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79화 (79/250)

<너의 얼굴은 -(4)>

*

“이름이?”

“윤민우입니다.”

판사가 윤민우의 이름과 직업, 주소 등을 물어보며 재판이 시작됐다.

적막한 공간에 두 사람의 목소리만 울린다.

“직업은요?”

“여행 작가입니다.”

서진은 조용히 판사를 바라봤다.

이름은 이우진, 이제 막 부장판사에 오른 사람이다.

그리고.

‘쓰레기지.’

공판에 들어오기 전, 서진은 이우진 부장판사의 지난 재판을 들여다봤다.

교묘했지만 억지스러운 판결이 많았다.

그야말로 무전유죄, 유전무죄.

이번에도 김종재 변호사와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예로.

‘웃고 있어.’

김종재 변호사는 느긋했다.

다리를 꼬고 기록물을 넘기는 행동이 안방처럼 여겨질 정도다.

서진의 시선이 윤민우에게 틀어졌다.

윤민우는 놀랄 만큼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봐도 초췌하고 슬프게 느껴질 정도다.

얼굴 어디를 봐도 낄낄거리며 웃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서진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방청석이다.

꽉 찬 자리에는 기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피해자들의 부모도 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듯 손을 모은다.

그들이 간절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재판장과 변호사는 그들의 간절함을 외면한다.

오직 떨어질 이득만 생각한다.

“검사. 재판을 청구한 이유를 진술해주세요.”

판사의 목소리에 서진이 법복을 펄럭이며 일어섰다.

그리고 방청석을 향해 몸을 틀었다.

“피고인은 스물두 명의 여성을 살해했습니다.”

서진의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중학생이 사망했고 유흥업소의 종업원이 사망했다.

-그 숫자가 스물둘.

-그 시신이 모두 유기됐다.

-성폭행을 한 것도 모자라 친구 김태경에게 뒤집어씌웠다.

“피고인은 심신미약을 노리고 고의적으로 술을 마신 치밀함까지 보였습니다.”

지난사건을 되짚는 것은 고통과 같다.

어떤 부모는 눈물까지 흘린다.

하지만 재판의 과정이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서진의 시선이 윤민우에게 향했다.

윤민우는 서진을 노려보고 있다.

뉘우침은 없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한다.

서진이 놈에게 뚜벅뚜벅 다가섰다.

그리고.

“형법 제250조 1항의 살인. 제161조 1항의 사체 은닉. 제297조 2항의 유사 강간을 이유로 기소했습니다.”

윤민우가 서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검사님,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해야 할 겁니다.”

“전 아닌데요?”

“지금이라도 반성의 모습을 보여야 원하는 참작이라도 받을 수 있어요.”

순간, 김종재 변호사가 테이블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지금 재판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피고인을 협박하며!”

서진이 픽 웃었다.

“변호인, 피고인이 이 정도로 압박을 느낀다고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텐데요?”

“검사!”

두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우진 부장판사가 손바닥으로 법대를 쾅! 쾅! 쾅! 쳤다.

“조용히, 조용히 하세요! 그리고 검사는 유의하세요!”

“알겠습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며 김종재 변호사의 표정을 살폈다.

‘흥분하기를 원했는데...’

하지만 김종재 변호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재수 없게 웃고 있다.

서진은 저 미소를 보며 판사와 손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

“아이고, 형사 2부 또 밟히겠네?”

지검이었다.

흡연실에 모인 검사들이 쓰게 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김종재라며? 에휴, 잡아 오면 뭐 해. 이미 판사 새끼들 다 구워삶아 놨을 텐데.”

형사 2부가 사건만 맡으면 이상할 정도로 거물급 변호사가 선임됐다.

누군가는 저주라고 말할 정도.

“진짜 무당 불러다가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김종재는 갑자기 왜 튀어나와서, 씨발...”

이들은 검사다.

윤민우가 정당한 벌을 받았으면 한다.

하지만 거물급 변호사가 들어오면 법은 힘을 쓰지 못하고 짓밟히는 경우가 있다.

“기분 더럽네.”

인상을 구기며 담뱃재를 터는데 한 검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서진이잖아. 실적도 좋고 똘똘하고. 기대해도 되지 않겠어?”

“똘똘한 것은 인정. 그런데, 공판 한 번 뛰어본 애가 김종재를 엎는다고? 말이 되냐? 그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가 지랄하면 성질내면서 법복 집어 던질 수도 있어.”

“그래? 기분파는 아닌 것 같던데...”

검사들은 잠시 서진을 떠올렸다.

말대로 성격에 못 이겨 성질낼 놈은 아니다.

오히려 극단적일 정도로 차분하고 느긋한 모습이다.

게다가 미제를 해결한 실적이 있어 그런지 묘한 기대도 된다.

“그래도 이번은 어려울 거야. 우리 새 지검장이 뭐라고 불리는지 알지?”

-애완견.

“김종재가 이미 들렀다 갔대. 그다음에 김서진이 담당 검사로 지정된 거고.”

“진짜?”

서진이 공판을 맡은 것과 김종재 변호사는 전혀 상관이 없다.

심지어 시간순서도 다르다.

하지만 여준혁 검사장의 별명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헛소리들 늘어놓지 말고 일이나 해.”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리자 검사들이 서둘러 담배를 끄며 시선을 틀었다.

이명수 부장검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할 일없으면 책상이나 닦던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가!”

이명수 부장검사가 손을 휘휘 흔들자 검사들이 꾸벅꾸벅 인사하며 흩어졌다.

그들을 지켜보며 이명수 검사가 인상을 썼다.

‘젠장.’

이명수 부장검사도 소문을 들었다.

-서진이 김종재 변호사의 밥이요 반찬이다.

‘모르겠다.’

이명수 부장검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지검의 정문을 나섰다.

향한 곳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법원이다.

서진의 공판 현장에 가서 응원이라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 건물을 향해 털레털레 걷던 이명수 부장검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법원의 로비 앞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체크무늬 재킷을 입은 왜소한 남자.

‘맞지?’

온갖 누명을 쓰고 이제야 풀려난 김태경이 로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

이명수 부장검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김태경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태경 씨?”

김태경이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이명수 부장검사를 바라봤다.

이명수 검사가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강원 지검의 이명수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들어가 보시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이유였는지 듣는 것도 과거의 매듭이니까요.”

잠시 고민하던 김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김서진 검사님이 참석하라고 그랬어요.”

***

그 시각, 법정.

서진이 윤민우를 신문하고 있었다.

“살해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네, 전 아니에요.”

윤민우의 얼굴은 뻔뻔했다.

가증스러울 정도로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손도 바르르 떤다.

저 모든 게 연기다.

서진이 책상에 손을 짚으며 놈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자백했던 것은요? 다 거짓이었습니까?”

“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서...”

“피해자들의 신분증은 왜 가지고 있던 거죠?”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어요. 우연히 얻었어요. 그래서 몇 번 만져 본 게 전부예요. 난 모른다고요!”

놈들의 전략이 바뀌었다.

김종재 변호사는 지시했을 거다.

-여중생은 3년 전 사건이야.

-실종된 여자? 그것도 필요 없어.

-실체화된 증거가 없다면 살인죄는 인정되지 않아.

-딱 하나만 인정하자.

“주민아 씨는 제가 맞아요! 하지만 죽인 것은 아니에요. 술을 먹었는데, 다음 날, 죽어 있었어요. 그래서 무서워서...”

-인정할 것은 시체 유기.

-그게 전부야.

-어차피 주민아의 시신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어.

-부검을 해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어.

“죄송해요!”

윤민우가 책상에 엎어지더니 어깨를 떨며 엉엉 운다.

동시에 김종재 변호사가 몸을 일으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의 증거는 단 하나, 피해자들의 신분증입니다. 그런데, 그 신분증에는 이미 무수히 많은 지문이 찍혀 있고 대부분은 뭉개져 있었습니다. 특정할 수 있을까요?”

“......”

“우연히 발견했다는 윤민우 씨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재 변호사가 윤민우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리고 서진과 시선을 마주하며 윤민우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다.

“검사, 신분증만으로 살인이라는 죄를 이 어깨에 올릴 수는 없습니다.”

김종재 변호사는 승리를 확신하는 눈으로 서진을 쏘아 본 후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서진이 한숨을 내뱉으며 윤민우에게 물었다.

“신분증은 우연히 얻었다고요? 어디서 주웠죠?”

“네?”

“놀이터? 아니면 술집? 주민아 씨의 신분증은 왜 훔쳤습니까?”

“주, 주민아 씨의 신분증을 훔친 것은 무서워서 그랬어요. 신원이 밝혀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럼, 다른 신분증은?”

여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우연히 얻었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입을 꾹 다문 채 눈동자를 굴리던 윤민우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요.”

순간, 김종재 변호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 집의 주인은 김태경입니다!”

그 한 마디에 법정이 시끄러워졌다.

“김태경이라고?”

“맞지? 그 사람?”

김태경은 억울함의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성폭행뿐만 아니라 연쇄 살인까지 누명!

그런데, 누명을 쓴 게 아니라 진범이었다면?

반전의 반전이 일어나는 거다.

법정의 분위기가 술렁였다.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사실 윤민우가 억울했다고?”

“증거가 없다잖아.”

김종재 변호사는 웃었다.

이곳의 분위기가 윤민우를 무죄로 만들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종재는 이 분위기를 이용할 줄 아는 변호사였다.

“피고인! 김태경이 그 신분증을 꺼낸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서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재판장님! 지금은 제가 신문을 하는 중입니다. 변호인의 절차를 무시한 행동은...”

김종재 변호사가 서진의 말을 끊었다.

“재판장님! 허락해 주십시오.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우진 부장판사는 김종재 변호사의 편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허가하겠습니다.”

“재판장님!”

“검사, 절차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진실이 중요한 겁니다.”

서진이 턱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입을 꽉 다물 때, 윤민우가 또 흐느꼈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어렵게 열었다.

“...맞아요. 태경이에요.”

적막이 찾아왔다.

옷깃을 스치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재판부도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다.

김종재 변호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됐어.’

이제 끝났다.

L 그룹의 고문으로 가서 편안한 노후를 기대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그때였다.

“개새끼야!”

험악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서 눈이 벌게진 김태경이 사정없이 달려오고 있다.

“막아!”

법정 경위가 김태경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우진 판사가 쉬지 않고 법대를 두들긴다.

“뭐 하는 거야! 재판 방해야! 경위, 어서 끌고 가!”

경위가 김태경의 몸을 잡았다.

질질 끌고 나간다.

하지만 김태경은 바동거리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난 끝까지 널 지켜주려고 했는데!”

난데없는 소동에 법정은 개판이 되었다.

윤민우가 김태경을 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태경아... 미안해...”

그 말을 들은 김태경의 눈이 사나워졌다.

그가 중얼거린다.

“...미안? 나도 미안하다.”

그 입 모양을 윤민우가 봤다.

뭔가 섬뜩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미 늦었다.

김태경의 시선이 천천히 서진에게 틀어졌고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서진을 향해 던졌다.

“말씀하신 것 가져왔어요! 그러니까 죽여주세요! 제발!”

윤민우가 눈을 부릅뜰 때, 이우진 부장판사가 사정없이 법대를 두들겼다.

“경위! 빨리 데리고 나가! 뭐 하는 거야!”

소란 속에서 윤민우의 시선은 서진의 앞에 떨어진 usb를 보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저게 뭔가 하는 표정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김태경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경위들이 입을 막았지만 소용없다.

“검사님! 제발! 제발! 죽여주세요!”

서진이 usb를 손에 들며 김태경을 향해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말했다.

“네.”

그러자 김태경이 조용해졌다.

서진을 믿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위의 손에 힘없이 끌려갔다.

서진이 천천히 몸을 틀어 이우진 부장판사를 향했다.

“증거물로 이 usb를 제출합니다. 절차에는 어긋나지만 재판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절차보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

“허락해 주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우진 부장판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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