 난 아니야. 걔 한 명만 죽였어요. 그러니까 살려줘. 살려줘요.”
수많은 여성이 윤민우에게 했을 말이다.
울면서 빌었을 거다.
제발 살려달라고.
그런 놈이 뻔뻔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사형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윤민우가 울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지금껏 가식적으로 떨어뜨리던 눈물이 아니다.
정말 펑펑 운다.
자신의 죄를 반성해서가 아니다.
살고 싶어서다.
“나, 난 아니야. 그래, 걔 한 명만 죽였어. 창녀를 죽인 것도 죄야? 어차피 불법적인 일을 하던 애잖아? 잘한 일 아니야? 어? 다른 애들은 나 아니야! 미친 새끼야! 나 아니라고!”
윤민우가 발악했다.
그 눈은 당장 핏물이 쏟아질 것처럼 실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
그리고 마지막 공판.
사형 선언이 확실시되는 법정의 분위기는 스산했고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사람들의 눈빛은 살벌하다.
윤민우가 법정에 들어섰지만 그 누구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적막.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윤민우는 초췌한 얼굴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 끝이었다.
손가락조차 꼼지락거리지 않는다.
판결문이 낭독되는 중에도 마찬가지다.
윤민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굳은 것처럼 앉아 있었다.
그리고.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이우진 부장판사의 입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유가족들은 흐느껴 울었다.
분명 죄인인데, 죽어 마땅한 놈인데, 그놈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사형을 받아 내는 과정도 험난했다.
방청석의 구석.
윤민우의 친구 김태경은 그곳에 앉아 있었다.
판사의 선고와 함께 참고 있던 깊은숨을 내뱉었다.
“하...”
그리고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윤민우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김태경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끝났습니다.”
이명수 부장검사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자 김태경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얼굴을 감싸고 펑펑 울기 시작한다.
이명수 검사는 그 옆에 앉아 한참 동안 김태경의 등을 쓸어 만졌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이명수 부장검사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명수 검사의 눈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검사장?’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지만 여준혁 검사장이 맞다.
검사장이 법정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뭐지?’
검사장이 직접 공판을 살피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입가에는 조용한 미소마저 걸려 있다.
이명수 부장검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
그리고 그 시각.
재판부 역시 짐을 챙기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김종재 변호사가 법대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이우진 부장판사님?”
이우진 부장판사가 고개를 틀어 김종재 변호사를 바라봤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나중에 보죠.”
김종재 변호사의 목소리는 정다웠다.
하지만 눈에는 살기가 뚝뚝 떨어졌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이우진 부장판사는 고개를 숙인 후 도망치듯 법정을 떠났다.
그러자 김종재 변호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만만한 게 서진인가 보다.
눈빛이 살벌하다 못해 칼을 들고 찌를 기세다.
하지만 서진은 태연히 짐을 챙겼다.
“야, 내가 너희 검사장이랑 친하다는 얘기 했지?”
서진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또 뭔 개소리가 나오나 싶었다.
김종재 변호사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예의 있는 모습 몰라? 사람이 말을 걸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 죄송합니다.”
“죄송? 새끼야, 사전에 협의도 없이 증거를 공개해?”
“그런 것까지 협의 했어야 하나요? 이미 채택되었고 나머지는 판사 재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끝까지 따박따박!”
김종재 변호사는 화가 나 있었다.
L 그룹 고문으로 들어갈 사건이 공중분해 되었기 때문이다.
김종재 변호사가 서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야, 내가 누군지 잘 모르지? 너 같은 새끼는 평생 유배를 보낼 수도 있어. 죽고 싶지 않으면...”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김종재 변호사는 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말똥말똥하던 서진의 눈빛이 돌변하고 있었다.
품에서 또 다른 usb를 꺼내 테이블 위에 슥 올리고 있다.
“변호사님, 제가 자주 가는 한정식집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네요. 재판 전에 법원장과 김종재 변호사가 식사를 했다고.”
김종재 변호사는 기겁했다.
당황한 눈동자로 usb를 바라본다.
서진이 usb를 손가락으로 쿡 찍으며 빙긋이 웃었다.
“이 안에 뭐가 들어있을까요? 기자들한테 집어 던지고 싶은데, 이것도 협의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