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80화 (80/250)

<너의 얼굴은 -(5)>

서진이 이우진 부장판사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재판장님, 거짓으로 가득 찬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증거입니다. 채택해 주십시오.”

이우진 부장판사는 서진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지금껏 했던 말이 있어서다.

이우진 부장판사는 사정없이 떨리는 눈동자를 숨기며 김종재 변호사를 향했다.

도움을 달라는 눈빛에 김종재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usb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피고인을 범인으로 몰아가기 위한 악마의 편집이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우진 부장판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인정합니다.”

판사와 변호사가 북치고 장구를 친다.

분명 서진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화를 내도 모자라다.

그런데, 서진은 고개를 숙인 채 웃고 있었다.

‘예상했어.’

서진은 usb가 증거물로 채택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usb를 손에 들고 증거로 채택해 달라며 소란을 피운 이유는 하나다.

‘법정을 흔들고...’

나아가 여론몰이를 하기 위해서다.

판사와 변호사가 손을 잡은 법정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서진의 시선이 김종재 변호사에게 향했다.

김종재 변호사의 목소리는 더 당당해지고 있었다.

“검찰은 피고인의 증거조사 참여권과 방어권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

“얼마 전에도 검찰은 무리한 수사로 거짓 자백을 얻어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결정하지 않으면 죄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

순간 서진이 치고 들어왔다.

“...뭐가 무섭죠?”

김종재 변호사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서진을 향했다.

서진이 usb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이 usb는 검찰이 갖고 있던 게 아닙니다.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시간을 보낸 김태경 씨가 들고 온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편집했다고요? 그럴 시간이 있었습니까?”

“짜고 쳤을 수도 있죠!”

“김태경 씨는 검찰에 악감정만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와 짜고 친다고요?”

“김태경 씨는 아직 용의자에요! 어쩌면 윤민우 씨에게 자신의 죄를 떠넘기려 할 수도 있어요!”

서진이 어이없이 웃었다.

“소설 한번 잘 쓰시네. 작가해도 되겠어요.”

“검사!”

김종재 변호사가 벼락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테이블을 쾅쾅 두들기며 흥분한다.

“지금 말 취소하세요! 정식으로 항의하겠습니다!”

서진이 평범한 신임 검사였다면 김종재 변호사의 호통에 움찔했을 거다.

하지만 서진은 김종재 변호사가 흥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놈은 지금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서진이 김종재 변호사를 향해 저벅, 저벅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코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변호인, 악인도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팩트를 갖고 변호해야죠.”

“......”

“진실을 가린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것도 법정에서 진실을 숨기려 하면... 부끄럽지 않습니까?”

법정에는 기자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아버지의 사주를 받고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도 있다.

그들이 서둘러 서진의 말을 적는다.

김종재 변호사가 힐끗 방청석을 바라봤다.

그는 베테랑, 법정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서둘러 재판장을 찾았다.

“재판장님! 검사는 지금 재판에 상관없이 변호인에게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재판장이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서진이 손으로 자신의 법복을 움켜잡으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만약 이 증거에 단 하나의 편집이라도 섞여 있다면 저는 옷을 벗겠습니다.”

“.....!”

“그런데, 변호인은 뭘 거시겠습니까?”

김종재 변호사가 눈을 깜빡였다.

“...뭐? 뭘 걸어?”

동시에 법정이 적막해졌다.

그 많은 눈동자가 김종재 변호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김종재 변호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새끼가!’

빠져 나갈 수 없다.

검사가 직을 걸었으니 자신도 뭐든 대답을 해야 한다.

그때.

쾅! 쾅! 쾅!

이우진 부장판사가 법대를 두들기며 김종재 변호사를 구해냈다.

“검사!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서진이 슬쩍 웃었다.

이것조차 기다리던 거다.

이우진 판사의 발언은 자충수.

기자들은 판사와 변호사의 미묘한 눈빛을 눈치챘다.

서진이 몸을 틀어 이우진 부장판사를 향했다.

이우진 부장판사는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이 법정의 왕, 하지만 뜻대로 돌아가는 게 없었다.

서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중이다.

“자중하세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앞에 두고 절차에 막혀 가벼운 벌을 주는 것은 법조인의 수치라 여겼습니다.”

이제는 서진이 판사를 가르치는 모양새다.

이우진 부장판사의 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가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검사, 오늘은 최종심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서진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이우진 부장판사의 시선이 방청석으로 옮겨졌다.

분위기가 냉랭하다.

어떤 시선도 재판부와 변호인을 곱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서진은 자리에 앉으며 이우진 부장판사를 향했다.

‘재판부와 변호사는 한배를 타고 있어.’

그런데 그 배에 구멍이 났다.

물이 콸콸 새는 중이다.

판사는 고민할 거다.

-김종재 변호사와 함께 구멍을 막을까?

-아니면 혼자 탈출을 해야 하나?

서진이 던져준 고민이다.

그리고 이제는 고민의 시간까지 줄 생각이다.

서진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재판장님, 증거 채택의 여부와 자세한 조사를 위해 휴정을 요청합니다.”

이우진 부장판사는 그 요청을 다급히 받아들였다.

“검사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일주일 후 다시 개정하죠. 검사 측은 정식으로 증거를 제출해 주세요. 채택 여부는 분석 후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모두 서진의 의도였다.

그리고 서진의 시선이 김종재 변호사에게 틀어졌다.

김종재 변호사의 얼굴은 귀까지 시뻘겋게 변해 있다.

그를 보며 서진이 조용히 웃었다.

‘이제 무리수를 둬야지?’

***

며칠 후.

김종재 변호사와 이우진 부장판사가 마주 앉았다.

춘천의 한 한정식집이었다.

그런데, 십여 개가 넘어가는 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은밀한 만남을 위해 전체를 빌렸기 때문이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L 그룹의 고문만 되면 이 정도 돈은 껌값이다.

“종업원들도 구석에 가 있으라고 했어. 말 나올 일 없으니까 편하게 마셔.”

김종재 변호사가 이우진 부장판사의 잔에 술을 채우며 계속 말했다.

“채택할 거야?”

서진이 증거로 제출한 usb는 자동차 블랙박스의 영상이었다.

안에는 윤민우가 신분증을 흔들며 산길에서 내려오는 장면, 그리고 살인을 추억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변호사님... 윤민우가 끌고 다니던 자동차의 차주가 김태경이었어요. 윤민우가 제 차처럼 끌고 다니니까 한 번씩 확인했나 봐요. 그리고 그 자료를 모아두고 있었죠.”

“그래서?”

“...채택할 수밖에 없잖아요?”

김종재 변호사가 술잔을 탁 내려두며 낄낄 웃었다.

“이 판사,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거야?”

“네?”

“별일도 아닌데 이유를 모르겠네.”

“별일이 아니라고요?”

이우진 부장판사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각 언론사의 기사가 보인다.

-김서진 검사, 옷 벗을 각오로 임한다.

-김서진 검사, 팩트를 갖고 변호하라며 일침.

-이상한 분위기의 법정, 판사가 변호인과?

댓글도 난리다.

-김종재가 판사 출신인 것 다 알지? 전관예우네.

-김종재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저러지?

-왜겠어? 비리와 부패의 시작이지.

-이우진 판사, 이 개새끼는 국민을 위한 판사가 아니야. 퉤퉤퉤.

이우진 부장판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종재 변호사는 여전히 웃고 있다.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의 기사를 쿡 짚으며 입을 열었다.

“이 판사, 이런 찌라시에 흔들리지 마. 냉정하게 생각해. 김태경 그 새끼, 얼마 전까지 구치소에 있었지? 그런데, 이 자료를 왜 안 내밀었겠어?”

여중생 살인 사건과 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종재 변호사의 생각은 달랐다.

“단순히 신분증 흔들면서 내려온 거잖아? 그게 살인을 했다는 증거가 되나? 김태경 그 새끼도 이걸 보면서 ‘이게 뭘까?’ 고민했을 거야.”

“변호사님, 그런 장면이 세 개나 됐어요! 그것도 전부 실종된 여성이고요!”

“그래, 실종된 여성은 스물두 명이야. 그런데, 영상에 담긴 것은 고작 세 개.”

“나머지 영상은 지워졌겠죠!”

윤민우가 신분증을 흔들던 장면은 단 세 개였다.

김태경이 교도소에 있는 동안 나머지는 이미 지워졌기 때문이다.

김종재 변호사가 끌끌 웃으며 말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기억해. 혐의만으로 처벌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변호사님, 영상에는 윤민우의 음성도 담겨 있어요!”

“살해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나? 아니잖아?”

블랙박스의 영상, 운전하던 윤민우가 콧노래를 부르며 이런 말을 했다.

-븅신, 5분을 못 견디네.

-앞으로는 가벼운 애들을 골라야겠어.

이우진 부장판사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안 되겠습니다.”

순간 김종재 변호사가 술잔을 쾅! 내려놨다.

이우진 부장판사가 움찔거리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판사 왜 이렇게 야심이 없어? 욕먹는 것은 길어야 1주일이야. 하지만 힘없는 판사로 살아가는 것은 수십 년이지. 잘 생각해. 지금은 1심이야.”

“......”

“그리고 몰라? 요즘 사람들 똑똑해. 1심이 끝이 아니란 것을 알아.”

김종재 변호사가 샐러드를 손에 들고 이우진 부장판사의 앞에 툭 던져두며 말했다.

“1심은 이런 샐러드야. 에피타이저지.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아.”

“......”

“그리고 판사에게 재판독립권이 있어. 그러니까 네가 내린 판결로 너에게 문제 삼을 사람은 없다는 거야. 병신 같은 네티즌만 앵앵거리겠지.”

이우진 부장판사의 눈이 떨려왔다.

김종재 변호사가 몸을 기울이며 낮은 음성을 내뱉었다.

“우진아, 세상은 혼자 성공할 수 없어. 다 같이 사는 세상이야. 그러니까 우리 함께 성공하자. 어?”

*

잠시 후, 김종재 변호사와 이우진 부장판사는 주차장으로 나왔다.

김종재 변호사가 담배를 발로 밟으며 말했다.

“내 라인에 대법관 한 명 나왔으면 좋겠어. 그게 자네였으면 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노력해야지. 아무것도 안 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것은 패배자 새끼들이야. 그리고 기억해. 자네가 설 곳은 이런 강원도가 아니라 대법원이야.”

김종재 변호사가 이우진 부장판사의 넥타이를 매만지며 어깨를 툭툭 쳤다.

“잘해.”

“네.”

김종재 변호사가 차량의 뒷좌석에 올랐다.

이우진 부장판사가 허리를 굽히자 차량이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난다.

이우진 부장판사가 자신의 차량으로 향했다.

운전석 문에 몸을 기대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씨발...”

바람이 찼다.

그만큼 씁쓸했다.

“인생 참... 뭐 있냐?”

그때였다.

“대리 부르셨죠?”

아직 부르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틀어 보는데, 서진이 서 있었다.

이우진 부장판사의 눈이 부릅떠졌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판이 이뤄지는 가운데 해당 변호사를 만난 게 딱 걸렸기 때문이다.

서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저... 저...”

서진이 이우진 부장판사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였다.

화면에 동영상이 흐른다.

멀어지는 김종재 변호사의 차를 향해 허리를 굽힌 이우진 부장판사의 모습은 정말 비굴해 보였다.

“이, 이게 왜 그랬냐 하면...”

이우진 부장판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하려 했다.

하지만 서진이 손을 흔들며 그의 입을 막았다.

“변명은 그만하시고. 사진 빨은 잘 받으시네, 배우해도 되겠어요?”

“네?”

“가게 안에 CCTV도 촬영됐을 텐데, 같이 확인해 보실까?”

***

2차 공판이 시작되었다.

1차에 비해 더 많은 기자가 보인다.

옷까지 벗겠다는 서진의 목소리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서다.

그리고.

“재판부가 입장하십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김종재 변호사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이우진 부장판사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

김종재 변호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우진 부장판사가 시선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

‘저건 또 뭐야?’

서진이 김종재 변호사를 향해 입 모양으로 말하고 있었다.

-넌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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