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은 -(3)>
***
“애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거야! 새파랗게 어린놈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검사장의 사무실이었다.
김종재 변호사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개소리를 거창하게 늘어놓고 있대!”
검사장의 이름은 여준혁.
조용준 검사장이 물러나며 이 사무실에 앉게 됐다.
파격 승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자네 이름까지 댔어! 그런데, 안 통해! 그 뻔뻔한 얼굴을 생각하면! 어휴!”
김종재 변호사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냈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나 보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신 후 계속 말했다.
“멀뚱히 보고 있지 말고 대답 좀 해! 요즘 검찰은 예의도 없나!”
김종재 변호사가 쏘아보자 여준혁 검사장이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업무를 시작한 터라 평검사 애들까지 둘러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잘 가르치겠습니다.”
“그게 끝이야?”
“단단히 혼내겠습니다.”
“하...”
김종재 변호사는 여준혁 검사장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검사장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속삭인다.
“야. 이천여 명의 검사, 그중에 검사장의 자리가 몇 개인 줄 알지? 빽 없고 힘없는 자네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았는지 잘 기억해. 알았어?”
김종재 변호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눈빛만 보면 여준혁 검사장을 잡아먹을 것 같다.
여준혁 검사장이 조용히 있자 대답을 재촉한다.
“대답해.”
여준혁 검사장이 빙긋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김종재 변호사가 히죽 웃으며 여준혁 검사장의 어깨를 두들겼다.
“잘해. 어?”
“네.”
김종재 변호사가 몸을 일으켰다.
“가시는 겁니까?”
“자네도 바쁜데 계속 있을 수 없잖아?”
김종재 변호사가 사무실을 벗어났다.
여준혁 검사장이 그 뒤를 쫓아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했다.
그리고 김종재 변호사가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여준혁 검사장이 허리를 굽혔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정말 깍듯한 자세였다.
김종재 변호사가 조용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보자고.”
그렇게 스르륵 문이 닫혔다.
여준혁 검사장이 비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김서진 검사, 올라오라고 해.”
“네.”
*
검사장의 호출을 받은 서진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곧장 최상층을 향했다.
바뀌는 숫자를 바라보던 서진의 얼굴이 냉랭해졌다.
‘여준혁.’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들어는 봤다.
평검사들은 그를 가리켜 애완견이라 불렀다.
권력자들의 품에 안겨 꼬리를 쳐대는 모습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성공한 애완견이네.’
그래서 김종재 변호사와 각별한 사이라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김종재는 판사 출신의 국회의원, 비록 초선으로 막을 내렸지만 그가 가진 인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서진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표정을 싹 바꿨다.
검사장 앞에서는 적당히 겁을 먹어줘야 하는 법이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넓은 방의 끝에 여준혁 검사장이 보인다.
서진이 앞으로 걸어가 허리를 굽혔다.
“형사 2부 김서진입니다. 부르셨습니까?”
여준혁 검사장이 싸인하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김종재 변호사한테 예의 없이 굴었다고?”
이제 화를 낼 타이밍이다.
예상되는 목소리는 많다.
-김종재 변호사가 네 친구야!
-아무리 검사와 변호사로 만났어도 예의를 갖춰야지!
-서른도 안 된 새끼가!
그런데 여준혁 검사장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서진의 예상과 달랐다.
“잘했어. 검사가 변호사한테 기를 꺾이면 그게 욕먹을 일이지. 앞으로도 그렇게 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아니다.
무심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순간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여준혁 검사장이 빙긋이 웃는다.
“왜? 혼이라도 날 줄 알았나?”
“......”
“검사가 변호사와 싸우는 게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자네를 왜 혼내겠어? 나도 검사야.”
여준혁 검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진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리고 서진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김종재 변호사가 내 이름을 거론해도 상관하지 마. 하고 싶은 대로 해.”
서진의 눈동자가 여준혁 검사장을 향해 틀어졌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꼬리나 흔드는 애완견이 아니다.
그리고.
“피고인 이름이 윤민우라고 그랬나?”
“네.”
“열심히 해.”
열심히 하라는 여준혁 검사장의 목소리는 살벌했다.
*
검사장실을 나온 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준혁 검사장의 첫인상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라서다.
소문과 다른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목적을 갖고 권력자를 이용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것은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것이고.
사무실로 돌아온 서진은 곧바로 이동영 수사관과 마주 앉았다.
“놈이 살해한 여성은 스물두 명. 하지만 일곱 명만 인정하고 있어요.”
서진이 여성들의 신분증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지도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나머지 열다섯 명의 시신을 찾아야 합니다.”
정황 증거만으로 살해를 인정받을 수 없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 재판의 결과는 뻔하다.
-무혐의.
서진이 지도에 펜을 죽죽 그었다.
“여성들의 집을 중심으로 CCTV 위치를 확인했어요.”
놈이 시신을 유기하는 방법은 일관적이었다.
CCTV를 피하고 주차가 가능한 곳을 찾아 시신을 버린다.
서진은 예상되는 모든 곳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경찰에 수사 협조 요청할게요. 수사관님은 당분간...”
“딸애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잠시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죄송합니다.”
“아뇨, 일인데요.”
이동영 수사관의 딸 성아.
지금은 고3이다.
한창 부모의 관심이 필요한데, 아빠가 집에 없다.
이 일을 직업으로 가진 탓이다.
서진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죠.”
그리고 서진의 시선이 실무관에게 틀어졌다.
“실무관님?”
“야근 괜찮아요. 일 많이 주시고 간식이나 많이 사주세요.”
실무관의 눈에도 의지가 가득했다.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잇는다.
“사이코 패스에게 어울리는 곳은 감옥이죠!”
서진이 웃으며 품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재판 끝날 때까지 우리 법인 카드로 쓰겠습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드세요.”
“정말요?”
“아버지 카드에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우리 아버지는 부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말이다.
우리 아빠 부자.
실무관이 정말 기쁜 듯 손뼉을 쳤다.
그리고 서진의 말이 이어졌다.
“놈은 정신 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현병으로 57차례나 병원을 들락거렸다고 주장하네요. 해당 병원 연락해서 사실 확인 해주시고요.”
“네!”
“사건 당시 놈의 카드 내역 전부 뽑아 주세요.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만취 상태였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 주장을 엎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진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겼다.
김종재 변호사는 인맥이 많은 사람.
지금쯤 법원장 또는 담당 판사를 만나 이런 말을 지껄이고 있을 거다.
-무죄를 달라는 게 아니잖아?
-알아봤더니 환자였어. 감형 요건은 충분한 것 같은데...
-무기징역은 가혹한 것 같으니 15년만 던져줘.
법정이라는 링 안에서 판사는 왕이며 심판이다.
심판이 기울어지면 이길 수 없다.
그걸 막는 방법은 하나.
‘여론전...’
판사도 눈치를 보는 인간이다.
시선이 주목되면 편파 판정을 내리기 어렵다.
서진이 천천히 휴대폰을 들고 조우재 부장검사의 연락처를 찾았다.
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거렸다.
‘아니야.’
조우재 부장검사는 이 사건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다.
연예인 성 상납으로 겨우 시선을 돌려놨는데 또 들끓게 하고 싶은 마음은 제로에 가까울 거다.
‘그럼...’
서진의 곁에는 언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영원한 서진의 편, 아버지.
재계 순위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건설사 도급 순위에는 올라간다.
메이저 언론사는 힘들어도 그 아래의 언론사는 광고비를 받기 위해 손바닥을 비벼댄다.
서진이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아버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
그 시각.
김종재 변호사는 서진의 예상대로 법원장을 만나 식사를 하는 중이다.
김종재 변호사는 판사 출신, 법원장은 한 기수 후배였다.
“부탁 좀 하자. 어?”
법원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담당 판사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판사는 독립성이 있고...”
“지랄.”
“형님!”
법원장이 버럭했지만 김종재 변호사는 낄낄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유 법원장, 우리 아는 사이에 점잔 떨지 말자. 독립은 개뿔.”
“형님, 예전과 달라요. 요새 애들은...”
“됐고. 노후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네?”
“옷 벗으면 뭐 할 거야? 어차피 대법관까지 못 가잖아? 그만두면 할 거 없지?”
“마누라랑 등산이나 다닐 겁니다.”
법원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제 곧 그만둬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면 지금 누리는 모든 호사를 포기해야 한다.
김종재 변호사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웃으며 속삭인다.
“진우야. 잘 들어. 나 이 사건 15년 이하로 잡으면 L그룹에 고문으로 간다. 알지? 마법의 지갑.”
“......!”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줄 알아? 요즘은 국회의원 출신 변호사도 기업에 들어가기가 어려워. 고만고만한 놈들이 바닥에 깔려 있거든. 그런데, 지방 법원장 출신이 이력서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법원장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그 순간 김종재 변호사가 말을 던졌다.
“노후 준비 나한테 맡겨라.”
“네?”
“먼저 가서 네 자리 준비해 둘 테니까. 형 믿고 딱 한 번만 눈 감아.”
법원장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탐욕이 스쳤다.
동시에 김종재 변호사가 테이블 아래로 슥 봉투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1심이잖아. 적당히 넘겨. 어차피 2심은 고등법원이야. 걔들이 잘 판단하겠지. 부담가질 필요는 전혀 없어.”
법원장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넣어 봉투를 만져봤다.
꽤 두툼하다.
법원장이 한숨을 내뱉을 때, 김종재 변호사가 웃으며 잔을 들었다
“자자, 마시자고.”
***
공판 당일.
법원 앞은 소란스러웠다.
연예인 성 상납으로 묻혔다 해도 여중생을 연쇄 살인한 범인의 첫 재판이다.
기자들이 몰려 있었고 여중생의 유가족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피켓에는 섬뜩할 정도의 붉은 글씨로 ‘사형’이라 적혀 있다.
그리고 서진의 차량이 도착했다.
기록물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내리는 데 그 앞으로 기자들이 몰렸다.
“변호인 측에서 살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데요? 염두에 두신 점이 있습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서진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조용히 법원을 향해 들어갈 뿐이다.
그때였다.
짝! 짝! 짝!
손뼉 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틀어진 곳에 김종재 변호사가 서 있었다.
시선이 주목되자 김종재 변호사가 입을 연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 이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윤민우 씨는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기자들의 눈이 깜빡인다.
동시에 김종재 변호사가 강하게 말했다.
“검찰은 지난번에도 사건을 조작했어요! 그런데, 이번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검찰은 명예회복을 위해 무리를 하는 중입니다! 윤민우 씨는 그 피해자고요!”
김종재 변호사가 눈을 부릅뜨고 서진을 노려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잇는다.
“검사님, 거짓된 게 단 하나도 없습니까? 말씀해 보세요.”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끌끌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진의 웃음을 본 김종재 변호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난 너 같은 놈들을 잘 알아. 어린놈들은 화를 참지 못하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욱하고 일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검사장한테도 한 소리 들었을 거다.
‘참기 힘들겠지. 검사장의 말도 듣지 않는 소신 있는 검사가 되고 싶겠지. 그래, 난리 한번 쳐봐. 지난번처럼 건방지게 나와 봐!’
김종재 변호사는 판사를 섭외했다.
그리고 지금은 서진이 인상을 쓰고 건방지게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면 여론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그런데.
‘어?’
서진은 김종재 변호사를 무시했다.
천천히 유가족들을 향해 몸을 틀고 있다.
동시에 서진과 시선이 마주친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내 딸의 원한을 갚아 주세요!”
“제발요! 제발!”
“검사님!”
서진이 그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엄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기자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들이 이런 순간을 놓칠 리 없다.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댄다.
머릿속에는 제목까지 정해졌다.
-유가족에게 다짐하는 검사.
그리고 그 인사가 끝이었다.
서진은 법정으로 들어가 버렸고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김종재 변호사를 향했다.
“그런 놈을 왜 변호하는 거예요!”
“무죄? 죄가 없다고? 수진이 신분증은 왜 가지고 있는데!”
“네가 인간이야!”
“이 새끼야!”
김종재 변호사만 유가족을 비웃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젠장.’
김종재 변호사가 입술을 씹으며 법정으로 향했다.
*
서진은 법정에 섰다.
검사 측 책상을 손으로 슥 만져 본다.
사형을 받아내야 하는 공판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빈틈없이 차 있는 방청석에서 스산한 살기가 느껴질 정도다.
서진이 책상을 툭 치며 중얼거렸다.
“사형.”
그때, 법정 경위의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모두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문이 열리고 법복을 입은 재판부가 들어오고 있었다.